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201화 (201/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201화

간화-지하제일 요리대회(상편)

“빌어먹을, 이 망할 짬밥은 맛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아주 국물에 지랄 염병을 해놨구만, 똥국이야 뭐야? 어? 내 똥을 넣고 끓였어도 이것보단 맛있겠어.”

“크흠, 크흠크흠!!”

“누자베스 이 또라이 새끼야…… 밥 먹는데 똥 얘기를 꼭 해야겠냐.”

백주월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며 스푼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스푼으로 얻어 맞은 누자베스는 짜증난다는 듯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틀린 말 했냐. 봐라, 여기 자타공인 누렁이 시혁 형아도 도저히 삼키기 힘들어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잖아.”

“……쿨럭!”

“그거야 네가 똥 얘기를 하니까 비위 상해서 그러는 거잖아. 좀 닥치고 퍼 먹어, 정신병자야.”

백주월에게 핀잔을 듣던 누자베스가 류시혁을 팔꿈치로 툭 치며 물었다.

“시혁 형씨. 너도 한 마디 해줘라. 솔직히 오늘 배식 메뉴 에바 아니냐? 이건 거의 해물 비빔 소스랑 비벼볼 만한 맛인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이 스튜에 들어간 돼지비계가 덜 익어서 물컹거리는 식감이 조금 아쉽군.”

“들었냐, 들었어? 들었냐고 백주월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키야. 시혁 형아가 ‘아쉽다’라고 말한 건 말이다. 일반인 기준에선 ‘음식물 쓰레기’라는 의미다.”

“아니…… 나도 그 정도까지 아무거나 다 먹는 건 아니다만.”

류시혁은 스푼을 든 채로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어깨를 떨구며,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음식을 가리며 먹을 만큼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온 건 아니다만. 그렇다고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살아온 정도는 아니었다.

팩트만 말하자면.

이 식탁에 모여 앉은 세 사람 중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 본 건 백주월이 유일했다.

그리고 오늘의 돼지고기 스튜는 확실히 백주월도 도저히 맛있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맛이었다.

백주월은 스튜를 몇 번인가 더 떠먹은 후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맛이 없는 건 인정하겠는데. 원래 음식이란 건 배만 부르면 그만이야.”

“동감이다. 애초에 따지자면 이곳은 전쟁을 위해 건설된 야전 둔영이 아닌가? 제대로 된 식사를 기대하는 건 병참 부대에 대한 결례다.”

이번엔 드물게도 류시혁과 백주월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었다. 누자베스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만. 이래서 전쟁 초짜들은 안 된다는 거야. 야전식은 병사의 사기에 직결되는 문제다. 허기를 채우는 것과 별개로 맛있는 음식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는 효과가 있으니까.”

평소에도 배식되는 식사가 맛있다고는 도저히 말하기 힘들었지만. 오늘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나 끔찍한 스튜를 식사랍시고 내놓은 시점에서 아웃이란 말이다. 누자베스는 지체 없이 망토를 챙겨 어깨에 걸쳤다.

“젠장! 누구는 던전에 소환되자마자 김치볶음밥 만들어주던데. 나는 풀뜯어 먹고, 흙 퍼먹고, 말년에는 이런 똥국이나 마셔야 되는 게 말이 되냐.”

“김치볶음밥 해주는 던전도 있어?”

“몰라! 널린 게 던전인데 김치볶음밥 해주는 둥지가 하나쯤은 있겠지, 알게 뭐야?”

누자베스가 그렇게 말하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류시혁이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간장게장 해주는 둥지도 있나?”

“가, 간장게장은 장르가 다르잖아. 우리는 장르가 던전운영물이라고…… 겜판이 아니야.”

“그래…… 니X오이신도 자기가 추리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주월아. 아니, 그보다 먼저 니시오X신 팬 분들에게 사과해.”

어쨌거나 김치볶음밥을 아쉬워해 봤자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당장 이 망할 스튜를 만든 놈들이 누군지 알아보는 게 먼저였다.

누자베스와 백주월, 그리고 류시혁 셋이 함께 식당을 나서자, 복도 쪽에서 병사들의 고충 사항을 보고받던 루칸다가 바로 보였다.

