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158화 (158/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58화

    잔불 정리(2)

    둥지에 영입된 지 5일 차 만에 우렌이 바로 전장에 투입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릿카사를 구성하고 있는 부대와 병력들의 특징을 모두 파악한 것이다.

    우렌이 가장 눈독을 들인 부대는 전차와 자주박격포로 구성된 ‘비비큐 클럽’과 로아의 직속 공수부대 ‘크라울 비젠’이었다.

    거기에 스칼렛의 직속 부대이자 머스킷티어 보병대 ‘그레이브 야드’ 역시 군단의 기반을 탄탄하게 지탱하고 있는 병대다.

    영입 직후 누자베스를 대신하여 지휘관으로 임명된 우렌은 바로 서측의 방어선을 검토했다.

    “역시 기세를 꺾으려면 겁을 좀 줘야겠군.”

    구축이 완료된 방어선을 돌아보며 우렌은 병력들의 사기와 피로도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 뒤를 따르던 로아와 스칼렛은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 아무리 같은 챔피언으로 직위가 같다지만, 둥지 내에서의 직책은 동일하지 않았다.

    로아와 스칼렛은 어디까지나 야전 지휘자의 직책. 그에 비해 우렌은 영입 직후 바로 지휘관 자리를 꿰찼다.

    누자베스는 지금까지 비상시를 제외하곤 지휘관 자리를 그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어째선지 우렌에게 지휘관 자리를 냉큼 넘겨버린 것이다.

    ‘병력 지휘 능력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각하께서 이 건방진 돼지놈에게 아무 생각 없이 지휘권을 위임하셨을 리 없겠지만.’

    우렌이 꽤나 이름을 날린 마왕군 장교였다지만, 로아나 스칼렛도 우렌에게 무시당할 만큼 병력 지휘에 문외한은 아니었다.

    실제로 로아도 대륙에서는 정규군 소속의 장교였고, 스칼렛 역시 자신의 군단을 지닌 적이 있었다.

    물론 누자베스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솔리엔 령의 방위와 이즈미 령의 합병 작전을 전적으로 우렌에게 맡긴 이유가 있었다.

    우렌은 뒤를 따라오던 로아와 스칼렛을 슬쩍 돌아보며 누자베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떠냐, 우렌? 며칠 좀 지내보니까 우리 애들 성깔 파악이 됐지? 우리 애들만큼 성질머리 더럽고 자존심 센 챔피언들도 없을 거야.’

    ‘하하, 각하의 고생이 훤히 보이는군요.’

    ‘어쨌거나 내가 13차폐구의 둥지를 완전히 흡수해서 솔리엔 령을 집어삼키면 우리도 그럭저럭 덩치가 커지겠지. 그때는 나 혼자 이 개고생하는 것도 버겁지 않겠냐.’

    누자베스는 처음부터 우렌을 자신의 밑에 두고 부릴 챔피언으로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 누자베스가 우렌을 영입한 이유?

    간단히 말해 ‘부속 둥지’의 관리자로 삼기 위해서였다.

    물론 둥지의 관리자가 될 수 있는 건 하이브 마인드뿐이다. 둥지의 시설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오로지 하이브 마인드의 재량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하이브 마인드는 동족 포식을 통해 다른 둥지를 집어삼키는 식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누자베스는 이러한 성장의 한계에 대해 정확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강력하고 거대한 둥지 좋지. 하지만 몰빵하다 자빠지면 골치 아파. 덩치가 커지면 부딪칠 구석도 많아질 테고, 그럴 때마다 본체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성장에 분명한 한계점이 찾아오겠군요.’

    ‘그래, 우렌. 괴뢰 둥지로 만드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역시나 그보다 더 신뢰할 만한 제어 수단이 안심되지 않겠냐?’

    ‘그 말은 즉.’

    ‘허수아비로 만든 하이브 마인드를 컨트롤할 내 수족이 필요하단 말이다.’

    이번엔 동족 포식이 아닌 이즈미 령의 하이브 마인드 ‘타우저 백작’을 살려두고 둥지를 보존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한다.

    그리고 완전히 꼭두각시가 된 타우저 백작을 조종하며, 둥지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지니게 되는 게 바로 우렌이었다.

