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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16화 (16/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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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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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친정으로 가는 길에는 지난번과 같이 큰형 흥정이 총 대장이 되어 수행을 하고, 어머니와 아내의 가마꾼을 제외하고도 열 명의 하인들이, 바리바리 말 잔등에 예물을 싣고 따랐다.

나 역시 조랑말 등에 얹어져 꾸벅거리며 길을 가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여러 날을 왔으므로 전라도 화순에서 장흥과 보성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중간에 또 1박을 하고 아침부터 길을 재촉하니 이양 현이 나왔다.

여기서 다시 보성 방향으로 약 일각 정도 가자, 쌍봉마을 어귀에 이르렀다. 이제 어머니의 친정인 능성현 월곡리가 코앞에 다가 온 것이다.

우리가 어머니 친정에 도착하니 죽은 조상이라도 살아서 돌아온 듯 과장되게 반기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의 바로 밑의 동생이었다. 타계한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으로 보면 그가 또 첫 번째 아우이기도 했다.

여기서 어머니 가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양팽손에 대해 좀 자세히 소개하면 이러했다.

양팽손(梁彭孫)은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 대에 문장(文章)과 서화(書畵)로 명성을 얻은 문신이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윤두서(尹斗緖), 말기의 허련(許鍊)과 함께 호남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손꼽히는데, 특히 양팽손은 호남 화단의 선구자로 지칭되는 인물이었다.

여섯 살 연상으로 1510년 생원시에 같이 등과한 조광조(趙光祖)는 그와 평생 뜻을 같이한 지인(知人)이었다. 양팽손이 조광조에 대해 논하길, '더불어 이야기하면 마치 지초(芝草)나 난초의 향기가 사람에서 풍기는 것 같고, 기상은 비 개인 뒤의 가을 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막 걷힌 뒤의 밝은 달과 같아 인욕(人慾)을 초월한 사람'이라 했다.

조광조의 유배당시 곁에서 함께한 이가 학포였고 조광조가 타계하자 학포는 그의 사신(捨身)을 수습하기도 했다. 58년간의 삶 동안 올곧은 행동으로 청사(靑史)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으며, 학자이자 문장가이며 문인화가(文人畵家)이기도 했다.

그는 송흠(宋欽,1459-1547) 문하에서 수학했고, 20세인 1507년 향시에 참여, 29세인 151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였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홍문관 교리를 역임했다. 그러나 32세인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관직이 삭탈된 뒤 낙향했다. 고향에 학포당을 짓고 은거하여 서화에 심취하였다. 50세에 관직이 회복되었고, 타계 1년 전 용담현령에 제수되었다.

이런 형인데 비해 어머니를 맞은 동생 양홍손(梁紅孫)은 한마디로 개차반인 자였다. 형을 닮아 그림 솜씨는 빼어났으나, 기생집 같은데 가서 그림 한 장 그려주고 술을 마시는 등, 그 재주에 비해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해, 가문이나 사회 어디에서나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였다.

어머니에게 언젠가 들은 이야기로는 누님인 어머니에게도 가끔 들려 돈푼깨나 뜯어갔다 한다. 그 대가로 어머니는 종종 친정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말이다. 요 근래는 발길이 뜸해 개과천선 한 줄 알았더니 오늘의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 밑으로도 남동생 하나가 더 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보이지를 않았다.

"어서 오세요, 누님! 누님께서 어쩐 일로 친정에 발걸음을 다 하셨습니까? 해가 서쪽에서 뜨겠소이다."

"잘 지냈고?"

"네."

"요즈음은 어찌 발걸음이 뜸했누?"

"형님의 유작이 좀 있어서 그것으로 지금까지는 충당을 했습니다만."

"술 먹는데 다 탕진했단 말이지?"

"잘 아시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너는 언제 철이 들래?"

"그러지 말고 중신이나 해주세요."

"처는?"

"얼마 전에 세상 떠났습니다."

"저런, 저런........ 쯧쯧즛........!"

"홍손아!"

"네, 누님!"

어머니가 외삼촌을 부르더니 나를 그에게 소개시켰다.

"큰 외삼촌은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네게 큰 외삼촌이다. 인사해라. 아들!"

"처음 뵙겠습니다. 윤 흥입니다."

