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
3
다음날 새벽.
오늘도 아내는 여일하게 새벽부터 일어나 오두마니 앉아있었다.
어젯밤에도 밤새 시달린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내가 선하품을 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 벌써부터 친정어머니 그리는 거야?"
"어떻게 아셨어요?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눈에 삼삼하네요."
"더 괴롭혀서 그럴 여가를 주지 말아야겠군."
"네?"
작게 중얼거리는 내 말을 부인은 제대로 못 들었는지 반문했다.
"못 들었으면 됐고. 낮에는 주로 뭘 해?"
"음.......! 어제는 바느질을 했어요."
"무슨 바느질?"
"제 손으로 서방님 여름에 입으실 모시적삼 만들어보려고요."
"할 줄 알아?"
"저 명주실도 잘 잣고요. 베도 짤 줄 알아요. 서방님이 아시는지 몰라도 우린 농토도 별로 없는데다 아버님 녹봉으로 많은 형제가 생활하려니 어려웠어요."
"처갓집에 논마지기나 장만해줘야겠군."
"정말이세요, 서방님? 아이, 좋아라! 쪽!"
어린아이마냥 방방 뜨던 아내가 종당에는 내 이마에 뽀뽀까지 했다.
"에이, 더럽게 시리 침 묻었잖아?"
"더러워요?"
갑자기 쌍심지에 불을 켜는 아내였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 내 당신 것이 더럽다면 밤새 꼴깍꼴깍 삼켰겠어?"
"그렇지요?"
금방 환하게 웃으며 묻는 아내의 얼굴은 무슨 생각인지 진한 홍조가 돌고 있었다.
"세안하고 어머님한테 문안 가야지."
"네, 저는 다 했어요. 세숫물 떠올게요."
"그러오."
조신하게 일어나는 아내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아보였다.
급히 양치와 세수를 한 나는 아내를 데리고 내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오늘도 역시 벌써 단장을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어머니!"
"그래. 너희들 내외도 잘 잣고?"
"네, 어머니!"
내가 어쩌나 보느라고 대답을 안 하니, 아까는 이구동성으로 하던 대답이 이제는 작은 목소리의 아내의 목소리만 들렸다.
"아범, 너는 밤새 편안하지 못했단 말이냐?"
"어젯밤에도 어머니 말씀을 따라 부인이 저를 몹시 괴롭혔습니다."
"아, 아니 예요. 저이가 먼저 시작을......."
홍당무가 되어 급하게 변명하는 부인이 우스웠던지 어머니도 마침내 참던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호호호.........! 그렇다고 밤마다 너무 괴롭히지는 마라. 그러다 네 신랑 키 안 크면 어쩔래?"
"아, 알겠사옵니다. 어머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신하게 대답하는 며느리를 잠시 바라보던 어머니가 말씀 하셨다.
"그렇다고 손(孫) 보는 것을 등한히 하면 안 되고."
어쩌라는 것인지 종당에는 울상이 되어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아내였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는 아버님도 크셨으니 유전자가 우월해서 키 안 크는 일은 없을 거요. 그러니 부인이 밤마다 날 괴롭혀도 되오."
"호호호........!"
내 말에 어머니는 웃음을 터트리는데 반해 부인은 나를 얄밉다는 듯 어머니 몰래 내게 눈을 흘겼다. 그런데 그것이 또 어머니에게 들켰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어머니의 꾸지람에 더욱 고개를 숙이는 부인을 향해 내가 변명을 했다.
"사실 밤마다 제가 부인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머니!"
"뭐? 네가?"
어머니가 깜짝 놀라 반문하셨다.
어머니의 놀람과 달리 비로소 아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억울함을 해소했다는 표정인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한 술 더 떴다.
"아버님은 몇 살에 어머니를 처음 안으셨나요?"
"너.........!"
버버거리며 그 연세에도 더 이상 말씀을 못하고 급 가을에 잘 익은 홍시가 되어 우리를 외면하는 어머니셨다.
"후후후.........!"
어머니가 되었든 부인인 되었든 순진한 조선여인들을 골려먹기 딱 좋아 내심 사악한 미소를 짓는 나였다.