    누자베스는 이런 식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합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이즈미 령의 둥지 하나뿐이지만, 점점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합병하는 둥지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우렌은 누자베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격대장의 말대로 정말이지 탐욕스러운 전쟁 군주였군.’

    너무나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바체트 열도 전부를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의식에 깔려 있었다.

    부속 둥지의 계획은 누자베스의 탐욕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바체트 열도 전체가 목표였던 게 아니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을 평소에 생각해 둘 리 없지 않나?

    ‘어쨌거나 이번엔 연습을 겸하지. 하이브 마인드의 챔피언과 병력을 운용하여 싸우는 법을 실전을 통해 배워보자는 말이다.’

    ‘제 말은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습니다만.’

    ‘네 말 안 들으면 각하랑 스팽킹 플레이한다고 전해. 이번엔 로아하고 스칼렛 데리고 가서 몸 좀 풀고 와라.’

    우렌의 명령대로 싸워야 된다는 게 불만인지, 로아와 스칼렛은 불쾌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로아는 짝다리를 짚은 채 우렌을 노려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뭘 봐, 돼지 자식아? 눈 깔아.”

    “짜증 나니까 뭘 하려고 하질 말게. 평소 하던 대로만 해도 방어선 지키는 건 일도 아니니.”

    스칼렛까지 팔짱을 낀 채 엄포를 놓듯 그렇게 말했다. 흡혈귀는 원래 건방진 종족이다. 그런 흡혈귀 중에서도 상속 신분에 속하는 스칼렛은 저런 안하무인에 시건방진 태도가 기본이었다.

    우렌은 곤란하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으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일단은 각하께 지휘권을 받았습니다만…… 항명 시엔 누자베스 각하께 보고하겠습니다. 각하께서 화나시면 무시무시한 체벌이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선 제 명령에 따라 움직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체벌? 무슨 체벌?”

    “……스팽, 아니 볼기를 때리신다고 합니다.”

    “엉덩이를?”

    “때려? 손으로 말인가?”

    로아와 스칼렛이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연 건 로아 쪽이었다.

    “그래, 일러! 전부 꼰질러라 어? 누가 그딴 게 무섭다고 그래? 특히 이 흡혈귀보다 내가 더 말 안 들었다고 보고해!”

    “아니, 정말 곤란합…… 끄가악!!”

    빠악!

    우렌이 걷어차인 자신의 정강이를 붙잡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순식간이었다!

    우렌의 다리를 걷어찬 스칼렛은 딴청을 부리듯 엄한 산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로아도 깜짝 놀라서 스칼렛 쪽을 바라봤다. 너 지금 뭐하냐? 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이 늙은이가 상급 작전권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보고하게. 이거 참 곤란하군, 빼도 박도 못 하고 하극상을 저질러버렸어.”

    “야! 미쳤어? 그렇다고 때리는 놈이 어딨어?”

    로아가 부들부들 떨며 스칼렛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우렌을 붙잡아 일으켰다.

    “이, 이렇게 되면…… 사, 살인 미수밖에 없어. 그치? 그게 폭력보다 더 큰 잘못이겠지, 우렌?”

    로아가 검을 뽑아 든 순간.

    스칼렛도 로아에게 질세라 바로 머스킷티어 한 정을 받아 탄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우렌의 눈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각하…… 이런 것들을 데리고 잘도 둥지를 운영해 오셨군요…….’

    우렌이 삶의 마지막을 직감한 찰나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 잠깐 걱정돼서 따라 나와봤더니만 이 지랄이구만.”

    구원의 빛줄기처럼 누자베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자베스가 참호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로아와 스칼렛을 우렌에게서 떨어뜨린 후 말했다.

    “잘 들어라. 지금부터 우렌의 말이 곧 내 말이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엉덩이를?”

    “때릴 텐가?”

    술렁술렁.

    누자베스는 강경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코볼트 작업대로 배속시킨다. 코틀러랑 일일외출록 찍고 싶으면 계속 이딴 식으로 해봐.”

    실망!

    압도적 실망!

    로아와 스칼렛의 얼굴이 친치로로 급료를 전부 탕진한 카이지처럼 찌푸려졌다!

