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
4
"내가 만들려는 소금은 여느 소금과 다르게 햇빛과 바람만으로 만드는 것이라, 한 번 본 자들은 모두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소문이 나지 않게 하기위해 이 외진 것을 택한 것이니, 괜한 분란을 조성하지 마라. 또한 우리가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하게 되면 특별히 너희들은 높은 삯을 주고 고용해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게 할 것을, 윤 진사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다."
"정말이시우, 나리!"
"그렇다. 어서 연장부터 치우고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이나 있으면 좀 내오너라."
나의 말에 저희들끼리 둥그렇게 모여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 안도하긴 이르지만 그들의 하는 행동으로 보아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아, 나는 그들이 안 보는 동안에 소매로 이마에 번진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 둘째형 흥선을 보고 물었다.
"흥선 형은 운검(雲劒)이라고 들어 보았소?"
"난생 처음 듣습니다."
"2품 벼슬로 최근거리에서 왕을 호위(護衛)하는 무사(武士)를 이르는 말이요. 왕의 행차 시, 등 뒤에서 칼을 차고 호위하는 역이기도 하오. 당연히 왕의 신임이 두텁고 검술의 최고단자가 맡는 자리지요. 헌데 이들이 차고 다니는 검자루와 검집에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어, 운검(雲劒)이라고 부른다오. 구름이 있어야 용이 승천하고, 용은 왕을 상징하는 것 아니겠소?"
한숨 돌린 내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갑자기 운검 같은 검의 최고수가 내 곁에 있다면, 오늘 날 내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지는 않아도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나중에 한양에 올라가게 되면 운검 같은 검과 무예에 뛰어난 자들을, 억만금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많이 고용해주길 바라오."
"명심하겠습니다. 가주님!"
이러는 동안에 그들도 상의를 했는지 그 건장한 사내가 마을 안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개똥 어멈! 먹을 것 좀 있으면 내와 봐! 윤 진사 댁 자제분께 대접 좀 하게."
"네........!"
말꼬리를 길게 끌며 어느 아낙 하나가 돌담 안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여러 집에서 소반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해 펼쳐놓은 것을 보니 내 이마가 절로 찌푸려졌다. 찬으로는 간장 한 종지와 꽁보리밥 또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식은 조밥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를 보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 가지고온 쌀의 일부를 이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인들에게 지시했다. 물론 동정심에 이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내 술수도 작용을 한 것이다. 어쨌거나 나의 지시로 마을 사내들의 표정이 점점 순한 양이 되었다. 나는 이들이 내온 밥을 맛이 없어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서출 형들도 맛이 없기는 마찬가지인지 바로 나를 따라 일어서는데, 어부 허 노인만이 배가 고팠던지 걸신들린 사람마냥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었다. 잠시 더 기다려 허 노인마저 식사를 마치자 나는 동네의 장정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넓게 펼쳐진 갯벌이 있소?"
"섬 북쪽에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습니다. 나리"
"함께 갑시다."
"네!"
우리는 곧 마을 장정들의 안내를 받아 섬의 북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산모퉁이를 돌자 정말 광대한 면적의 천연 갯벌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양쪽으로 산세가 길게 뻗어나가 갯벌만 아니라면 항구로 조성해도 좋을 듯싶은 모양새였다.
"그런데, 도련님! 다른 하인들은 안 옵니까?"
"사실 그 말은 당신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오. 하지만 내가 한 다른 말은, 한 점 거짓이 없으니 믿기 바라오."
내 말에 순간적으로 속았다는 것을 알고 일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으나, 더 올 하인마저 없다니 이것이 이들에게는 더욱 안정감을 주는지 행동들이 더욱 활발해졌다.
"해 떨어지기 전에 빨리빨리 갑시다."
그들이 앞장서는 바람에 우리는 금방 그 갯벌에 당도할 수 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이곳 저곳을 손가락질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래바닥에 그림까지 곁들인 설명이 한동안 이어졌다.
"저쪽 서쪽으로 우선 밀물이 들어오도록 긴 수로를 내시오. 그리고 갑문을 해 닫아 새로운 바닷물이 유입되지 않도록 하면 그것이 곧 소금의 1차 결정지나 마찬가지요. 또 이 물이 종으로 타고 갈 이차 수로를 남쪽으로 내시오."
나는 그림을 그려가며 계속해서 설명을 해나갔다.
"그리고 논을 3단으로 쪼개 만드는 것이오. 이곳이 곧 소금의 2차, 3차 결정지요, 이곳은 최종 소금이 완성되는 4차 결정지가 될 것이오. 이렇게 논을 만들 되, 이 논을 바닷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황토 등으로 메워 단단히 다져야 하오. 아니면 반듯반듯한 도자기를 만들어 박으면 좋으나, 이곳에 고령토가 없을 것이니 너무 경비가 많이 들 것이오. 해서 이 방법보다는 갯벌을 다지는 방법으로 합시다."
"이렇게 해서 바닷물을 오랫동안 가둬두고 있으면 태양과 바람에 의해 자연 증발이 되어, 자연적으로 소금이 완성되는데 보통 10일이 걸리오. 아무튼 완성된 소금을 가마니에 담아 보관창고에 보관하면 되, 보관 창고는 튼튼하게 지어 자연적으로 간수가 빠지는 6개월 내지 1년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천일염의 시작은 햇볕이 많이 쬐기 시작하는 3월부터 시작해서 10월 까지만 하는 것이 좋소. 물론 장마철인 6~7월(음력)은 어려울 것이오. 이렇게 행하면 자염보다는 최소한 서너 배의 소출이 있을 것이니 자연적으로 소금이 싸지는 것이오."
