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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3화 (3/141)

<-- 꼬마신랑 -->

3

이윽고 길남이가 10여 보 앞으로 오자 윤 흥정이 물었다.

"어쩐 일이냐?"

"도련님! 흑흑흑........!"

울음부터 앞세우는 길남이를 잘 다독인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우선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 우리가 대책을 세울 것 아니냐?"

"도련님! 흑흑흑........! 어르신께서 왜구의 습격으로 돌아......... 돌아가셨습니다요."

"뭐?"

"아버님.........!"

내가 놀라 펄쩍 뛰는데 비해 생에 최초로 남 앞에서 '아버지'라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는 윤 흥정이었다.

"어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습기가 번지는 눈을 껌뻑이며 이를 악물었다.

'조선조 개국 이래로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쓰더니, 이런 비극을 만들어내는구나!'

조선이 들어서고 나서는 줄곧 육지가 아닌 섬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했고, 만약에 섬에 무단으로 드나들거나 살다가 들키면 최소한 장형(杖刑) 100대로 엄하게 다스린 것이 조선조 조정이었다. 이는 육지를 떠난 자들은 준 반역자로 간주해 중형을 가하는 조치였다.

그런 결과로 섬에 사람이 살지 않으니 약탈할 게 없는 왜구들이 수시로 육지를 습격하는 것이 당연했다. 대표적으로 을묘왜란(乙卯倭亂)도 있지만, 이것은 대규모로 왜구들이 남해안을 습격한 것이고, 이 외에도 왜구들은 수시로 우리나라의 남해안을 침입해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하기 일쑤였다. 그 변고의 하나가 내 부친에게도 닥친 모양이었다.

나는 생각이 끝나자 억눌린 음성으로 물었다.

"시신은?"

"향남이를 비롯한 몇몇이 모셔 오고 있습니다. 저는 선발로 이를 먼저 알리기 위해......."

"알았다."

냉정하게 말을 자른 내가 윤 흥정을 보고 말했다.

"죽음으로 귀향은 풀리겠지만 신원이 복권되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형이 이를 수시로 확인하여 선부께서 복권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오. 정 안되면 요즘 최고의 실세인 윤원형의 처 정난정에게 뇌물을 받치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하오."

"네, 도련님!"

나는 흥정의 대답을 들으며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조랑말은 타고 가셔야지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부친의 상을 치른 나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삼 년 간의 시묘살이에 들어갔다. 너무 어리다고 어머니와 흥정이 말리기도 했지만 주위의 일부 양반들은 효자라고 칭송이 자자한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만경 마을에서 멀지 않은 선산 부친의 묘소 앞에 움막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시묘살이를 하면서 중대한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는 전생의 비참함 때문에 많은 재산을 배경으로 일평생을 한량으로 지내고 싶었지만, 왜구에 의해 부친이 돌아가시자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생에서도 일제의 36년에 걸친 식민지배도 부족해 툭하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왜놈들 때문에, 상당한 분노감과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였던지라 완전히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머지않아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에도 생각이 미쳤다. 왜와 우리의 국력이 역전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이때부터임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그런 일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쪽바리 놈들을 내 수중에 넣고 쥐고 흔들고 싶었다. 이런 결심이 서자 나는 비장한 각오로 우선 학문에 임했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이 시점에서 내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이 학문을 익히는 것임을 자각한 것이다.

그러자 나는 곧 천자문과 소학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부탁해 글 선생을 모시기로 했다. 물론 내 거주지가 선친의 무덤 곁이니 독선생이 집으로 출퇴근을 하며 내가 벽에 부딪히는 것을 질문에 응하는 것이 글공부의 전부였다.

삼 개월 만에 소학까지 떼자 나는 사서오경을 구해 본격적으로 전체를 암기하기 시작하면서 때로 글 선생에게 의문이 나는 사항은 묻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지방대학 출신이라지만 암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영어와 수학은 기초가 필요하기에 잘 못했지만 반대로 그것이 부족하니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암기에 주력해 좋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도 암기력은 뛰어났었다.

게다가 좋은 유전자를 받았는지 오성과 총명도 빼어나 한 번 읽으면 잊지 않는 천재성도 이 생애에서는 받고 태어났다. 그러니 시묘살이 삼 년 동안 사서오경을 전부 암기하는 것은 물론 대충이나마 문리도 틔울 수 있었다.

이렇게 삼년 보내고, 어느덧 내 나이 열 살이 되어 집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엉뚱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독자인 나를 하루라도 빨리 장기 보내 후손을 얻는 작업에 착수하셨던 것이다.

곧 나를 장가보내기 위해 여기저기 매파를 사방으로 보내기 시작하셨다. 그 결과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이월 달에 나의 혼처가 결정되니 충청도 충주의 김 씨 가문이었다. 이때는 흥정의 노력으로 선친의 복권도 이루어져 선친으로 인한 하등의 결격 사유도 없었다.

