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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마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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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萬頃) 평야.
사방에서 모여든 지천이 합류해 칠월 염천 하를 도도히 흘러가는 만경강(萬頃江)을 북으로 띠처럼 두르고 선 마을이 있었다. 눈이 미치는 곳은 온통 푸르른 들판으로 조선의 반도 내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섬 마냥 낮은 구릉과 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이 있었다. 휘돌아나가는 지천을 한옆으로 두고 올망졸망 게딱지 같이 모여선 초가 사이로 유독 고대광실(高臺廣室) 한 채가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윤 진사(尹 進士) 댁이었다.
윤 진사 댁은 아침부터 분주하였다.
나이 사십 중반에 든 정실부인이 처음으로 해산을 하려하기 때문에, 윤 진사는 물론 몸종들마저 안절부절 못하고 해산실을 서성였다.
이때였다.
'응애, 응애........'
하는 고고한 울음소리와 함께 산간을 하던 늙은 개똥이 어멈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들 이예요, 아들! 뒤늦게나마 옥동자를 보셨습니다. 마님!"
그러나 안에서는 대답 소리가 없는데 반해, 윤 진사만은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에 대고 물었다.
"산모는 괜찮은가?"
"네, 진사님! 하혈이 좀 있긴 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알았네. 수고했어!"
치하를 윤 진사가 실없이 히죽이더니 집사인 청지기 노인을 불러 말했다.
"모처럼 집안에 경사가 났으니, 소라도 때려잡고 소작인들에게 쌀말이라도 돌리게."
"네, 진사님!"
청지기 노인이 급히 사라지는 것을 본 윤 진사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내게도 가문을 이을 장자가 태어난 거야! 하하하........!"
"그러나 저러나 아들 녀석의 이름을 뭐라 짓지? 가만히 있어보자, 돌림자가 '흥(興)' 자이니........ 윤 흥(尹 興)....... 뭐라 지어야 할 텐데......."
서성거리나 도통 다음 자가 생각나지 않는 윤 진사였다.
얼핏 떠오르는 단어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이었으나, 이는 모두 형님인 윤임(尹任)의 아들 이름으로 채워졌으니, 더욱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서성이며
'윤 흥........?'
소리만 되풀이하며 넓은 마당을 맴돌고 있을 때였다.
금방 나갔던 청지기 노인이 낯빛이 파랗게 질려 겹 사랑채에서 뛰어들며 외쳤다.
"진사님 큰일 났습니다 요, 큰 일........."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란을 피우느냐?"
윤 찬임(尹 贊任)은 경망스럽게 수선을 피우는 청지기 노인을 근엄한 안색으로 꾸짖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금부도사가 출현해 진사님을 찾습니다요."
"그래?"
대수롭지 않은 투로 반문한 윤 진사는 천천히 사랑채가 있는 바깥마당으로 향하였다.
중문을 열고 바깥마당에 들어서니 벌써 금부도사가 나장 대여섯 명을 데리고 이곳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대가 윤 찬임인가?"
"그렇소이다만........?"
"흥, 죄인 주제에 도도하구나."
윤 찬임으로서는 그럴 만 했다. 친형 윤임이 당금 조정의 실세인데다, 비록 사이는 소원하지만 다른 실세의 하나인 윤원형 또한 그와는 9촌 지간이었기 때문이었다. 9촌이 멀어보여도 8촌까지 복을 입는 당시로서는 그렇게 먼 친척도 아니었다.
금부도사의 말에 윤 찬임의 얼굴이 굳어지는데 아랑곳없이 금부도사가 오만한 얼굴로 외쳤다.
"죄인 윤 찬임은 성상의 어지를 받아라!"
이 말에 깜짝 놀란 윤 찬임은 임금이 계신 북으로 세 번을 절하고, 금부도사의 면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죄인 윤 찬임은 외 조카 계림군을 왕위로 추대하려는 윤 임 과는 족친 간으로 ....... 그 죄에 연좌되어 목포진(木浦津)으로 귀양을 보낸다."
중간에 온갖 죄상과 미사여구가 나열되었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위의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어 윤 찬임은 생각지도 못한 훗날 '을사사화(乙巳士禍)'라 기록된 역사의 한 희생양이 되어 오라를 받게 되었다. 그러자 윤 찬임은 뒤늦게 오늘 정실이 아들을 본 이야기를 하며 하룻밤의 말미를 요청했다.
그러나 금부도사는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하는데, 영리한 청지기가 금붙이라도 안기니 잠시의 짬은 얻었다. 이에 윤 찬임은 아직도 눈도 못 뜬 아들과, 산실에 누워있는 정실부인과 잠시 눈인사 하는 것으로 작별을 하고, 유배 길에 올랐다.
유배를 떠나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정신이 산만하여 채 짓지 못한 아들의 이름을 그냥 외자로
'윤 흥(尹 興)으로 하라!'
