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168화 (168/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68화

    살사를 추는 법(3)

    “북측 7구역 통로를 폐쇄해! 마물이다! 마물이 침입했다!”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거야? 수도의 중앙까지 무슨 수로 침입한 건데!”

    “안 돼! 지금 제리가 7구역 순찰 중이라고! 그 녀석이 돌아올 때까지 격벽을 내리지 마!”

    “닥쳐! 마물놈들이 들이닥치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야!”

    “이 개자식! 제리를 죽일 셈이냐!! 그 자식 마누라가 얼마 전에 애를 낳았다고! 다르테 너도 알잖아?”

    타앙!

    총성이 좁은 지하 통로를 울렸고, 격벽 제어 장치에 달라붙어 다른 병사들을 막아서던 남자가 쓰러졌다.

    이곳에 모인 병사들은 모두가 짧게 시선을 교환한 후 격벽 제어 장치의 손잡이를 내렸다.

    누구도 전우를 쏜 병사를 비난하려 하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수십여 명의 병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드드드드드득.

    견고한 석재로 만들어진 격벽이 통로를 가로 막았고, 그제야 병사들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젠장! 누구는 처자식 없어서 이러는 줄 알아?”

    “이봐 진정해. 누구도 자네를 비난하지 않았어.”

    “죽일 필요까진 없었잖아! 죽일 필요는…… 없었다고…….”

    수도의 방위를 맡고 있던 병사들은 상대적으로 전방의 병사들에 비해 실전 경험이 적었다.

    전선이 먼 서쪽에서 고착화된 후 젊은 병사들은 실전 경험이 전무한 경우도 있었다.

    미지만이 공포의 근원이다.

    그렇기에 진짜 마물과 조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제2종 청색 경보를 발령한다! 제2종 청색 경보를 발령한다. 전 병력은 무장하여 각 경비 구역을 사수한다! 다시 한 번 전달한다…….

    지하의 폐쇄 공간.

    그 침묵 위로 쉴 새 없이 공명석의 소리만이 울렸다. 적의 규모나 종류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전무했다.

    그저 각자 무장한 채 마물이 나타나면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무책임한 명령이 전부였다.

    -제2종 청색 경보를…… 발, 한다…….

    공명석의 소리에 잡음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공명석에 서서히 다가왔고, 그 중 한 사람이 공명석을 들고 흔들었다.

    “염병, 이딴 낡은 공명석을 쓰니까 이지랄이 나는 거 아냐?”

    “저는 공명석을 쓰는 거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하기야 우리가 공명석으로 지휘 들을 일이 어디 있었겠냐. 수도 지하 방위 임무가 꿀 떨어지는 땡보였는데.”

    지지지직.

    공명석에서 흘러 나오는 노이즈가 섬뜩했다. 괜히 뒤숭숭해진 병사들이 공명석에서 물러나려던 찰나.

    -제2종 청색 경보 발령을 해제합니다. 전 병력에게 전달합니다. 현 시점으로 모든 경보가…… 지지직, 지직…… 무장을 해제하고…… 지직, 지지직…… 격벽을 개방하기 바랍니다.

    “뭐야?”

    “경보 해제입니다! 마물들을 모두 물리친 모양입니다! 우리 모두 살았습니다!”

    “아니, 잠깐만?”

    -제2종 청색 경보를 발령한다! 모든 격벽을 개방하고…… 지지직, 지직, 격벽을 열지 마! 모두 죽는다!! 절대로 열면 안…… 으, 으아악! 그, 그가아아악! 격벽을, 여, 여…… 열어어! 당장…… 열어어어!!

    병사들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공명석을 통해 전달되는 지령이 뒤죽박죽으로 섞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자신들이 무엇과 싸우게 되는지,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용사, 용사님이 오실 거야…… 얘기를 들었다고. 지금 수도에 용사님이 계신다는 얘기가 있잖아.”

    “용사님만 오신다면 우린 다 살 수 있어.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정신 똑바로 차려!”

    콰앙!

    석재 격벽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병사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고, 격벽 너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어 줘! 나야, 제리라고! 마물놈들은 제4통로를 통해 타르틸리엇 보관고로 향하고 있어!”

    “젠장, 제리! 살아 있었구나!”

    “이봐! 격벽을 열어 마물 놈들이 반대쪽으로 향했다잖아.”

