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204화 (204/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204화

    간화-지하제일 요리대회(하편)

    그리하여 둥지 아릿카사의 요리왕 선발 대회의 시간이 다가왔다.

    격렬했던 예선전을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한 요리왕 후보는 총 3명! 예선 심사장에서 다소의 유혈 충돌이 있긴 했지만, 원래 이 정도의 해프닝은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결코 본선 진출자들이 무력을 사용해서 다른 경쟁자들을 피떡으로 만든 게 아니란 말이다.

    만들라는 요리는 안 만들고, 국자와 주걱으로 다른 경쟁자들의 뚝배기를 깨버린 게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그런 편협한 사고와 편견이 마물 혐오를 조장하는 법이다.

    “어…… 음…… 왜 본선 진출자들 앞치마가 다들 피로 얼룩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둥지 아릿카사의 요리왕 선발 대회, 그 본선을 개최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요리 대회의 진행을 맡은 건 루칸다였다. 피르에나가 이상한 오해를 해서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걸 어르고 달래고 온 길이라 눈밑이 꽤나 퀭했다.

    그런 루칸다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회장의 관객석에 모인 수만 마리의 마물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단 본선에 들어가기 앞서, 오늘 이 요리 대회의 심사 위원을 맡은 녀석들에게 어떤 점을 중점으로 두고 심사할지 물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루칸다가 대회장의 한켠에 마련된 심사 위원석으로 다가갔고, 가장 먼저 우렌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을 건넸다.

    “우렌 심사위원. 오늘의 요리왕 선별 대회는 그 열기가 뜨겁습니다만.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평가할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크흠! 요리란 자고로 식과 미와 락의 조화. 하지만 진정한 요리가란 그 기본적인 요소 외에도 더 넓고 깊은 부분을 그릇에 담아내야만 합니다. 저는 이번 요리왕 선별 대회에서 요리에 담긴 메시지와 의미를 가장 먼저 맛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개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렇다고 합니다. 생긴 건 음식물 쓰레기도 허겁지겁 주워먹게 생긴 우렌 심사위원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우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중석에서 누자베스가 벌떡 일어나 야유하기 시작했다.

    “우- 우우-! 우렌으로 이행시 짓는다. 운 띄워봐라, 루칸다!”

    “아, 알겠습니다. 전하가 즉흥적으로 이행시 짓는다니 운을 띄워보겠습니다. 우.”

    “우렌은.”

    “렌.”

    “처맞아야 정신차린다.”

    “……전하는 이행시가 뭔지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그 다음 심사위원은 류시혁이었다.

    아직도 셀러맨더 아가씨에게 보낼 답장을 다 못 썼는지 심사위원석 밑에 정령어 사전을 펼친 채 끙끙거리고 있었다.

    “다음 심사위원은 용사 류시혁입니다. 저열하고 더러운 인간 놈들의 용사는 과연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평가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

    류시혁이 잠시 말을 고르는 사이에 관중석에서 밀리아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꺄악-! 시혁님 멋있어요! 세젤귀! 세젤귀!”

    “세젤귀가 뭐니, 밀리아? 귀를 잘라서 세절기에 갈아버린단 말이니?”

    밀리아의 옆에 앉아 있던 에르멜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루칸다를 향해 소리쳤다.

    “야, 고블린! 류시혁으로 운 띄워봐라! 류시혁으로 삼행시 짓는다.”

    “비열하고 역겨운 인간 놈들의 성녀가 주제도 모르고 삼행시에 도전한답니다. 시답잖을 게 뻔하지만 한 번 듣고 가겠습니다. 류.”

    “류시혁.”

    “시.”

    “시발놈아.”

    “혁.”

    “처맞을래?”

    “예, 아주 잘 들었습니다. 저 멍청한 인간 암컷은 삼행시가 뭔지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냥 빨리 용사 류시혁의 심사 기준이나 듣고 넘어가죠.”

    루칸다가 어서 한 마디 하라는 듯 마이크를 들이밀자, 류시혁은 담담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삼킬 수 있으면 10점. 삼키지 못하면 0점이다.”

    “우- 우우-!! 류시혁 개노잼! 개노잼 담당 캐릭터인 거 티내지 마라! 어떻게 저렇게 한 마디를 해도 재미없는 소리만 골라 하냐. 재미없게 말하는 법 가르치는 학원이 있나? 너 때문에 연독률 박살난다, 우- 우우-!!”

    누자베스의 야유!

    하지만 밀리아의 관심과 애정을 류시혁에게 모조리 빼앗긴 누자베스의 눈은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반쯤 울먹이면서 야유해 봤자 서글퍼 보일 뿐이란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같은 인간 용사인 백주월의 심사 기준도 들어보겠습니다. 전하가 분량 조절 실패해서 이미 외전만 나흘 연속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을 것 같으니 간략하게 부탁합니다.”

