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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202화 (202/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202화

    간화-지하제일 요리대회(중편)

    취사장에 도착한 누자베스를 맞이한 것은. 끔찍하고 명백한 지옥의 풍경이었다.

    무신론자 조차 신을 찾게 만드는 참상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날아와 뇌리에 박혔다가, 전두엽에 관통열상을 남길 만큼 강렬하게 들었다.

    “지자스 크라이스트…… 할렐루야다 진짜……. 누, 누가 이번 주 인사 편성 담당이었니?”

    누자베스가 바들바들 떨며 뒤를 돌아보자, 루칸다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로아가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저, 제가 했습니다…… 전하. 고블린 서비스 부대만 취사 지원에 넣지 않는 건 불합리하다고 다른 부대에서 항의가 잔뜩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전하!”

    “아니, 시…… 아니, 아니지. 괜찮아, 우리 동생이 그랬으면 인정이지. 얘들아 내가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 로아니까 괜찮은 거야. 내 밥사발에 오줌을 갈겨도 괜찮은 건 로아뿐이니까 명심해 둬라. 오히려 언제 한 번 로아가 내 밥에 오줌이나 뿌려줬으면 좋겠네.”

    편애! 압도적인 편애다!

    누자베스는 로아의 어깨를 다독이며, 다시 취사장 쪽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고블린 무리를 바라봤다.

    뒤늦게 취사장으로 따라온 피르에나도 사뭇 심각한 눈빛으로 저녁 식사 준비 과정을 지켜봤다.

    “루칸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내가 고혐을 해서 그런 건 아닌데, 저 가랑이 사이를 긁적이다가 그 손으로 고기 손질을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냐?”

    최대한 이성적으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꾹 삼키며 침착하게 묻자. 루칸다는 당연한 걸 뭐하러 묻냐는 투로 대답했다.

    “저번에 들여온 젖소의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그리고 보급품의 운송이 늦어지는 탓에 항생제의 재고가 부족하여 일단 경증의 병사는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언제부터……?”

    “일주일 정도 됐을 겁니다.”

    누자베스가 눈을 질끈 감았고, 뒤켠에서 일련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피르에나가 다급하게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 막았다.

    “우읍, 읍……!”

    어깨를 들썩이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고, 취사장에 모인 멤버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응, 그래. 가려우면 시원하게 긁어야지. 가랑이도 벅벅 긁으면서 요리하고 그래야지. 역시 우리 루칸다야. 아주 대단해! 라고 할 줄 알았냐! 성병 걸린 고블린 새끼들 당장 취사장에서 퇴장시켜! 아니, 퇴장이 아니라 총살시켜! 총살이야, 총살!!”

    “전하, 외람되지만 사나이는 그런 쪼잔한 일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계집들이나 이런 사소한 일에 호들갑을 떨기 마련입니다.”

    “나왔다! 전설의 가불기 사나이 무적 논리가 또 나오셨구만!”

    설명하겠다.

    루칸다의 가불기 기술 ‘무적의 사나이 논리’에 대해서 말이다.

    루칸다는 자신의 주장에 타당한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 주장이나 하고, 근거는 언제나 ‘사나이는 원래 그렇다’라고 덧붙이면 그만이니까!

    이 논리가 가불기인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이 이러한 논리적 오류를 지적해도 ‘그건 네가 계집이기 때문이다, 계집이 사나이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지’라고 일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남성이 오류를 지적한다면?

    이 경우에도 ‘그건 네가 정신적으로 거세당한 상태이며, 몸은 남자지만 정신은 계집과 다르지 않은 놈이기 때문이다.’ 라고 일축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무적인 것이다.

    이 무적의 사나이 논리에 당하면 울화통이 터지고 전두엽이 파르르 떨려서 그날은 잠을 다 잤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전하는 여자 할래. 암컷 타락 망가 알지? 빌어먹을 전하는 오늘부터 암컷이니까 저기 냄비 옆에서 오줌 싸고 있는 놈들까지 모조리 끌고 나가서 총살시켜!!”

    누자베스는 남성성을 단번에 포기하며 루칸다의 가불기 논리를 논파! 그야말로 고환을 포기하고 뼈를 취하는 ‘괄환취골’의 경지였다.

    그리고 괄환취골의 경지는 오로지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렇기에 가장 남자다운 행위였다.

    비슷한 예로 남자만이 할 수 있는 남자다운 일이란 여장이라든가 전립선 절…… 아니, 어쨌거나 누자베스는 남자다움을 과시하며 루칸다의 논리를 논파해낸 것이다.