    제리와 친하게 지내던 병사들이 어서 격벽을 열라고 닥달을 했지만. 다르테는 공명석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갑자기 총구를 들었다.

    “그 녀석이 제리라고 어떻게 알지?”

    “다르테! 이 또라이 새끼야! 우리가 제리 목소리도 모를 거 같냐? 이 새끼 드디어 미쳤군!”

    “해보자는 거야, 다르테!!”

    병사들이 순식간에 두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이미 공명석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심하게 일그러져 섬뜩한 울음 소리처럼 들렸다.

    공포와 분노의 감정은 이 작은 쉘터를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마, 마물이……! 흐아아악! 열어, 열어 줘! 제발, 제발 열어어어!”

    “제리이이!!”

    제리의 비명이 격벽 너머에서 들려왔고, 마물의 울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 순간.

    투쾅!

    투박한 폭음과 함께 마물의 단말마가 하모니를 이뤘다. 병사들은 쉘터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빈약한 상상력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마물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제리! 제리 괜찮냐! 살아 있어?”

    병사들 중 일부가 격벽 쪽으로 다가가자.

    제리가 믿기 힘들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사님이…… 용사님이 오셨어! 우린 살았어……!!”

    용사.

    태양의 여신 스텔라에게 권능을 하사받은 초월적 존재.

    존재 자체만으로도 용사는 공포를 잠식시킨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다. 공포에 질려 있던 병사들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고, 누구 하나 이견을 내지 않고 격벽의 제어 장치를 움직였다.

    쿠구구구궁.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석재의 격벽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고, 격벽이 무릎 높이까지 올라간 순간.

    데굴.

    시커먼 구체가 쉘터의 안쪽으로 굴러 들어왔다. 병사들의 시선이 구체에 집중됐다.

    “제, 제리잖아!”

    “우웨엑! 시발!”

    “격벽을 닫아! 닫으라고!”

    시커먼 구체의 정체는 제리의 머리였다.

    뒤늦게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병사들은 격벽을 다시 닫으려 했지만.

    “우워어어어……!!”

    터억!

    거대한 손이 틈새 안으로 쑥 들어왔다.

    블러드 골렘이었다.

    거대한 몸뚱이 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내구력과 괴력을 지닌 마물이다. 틈새가 생긴 격벽을 들어 올리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발포! 발포해! 저 괴물놈이 격벽을 들어 올리게 놔둬서는 안 된다!”

    어두컴컴한 쉘터 안에서 쉴 새 없이 총구가 불을 뿜었다.

    “캬아아!”

    “캬악!”

    그러는 사이에 열린 틈을 통해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들어와 인간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겁에 질려 제대로 조준 사격도 할 수 없다. 이렇다 할 엄폐물도 갖추지 않은 쉘터에서 무방비하게 사격을 가하던 중이다.

    이런 인간 병사들이 스켈레톤 병사들을 저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크악!”

    “죽어, 죽어 이 괴물놈들…… 아아악!”

    “히이익! 죽기, 싫어! 나는 죽기 싫다고……! 커헉!”

    푸욱!

    스켈레톤 병사의 검에 꿰뚫린 젊은 병사가 피거품을 토해냈다. 그대로 머스킷을 휘둘러 저항하려 했지만, 몰려든 스켈레톤 병사들에게 꿰뚫려 금새 축 늘어졌다.

    순식간이었다.

    쉘터 하나를 피바다로 만들기까지 수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교단의 수녀복을 걸친 흡혈귀가 피웅덩이를 응축시켜 혈정을 채취했고, 남은 시체는 블러드 골렘이 챙겨 부화장 쪽으로 향했다.

    누자베스의 병력은 철저하게 이런 식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계산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300여 마리의 병력만으로 타르틸리엇 탈취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수비대의 병사들을 스켈레톤 병사와 블러드 골렘으로 치환시키며 이 지하 보관고를 통째로 감염시킬 작정이었다.

    전투를 개시한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스켈레톤 병사와 블러드 골렘의 수는 전투 개시전과 비교하여 두 배에 달해 있었다.

    정리가 끝난 쉘터 안으로 누자베스가 발을 들였다. 누자베스는 짙은 피비린내를 한껏 들이마신 후 쓴웃음을 토해냈다.

    “너무 추잡하잖아. 구해주러 온 용사님도 화들짝 놀라서 그대로 돌아가버리겠어.”

    누자베스는 제어 장치 근처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병사를 내려봤다.