는 말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묘한 인연으로 전생과 같은 이름인 '윤 흥(尹 興)'으로 환생하였다.
삼칠 일이 지나지 않아 아직 제대로 거동도 못하는 나의 어머니 양 씨(梁 氏)에게는 연달아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니 양 씨에게는 시아주버니 되는 윤임이 귀양을 가던 중 충주에서 사사(賜死)되었다는 파발이 전해지더니, 친정에서도 부고가 날아들었다.
친정 오라비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이 8월 18일 자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였다. 어머니는 연이은 타격에 몸져누웠고 나도 유모의 젖을 먹어야 했다.
* * *
어느덧 6년여가 흘러, 내 나이 7곱살이 되었다.
7살이면 빠른 아이들은 서당에 가거나 부유한 집에서는 독선생을 들어앉혀 학문에 입문할 나이였다.
그러나 나는 놀기에 바빴다.
비록 아직 부친이 유배 중이었지만 나는 만석꾼 아니 십만 석도 넘는 대지주의 아들인데다 신분상으로도 양반이니, 한마디로 대박 인생이었다.
오늘도 나는 유유자적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비록 서출이지만 나의 형 되는 '윤 흥정(尹 興正)'을 만나러 갔다. 윤 흥정은 내 친어머니가 자식을 못 낳자 들인, 첩의 장자로 올해 벌써 약관인 청년이었다.
나만치는 아니어도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 바깥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올해는 이미 틀렸는데......... 벌써 6월 달인데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매일 쨍쨍 해만 지글거리니, 이거야 원........."
"형님, 뭘 그렇게 중얼거리세요?"
"도련님, 큰일 납니다, 큰일 나요. 누가 보면 어쩌시려고........? 저만 경을 칩니다. 경을 쳐!"
급히 손사래까지 치며 낯 색까지 변하는 윤 흥정이었다.
윤 흥정의 태도가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 홍길동전에도 나오는 대사와 같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도 못하고, 호형호제(呼兄呼弟)도 못하는.......'
것이 당시 서출들의 비애였다. 그러나 현대를 경험한 나로서는 그런 관념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덜했다.
그래서 비록 배다른 형이지만 나는 아버지가 없는 지금 그에게서 형제의 따듯한 정을 느끼고, 아무도 없을 때는 그를 형님이라 깍듯이 불렀다. 그럴라치면 윤 흥정은 내심은 무척 좋아하면서도 외양으로는 매번 이러 했다.
"도련님도 이제는 글공부를 하셔야지요."
"또 그 잔소리, 어머니한테 듣는 것만으로도 지겨운데, 형마저 그럴 거야?"
"헤헤........! 그래도 글공부는 하셔 얍죠. 장래 큰 인물이 되실 라면."
"그런 소리 그만하고, 가뭄이 들어 걱정하는 거야?"
"네, 올해는 해도 너무 하네요. 비가 안 와도 너무 안 와요. 우리야 그렇다 치지만 소작농들이 올해는 다 굶어죽게 생겼어요."
"그것 참, 걱정이겠는 걸....... 이렇게 한 번 해볼 테야?"
"어떻게요?"
비록 어리지만 평상시에도 유독 꾀가 많기로 정평이 난 사람이 나였다. 그래서 윤 흥정이 더 바짝 달려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밖으로 나가지."
"네! 조랑말 대령해!"
"네!"
비록 서출이지만 윤 흥정은 이 집안의 어른으로서 하인들이게는 대단한 권위가 있었다. 윤 흥정의 명에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하인 서너 명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곧 조랑말이 끌려오고 나의 전담 하인인 세 녀석도 어디서인지 나타났다.
하인들이 다 그렇듯이 이름도 없고 개똥이, 쇠똥이, 말똥이라 불리는 녀석들인데, 내가 개시(介屎), 우시(牛屎), 마시(馬屎)이라고 한자 표기로 지어준 녀석들이었다. 나이는 열 살 내외였다.
내가 개똥이를 발판삼아 오르며 윤 흥정에게 물었다.
"동생들은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
"네, 도련님! 도련님의 지시로 세 녀석이 글공부도 공부지만 삼개 국어를 익히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요."
"둘째 형, 흥선(興善)이는 글공부 마쳤잖아."
"네, 그래도 미진한지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요."
"그래?"
이렇게 반문하는 내게 작년에 흥정의 두 살 터울 난 아래동생들에게 지시한 일이 생각났다.
곧 사서오경보다도 중국어, 왜어, 만주어를 열심히 익히라하고, 역관 출신의 세 선생을 들여 준 일이었다. 그러니 그들 셋은 오늘도 남의 나라 말과 글을 익히느라, 개고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내가 조랑말을 타고 집밖을 벗어나자, 윤 흥정과 그가 아끼는 하인 둘, 그리고 내 몸종 둘이 내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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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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