    “나도 그냥 먹을 수만 있으면 불만은 없는데. 고기 요리라면 점수 많이 줄게. 풀떼기보다는 고기가 낫지.”

    물론 백주월과 류시혁은 이미 스칼렛의 요리에 만점을 주기로 협상을 한 상태였다. 지금 떠드는 심사 기준 따위와 상관 없이 말이다.

    “쓸데없는 서론은 이쯤하고 바로 본선 진출자의 요리를 심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첫 번째 진출자는…… 어, 음…… 피르에나입니다.”

    심사위원들을 향하는 루칸다의 눈빛에 애처로움이 묻어났다. 우렌을 비롯한 용사들도 뭔가 이상한 낌채를 눈치챘고, 루칸다를 향해 무슨 의미냐고 묻는 듯 눈빛을 보내봤지만.

    루칸다는 그저 씁쓸히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대회장에 피르에나가 준비한 요리를 들고 당당하게 등장했다. 그리고 요리를 심사위원들의 앞에 놓고 공개한 순간!

    “큽, 쿨럭! 쿠헉, 케혹! 쿨럭쿨럭! 테네…… 쿨럭! 테네브레…… 맙, 소…… 케혹! 맙소사!!”

    루칸다가 황급하게 적신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가리며 자세를 낮췄다. 다양한 상황에 유연히 대응할 수 있는 베테랑 장교의 능숙한 대처였다.

    하지만 사회자인 루칸다는 그렇다 치더라도, 심사위원들은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후각 세포를 괴사시킬 듯 풍겨오는 강렬한 악취를 그대로 인내하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물어는 보겠습니다만, 흐읍. 후우…… 이게 도대체 무슨 요리인지……?”

    우렌은 최대한 입으로 호흡하며 피르에나가 준비해온 요리를 가리켰다. 피르에나는 마치 이 요리가 자신작이라는 듯 가슴을 활짝 펼치며 대답했다.

    “나무 껍질과 뿌리, 그리고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흙으로 만든 야전식이랍니다. 유격대 대원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요리죠. 아! 그리고 왕가에 전수되는 특제 양념을 사용해서 그 풍미를 더욱 진하게 해봤습니다.”

    죽는다.

    아니, 살해당한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생존 본능이 비명을 내지르며 호소하고 있었다. 먹지 마라. 먹으면 죽는다고 말이다.

    류시혁과 백주월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렸다. 자타공인 누렁이 입맛인 그들조차 이 악취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뭘 뜸들이고 앉아 있냐! 대충 한 숟갈 퍼먹고 탈락시켜! 냄새 역겨워 죽겠네!! 왕가의 변소에서 숙성시킨 인분을 처먹나 진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누자베스가 코를 막으며 소리쳤다.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악취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니, 심사위원들이 어느 정도의 악취를 감당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누자베스의 야유에 피르에나가 풀이 죽은 듯 어깨를 떨구자.

    “네놈! 왕녀 전하의 요리를 모욕할 셈이냐!”

    마찬가지로 관중석에 앉아 있던 칼베라가 벌떡 일어났다.

    “냄새는 고약할지라도 병사들을 생각하는 왕녀 전하의 애정이 담긴 요리다! 세계 제일의 요리란 말이다!”

    “염병, 무슨 항X무녀야 XX병동이야 뭐야 어? 저런 똥을 왜 처먹이는데?”

    “까분다고! 좋아하는 여자의 똥도 먹지 못하는 주제에!”

    칼베라와 누자베스가 지리멸렬한 말싸움을 하는 사이에 시식이 시작되었다.

    어쨌거나 한 숟갈이라도 먹고 평가를 하지 않으면 대회가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가장 먼저 요리를 스푼으로 퍼서 입안에 털어넣은 사람은 류시혁이었다. 그야말로 용사 그 자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용기다!

    “큽!”

    입에 넣자마자 콜타르처럼 응고된 악취가 입안 가득 퍼졌다. 코끼리의 설사똥을 머금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식감과 냄새였다.

    “읍, 우웩!”

    무리였다! 류시혁이 삼키지 못하고 리타이어! 셀러맨더 아가씨에게 보낼 소중한 편지지에 모조리 토해내고 말았다.

    류시혁은 식은땀을 훔쳐내며 0점 짜리 점수판을 들었다. 우렌과 백주월 역시 누렁이의 자존심을 걸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0점! 압도적인 0점!

    피르에나는 그 참담한 결과를 멍하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썩은 치즈에 콜라. 햄버거를 먹고 자란 너희들이 이 맛을 알 리가 없지…….”

    “우- 우우-!! 빨갱이 밈 노잼, 노잼이다! 얼른 똥 경단 가지고 꺼져!”

    “이노옴! 더 이상 왕녀 전하를 모욕하는 걸 두고 보진 않겠다! 이 칼베라가 왕녀 전하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

    관중석에서 벌떡 일어난 칼베라가 대회장으로 난입했다. 루칸다가 옛 전우의 목숨을 구하고자 붙잡으려 했지만, 칼베라가 먼저 피르에나의 요리 접시에 도달했다.