    루칸다는 코밑을 슥 문지르며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훗…… 역시 전하에겐 못 당하겠군요.”

    상황 파악 못하고 식수용 배럴에 발을 닦던 고블린까지 모조리 총살 결정. 순식간에 취사장이 썰렁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루칸다 앞으로는 그 계집이라던가, 암컷 같은 발언은 자제 해줘라. 전하의 인세를 반 토막 내고 싶은 거 아니면.”

    “하여간 계집들이 그런 사소한 일에 쫑알쫑알 시끄럽기 마련이죠.”

    “장하다, 김루칸다. 전하를 아주 서울역 노숙자로 만들어 버리렴…… 우리 루칸다 덕분에 전하가 말투를 좀 바꿔야 둥지의 밸런스가 맞을 것 같네…… 하하.”

    어쨌거나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묻자면, 이번 주 취사 감독 역할을 맡았던 챔피언에게도 있었다.

    총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어 엄중한 징계를 내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 취사 감독을 맡았던 챔피언은…….

    “뭔가? 그 불만 가득한 눈빛은? 어쩌자는 건지 잘 모르겠네만.”

    스칼렛이었다.

    이 참상을 보고도 태연하게 혈액팩을 쪽쪽 빨며 거만하게 누자베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이다.

    누자베스가 자기를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저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스칼렛 씨. 우리 인간적으로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가랑이 긁는 놈 정도는 어느 정도 제지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단 말일세. 유기물에서 열량을 취하는 방식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원시적이네.”

    “그래서?”

    “어차피 내가 먹는 게 아니니 대충 놔뒀네.”

    “스칼렛 너어는 정마알…… 귀여워서 다행이야. 안 귀여웠으면 일찍이 내 손에 뒤졌을 테니까…….”

    “아하핫, 이 늙은이를 그렇게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네만.”

    칭찬을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스칼렛은 방긋방긋 웃었다. 저 미소와 웃음은 확실히 반칙 수준이었다.

    살인 용의로 재판을 받게 되더라도, 변호사 없이 저 미소만으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을 것 같다는 막연한 예상까지 들 정도다.

    그런 누자베스와 스칼렛을 지켜보던 피르에나가 꽁해 있는가 싶더니, 이내 앞으로 나와 누자베스에게 말을 걸었다.

    “누자베스 경, 누자베스 경! 귀여우면 뭐든지 용서해 준다면서 왜 제게는 그리 깐깐한 겁니까? 크흠! 제가 이래뵈도 글로레나 왕조 수천 년의 역사를 통틀어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미소녀라 평가받았습니다만. 이건 자타공인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랍니다.”

    확실히 피르에나가 열손가락에 꼽힐 만한 미녀라는 주장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미모는 성별과 종족을 불문하고 매혹시킬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피르에나가 앞으로 나서며 그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누자베스가 그 옆을 지나치며 루칸다를 향해 말했다.

    “우렌한테 오늘 밤까지 취사 인력 확충안 작성해서 결제 올리라고 전해. 빌어먹을 피곤해 죽겠네.”

    “알겠습니다, 전하.”

    “생각해 보니까 우렌 그 자식의 관리 소홀 때문인 것 같아. 우렌 감봉 6개월 추가해.”

    “이걸로 우렌은 앞으로 3년4개월 동안 무급으로 일하게 됐군요.”

    완전히 무시당한 피르에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풀이 죽었나 싶었지만, 이내 누자베스를 뒤를 쫓으며 입을 열었다.

    “누자베스는 이 순간까지 몰랐던 것이다. 이 취사 병력 총살 사건이 훗날 어떤 비극을 불러올지 말이다…….”

    “내 등뒤에서 이상한 나레이션 덧붙이지 마라. 그리고 그 훗날 어쩌구저쩌구는 장마갤에 상주하는 힙스터 새끼들이나 오줌 지릴 만큼 좋아하는 나레이션이잖아.”

    누자베스는 이 순간까지 몰랐던 것이다.

    취사 병력 총살 사건이 훗날 어떤 비극을 불러올지 말이다.

    * * *

    우렌은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무려 두 달 동안 쉬지도 못하고 일한 끝에 얻어낸 휴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회사가 이렇게 살인적인 업무량을 한 사람에게 모조리 몰빵한단 말인가?

