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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203화 (203/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203화

    간화-지하제일 요리대회(중하편)

    요리왕 선발대회의 소문은 삽시간에 둥지 전체에 퍼졌다. 요리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하루 동안 이 둥지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뿐인가?

    현재 둥지 아릿카사의 관리자 누자베스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권한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파격적인 보상을 내걸은 덕분에 지원자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대자보를 목격한 누자베스는 지원 접수처가 아닌, 우렌의 집무실로 곧장 향했다.

    “총살! 총살이야 총살! 총 가져와, 당장 가져와!! 우렌 이 또라이 새끼야! 누자베스 1일 이용권? 그걸 왜 네가 멋대로 걸고 지랄이야! 당장 대회 취소시켜!”

    “크하핫! 전하, 수탉의 목을 꺾어도 새벽은 오는 법입니다! 이미 대회의 소문은 둥지 전체에 퍼졌습니다. 이 우렌을 죽인다 하더라도 대회를 취소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죽어! 그냥 죽어 이 망할 새끼야!”

    누자베스가 우렌의 멱살을 붙잡고 주먹을 치켜든 순간. 우렌이 대량으로 인쇄해 놨던 대자보 한 장을 번쩍 들어 누자베스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어허…… 전하 제가 누군지 알고 지금 이러시는 겁니까? 이거, 살짝 불쾌할 것 같습니다만?”

    “드디어 돌아버렸군. 우렌, 걱정 마라. 전하가 물리치료 기능사 자격증이 있으니까. 천공술 따위와 비교도 안 되는 근본 치료를 경험시켜 주마.”

    주먹을 후려치기 전에 대자보의 밑에 적힌 문구를 슬쩍 훑어보자. 심사 위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렌, 류시혁, 백주월? 왜 너희들이 심사 위원이야?”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서입니다. 챔피언이 심사를 하게 된다면 편파 판정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외부인인 용사들, 그리고 둥지의 총대행자인 제가 심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누가 우승하게 될지는 이 세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누자베스는 조용히 주먹을 내리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렌, 전하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응? 요즘 전하가 바하무트 그 새끼 물량 어택땅 막느라고 신경이 살짝 예민해져서 이러는 거 알잖아? 우리가 원투데이 알고 지낸 것도 아니고…… 그치? 우리 우렌이 요즘 많이 바빠서 힘들었는지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됐네.”

    “입으로만 아끼는 것이라면 저 역시 그 정도 수준의 보답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이 돼지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아니아니, 우렌 왜 그러냐 진짜. 당연히 전하가 챙겨줄 건 챙겨주지.”

    “흐음.”

    우렌은 누자베스의 굽실거리는 태도를 보며 뜸을 들였다.

    “시혁 형씨나 주월이한테도 내가 말해둘테니까. 무조건 스칼렛한테 점수 몰빵이다. 알았지?”

    “뭐,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누자베스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우렌의 집무실을 나섰다. 우렌을 개패듯이 패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만 했다.

    일방적으로 대회를 취소시킨다면 병력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고, 진정시키는데 성공하더라도 하락한 신뢰도는 회복되기 어려웠다.

    지금으로써는 대회를 예정대로 개최하고, 가장 안전한 상대인 스칼렛을 우승시키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어차피 스칼렛은 누자베스를 매일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1일 이용권을 준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아, 전하!”

    그리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누자베스를 먼저 발견한 건 로아였다.

    로아는 식료품 창고에서 가져온 식재료를 한 움큼 안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치 주인과 만난 강아지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달려왔다.

    “오, 우리 귀여운 아우님. 손에 들린 그 흉흉한 전단지는 뭡니까?”

    누자베스가 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로아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게 요리 대회라는 걸 한다길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글쎄 우승하면 부상으로…… 저기, 그…… 전하를 하루 동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용권을 준다는 얘기를 들어서.”

    “……로아야. 이 형은 그, 뭐시기냐. 남자가 요리 같은 걸 하면 고추가 떨어진다고 믿는 사람이라 말이다…… 우리 동생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거짓말이다.

    이 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냥 기대감으로 가득 찬 로아의 눈빛을 보고 겁을 먹은 것뿐이다!

