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143화 (143/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43화

    카쿠쟈(1)

    [누자베스 : 코틀러, 코탈린 오랜만에 등장하니 기분이 어떠냐?]

    [코틀러 : 키륵, 6천 자 분량으로 하와와 거려서 한 편을 날로 먹고, 별점을 1점으로 만들고 싶다, 키륵.]

    [코탈린 : 호에에에엣…….]

    [누자베스 : 말해두지만 각하는 별점 따위에 연연하는 소인배가 아니다! 프로 의식 따윈 눈곱만큼도 없는 양아치란 말이다! 3만 자 정도로 해서 다섯 편은 날로 먹어보자, 코틀러.]

    [코틀러 : 연독률…… 무엇…….]

    [누자베스 : 코틀러. 연독률이란…… 각하가 이 빌어먹을 소설을 런칭한 순간부터 박살 날 거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마 런칭 첫날부터 여성 외모 품평에 관련한 클레임 메일을 5통 정도 받게 되겠지.]

    [코탈린 : 키륵, 외모…… 품평 무엇…….]

    [누자베스 :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각하도 수박만 한 슴가를 수박만 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 눈물이 날 만큼 슬프구나.]

    [코틀러 : 소난다.]

    [누자베스 : 이 시국에 그 드립은 아니지 않냐? 아니. 하지 마, 그거. 하지 마!]

    [코탈린 : 야, 누자베스.]

    [누자베스 : 코탈린 너 이 새끼, 선 넘지 마라, 진짜.]

    [코탈린 : 오야지는 코탈린한테만 정색한다, 키륵…….]

    이번에도 당연히 예상했겠지만, 코볼트 작업대와 농담 따먹기나 하려고 동원한 건 아니었다.

    슬슬 움직이기 전에 밑 작업이 얼마나 되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코틀러 : 여기 지도에 표시해 왔다. 적당한 충격만 주면 된다.]

    [누자베스 : 솔직히 내 둥지의 숨은 캐리머신은 코볼트들이 아닐까 싶다. 아니,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급인 거 같은데. 코틀러, 넌 오늘부터 이름을 ‘제반니’로 개명한다.]

    [코틀러 : 코틀러가 하루 만에 땅굴을 다 파놨습니다.]

    [누자베스 : 오케이. 루칸다는 이 지도를 에르멜에게 전달한다.]

    코틀러가 그려온 지도를 받아든 루칸다가 재빠르게 전열을 이탈하여 사라졌다.

    내가 임시 둥지를 짓는 동안 스칼렛을 포함한 나머지 챔피언들이 제대로 일을 해준 덕분이다.

    13차폐구의 트라이어드 놈들은 내 챔피언을 네토라레할 생각이나 하며, 내게 큰 경계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껏 설치해 놓은 도청 장치마저 두르난 아재가 만진 덕분에 엉뚱한 소리를 발신하게 되지 않았나? 내가 무슨 꿍꿍이를 품은 채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아무도 모르겠지.

    ‘임시 둥지만 만든 게 아니었지.’

    임시 둥지 착굴 작업에 착수했던 코볼트 작업대는 1/3에 불과하다.

    나머지 작업대, 즉 코틀러와 코탈린이 이끄는 놈들은 엉뚱한 곳에 구멍을 뚫고 다녔단 말이다.

    ‘챔피언들이 수집한 둥지 핵심 시설의 위치 정보.’

    특히 스칼렛이 가장 많은 정보를 탈취해 왔다. 뤼클라가 스칼렛의 미인계에 제대로 당해 아는 걸 모조리 실토한 것이다.

    ‘그 정보를 토대로 코볼트 작업대가 시설의 주변 지반을 약하게 만들어 놨지.’

    그리고 이 정보를 고스란히 에르멜에게 넘긴다면? 바로 대지형 폭뢰 매립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병력의 보충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에르멜과 달리, 13차폐구의 전쟁 군주들은 장기전을 노리고 있었다.

    농성을 하듯 버티다 보면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돌아갈 거란 심산이다.

    어찌 보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둥지만 온전하다면 병력과 보급품을 계속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게 전쟁 군주의 유일한 이점이니까.

    [누자베스 : 로아, 슬슬 산책이나 나서 볼까?]

    [로아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각하.]

    뤼클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나머지 전쟁 군주인 아일크라나와 세도루프가 이상을 감지할 것이다.

    그전에 선수를 치도록 하자.

    결국 어느 쪽이든 타이밍의 문제였다.