* * *
조반을 마친 내가 사랑채로 가자, 네 형제는 이미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밤새 만든 형편없는 산수 책을 툭 던지며 말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글자지?"
"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게 그들에게 던진 것은 1에서 100까지 적힌 아라비아숫자와 구구단이 적힌 셈법이었다.
"멀리 양이로부터 건너온 문자야. 오늘부터 이 글자를 공부할 거야. 그리고 셈을 깨우치면 그곳에 적힌 구구단을 전부 외어야 해. 이는 상업의 기초로 그것을 마치면 곱셈과 나눗셈도 가르쳐 줄 테니 빠른 시간 내에 배우도록 해. 특히 막내 형은 이것들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칠 예정이니 더욱 신경 써서 배우도록 하고."
"네, 가주님!"
그런데 대답하는 네 형제는 말꼬리가 쳐져있었다.
"어째 대답이 시큰둥한데?"
"너무 한꺼번에 몰아치시니 정신이 없어서요."
"이 정도 가지고 그러면 어떻게 해. 왜놈들에게 복수를 하려면 이 정도는 약과야. 그런지 알고 오늘은 1에서부터 10까지만 배우도록 하자고."
이후 나는 이 형제들에게 차근차근 아리비아숫자를 가르쳤다.
이각 정도가 되어 대충 그리는 정도가 되자 나는 가르침을 끝내고, 어제 지시한 사항을 물었다.
"배는 준비됐어?"
"네, 가주님!"
흥정의 답변에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짓고 이번에는 막내 흥부에게 눈을 맞추고 물었다.
참 여기서 이름에 오해 업으시기를.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의 한자 표기는 흥부(興夫)이고, 막내 형의 흥부는 부자 되라고, '흥부(興富)이니 그런 줄 아시길.
"훈장과 학당을 지을 대지는 어떻게 되었으며 통보는 되었나요?"
"네, 대 마름들에게 어제 저녁에 전부 통보했습니다."
큰 형 흥정의 답변에 이어 막내가 답변을 했다.
"글 선생은 가주님의 독선생과 상의하여 뜻이 있는 친구들과 가까운 곳에 면이 있는 분들을 많이 모시기로 했습니다. 대지는 아직 형님의 언급이 없어서........"
"가능한 우리 농경지 한복판에 지어 많이 걷도록 하는 일이 없게 하고, 또 이는 이 가주의 엄명이니 우리 농토에서 농사지어 먹고 싶은 자들은 무조건 다 보내도록 하라고 해. 괜히 일손 거들게 하려고 빠뜨리는 집이 있다면 소작에서 제외하는 것은 물론 우리 부락에서 아주 쫓아낼 테니까."
"명심하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주님!"
흥정의 답변에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흥정 형은 내가 지시한 세 가지 만들고 있는 거야?"
"네, 만들고는 있으나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작두펌프와 칫솔 등을 말하는 것이다.
"급할 것 없으니 차근차근 하도록 해."
"네, 가주님!"
"막내 형만 남기고 모두 배가 있는 곳으로 가보도록 하지."
"네, 가주님!"
이렇게 해서 우리는 배가 기다리고 있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우리의 뒤에는 나의 지시로 사흘간 먹을 식량과 천막, 식수 등이 말 잔등에 실려 하인들과 함께 우리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가 선착장에 도착하자 오십 대 초로의 어부가 허리 굽혀 우리를 맞았다.
"편안하셨습니까? 어르신!"
"그래. 자네가 수고가 많네."
상민은 무조건 양반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 반대로 나이가 어려도 양반은 상민들에게 항상 하대를 했다.
어쨌거나 하인들이 제반 물품을 싣는 동안에 나는 어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내가 하려는 일이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바닷바람에 그을려서 검게 탄 얼굴과 울퉁불퉁한 팔의 근육들이, 도저히 오십대로 보기 어려운 허 노인이었다. 나는 지긋한 그의 나이가 믿음이 갔다.