“심리 치료 환경의 개선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얼마 전 천공술 시술을 위한 기기를 추가 도입했으니 그걸로 참도록.”

“키륵, 키르륵! 키륵!”

고블린 다섯 마리가 머리에 감겨 있던 붕대를 풀어 정수리에 뚫린 구멍을 보여주며 방방 뛰었지만. 루칸다의 입장은 단호했다.

“아무리 전두엽절제술 도입을 원해도 소용없다. 그건 전하의 허가가 있어야…… 그러니까 전두엽절제술이 안전한 최신 기술인 건 나도 알지만.”

“키르륵! 키-!!”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러니까 고블린쇼에 동원되어 생긴 심리적 외상은 천공술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학계 논문도 이렇게 있는데 뭐가 불만이란 말인가?”

일련의 대화를 듣던 류시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누자베스에게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천공술의 치료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나?”

“엉? 당연히 100%지.”

“진짜인가?”

“응. 천공술 시술로 98%는 죽고, 2%는 제대로 치료돼서 바로 전장에 투입시킬 수 있어.”

누자베스는 당연한 걸 뭐하러 묻냐는 듯 대충 대답하며 루칸다 쪽을 향해 다가갔다.

뒤늦게 누자베스가 다가오는 걸 발견한 루칸다와 고블린들이 경례를 올렸고, 누자베스가 바로 답례를 올린 후 손을 내렸다.

“오늘도 고생이 많네, 루칸다.”

“아, 전하. 고블린 족은 천공술 시술에 대한 반감이 큰 것 같습니다.”

“왜 그러지? 도입하기 전에 구울 부대에게 먼저 시험했을 땐 다들 만족했잖아. 아주 머리가 시원해진다고 막 따봉했잖아.”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루칸다도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벌써 식사가 끝나신 겁니까?”

“아 맞다. 맞아! 루칸다 오늘 취사 담당 부대가 어디냐? 어떤 개자식들이 그런 똥국을 만들어서 내 둥지에 뿌리고 있는지 좀 알아야겠다.”

“돼지고기 스튜 말씀이십니까? 꽤나 감칠맛이 나는 훌륭한 요리였습니다만. 전하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습니까?”

“고블린 서비스 부대 애들이지? 걔네들이 오늘 취사 담당이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질 만큼 간단하고 끔찍한 추론 과정이었다.

누자베스는 바로 루칸다를 대동하여 취사장으로 향했다. 취사장으로 향하던 중 자연광이 드는 서측 중앙 복도에 병사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이 둥지에선 꽤나 넓은 공터가 자리 잡은 곳이었다.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던 누자베스가 잠시 멈춰 서서 병사들이 모인 쪽을 바라보자.

그 중앙에는 피르에나가 단상 위에 서서 열성적인 연설을 토해내고 있었다.

“여러분, 님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그리운 이름입니다. 우리들의 가슴입니다. 우리가 사모하고 눈물을 흘리며, 오랜 세월을 목말라해 온 이름입니다.”

누자베스가 입을 반쯤 벌린 채 피르에나의 기행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단상의 아래에 모인 병사들은 열의가 담긴 시선으로 피르에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님은 바로 사회주의 낙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소리 집어쳐! 저, 저…… 저 년 끌어내려! 루칸다 뭐하냐, 당장 네 전여친 끌어내려! 아주 대환장 파티네 아주!”

“그러니까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루칸다가 후다닥 달려가 단상에서 피르에나를 데리고 내려왔고. 병사들도 누자베스가 온 걸 뒤늦게 눈치채고는 각자 흩어져 도망쳤다.

피르에나는 연설을 방해받은 게 불쾌한 것인지 입을 삐죽 내밀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챔피언으로 받아줬더니 왜 여기서 애들 선동하고 있어? 엉? 너 이러려고 챔피언으로 받아달라고 그랬던 거지?”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피르에나는 뺨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와…… 진짜 내가 신사라서 다행인 줄 알아라. 내가 말이야, 어! 여기 주월이나 루칸다 같은 깡패 자식이었으면, 피르에나 너 오늘 강냉이 털렸어.”

“이 자식 은근슬쩍 사람을 깡패 취급을 하네.”

“전하, 저도 암컷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습니다.”