    둘이 잔뜩 실망하는 사이 누자베스가 넘어져 있던 우렌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뒷짐만 지고 있을 테니까. 팬티에 지려 버릴 만큼 멋진 공훈을 기대하지.”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각하.”

    슬슬 밑준비가 될 타이밍이었다.

    * * *

    쉴리너 소령이 이즈미 령에 온 지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집행 기관 노르카리움 소속의 장교로서 같은 소속의 팬토르칸 소령과 작전 지원에 나선 것까진 문제가 없었다.

    타우저 백작은 솔리엔 령이 금세 제압될 것이라 예상했고, 본영 역시 타우저 백작의 보고에 큰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렇기에 노르카리움의 도련님들을 이렇게 보낸 거 아니겠나? 손쉽게 경력에 한 줄 추가할 수 있는 소풍이 되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젠장, 이런 좁쌀만 한 땅덩이 제압하는데 더럽게 오래 걸리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게 아니었는데.”

    임시 천막 안에서 쉴리너가 투덜거리며 술잔을 채웠다. 물론 작전 중에 술을 마시는 장교는 자격 이하다. 취해서 병사들을 사지로 모는 지휘자는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쉴리너는 그딴 걸 신경 쓰는 장교가 아니었다. 기본 자질도 없었으며, 병사를 지휘하는 재능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남들이 떠받들어주는 대로 군인이 된 것뿐이니까.

    출생 성분이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소령의 자리까지 오르긴 했지만, 쉴리너는 지금껏 전장을 진지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전쟁 따위보다 계집을 끼고 술이나 마시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음?”

    천막 밖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고블린 작업대가 보였다. 집행 기관 노르카리움의 군대는 나름대로 도련님들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정예 병력을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보급이나 병참 임무에는 고블린들도 아주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뭐지? 갑자기 보급품을 옮길 이유가 없을 텐데?’

    작업 중인 고블린의 수는 열 마리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소규모였지만. 보급품이 들어있는 것 같은 나무 상자를 옮기는 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봐! 거기 고블린!”

    쉴리너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부르자, 고블린 중 한 마리가 나무 상자를 내려놓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디서 부상을 입은 건지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애꾸 고블린이었다.

    “지금 당장 전투 계획은 없는데 뭘 옮기고 있는 거지?”

    애꾸 고블린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탄약입니다. 동측 제7초소 앞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아서…….”

    “탄약을?”

    동측 제7초소라 하면 지금 팬토르칸 소령의 병력이 맡고 있는 곳이었다. 미리 상의된 공격 계획이 없음에도 갑자기 탄약이 필요하다니 뭔가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13차폐구를 점령한 누자베스의 군대 아릿카사는 꿋꿋하게 방어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갑자기 녀석들이 쳐들어 왔다면 어떤 식으로든 쉴리너의 귀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쉴리너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블린들이 분주하게 옮기고 있는 탄약 박스를 바라봤다.

    ‘뭘 하려는 셈이지, 팬토르칸?’

    이번에 나선 솔리엔 령 제압전은 쉴리너와 팬토르칸이 정확하게 똑같은 공적을 세워야만 했다.

    어느 한쪽이 우수한 공적을 남겼다간, 다른 한쪽이 비교되어 수치를 당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고블린 작업대가 탄약 박스를 옮기는 걸 목격하자, 쉴리너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설마, 내가 모르는 정보를 손에 넣었나?’

    소규모의 병력만을 운용하여 적의 지휘자를 생포한다거나, 그런 공적은 곤란하다.

    분명 마왕성으로 복귀한 후 둘의 공적이 비교될 게 분명했으니까.

    “이런 음흉한 개자식……!”

    쨍그랑!

    쉴리너가 술잔을 내던지며 막사를 나섰고, 애꾸 고블린이 쉴리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바로 보고를 올렸다.

    [루칸다 : 물고기 주제에 화가 많이 났군, 덫의 준비는 끝났나?]

    [우렌 : 앞뒤 못 가리는 어린애 한 놈 집어삼키는 게 힘들 것 같진 않은데.]

    우렌은 킬킬 웃으며 크라울 비젠 부대를 움직였다. 타우저 백작에게 맡고 있던 남의 집 애새끼를 잃어버리는 공포를 알려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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