모든 물품이 실렸다. 나를 비롯한 흥정 삼형제와 건장한 하인 다섯 명이 배에 오르자 어선은 곧 출항을 했다. 이윽고 먼 바다까지 나왔지만 나는 계속해서 서진하도록 했다. 나의 계속되는 먼 항해로의 지시에 모두 의아하고 불편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우리 가문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려는 것이니, 그리 알도록."
그리고 어느 정도 항해가 진행되자 허 노인을 향해 물었다.
"고군산군도를 아시오?"
"풍랑을 만나 몇 번 그곳으로 떠내려 간적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갑시다."
전생에서 지도상으로 볼 때는 가까운 거리 같았으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먼 거리였다.
이윽고 우리가 고군산군도의 가장 큰 섬인 신시도에 도착한 것은 어느덧 해가 반쯤 빠진 무렵이었다. 나는 천천히 배를 섬에 대도록 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선이 한 척이 있다는 것이었다. 채 고기를 떼어내지 못한 그물도 배에 실려 있었다.
공도정책으로 섬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섬에 사람이 거주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고기를 잡으러 이 먼 곳까지 왔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섬에 배를 대고 뭍에 올랐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인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나는 계속해서 섬을 오르도록 했다. 그러길 얼마 만에 우리가 월영봉을 어느 정도 오르자, 안쪽 깊은 곳에 민가 다섯 채가 보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민가 쪽으로 접근할 것을 지시했다.
우리의 접근에도 민가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개 한 마리가 좁은 마을 어귀에 어슬렁거리고, 닭마저 몇 마리 벌레를 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람이 살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우리가 점점 작은 마을로 접근하자 어느 순간 각자의 집에서 곡괭이며 쇠스랑을 든 자들이 나타났다. 건강한 체격의 삼사십 대로 보이는 여섯 명이었다. 그 중 한 집에서 나온 사람 둘은 형제인 듯 무척 닮아 보였다.
'아! 우리가 관에서 나온 사람으로 잡으러 온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얼핏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관아에서 나온 사람들이 아니오. 몇 마디 물어 볼 것이 있어 왔으니, 그 연장들은 치우시오."
나의 말에도 그들의 흉흉한 기세는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고, 한 발자국씩 우리를 향해 오히려 접근해오고 있었다.
'이 자들이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려 하나?'
얼핏 그런 생각을 하니 내 머리가 쭈빗 솟아오를 판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가? 한 번 죽었다 환생한 몸 아닌가.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하인들보고 명령을 내렸다.
"앞장을 서라. 유사시 죽여도 좋다!"
나의 말에 건장한 하인 다섯 명은 물론 어부 허 노인마저 가슴을 당당히 펴고 앞장을 섰다. 그 뒤로 삼형제가 나를 호위하듯 빙 둘러섰다. 나를 보호하듯 반월(半月) 형을 형성한 한 것이다.
와중에 내가 말했다.
"우리도 여기에 정착해 살려하는데 함께 살 수 있겠소?"
내 말이 의외인 듯 마을 사람 들 중에 가장 연장자이면서도 체구가 장난이 아닌 자가 내 말을 받았다.
"차림이 양반이거늘, 양반이 뭐가 답답해서 이곳에 산단 말이오?"
"내가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이 하인들과 몇몇이 이곳에서 소금을 만들려하는데 그래도 되겠느냐 말이다?"
"소금은 육지 아무데서 만들지 왜 이곳까지 들어오려 하오?"
"우리의 소금 만드는 방법이 특이해서 소문이 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소."
"어떻게 하면 믿겠느냐?"
"순순히 포박을 당한다면 믿겠소."
"하하하........! 우리의 생명을 너희들에게 만기란 말이지. 그럴 수는 없다. 너희들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내 뒤따르고 있는 백여 하인들을 불러 너희들은 물론 너희 가족들까지 몰살을 시키겠다.
나의 협박에 주춤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이었다.
"만경 만석지기 윤 진사라고 들어보았느냐?"
"그, 그렇소!"
"내가 그 아들이다. 너희들도 들어보았다면 우리의 가세가 거짓이 아님을 알 것이다."
"정말 다른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려 하시오?"
나의 협박이 점점 먹혀드는지 그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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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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