    * * *

    “마력이…….”

    아일크라나가 아연실색한 채 자신의 손을 펼쳐 보였다. 미세하게 흐르고 있는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긴 했지만, 본래의 상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력했다.

    육체의 이상으로 비유하자면, 심한 탈력감과 무기력증에 닮은 증상이었다.

    아일크라나는 리케릴 성찬회의 일원으로 외신의 간섭을 부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이러한 능력을 ‘마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처럼 마법을 구현할 수 없는 상태는 아일크라나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선두를 달려 나오던 할칸 기갑 연대의 전차 중 3대가 아일크라나의 ‘마력창’에 꿰뚫려 작전 수행 불능 상태가 되었다.

    원거리에서 전차에게 확실하게 대미지를 줄 수 있는 건 아일크라나의 마법이 거의 유일했다.

    만약 이대로 아일크라나가 마법을 구사할 수 없다면, 수많은 병력을 희생시키며 전차를 한 대씩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세도루프 : 아일크라나! 이 개자식아 뭘 멍때리고 있는 거야! 놈들이 다시 도약했어! 작전 구역 D-04지역이다!]

    실로 경악할 수밖에 없는 능력이었다.

    성처녀 에르멜에 대한 소문은 몇 번이고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맞붙게 되니 그 능력의 격차를 뼈저리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질량체의 도약은 신의 기적에 속하는 현상이다. 질량을 지닌 물질이 빛의 속도와 같거나, 광속을 초월하는 초자연현상이니 말이다.

    아일크라나가 속해 있는 리케릴 성찬회에서도 ‘텔레포트’에 관한 기술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공간 도약처럼 보이는 현상을 구현한 게 고작이었다. 진짜 공간 도약은 신의 섭리에 도전하는 능력이란 말이다.

    그런 기적을 에르멜은 5분 정도의 텀을 두고 계속해서 구현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뿐만이 아니라, 수십여 대의 전차를 통째로!

    만약 이 전장에 스텔라 교단의 성직자가 있었다면, 이 엄청난 기적과 신성력에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을 것이다.

    ‘선봉대가 거듭해서 도약하며 압도적인 규모의 격차를 무마시키고 있다.’

    마치 에르멜의 전차 부대에 농락당하고 있는 형세다. 마물 부대가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선 둘러싸고 포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선봉에서 대열을 뒤엎고 있는 전차 부대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도약하며 포위진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차에게 유효한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아일크라나의 마법 능력마저 모종의 이유로 잃게 되었다.

    ‘설마 제어 장치가?’

    적의 별동대가 이미 둥지에 침투하여 제7 폐쇄 구역을 점령하고, 아일크라나의 마력 제어 장치를 파괴했다면?

    ‘적의 침입이 확인되진 않았다. 설령 소수의 병력이 둥지에 발을 들였다고 해도 제7 폐쇄 구역까지 도달하는 건 불가능할 테고.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중간에 전투 보고가 들어올 터.’

    아일크라나는 순간 불길한 촉을 느꼈다.

    그런 짓이 가능하다면, 아군으로 위장하고 있던 내부의 적의 소행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의심해야 되는 존재는 아리카의 엘베제 ‘누자베스’였다.

    아일크라나는 하이브 모드로 좌익을 맡고 있던 누자베스의 군대를 살폈다.

    일전에 동원된 병력이 모조리 나와 있었다. 물론 챔피언들까지 모두 출전 상태.

    별도의 병력을 돌려 제7 폐쇄 구역을 공략할 여력은 없어 보였다.

    [누자베스 :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세도루프와 아일크라나의 대화를 듣던 중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누자베스가 그렇게 물었다.

    [아일크라나 : 아무것도 아니다. 방어에 집중하…….]

    아일크라나의 입이 멈췄다.

    좌익을 맡아 지휘를 해야 하는 누자베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헬베르카 분가 출신의 챔피언인 ‘로아’ 역시 자리에서 이탈해 있었다.

    [누자베스 : 정말요? 곤란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요. 동포끼리 돕고 살아야죠.]

    [아일크라나 : 누자베스! 누가 작전 지역을 멋대로 이탈해도 된다고 허락했나!]

    탓.

    경쾌하게 지면을 밟는 소리와 함께 누자베스가 아일크라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 말해서 부관인 로아까지 끌고 온 것이다. 아일크라나는 서둘러 마인드 모드를 종료한 후, 누자베스를 노려봤다.

    “허락? 로아야, 각하가 애새끼도 아니고 그런 것도 허락받고 다녀야 돼?”

