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마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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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진 남짓 가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만경강 가였다. 이리저리 굽이도는 강은 이미 강이라고 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계속된 가뭄으로 강은 맨살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오랜 시간 준설을 하지 않아 하상은 상류에서 떠나래온 모래와 자갈로 상당히 높아져 있었고, 이런 하상에는 도처에 웅덩이가 산재해 있었다. 하상을 굴착해 조금의 물이라도 얻을 량으로 곳곳을 파헤쳐 벌어진 현상이었다.
이후 나는 근 한 시진을 아무 말 없이 강가를 왔다 갔다 하며 강변의 지형지세를 상세히 파악했다. 그리고 흥정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요새도 집안에서 고리대금을 하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도련님!"
"앞으로는 그런 짓 절대 하지 마."
"네?"
너무나 갑작스럽고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그런 명을 내리니 흥정이 잘 이해가 안가는 투로 내게 반문을 했다.
요즈음 흥정은 옛날에 청지기가 가지고 있던 집안에서 외부적으로 행사하던 지배권을 대부분 흡수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귀양으로 청지기가 총애를 잃은 데다, 이제 흥정이 약관에 이르러 완전성인 대접을 받으니, 비록 서출이지만 가문의 장자로서의 책임감을 강하게 느껴서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흉년에 고리로 쌀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면 그나마 몇 마지기 있던 자작농의 농토를 흡수하지 말란 말이야. 인심을 잃어. 이럴 때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구제 사업을 펼쳐 이 가뭄에 한 사람이라도 굶어죽지 않게 하는 게 가진 자의 도리야."
"도련님의 뜻을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그 일환으로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도련님!"
"언(堰:제방)과 보(洑)를 축조하고 저수지를 만들어, 홍수와 가뭄에 항구적인 대책이 되도록 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는 손을 들어 2마장 전방부터 밑의 4마장 까지 들쑥날쑥한 물길을 일직선으로 펼 것을 지시했다. 즉 일직선으로 제방을 축조해 홍수가 나도 그물이 우리 농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도록 한 것이다.
또 1마장 간격으로 강을 가로질러 낮은 둑을 쌓게 했다. 즉 보를 만들게 해 어느 정도의 물이 흐르면 항상 보 때문에 일정량의 물이 저장되도록 했다. 이는 약한 가뭄에 이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으려는 계획의 하나였다.
그리고 물길을 바로 잡음으로써 생기는 새로운 하상지의 반은 저수지로 축조하여 가뭄이 들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 나머지 퇴적토는 논으로 전환하거나 정 논으로의 개간이 어려운 곳은 밭을 만들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반드시 먼저 관아에 신고를 해 나라의 허락을 먼저 득하도록 했다. 하천부지는 나라의 재산인 고로 좋은 일을 하고도 나라에 땅을 다 빼앗기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수단이었다.
즉 사전에 싼값으로 지금 대부분이 버려진 땅을 사전에 불하받도록 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흥정이 의문을 제기했다.
"어르신이 귀양살이 중인데 우리에게 허락을 해줄까요?"
"그러니까 잘 설명을 해야지. 이 상태로 가뭄이 지속이 된다면 굶주림에 지친 농민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지 않겠어. 우리가 행하는 공사에 일정량의 쌀을 주어 동원하는 것이니, 오히려 백성을 위하는 현령 같으면, 칭찬이라도 해주고 더욱 장려해야지. 우리 가문에 쌀은 얼마나 비축되어 있지?"
"여기저기 흩어진 창고에 10만석은 비축되어 있습니다."
"잘됐네. 우선은 보와 제방공사를 병행하고, 그것이 끝나면 저수지와 논과 밭을 만드는 작업을 병행하도록 해. 이 과정에서 나누어지는 품삯을 적절히 조절해 억울해 하는 사람도 없어야겠지만 과도한 이익이 돌아가는 사람도 없도록 해."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리고........"