"거, 내가 누님 댁에 갔을 때, 고추를 내놓고 있던 아이가 이렇게 컸단 말입니까?"

"당연하지. 그게 언제 적 얘기인데."

"크 하하하.........! 참으로 세월 무척 빠르구나! 상투를 튼 것을 보니 장가도 간 모양이네요."

"서둘러 혼인시키느라 미처 알리지도 못했다. 저기 조신하게 서 있는 아이가 며늘아기야."

"우와.........! 첫눈에 봐도 경국지색의 미인이시네요."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내 마음이야 어떠하든 아내가 큰 외삼촌에게 조신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큰 외삼촌!"

한마디 하고는 얼른 고개를 숙이는 아내였다.

"참으로 예쁘기도 하지. 조카 너는 복 받았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갑시다!"

나를 보고 싱긋 웃던 양홍손이 팔을 힘차게 내저으며 앞장을 섰다.

그리고 얼마 후.

모처럼 만난 남매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외갓집에 다 왔다.

이때 부엌에서 행주치마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며 나오는 아낙이 있었다.

"누님은 처음 뵙지요. 막내 제수씨입니다."

"하긴 친정을 한 번도 안 와봤으니, 내 알 턱이 있나........"

"그러니까 자주 자주 오시라니까요."

"내게 누님 되세요. 그러니까 제수씨에게는 시누이 되겠네요."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어머니가 새삼 올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막내 동생은 어디 갔지?"

"밭에 일하러 나갔습니다."

"그렇군."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세요."

아낙의 말에 지긋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가늠해 보는 어머니셨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어머니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오자고."

"네, 그러세요. 다녀오시는 동안 얼른 제가 점심 진지 마련해 놓을 게요."

시누이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셨다.

"가시죠. 누님!"

휘적휘적 앞장을 서는 박포(博圃) 양 홍손 이었다.

"재산 좀 불었어?"

어머니가 앞서가는 동생을 보고 물었다.

"불기는 요. 하긴 형님 생전에는 좀 불었었지만, 제가 입으로 다 조졌습니다."

"잘한다. 정말 잘해!"

어머니가 종당에는 혀까지 차며 다 큰 동생을 나무라셨다.

"오신 길에, 용돈 좀 주고 가시겠지요?"

넉살도 좋은 큰 외삼촌이라는 작자였다.

"네,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줬던 돈도 빼앗고 싶다."

"누님, 늙어가며 너무 그러지 마시우. 저승에 싸갈 것도 아니면서."

"난 재산 한 푼도 없다. 벌써 아들에게 상속 내렸어. 곳간 자물쇠도 며느리 다 줬고."

"정말이세요? 누님?"

"그럼, 너하고 장난 하리?"

"그럼, 앞으로 친정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우."

"저런 싸가지 하고는........ 쯧쯧쯧........"

"농담이고요. 조카가 아주 인물이 훤칠하네요."

"이젠 그 아이한테 달라붙는 거야."

"세태가 다 그러니 낸들 별 수 있 수? 비록 조카지만 알랑방귀라도 뀌어 술값 몇 푼이라도 얻어내면 남는 장사지."

참으로 얼굴도 두껍고 괴짜라면 괴짜였다. 나는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갑자기 묘한 생각이 들었다. 더 정확히는 그의 쓰임이 생각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내심 흐뭇하게 웃으며, 힘차게 걷는 그의 걸음을 열심히 좇았다. 조랑말을 외가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산소에서 무척 많이 우셨다.

당신을 시집보낼 때만해도 친정어머니 아버지가 비교적 젊으셨을 테고, 어머니 심상(心象)에는 그 모습으로 계셨을 텐데, 모두 돌아가셨다니........ 이미 이성으로는 이해했지만 감성만은 떠나보내지 못했던 어머니 아버지를 오늘 비로소 마음속으로 떠나보내시며, 어머니는 눈이 붓도록 우셨다.

하도 울어 탈진한 어머니를 부축해 간신히 외가댁에 모셨더니 어머니는 그 길로 점심도 못 잡수시고 한동안 주무셨다.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깨어나셨는데 이미 해거름이라 막내 외삼촌도 그때는 돌아온 후였다.