    뼈가 부숴지도록 일했고, 오늘 두 달만에 맞이한 휴일을 기념하여 기분 좋게 낮잠을 즐기고 일어나자.

    뜬금없이 감봉 처분에 대한 명령서가 도착해 있었다.

    “아니 왜……?”

    인사 편성을 한 로아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취사장의 감독이었던 스칼렛도 조용히 넘어갔다.

    그런데 방에서 낮잠을 자던 우렌 자신만 감봉 처분? 이런 개 같은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게다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취사 인력 확충안을 작성해서 오늘까지 보고하라는 지령까지 있었다.

    이건 거의 주말에 일광 건조와 개인 장구류 점검의 더블 콤보를 처맞은 말년 병장의 분노와 필적할 수밖에 없었다.

    우렌은 ‘고로시떼야루……’라고 중얼거리며 책상 앞에 앉았다. 그의 눈빛은 진짜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우렌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복수 계획이 훗날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돌아올지 말이다.

    * * *

    다음 날 늦은 오전.

    누자베스가 침대에서 눈을 뜨자, 스칼렛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수면 시간이 거의 겹치지 않는 덕분에 평소였다면 숙면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부시시한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고, 방의 어딘가에 스칼렛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뭐야, 아침부터 어딜 간 거야? 아직 안 돌아온 건가.”

    평소였다면 새벽쯤에 방으로 돌아와 누자베스의 옆에서 조용히 잠에 들지 않았나?

    누자베스는 적당히 옷을 갈아입은 후 스칼렛을 찾기 위해 방을 나섰다.

    “쮸, 쮸우- 쮸!”

    “엉? 햄토리 이노무 쥐새끼. 아침부터 더럽게 건강하구만. 전하는 저혈압이라 머리가 띵한데.”

    햄토리의 경례를 받아준 후, 누자베스가 햄토리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햄토리, 그런데 스칼렛 씨가 어딨는지 알아? 내가 아무리 오픈마인드한 사람이라도 외박까지 허락한 적은 없는데.”

    “쮸우?”

    “어허! 햄토리 이노무 못된 쥐새끼! 어디서 네토라레 같은 못된 말을 배워서!”

    누자베스는 도중에 만난 햄토리를 데리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둥지의 중앙 집결지에 병력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누자베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피르에나!! 이 빨갱이 자식아! 내가 그 망할 연설 하지 말랬지! 내가 오늘은 그냥 안 넘어간다.”

    오늘만큼은 루칸다 할아버지가 와도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누자베스가 소매까지 걷어 붙히며 병력들이 모인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누자베스 경? 아침부터 기운차네요.”

    “어, 뭐야? 네가 왜 여깄어?”

    “제가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피르에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자베스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피르에나가 연설을 하던 게 아니라면, 어째서 병력들이 죄다 여기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단 말인가?

    “얘들아 좀 비켜줄래? 전하가 오늘 마누라 가출해서 기분이 살짝 안 좋을 거 같은데. 괜히 길막다가 죽빵 맞고 둥지 부조리라고 마편 끄적거리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비키렴.”

    누자베스가 나타나자 마물들이 둘로 갈라져 길을 텄다. 그러자 드디어 이 소란의 정체가 드러났다.

    “만약 저기 붙은 대자보가 사회주의 관련이면 말이야. 피르에나 너는 오늘부터 나를 누자베스가 아니라, 김두한이나 김현중이라고 부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피르에나는 양뺨을 부풀리며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누자베스는 그런 피르에나를 무시하며 대자보가 붙은 쪽으로 다가가서 내용을 확인했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입을 반쯤 벌린 채 중얼거렸다.

    “염병, 염병할…… 이 무슨 염…… 염소 낑낑 주인님 그거하자 같은 소리야?”

    “오! 그 라임 괜찮았네요.”

    피르에나에게는 고득점.

    하지만 그런 것보다 대자보의 내용이 더 중요했다.

    [제1회 내가 바로 아릿카사의 요리왕!]

    요리왕을 선별하여 명예 취사관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의 공고였다. 그리고 요리대회의 개최일은 바로 오늘 오후!

    누자베스가 얼어붙은 건 바로 부상의 목록을 목격한 직후였다.

    [대회의 우승자에겐 ‘명예 1일 둥지 관리자 임명’ 및 ‘누자베스 전하 1일 이용권’을 지급.]

    “테네브레 맙소사, 할렐루야다 진짜…….”

    누자베스의 뇌리가 아찔했고.

    동시에 우렌의 총살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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