"네, 말씀하십시오. 도련님!"
"올해 가뭄이 가을 까지 지속되지 않고 비가 좀 내리면, 논에 보리와 밀을 파종해서 수확을 할 수 있도록 해."
"논에다 요?"
"왜? 논에는 보리나 밀을 심으면 안 되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지출만 하고 당장 수확이 없는데다, 농민들도 마찬가지잖아. 올해만 생각하나 내년 봄은 어떻게 할 건데?"
"알겠습니다. 도련님! 도련님의 명대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도련님 일곱 살 맞아요?"
"하하하........! 내가 매일 노는 것 같아도 어떻게 하면 우리 집안을 흥하게 하고, 우리 가문에 딸린 노비나 머슴 더 나아가, 자작이나 소작농까지 굶기지 않고 흥하게 할까를 매일 연구하는 사람이야."
"그래도 칠 세의 도련님으로서는 너무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라서........"
"가끔 범인이 예상치 못하는 천재도 탄생하는 법이니, 나를 너무 삐딱한 시선으로만 쳐다보지 말라고."
"제가 감히, 그럴 리가요."
"됐고. 이앙법(移秧法)이라고 말 들어봤어?"
"네. 강원도 일부에서 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올해 같은 한발에는 전혀 건질 것이 없다고 나라에서 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 봐. 이앙법이나 직파법이나 뭐가 달라? 건질 것이 하나도 없기는 마찬가지잖아. 다만 약한 가뭄에는 약간의 효험이 있겠지. 요는 수리시설이 안 되어 있어 가뭄피해가 극심해서 생긴 금령이니, 이렇게 수리안전답을 만들어놓고 행하는 이앙법은 다 눈감아 주게 되어있어."
"제 생각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앙법을 행하면 말이야. 소출도 소출이지만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장점이 있어. 벼가 자랄 때까지 직파법이 연 4~5회의 김매기를 해준다면, 이앙법은 2~3회면 충분하니까, 그만큼 남아돈 일손을 다른 곳에 돌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단 말이지. 게다가 또 하나의 큰 장점은 이모작(二毛作)이 가능하단 말이지."
"이모작이 요?"
"못 들어 봤어?"
"그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할지?"
이모작 또한 조선조 후기에나 제대로 보급된 작법 중의 하나였다.
"충분해, 그러니까 가급적 일찍 모내기를 하여 조기 수확을 하고, 벼를 베어낸 논에다 보리나 밀을 심으면 지금으로서는 가외소득이잖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충분히 지력을 돋워줘야 된다는 것이지."
"해서 말인데 퇴비를 만드는데 결사적이야 해. 가축과 사람의 분뇨와 재는 물론 나무 가지와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드는데, 인력은 물론 금력을 아끼지 않아 많은 퇴비를 생산해 내어야 해. 이를 깊이갈이 전에는 물론 작물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중간 중간 시비를 해주어야한다는 말이지."
"네, 잘 알겠습니다. 도련님!"
"또 이앙법을 실시하게 되면 분명 소작을 얻지 못하는 농민도 발생할거야. 그만큼 이앙법이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지. 그러니 이 사람들을 방치하지 말고 어디 일용 노동자라도 쓸 수 있는 방안을 사전에 강구해 놓아야 해."
"네, 도련님!"
이때였다.
우리의 집이 있는 남쪽 방향에서 말을 타고 급히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보였다.
"누군지 알겠어?"
나의 물음에 흥정이 손으로 해 가리개를 만들어 멀리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어르신을 따라가 재 너머에서 시봉하던 길남이가 아닌가 합니다. 하인 중에서는 가장 똑똑한 친구 중의 하나죠."
"그런데, 왜 저자가? 아버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글쎄요........?"
말을 길게 끄는 흥정의 안색이 흐려졌다.
아무래도 좋은 소식보다는 불길한 예감이 먼저 드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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