아무튼 나의 장인 될 사람은 김사원(金士元)이라고 영천군수를 지낸 분이었고, 신부는 그의 장녀로 올해 열여섯 살이었다. 그 밑으로 두 살 터울의 남동생 셋 있었고, 서출 형제로도 보다 나이가 많은 남 형제 셋이 있었다.

이 가문을 좀 더 소개하면 이제 열 살 난 남동생이 훗날 곡성현감을 지내는 김급(金汲)이고, 그의 아들로 태어나는 사람이 인조 때의 명신 김신국(金藎國)이었다. 아무튼 당시의 풍습대로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머니의 주관으로 빠르게 혼사가 진척되어 처가에서 길일을 잡으니 삼월삼짇날이었다.

이 여파로 모판을 만들기 위해 한쪽에 담가져 있던 볍씨가 통째로 한쪽 구석으로 치워지고,

소와 돼지를 잡는 것은 물론 전을 부치는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삼월 삼일 사시가 되자 멀리 충주 금곡리(金谷里)로부터 온 신부의 가마가 우리 집 넓은 마당에 출현했다.

이때부터 피곤한 식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나와 신부는 사회자의 명에 따라 양가의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무수한 절을 올려야 했고, 합환주로 나눠 마셨을 뿐만 아니라, 장닭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등 번거로운 예식이 한동안 진행되었다.

또 폐백 중에는 어머니가 뿌려주는 대추와 밤을 신부가 치마로 받다가 바닥에 떨어트리는 놀라움(?)을 연출하기도 했다.

어린 신랑에 여섯 살 위의 성년의 신부를 보는 양가 및 마을 사람들은 시종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종내 뿔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해 더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윽고 모든 식이 끝나고 밤이 되었다.

신부와 나는 조촐한 주안상을 마주 보고 앉았다.

밖에서는 어린 신랑과 신부가 어떻게 첫날밤을 보내는지 보기 위해 짓궂은 자들이 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안을 들여다보는 만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고 있는 현장이기도 했다.

"이리와 보오."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듣는 신부였다. 아직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나의 음성은 당연히 소년 특유의 고음이었다.

나의 부름에 멈칫멈칫 하던 신부가 주춤주춤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말없이 뚱한 표정으로 신부의 붉은 면사를 걷어내었다.

"오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감탄성이 튀어나왔다.

'화용월태(花容月態)'라는 말이 정말 딱 맞을 정도로, 첫눈에 내가 보기에도 꽃같이 아름다운 신부였다.

고혹적으로 내려 깐 눈의 긴 속눈썹에 단아한 이마, 전체적으로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이 붉은 홍초에 반사되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특히 육감적인 도톰한 입술과 오뚝한 콧날이 인상적이었다. 나의 감탄성에 더욱 붉어진 신부의 옥용이 점점 숙여지는 것을 참지 못한 내가 부르짖듯 말했다.

"고개를 들어보오."

"부끄럽사옵니다. 상공!"

겨우 내 귀에 들릴 듯 말듯 울려나오는 신부의 모기소리 만한 옥음 또한 듣기 좋았다.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듯한 청아한 음성 또한 여간 듣기 좋은 게 아니었다. 해서 나의 얼굴이 더욱 활짝 펴졌다.

나의 말에 신부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이내 다시 아미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이 나로서는 너무 안타까워 내심 입맛을 쩍쩍 다셔야 했다.

"낮에 비록 우리가 합환주를 들기는 했으나, 초야를 치르는 지금 마시는 잔이야 말로 진정한 합환주이겠거늘, 한 잔씩 합시다."

점잖은 나의 말에 되먹지 못한 것들이 밖에서 키득거리고, 나는 못들은 척 슬며시 신부에게 다가가 그녀의 파뿌리 같이 희고 섬세한 손을 잡아 이끌었다. 마지못한 듯 나와 더 가깝게 앉은 신부를,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내가 돌연 밖을 행해 고함을 질렀다.

"이만, 물러나지 못할까?"

"도련님 조금만 더 지켜보면 안 될까요?"

"점순이 너! 그러면 내일 볼기 맞을 줄 알아라!"

"어머나, 도련님도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호호호........!"

"호호호........!"

그녀와 함께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밖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자 어여쁜 신부를 보고 말했다.

"우리 예쁜 색시가 한 잔 따라보도록 하오."

"네, 상공! 헌데 낮에 좀 잡숫지 않으셨는지........"

"모기 눈물만큼 마신 것이 마신 것이오. 어서 따르기나 해보오."

"네, 상공!"

나긋나긋하게 답하고 금잔에 옥병을 치켜드는 너무나 곱디고운 신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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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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