"나는 이 소금을 그냥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염장 제품을 만들고 싶소. 즉 바닷가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들이나 새우 여타 생선의 내장들을 싼값에 대량으로 매입하여, 이 싼 소금을 대량 투입하여, 젓갈류나 염장생선을 만들어 팔 작정이오. 이해가 되오?"
"대충은 요. 그런데 이 갯벌을 전체 소금 만드는 곳으로 만들려면, 품이 만만찮게 들겠는 데요?"
"그러니까 내가 우리 소작농 중에서 날품팔이꾼이 있는지 물은 것 아니오. 이들을 금번에 전부 이 염전을 만드는데 투입하도록 하시오. 여기 있는 분들도 원하면, 우리가 데리고 오는 사람들보다는 보수를 좀 더 주어 참여시키도록 하시오."
나는 이들에게 내 말을 알아듣거나 말거나 한 마디 툭 던졌다.
"기득권 차원에서 예우를 하는 것이오."
내 설명이 끝나자 해가 떨어지려 했는데 그래서 허 노인만 바다로 돌려보내 배를 이쪽으로 대도록 했다.
"내 설명을 다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도 좋소."
내 말에도 마을 장정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헤어지려하니 또 경계심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정 뭣하면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밤을 새워도 좋소."
이렇게 말하고 나는 하인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 밤에 피울 화톳불 용 땔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준비가 끝나자 나는 화톳불을 피웠다. 그동안 허 노인이 배를 부근에 댔다.
내 지시에 이 마을 장정들도 합류해 준비해 간 물품들을 날랐다. 나는 곧 쌀 한 말을 꺼내 다섯 집에 각각 두 되씩 나누어주었다. 모처럼 쌀을 대하자 여섯 사람의 입이 동시에 찢어졌다.
나의 호의에 거듭거듭 사의를 표하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한 나는 곧 새로 밥을 지어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저녁준비가 되고 주위도 차츰 어둠으로 뒤덮였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나는 월영재에 발을 들이는 것으로, 고군산군도의 주봉인 월영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198미터로 과히 높지 않은 월영봉에 오르니 신시도가 한 눈에 다 들어오고, 나머지 섬들도 일목요연하게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무녀도, 선유도, 정자도, 대장도 등이 연이어 펼쳐져 있었다. 공도정책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육지와 달리 숲이 울울창창했다. 시선을 다시 앞으로 당기니 갯벌보다도 더 훌륭한 양항이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양 끝의 산세가 길게 뻗어나가 자연스럽게 거친 파도와 바람을 차단하는 가운데 깊숙한 안쪽은 백사장이 길게 옆으로 깔려 있고, 백사장 위로는 주거지로 삼으면 좋을 듯한 얕은 구릉이었다.
"좋구나!"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을 토하고는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곳에 항구와 함께 조선소를 세우시오!
"네?"
나의 뜬금없는 지시에 삼형제가 반사적으로 반문하고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무도 충분하니 이곳에서 큰 배를 건조해 달란 말이오."
"장인이 있어야지요?"
"구하면 될 것 아니오."
흥분의 말에 나는 즉각 반박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읊조리기에 분주한 나였다.
"길이 50장(150m), 폭 20장(60m), 무게 300관(1,125톤), 돛 세 개의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갖고 있는 내 꿈이나, 우선 절반 크기로 두 척을 연달아 건조하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소?"
"네, 가주님!"
대답은 했으나 막상 건조할 생각을 하니 너무 큰 배라 모두 기가 질려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삼형제였다.
"역사상 없는 배를 만들어 내라는 것도 아니오. 명나라 알지요?"
"네, 가주님!"
"영락(永樂) 연간에 이런 배 50~60척을 동시에 건조해, 저 멀리 불랑기 못 미쳐 아프리카 깜둥이들만 사는 나라까지, 총 7차례나 다녀온 일이 있소.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고 차근차근 시작해봅시다."
"그래도 너무 큽니다. 가주님!"
흥정의 반발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내의 배포가 그 정도는 되어야지, 너무 작으면 무엇에다 쓰겠소."
"아이고........!"
결코 양보하지 않는 나의 말에 모두 머리를 감싸 쥐고 땅바닥에 주저앉는 삼형제였다.
* * *
신시도의 다섯 가구는 높은 품삯을 약속하자 위험한 고기잡이보다 천일염 생산에 종사하기로 나와 약속을 했다. 내게는 이런 지엽적인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뱃전에서 세형제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하든 이를 해소해 주어야 했다.
"내 걱정이 큰 줄 아오. 첫째 걱정은 나라에서 금하는 섬으로 상시 출입하는 것이고, 또한 그곳에서 소금 생산은 물론 배까지 건조해야 된다는 사실에 부담 정도가 아니라 겁이 나겠지. 그러나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해 보오. 귀양살이 간 것도 억울한데 왜구 놈들에게 피살을 당했으니, 그 원통함이란 지금도 생각하면 분노로 잠을 못 이루고 살이 벌벌 떨리오."
"내가 이렇게 거창하면서도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하는 이유도 다 선친의 원수를 갚자는데 있소. 더 나아가 얼마 안 있으면 왜놈들이 대대적으로 우리나라에 침공해 전국을 유린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나는 보오."
내 말이 여기에 이르자 셋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주님, 정말로 그렇게 예상하십니까?"
"내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아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항상 귀를 열어놓고 있는 사람이오. 왜국은 지금 내전이 치열하지만 세월이 좀 더 지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체를 통일하고 관백에 오를 것으로 나는 예측하고 있소.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의문부호를 찍어 놓고 삼형제를 바라보니 그들 또한 궁금한 낯빛으로 내 시선과 마주쳤다.
------------------
..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늘 좋은 날 되시고요!
^^
이전글: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다음글: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