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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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 웃으며 뭐 나는데......'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이때 장모님이 술 주전자를 들고 들어오셨다. 이를 보고 아내가 내게 말했다.
"조금만 잡수세요. 전주도 있잖아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당신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밥이나 먹어."
"쳇, 지금 밥이 입으로 넘어가요. 당신이 논 삼십 마지기를 장만해준다는데 너무 가슴이 뛰어서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를 않잖아요."
"논 백 마지기만 사줬더라면 아예 굶어서 아사할 뻔했구만 그래."
"그래도 그건 좋을 것 같아요."
"됐으니까, 그만 진정하고 어서 밥이나 먹어."
"네, 여보!"
둘만 있었으면 볼이 아니라 입술에 뽀뽀라도 했으련만, 다만 눈을 찡긋하는 것으로 내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시하는 아내였다.
이런 우리를 보고 웃음을 머금으신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내 귀한 손님 주려고 미리 떠놓은 용수지만, 아낌없이 내왔네."
"감사합니다. 장모님!"
잔을 받아든 장인이 내게 먼저 잔을 권했다.
"한 잔 받게."
"아, 아닙니다. 장인어른부터 한 잔 받으세요."
"오늘은 자네가 주인공이니 어서 받게."
"네!"
어쩔 수 없이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받는데, 장모님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쌀로 빚은 막걸리가 황금빛이 났다.
한 잔을 받은 내가 장인어른에게 한 잔을 따라드리고, 주전자를 상에 놓으려는데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한 잔 주게. 오늘 같이 기쁜 날 안마시면 언제 술 마셔보겠누."
"그러시죠. 장모님!"
내가 급히 비운 사발에 술을 따르는데 장인어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내 살다 살다, 오늘은 부인이 술 마시는 꼴을 다 보겠네."
"저도 이제 술도 좀 배울 참 이예요. 이제 사위 덕분에 가세도 폈겠다. 뭐가 걱정 이예요. 인생 즐기다가 가야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장모님!"
"허, 허, 사위 덕에 술꾼 하나 생겼네 그려."
"술꾼이 아니라 술벗이겠죠."
"지금 나랑 대작하자는 거야?"
"못 할 건, 또 뭐에요?"
"어허, 남녀가 유별한데........"
"고루하기는........"
작게 중얼거리시던 장모님이 장인어른의 째림에 얼른 사발로 눈을 가리셨다. 그리고 마시기 시작하는데, 마치 밤중에 도랑물 내려가는 소리마냥 꿀꺽꿀꺽 시원하게 잘도 마시셨다.
"그러다가 취해, 이 사람아!"
"오늘 한 번 취해서 당신한테 주정 한 번 해보려고요."
"논 몇 마지기 생기는 바람에 이거 집안 거꾸로 물구나무 서는 것 아니야?"
"절대 그런 일은 없네요."
새침하게 말하고는 장모님이 상위의 술 주전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내 술 한 잔 받으시게."
"네, 장모님!"
"엄마, 저이 너무 많이 주지마세요. 좀 전에 사랑채에서도 엄청 많이 마셨단 말 이예요."
"그래? 전혀 표시가 안 나는 데?"
"저이는 안만 마셔도 전혀 표시가 안 나는 사람 이예요."
"그래? 별일도 다 많네."
아내의 말에 내가 들고 있는 술잔이 반만 채워졌다. 그래서 내가 떫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아내는 혀를 날름 내밀었다 들이미는 것으로, 은근히 나를 더 약 올렸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저 예쁜 혀를 아주 잘강잘강 씹어주기로.'
그러나 내 복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날 밤 장모님이 나와 아내를 다른 방에 재우셨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조반을 뜨자마자 흥정과 서출의 김 흡과 김 보를 데리고 출타를 했다. 사내들끼리라 말을 타고 빨리 갈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전혀 말을 탈 줄 몰라 아낙을 데리고 가는 것보다 조금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심 결심했다. 집에 갈 때는 말 몇 마리를 주고 가기로.
아무튼 아침 일찍 길을 나선 우리는 채 한 시진이 못 되어 내가 원하는 장소에 왔다. 처갓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지금의 행정구역상으로 이류면 만정리에 있는 산이었다. 이곳은 전생에서 내 눈에 무척 눈에 익은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설게 느껴졌다. 이곳이 아버지가 광부로 근무하던 시절 즉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이었다. 그래서 계단식의 작은 논들과 사택, 그리고 폐광석 더미를 연상했지만 이생에 있어서의 풍경은 그렇지 못했다.
계단식 밭이 논 대신 있는 것은 흡사했지만 그 위로는 그냥 산으로 남아있었다. 과히 높지 않은 산이라 인근에서 나무를 많이 해다 때서 그런지 몰라도, 거의 민둥산에 가까운 산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무튼 내가 이곳으로 데려오자 모두 휘둥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처남님!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자 하신 겁니까?"
오는 내내 몇 번이고 주입식 교육을 시켜서야, 서출 큰처남 흡의 입에서 비로소 처음 듣게 되는 처남소리였다.
나는 아무도 없는 야산이건만 다시 한 번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고는, 그것도 속삭이듯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장차 철점(鐵店:철광석 광산)을 낼 것입니다."
"네?"
"이 황량한 산에 뭐가 있다고.........?"
흡의 물음에 내가 손가락질까지 하며 설명을 했다.