누자베스가 화를 삭이는 사이에 피르에나는 모여 있는 멤버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누자베스, 백주월, 류시혁, 루칸다.

딱히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넷이 몰려다니는 건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피르에나의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들 모여서 뭐하고 있나요? 무슨 고민이 있다면 상담을 해줄 수도 있답니다.”

피르에나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며 그렇게 말했지만. 딱히 피르에나에게 의논할 일도 아니었고, 저 건방진 태도를 보자면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도 사그라드는 법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답니다. 글로레나 왕조 역사상 전무후무한 미증유의 신동이라 불렸던 제게 솔직히 털어 놓는다면, 어떤 고민이든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백주월이 한쪽 눈을 찌푸리며 루칸다를 향해 속삭이듯 물었다.

“보통 저런 걸 자기 입으로 말해?”

“왕녀 님은 조금 자의식과잉이 있는 편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누자베스는 그런 피르에나를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짝다리를 짚은 채 팔짱을 끼고 흘겨보다 불현듯 입을 열었다.

“고민은 아니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우리 둥지에서 가장 현명한 스칼렛에게 물어보러 가는 중이었거든.”

“하핫! 그런 얄팍한 판단, 가엾은 어린 양처럼 느껴져서 나쁘지 않네요. 누자베스 경, 오래 살았다고 현명하진 않답니다. 그저 지식과 경험이 많을 뿐, 현명하거나 지혜로울 것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어요.”

“그래? 그럼 그냥 너한테 물어볼까?”

“그럼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아까 전부터 의견이 갈려서 싸움이 날뻔 했는데. 피르에나 너라면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내가 알고 싶은 건…… 인간은 애기를 어떻게 만드는 거야?”

“엣! 예, 예? 예에……?”

피르에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곧 불이 붙을 것처럼 양뺨에서 열기가 느껴졌고, 귀끝까지 선홍빛으로 물든 피르에나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아기요……?”

“응. 인간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서.”

피르에나의 눈밑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만큼 위기 상황이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된 채로 바들바들 떨며 루칸다를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내봤지만.

루칸다도 이번엔 딱히 타개책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저 끄덕임의 의미는 하나 뿐이다.

정공법으로 해결을 보라는 의미다.

여기서 아기를 만드는 법을 모른다고 하거나, 황새가 물어준다는 등의 대용책을 취한다면.

피르에나는 모르는 정보가 있거나, 잘못된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것만큼은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자니 피르에나의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전장에서 나뒹굴던 군인이라고 해도, 피르에나는 일단 왕족 출신이다. 그런 상스러운 말을 가볍게 입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천박하지 않았다.

“어어? 모르는 거야? 설마 글로레나 왕조 역사를 통틀어서 천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한 전무후무한 미증유의 천재 신동 피르에나 왕녀님도 모르는 게 있는 거야아?”

“아, 알고…… 알고 있어요……! 당연히 알죠! 알고 있고 말고요!”

피르에나는 크게 숨을 들이키며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한 치도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스텔라 님 지켜봐주세요. 이 싸움에서 제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도록. 고통받는 인민들을 위해 당당하게 전장에 설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피르에나는 누자베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몇 번인가 입술을 들썩였고, 폐를 쥐어짜듯 그 단어를 토해냈다.

그녀의 결의는 진심이었다.

“세, 세…… X…… 스! X스!!”

그 단어를 토해낸 순간.

기묘한 해방감과 함께 느껴본 적 없는 달성감에 휩싸였다.

‘말했다! 말했어……!’

이것이 글로레나 왕조의 수천 년 역사를 통틀어 태어날까 말까한 전무후무한 미증유의 울트라 천재 신동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 단어를 말할 수 있었던 인물이 또 있었나? 누자베스가 제아무리 되는대로 지껄이며 검열과 수정 요청 따윈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단어를 입에 담았던 적은 없었다.

피르에나가 승리감에 취해 고개를 들었고, 누자베스를 향해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우월감을 내보이려 했지만.

“어? 누자베스 경? 루칸다?”

그들은 이미 취사장으로 떠난 뒤였다.

피르에나와 놀아주는 것보다 돼지고기 스튜의 원흉을 찾아내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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