    누자베스가 킬킬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로아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아일크라나 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국화의 의지에 그 어떤 허락이 필요하겠습니까.”

    “들었지, 아일크라나? 우리 로아가 그딴 허락은 필요 없다는데.”

    아일크라나는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며 누자베스를 향해 소리쳤다.

    “네놈이 제7 폐쇄 구역을 파괴했군. 더러운 박쥐 놈! 동포의 등을 찌르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천박한 잡종이……!!”

    “아일크라나 양반. 우리 같은 전쟁 군주들에게 동포가 어디 있겠어? 태어날 때부터 주변 것들을 집어삼키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본성을 타고났는데.”

    전쟁 군주는 합리적인 행동 동기에 의해 움직이도록 설계되었고 동포라던가, 동족 같은 민족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아량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어찌 보면 접경하고 있는 다른 전쟁 군주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잠재적 적과 협력하는 누자베스의 행동 원리야말로 가장 전쟁 군주다운 행동이었다.

    “얼빠진 놈. 주 병력의 대부분을 날려 먹은 주제에 무슨 협상을 기대하는 것이냐. 협상이란 엇비슷한 힘을 지닌 놈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아일크라나는 누자베스의 주병력인 ‘그레이브 야드’ 부대가 괴멸당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

    아무리 불사성이 강화된 구울 머스킷티어들이라고 해도, 완전히 연소되었다면 소생의 가능성은 한없이 적었다.

    만약 이대로 배신이 성공해서 13차폐구의 둥지를 누자베스가 손에 넣게 된다고 하더라도, 에르멜에게 버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토사구팽이 이 세상의 논리라면 말이다.

    ‘렛맨 부대와 고블린 부대도 상당한 거리가 있군.’

    남은 병력도 지금 누자베스와 꽤 떨어진 상황.

    이대로 아일크라나는 자신의 병력을 불러들여 배신자를 처단할 수 있었다.

    마력만 온전히 다룰 수 있었다면 병력을 불러들일 필요도 없이 혼자 처리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아일크라나는 누자베스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병력으로 포위해 죽일 작정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 더러운 인간 계집이 네놈을 어떻게 구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어린애를 속이기 위해 대충 내뱉은 사탕발림이다.”

    “한 마디로 13차폐구를 점령하기만 하면 용무가 없으니 버려진다?”

    “그래! 아주 멍청하진 않군. 조금은 말귀를 알아듣는 모양이야. 다시 손을 잡지. 만약 이번 공세만 막아낸다면 정식적으로 솔리엔 령의 영지 일부를 양도하겠다.”

    아일크라나는 악수를 청하듯 오른손을 내밀었다.

    “다시 손을 잡는 것이다, 누자베스 변경백.”

    누자베스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아일크라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내밀어진 아일크라나의 오른손을 덥석 붙잡았다.

    아일크라나는 회심의 웃음을 삼켰다.

    한 번 배신했던 놈을 다시 받아줄 만큼 아일크라나는 호락호락한 전쟁 군주가 아니었다. 이대로 시간만 조금 끈 후에 사로잡을 작정이었다.

    ‘곱게 죽을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배신의 대가는 그리 가볍지 않다는 걸 알려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테니까.

    “현명한 선택…… 컥!”

    푹!

    예리한 날붙이가 아일크라나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어느새 누자베스가 왼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를 쑤셔 넣은 것이다.

    “컥, 끅…… 누, 누자베스 네놈……!”

    푹, 푹푹푹!

    나이프를 뽑아낸 누자베스가 아일크라나의 상체를 무차별적으로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끄, 가아아악!! 그, 그륵! 갸으악!”

    발버둥을 치며, 핏물을 흩뿌리듯 나뒹굴던 아일크라나의 팔과 다리가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밤의…… 어머니께서, 케헉!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일크라나가 마지막 날숨을 토해냈다. 그제야 누자베스는 나이프를 들고 있던 손을 멈추며 일어났다.

    로아는 미리 준비해뒀던 천으로 누자베스의 얼굴에 묻은 핏물을 닦아냈다.

    “모조리 죽여.”

    카앙!

    나이프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후 누자베스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말했다.

    “테네브레, 그 년도 엿이나 처먹으라고 하고.”

    동포에 대한 기만과 배신행위가 신의 섭리에 의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라면 말이다.

    누자베스는 가래침을 내뱉듯 이렇게 토해낼 것이다.

    그딴 용서 따윈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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