"저 위로 올라가보면 알겠지만 바위들이 많은데 사실 그게 일반 암석덩어리가 아니라 전문 용어로 철광석 노두예요. 철광석이 밖으로 돌출됐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광산으로 개발할 거예요."
"나라에서는 사사로이 광산 개발을 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도 사내 코빼기라고 어디서 귀동냥한 건 있는 모양이었다. 김 보의 말대로 조선조에서는 개인이 광산을 경영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는 명나라에서 조공품목으로 금을 할당할까봐, 일부러 금이 안 나온다고 하며 아예 광산 개발 자체를 민에는 주지 않고, 저희들만 그것도 정 필요한 양만 조금씩 생산해서 썼다.
그 바람에 구한말까지 금이며 여타 광산이 온전히 보전된 것이 많아, 구한말에 이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인 것은, 역사가 증명한 일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개발한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이 산은 지금 내가 왔을 때 사놓아야 해요. 이 산주인을 알아봐 줄 수는 있겠죠?"
"그야 수소문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일이죠."
"주인을 찾는 대로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매입하는 것으로 하고, 당장은 이곳에 오리, 염소 및 닭을 기를 거예요."
"광산을 한다더니 그건 또 뭔 소리 예요?"
"내 고사 하나를 들려드리죠."
이렇게 운을 뗀 나는 곧 명나라 영락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명나라 주원장의 4황자 주체(朱棣)가 아직 황제가 되기 전 일이예요. 알다시피 조카 건문제(建文帝)와 싸우는 와중에 지금의 북경 성 안에서 무기는 만들어야겠는데, 무기를 만들게 되면 망치질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궁궐 안에 무수한 오리들을 키웠다 해요. 결국 오리들의 꽥꽥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망치질 소리가 묻혀, 영락제는 무기를 만들 수 있었고, 이 무기로 결국 영락제는 승리를 거뒀잖아요."
"마찬가지 이유로 오리와 닭 염소 등을 키우는 거예요. 염소는 방목도 할 수 있으니까 제격이고요. 이렇게 농장으로 위장했다가 훗날 때가 되면 이곳에서 철을 생산해내겠다는 것이 내 복안이지요."
"다 좋은데 이곳에 철이 난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둘째 처남 복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흥정 형은 내가 하도 요상한 짓을 많이 하니까 이제 만성이 되어서 그런지, 여간해서는 의문이 생겨도 묻지를 않는데, 이 초짜가 나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전생에서 아버지가 이곳에서 광부생활을 하는 바람에 내가 뛰어놀던 곳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더운 날씨도 아닌데 나는 이마에 번들거리는 땀을 사건으로 닦으며 대답을 하기는 해야 했다.
"흥정이 형은 알지만 내가 서울 마포나루 근처에 큰 상점과 여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자연적으로 보부상들과의 접촉도 많아, 어느 보부상에게 들은 얘기예요."
"그렇군요."
얼렁뚱땅 둘러대기는 했지만 내심 진땀이 흐르는 것을 금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곳은 되었으니, 또 한 곳을 가봅시다."
"또 어디 철이 매장되어 있는 곳이 있어요?"
"이번에는 금광입니다."
"네?"
"갈 길이 머니 빨리 갑시다."
나는 이들의 놀람에는 아랑곳없이 길을 재촉했다.
몇 걸음 떼어놓던 내가 돌아서서 말했다.
"아.......! 오늘은 안 되겠네요. 거리가 엄청 먼 데 급한 마음에 간과했어요. 우리 둘은 일찍 들어갈 테니, 두 분은 이 산주인에 대해서 알아보고 오세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처남님!"
"왜요?"
큰처남 흡의 부름에 내가 돌아보며 물었다.
"제가 머리털 나고 양반으로부터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보기는 처남님이 처음입니다. 대단히 감격했습니다. 앞으로 처남님의 하실 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제가 최선을 다하여 돕도록 하겠습니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믿고 맡겨만 주신다면 꼭,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로군요."
내가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이번에는 둘째 처남 보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저 역시 형님과 똑같은 심정입니다. 성심껏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오. 더 늦기 전에 움직이셔서 해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겉으로 나는 이렇게 겸손한 척했지만 내심으로는 득의양양해 있었다.
'음........ 하하하.........! 이게 바로 인심수람술(人心收攬術)이라는 것이지.'
전생의 가치관이 나를 이렇게 위대한 인격자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은 또 다시 아침 일찍부터 원행에 나섰다. 이번 길은 당일이 아니라 며칠이 걸릴 여정이므로 사전에 처갓집에 최소한 5일 후에 돌아올 것이니, 그렇게 알라고 통보하는 것도 잊지 않고 나선 길이었다.
내가 지금 가려는 곳은 지금의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무극광산(無極鑛山) 이었다. 이 무극 광산으로 말하면 한때 남한 전체에서 금 생산량이 제일 많았던 곳이다. 국내 총생산량의 80% 정도에 이르는 연간 1톤 이상의 금을 캐내던 국내 최대의 금광이었다. 주로 일제시대 때 많이 캐먹었지만, 해방 후에도 그 여지가 남아 그런 생산량을 자랑했던 곳이다.
각설하고 우리가 이곳에서 그곳으로 가려면 일단은 음성까지 가야했다. 또 그곳에서 서쪽으로 십오 리 정도가면 현재의 금왕읍이고, 무극광산은 그곳에서도 진천 쪽으로 오리를 더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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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하고요!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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