    “하지만! 전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다른 놈들에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하를 위험한 놈들에게서 지켜 보이겠습니다.”

    언행불일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극단적인 예시 같았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로아의 눈빛이 가장 위험해 보였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누자베스의 몸을 위아래로 끈적하게 훑어보고 있는 눈빛이다.

    살짝 흥분한 듯 열기를 머금은 날숨과, 연홍빛으로 상기된 뺨이 선명히 보였다.

    “전하는 우리 동생 눈빛이 가장 위험해 보이는데 말이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거인족 부대의 부대장 ‘둠’도 요리 대회에 참가할 생각이라 합니다.”

    “그게 왜?”

    “저번 검열에서 둠의 서재에서 이런 책을 발견했습니다.”

    로아가 품안에서 꺼낸 책은 백주월이 이세계에서 소환해 낸 책이었다. 백주월이 이 둥지에 거주하게 되면서 병력들을 상대로 서적 대여 장사를 하게 되었다.

    병사들의 오락거리로 나쁘지 않았기에 백주월의 장사에 제재를 걸지는 않았지만.

    “하라판데모니…… 움? 이, 이게 무슨…….”

    어차피 검열당할 게 뻔하니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진 않겠다. 중요한 건 거인족인 둠에게 이런 성벽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둠이 요리대회에 우승하게 된다면.”

    로아가 그렇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누자베스의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분당 6회라고 계산해도 24시간이면 8640회에 달합니다. 전하의 장기가 고기반죽이 되는 건 확정입니다.”

    “지자스…… 테네브레 맙소사…… 형아가 갑자기 배가 다 아프고 그러네. 아침도 안 먹었는데 배탈이 났나…….”

    “전하? 전하, 잠시만요! 그러니까 이번 대회에선 제가 우승을……!”

    누자베스는 바로 백주월과 류시혁을 찾아 나섰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스칼렛에게 점수 몰빵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이런, 누자베스 경. 꽤나 바빠 보이네요, 후훗.”

    “뭐야? 바쁜 거 뻔히 보이는데 왜 말을 걸어?”

    이번엔 피르에나였다.

    피르에나 역시 요리대회에 참가할 생각인지, 어디선가 직접 캐온 재료들을 잔뜩 들고 있었다.

    “누자베스 경.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내야만 하겠죠.”

    “바쁘니까 간단하게 본론만 말해.”

    빚은 두 배로 갚는다.

    이것이 완벽 무결한 초인 피르에나가 지닌 단 하나의 철칙이었다.

    ‘어제의 실책을 만회해야만 해. 아기를 만드는 법도 모르는 무지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오늘의 요리 대회야 말로 피르에나의 설욕전. 누자베스의 존경과 인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까지 누자베스에게 무시당해 온 서러운 과거에 작별을 고할 때였다.

    “후후…….”

    “아니, 진짜로 기분 나쁘니까 빨리 용건만 말하라고! 뭘 쪼개는 거야!?”

    “누자베스 경. 그렇게 저를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오늘까지랍니다. 초인 피르에나의 지식에 사각은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드리죠.”

    그렇다.

    피르에나는 초극의 시련을 당당하게 이겨낸 초인이다. 질량을 지닌 현계의 인간들 중 초극에 성공한 건 피르에나가 유일했다.

    오늘 이 요리 대회를 통해 초인의 압도적은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죠. 오늘 요리 대회에서 우승하여, 어제의 지적 탐구심을 해결시켜 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피르에나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 만들기 실습을 의미하는 겁니다, 누자베스 경. 저 역시 실전 경험은 전무하지만, 그 정도 단조로운 제작 공정의 지식 정도는 지니고 있답니다.”

    “어우야…… 오우야…… 마, 마…… 마물 박이라는 소문이 진짜였구나……!”

    “예, 예에!? 마물 박이요? 누, 누가 그런 헛소문을……! 이래뵈도 그, 그런 적 한 번도 없거든요! 도대체 누가 그런 소문을…… 루칸다? 루칸다인가요?”

    끄덕끄덕.

    누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피르에나가 얼굴을 붉힌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마, 말해두지만! 진짜 아니니까요!”