    그가 오기 전부터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자기 목숨을 챙기겠다고 전우를 버리고, 동료에게 거리낌 없이 총을 쏠 수 있는 놈들이다. 이런 추잡하고 역겨운 생물이 인간이었다.

    누자베스는 스스로의 인간성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끔씩 고민하긴 했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여전히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나 역겹고 치졸하며 사악한 존재가 인간이라면, 누자베스 역시 인간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도 살아남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너무 나쁘게 생각은 하지 말라고. 당신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잖아?”

    “천상에 계신 태양의 어머니시여…… 영광의 아침이 도래하노라면 지상의 만물을 가엾이 여기시어 굽어 살피소서…… 천상에 계신 태양의 어머니시여 영광의 아침이…….”

    쉘터 안쪽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병사는 주저 앉은 채 실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자베스가 필요에 의해 살려둔 시한부의 목숨이었을 뿐이지만.

    병사는 보았다.

    끊임없이 기도문을 읊조리며 눈앞에 나타난 누자베스를 올려다 봤다.

    누자베스란.

    가장 순수하게 정제된 절망이었고, 정교하게 조율되어 방향성을 지닌 악의였다.

    찬란한 태양의 빛조차 굴절시킬 만큼 짙은 어둠이다. 흘러내리는 황금빛의 안광이 병사에게 향했고.

    저벅.

    누자베스가 크게 한 걸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시시하고 추잡한 삶을 위해 용사가 나설 것이라 생각하나? 그 잘난 정의의 용사님께서 우리 같이 추악한 놈들을 보듬어 살피실까?”

    부정이다.

    누자베스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이 세계로 끌려온 직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누자베스는 매일 같이 구원을 기도했다.

    아무라도 좋으니까 자신을 구해달라고 오열했고, 겁에 질려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구해줄 용사를 마련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혹한 채찍질을 거듭할 뿐이었다.

    누자베스는 깨닫고 만 것이다.

    온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깨달은 사실은 단 한 가지 뿐이다.

    누자베스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응어리진 원한을 토해내듯 말했다.

    “내가 가르쳐줄게.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다시금 가르쳐주는 것뿐이야. 구원도 용서도, 결국은 이 비루한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누자베스는 병사를 향해 공명석을 들이밀며 말했다.

    “마물들이 서측의 제18통로를 통해 퇴각 중이라고 전해라. 그리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제야 공명석의 지휘가 지리멸렬하게 뒤섞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누자베스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목숨을 댓가로 병사와 부사관들을 협박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쉘터에서 많은 병사들이 자기 혼자 살아보겠다고 거짓 지령을 떠들어댔다. 물론 마지막엔 모두가 끔찍하게 살해당했지만 말이다.

    누자베스는 빙긋 웃으며 공명석을 건냈다.

    “인간이란 다들 그렇게 추잡스럽게 살아가는 법이잖아? 다른 병사들도 다 했어. 너만 손해볼 필요는 없을텐데.”

    “주…….”

    병사는 누자베스가 건낸 공명석을 꽉 쥔 채 바들바들 떨었다. 홀로 계신 어머니와 얼마 전 결혼을 약속한 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풍족하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모은 급료로 작은 농경지를 사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었다. 저녁이면 셋이 모여 앉아, 소박한 저녁 식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병사의 눈에서 핏물 섞인 눈물이 흘렀다.

    “죽여라……! 마물에게 전우들을 팔아버릴 바에는 여기서 죽겠다!”

    “그래?”

    누자베스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따악.

    누자베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블러드 골렘 한 마리가 병사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우워어어어어!”

    바위와 같은 주먹이 치켜 들려졌고.

    병사는 사랑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지하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 쉘터에 한 줄기의 햇빛이 비쳤다.

    태양이 누자베스에게 고하고 있는 것이다. 용서받을 권리란 이런 식으로 지켜지는 법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누자베스의 눈앞에서 블러드 골렘이 사라졌다. 거친 폭음과 후폭풍에 휘날리는 피와 살점!

    순식간이었고, 누자베스가 상황을 파악한 직후 백주월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쪽이 대장이냐? 한참 찾아 다녔잖아, 빌어먹을 자식아.”

    누자베스는 양손을 코트 주머니에 푹 쑤셔넣은 채 백주월의 앞에 마주섰다. 언젠가 마주해야 했던 문제였다.

    그래, 미치도록 만나고 싶었다.

    이런 비참한 형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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