막내 외삼촌은 이름을 양현손(梁賢孫)이라 했는데, 큰외삼촌과는 달리 성품이 순후하고 착실했다. 두 사람이 오래간만의 해후에 끝까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정담을 나누시더니, 그것도 기운이 없는지 나중에는 녹두죽을 잡숫고 이야기를 하셔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더욱 몸이 많이 약해지신 어머니가 오늘 따라 많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기분 전환을 위해 내가 작은 외삼촌에게 말을 붙였다.

"작은 외삼촌, 농토는 얼마나 되요?"

"논 열 마지에 밭이 한 오백 평쯤 되지."

"그것 같고 생활이 돼요?"

"힘들지만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어."

"어머니가 오시 전에 제게 당부하신 말씀이 계셨어요. 들어봐서 생활이 넉넉하지 않다면 한 삼십 마지기 사서 보탬이 좀 되도록 하라고."

"정말이세요? 누님!"

금방 희색이 만면하여 한무릎 어머니에게 달려드는 큰외삼촌이었다.

"흠흠.........!"

큰외삼촌의 물음에 헛기침만 하고 어색하게 웃으시던 어머니가 내 물음에 표정이 환해지셔서 대답하셨다.

"그렇지요? 어머니?"

"그럼, 그럼.........!"

"우와........! 누님 오늘 통 크게 한 번 노시네. 아무튼 고맙습니다. 누님!"

말을 하고 얼른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는 큰외삼촌이었다.

"그런데, 어쩌죠?"

"왜, 무슨 문제가 있나?"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드는 큰외삼촌이었다.

"명의를 작은외삼촌 앞으로 하라고 하셔서."

"뭐? 이제 이 집의 장자는 난데,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큰 외삼촌 앞으로 하면 몇 해 못가서 입으로 다 조지고 만다고........"

"아니야, 아니야! 내 이참에 술도 끊도록 하지."

"술을 끊는 이 목을 끊는 게 빠르지 않을까?"

어머니의 빈정대는 말에 큰외삼촌이 발끈해서 외쳤다.

"누님 나 너무 만만히 보지 마시우. 나 이래보여도 한다면 하는 놈입니다."

"술을 끊지 않아도 되는 좋은 방법이 있긴 한데......."

내 말에 큰외삼촌이 자리를 옮겨 내 얼굴과 닿을 정도로 다가와 물었다.

"우리 위대한 조카! 그 방법이 뭔데?"

나는 뜸을 들이기 위해 다만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그래, 그 방법이 뭐야?"

"큰외삼촌 앞으로도 별도로 논을 사들이면 되지요."

"크 하하하........! 그렇다면야 형제지간에 싸울 일도 없고. 나야 금상첨화지."

반색을 하며 달려드는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내 얼굴에 뽀뽀라도 할 기세였다.

그래서 내가 한 무릎 물러서며 김을 빼놓기로 했다.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뭔데, 뭔데? 웬만하면 내 다 들어주도록 하지. 그 보다도 나는 얼마나 사 줄 건데?"

"한 삼십 마지기면 안 될까요?"

"정말이야? 조카?"

"흥아! 너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냐?"

큰외삼촌이 반색을 하는데 비해 어머니는 정색을 하고 말씀하시고, 아내는 샐쭉해 돌아앉았다. 자기네 친정과 비슷하게 사주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단 명의는 제 앞으로 해놓겠습니다."

"그게 뭐가 사주는 거야?"

좋았다가 말았다는 표정으로 큰외삼촌이 시큰둥하게 뱉었다.

"명의를 외삼촌 앞으로 해놓으면 아예 씨암닭까지 잡아먹을까 봐서요. 거기서 나오는 달걀은 얼마든지 자셔도 좋습니다. 내다 팔아도 좋고요."

"그 방법도 그럭저럭 괜찮은 방법인데."

비로소 내 말을 이해했는지 표정이 다시 환해지는 큰외삼촌이었다.

"거기에도 또 조건이 있어요."

내 말이 여기에 이르자 다시 표정이 일그러지는 큰외삼촌이었다.

"그 조건이라는 게 뭔데?"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묻는 큰외삼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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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

오늘떠나시는 분도 계실테니 미리 인사 드려야겠네요.

즐거운 명절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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