    그렇게 소리치더니 피르에나는 헛소문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루칸다를 처단하기 위해 자리에서 도망치듯 떠났다.

    “미안하다, 루칸다. 그래도 너밖에 저 정신 나간 애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사람이 없잖냐.”

    피르에나의 헛소리에 할애할 시간은 없었다. 루칸다가 오해를 풀기 위해 피르에나의 상대를 하고 있는 동안 대회의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그나저나 이 자식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러는 사이에도 요리 대회의 개최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 * *

    둥지의 내부에는 다양한 오락 시설이 존재했다.

    군사 시설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종류도 다양했으며, 그 규모도 여타 둥지에 비해 거대한 편이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누자베스는 병사들의 정신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믿는 군주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오락거리를 제공하며 스트레스 해소와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는데 상당히 힘을 들이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이 둥지에 상주하고 있는 용사들도 누자베스가 마련한 오락 시설의 주요 고객이었다.

    “도대체 이 망할 오락 시설은 누구 아이디어야?”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고룡족이나 정령계의 마물들이 주요 고객이라더군.”

    백주월은 기어코야 펜을 집어던졌고,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편지방이 뭐냐고, 편지방이! 여기 사창가라면서? 내가 알던 사창가란 단어가 잘못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네.”

    “그래도 나름대로 시간을 죽이기엔 나쁘지 않다만. 2주일 전에 편지를 보냈던 셀러맨더 아가씨에게 답장도 이렇게 오지 않았나?”

    “뭐라고 왔는데? 이런 시발…… ‘자기야 나 흥분돼. 자기는 어때?’라는 한 줄을 받기 위해 2주나 기다렸다고? 이거 답장 보내면 또 2주 뒤에나 올 거 아냐? 여긴 이름을 바꿔야 돼. 편지방이 아니라 해면체 세포 괴사방이라고.”

    백주월의 불평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류시혁은 꿋꿋하게 얼굴도 모르는 셀러맨더 아가씨에게 보낼 답장을 끄적끄적 적었다.

    “열심히 해봐, 시혁 형씨. 운이 좋으면 나이 먹어서 기능이 제대로 안 되기 전에는 만날 수 있겠지.”

    류시혁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정통파 용사다운 노력과 근성이다.

    그렇게 류시혁이 정령어 사전을 뒤적이며 셀러맨더 아가씨를 흥분시킬만한 문장을 하나하나 적어가던 찰나.

    덜컥.

    편지방의 문이 열리고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편지방의 평균 만남 성립 시간은 42년. 시혁 형씨가 칠순 잔치를 무사히 끝마치고도 정정하다면 셀러맨더 아가씨의 뜨거운 맛을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불가능하다.”

    누자베스가 나타나 편지방의 상세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설명은 거짓말이다.

    사실 이 편지방의 여성 고객은 0명.

    대륙 곳곳의 52만 마리의 마물 아가씨가 회원 등록이 되어 있다고 자랑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편지방의 실상은!

    사실 모든 답장은 우렌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쓰고 있는 것이었다. 둥지의 경영 수입 다각화를 위하여 여자인 척을 하고 답장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류시혁은 배불뚝이 아저씨에게 답장을 받은 줄도 모르고 괜히 두근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기밀 사항이다.

    특히나 류시혁이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시체 한 구를 치워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뭐야, 우리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백주월이 묻자, 누자베스가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투덜거리듯 말했다.

    “알긴 뭘 알아, 짜식아. 너희들 찾느라고 둥지를 다 들쑤시고 다녔는데.”

    “하핫! 아침부터 그렇게 이 오빠가 보고 싶었냐?”

    “개소리 하지 마, 정신병자야. 어쨌든 너희들 오늘 요리대회 심사위원이라면서?”

    “아, 그랬었지.”

    “생각해보니 그랬군. 슬슬 시간이 된 건가?”

    류시혁과 백주월은 대수롭지 않은 일을 새삼스럽게 기억해낸 것처럼 반응했지만.

    “잘 들어라, 이 식충이들아. 오늘 대회에서 스칼렛이 우승 못하면 이세계 동맹 관계도 파기다.”

    이건 농담이 아닌 진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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