    “왕녀 전하의 요리는 세계 제이이이일!”

    벌컥벌컥!

    칼베라가 피르에나의 요리를 통째로 삼켰고, 루칸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루칸다가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도 눈 뜨고 보기엔 너무나 끔찍한 장면이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칼베라는 급성 총체적 장기부전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 결국 응급팀에게 들려 퇴장당했다.

    “요리왕 선발 대회가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두 번째 본선 진출자를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본선 진출자가 무대 위에 오르자 누자베스가 처음으로 환호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오이오이 누자베스네 남동생 끝내주는 미소년 아니냐구, 오이! 귀엽다! 세젤귀! 세젤귀 우리 동생 로아! 전하는 우리 로아만 있으면 아스톨포 동인지도 필요 없다아!”

    “전하! 전하께서 응원하러 와주실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로아도 관중석에 있는 누자베스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도저히 눈꼴 시려워서 가만히 지켜보기 힘든 광경이었기에 루칸다의 빠른 진행이 빛을 발했다.

    “얼른 요리나 내놔라, 루스날. 진행이 안 되고 있지 않나.”

    “네가 재촉하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었어.”

    옆에서 닥달하는 루칸다를 쏘아붙인 뒤 로아가 가지고 온 요리를 심사위원석에 올려놓았다.

    덜컹.

    쟁반을 덮고 있던 뚜껑이 들썩였다.

    방금 전 피르에나의 요리로 인한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심사위원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쟁반을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에 로아가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결국 요리는 재료의 맛에 좌우되는 법이잖아. 즉, 좋은 재료를 쓰면 반드시 맛있는 요리가 될 수밖에 없어.”

    “도대체 무슨 재료를…….”

    우렌이 잔뜩 겁을 먹은 목소리로 묻자, 로아는 대답을 대신해서 요리를 공개했다.

    “그워어어- 죽어어어어— 원망스럽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쟁반에 얹어진 건 이미 요리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심연의 황천 촉수’를 토막 내서 담아 놓은 것에 불과했으니까!

    황천 촉수는 확실히 보기 드문 개체수를 지닌 마물이긴 하다만, 재료가 진귀하다고 해서 반드시 맛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

    “…….”

    “아, 시발 진짜…… 이게 무슨 요리 대회야?”

    백주월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류시혁도 도저히 못 먹겠는지 스푼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또르르.

    우렌의 눈꼬리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본관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인가…….’

    남의 무덤을 팔 때는 자신의 무덤도 파게 된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누자베스를 엿 먹이려던 계획이 이렇게 자신에게 돌아올 줄이야.

    이미 이건 요리 대회가 아니라, 처형장이었다. 관중석의 관객들은 ‘처먹어, 처먹어!’를 연호하며 처형을 재촉하고 있었다.

    “얼른 먹을래? 당연히 만점이겠지?”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로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진짜 요리 대회만 아니었으면, 누자베스의 동생만 아니었으면 죽빵을 한 대 박고 싶을 정도였다.

    “밤의 어머니여…… 이 못난 자식의 여정은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우렌은 스푼을 들어 촉수를 한 가닥 퍼올렸다. 그의 의연한 결의에 백주월과 류시혁도 경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혼돈의 의지가…… 함께하길!”

    마지막 순간. 그런 단말마와 닮은 한 마디를 토해낸 후 우렌이 촉수를 입으로 쑤셔 넣었다.

    식감과 맛! 그리고 냄새까지 완벽하게 쓰레기 같았다!

    “켁, 커헉! 여, 염산…… 인가……?”

    슈우우욱.

    입과 코에서 분홍빛 연기가 새어 나왔고, 우렌이 마지막 발악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앉은 채로 죽었어……!!”

    백주월이 맥을 짚어봤지만, 이미 심장이 멈춘 뒤였다.

    펄럭.

    그리고 우렌의 품에서 편지지가 흘러나와 떨어졌다. 틈이 있을 때 밀린 업무를 처리하려 했던 노력의 흔적이었다.

    떨궈진 편지지를 지긋이 살펴보던 류시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 장을 집어들었다.

    [아앙~~ 셀러맨더의 가랑이가 간헐적 분화구가 되어버렸어영~ 자기 때문이양~~!]

    “이, 이건 분명 셀러맨더 아가씨의 필체인데…….”

    “뭐? 그럼 이 아저씨가 편지 보내던 거야? 이런 뒤질…… 야, 일어나! 일어나 이 새끼야!”

    갑작스러운 심사 위원들의 심사 포기 사태에 요리왕 선발 대회는 중지! 당연히 누자베스의 1일 이용권을 받게 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우렌이 다발적 장기 손상과 안면복합골절로 12주 간의 입원 치료를 받게 된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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