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짓는 플레이어 132화
반환점(3)
이계의 용사.
류시혁과 백주월은 소환과 동시에 태양의 여신 ‘스텔라’에게 초월적인 능력을 하나씩 부여받았다.
존재하는 모든 무기와 병기에 대한 숙련도와 운용력의 수준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능력이 용사 류시혁의 고유 능력이었고.
무기 혹은 병기로 생산되어, 무기와 병기로써 사용되다 원형을 잃은 무기를 소환해낼 수 있는 것이 백주월의 고유 능력이었다.
그 능력만으로도 이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만큼 위협적이다. 하지만 류시혁과 백주월은 고유한 능력을 얻기 전부터 충분히 위험한 사내들이었다.
류시혁은 표면적으로 국제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중동 지역에서 파병 중인 한국군 출신이다.
하지만 실상은 ‘스켈톤즈’라 불리며, 정식 편제 번호가 없는 네임리스 부대.
현대의 국제 사회에서 도저히 형용될 수 없는 검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군부대의 인간이었다.
이미 용사로 소환되기 전부터 수십, 수백 번의 실전 경험과 살인 경험을 축적해 온 인간이었다.
수니파의 극단주의 세력들 사이에서도 류시혁은 ‘아자젤’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백주월은 류시혁에 비해 양호한 편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거의 용호상박이다.
류시혁이 그나마 군의 소속으로 최소한의 규율과 행동 원리를 지니고 있던 인간이라면.
백주월은 소련 붕괴 후 빠르게 세력을 확장한 오일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칼드레냐프’가 키워낸 킬링 머신이다.
백주월은 소련 시절의 특작부대의 커리큘럼에 따라 육성되었고, 함께 훈련을 받던 아이들에 비해 우수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16살이 되던 해부터 말레이시아 남부 지역을 맡았고, 그 일대에서 경쟁하던 중국의 갱단을 모조리 박멸하여 자신의 재능을 입증해냈다.
특무부대 소속의 장교 출신.
그리고 레드 마피아의 간부 출신.
어느 쪽이든 살인과 살육에 큰 저항은 없었다. 게다가 본래의 능력만으로도 일대에서 악명을 떨칠 만큼 유능한 인간 병기들 아니었나?
그런 놈들에게 스텔라가 사기적인 고유 능력까지 부여한 것이다.
그야말로 호랑이에 날개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또라이 새끼가! 이런 가까운 거리에서 헬파이어를 갈겨?’
누자베스는 바닥에서 일어나 지체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백주월이 날린 헬파이어를 한 발 피했다고 안심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차라리 방금 전의 헬파이어가 공격 마법의 일종이었다면 상황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마법사라면 다음 공격 마법을 시전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말이다. 게다가 누자베스는 1회에 한하여 마법을 완전 상쇄해 낼 수 있는 스킬까지 지니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백주월은 마법사도 아니고, 마법에 관한 지식도 거의 전무했다.
방금 전에 누자베스를 향해 날린 헬파이어는 마법 따위가 아니라, 대전차 미사일이었다!
대인전에서 대전차 미사일?
그렇게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백주월이 헬파이어를 선택한 건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다. 그리고 이쪽 세계에서 얻은 전투 경험을 토대로 판단한 결과이기도 했다.
‘마력으로 보호막을 만드는 상위 마족도 꽤나 사냥해 봤다 이거지.’
마력을 다룰 수 있다면 마법사가 아니라도, 마나 배리어 정도는 전개할 수 있었다.
물론 하위 마족들이야 머리 위에서 네이팜탄만 터뜨려도 일망타진이 가능하겠지만. 상위급에 속하는 마족은 그 정도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백주월은 그런 상위 마족에게 헬파이어가 유효하다는 사실을 학습한 것이다.
헬파이어는 이중 탄두 구조의 대전차 미사일이다. 마법사들의 마나 배리어 따윈 메탈 제트로 찢어발기기 충분했다.
1,300㎜의 장갑도 뚫고 들어가 폭발시키는 병기였으니까!
“피했어?”
그리고 백주월도 누자베스의 판단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발사된 미사일을 동체 시력으로 포착하고 반응한다는 것도 상당히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건 미사일을 피한다는 선택지를 취한 누자베스의 판단력이었다.
고위급의 마물이라면 저렇게 팔짝팔짝 뛰고, 지면을 구르며 촐랑대지 않는다. 위엄 있게 그 자리에 서서 마나 배리어를 펼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헬파이어 미사일의 메탈 제트에 배리어가 뚫려 즉사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하지만 누자베스는 날아든 미사일을 피하고, 직후 방패를 소환해 후면에서 덮쳐온 폭발을 막아냈다.
방어 수단을 지니고 있는 마물이다.
어떤 능력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방패를 소환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미사일을 방패로 막으려 하지 않았다.
‘설마 이게 뭔지 아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이쪽 세계에서도 포탄 정도의 병기는 운용하고 있었지만, 노이만 효과의 개념은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헬파이어 미사일의 외견만 보고, 저런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쪽 세계의 마물이라면 말이다.
“발이 재빠른 놈이군. 다른 마물들이 몰려오기 전에 처리해 버리지.”
스릉.
류시혁이 헐레벌떡 뛰어 다니고 있는 누자베스를 시선으로 쫓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
백주월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찝찝함을 떨쳐내듯 대답했다.
그 대답과 거의 동시에 류시혁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밤의 어둠을 밝히듯 섬광이 번쩍였고, 모습을 드러내자 이미 누자베스의 눈앞이었다.
쉬익!
류시혁의 검이 파공음을 울리며 횡단을 베어냈다. 검의 궤적이 그대로 누자베스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캉!
간발의 차로 누자베스는 류시혁의 검을 흘려냈다! 하지만 바로 검을 고쳐 쥔 류시혁과 달리, 누자베스의 몸이 충격으로 크게 휘청였다.
애초에 용사인 류시혁 만큼 튼튼한 몸뚱이가 아니다. 검술로 맞붙게 된다면,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하지 않더라도 누자베스는 5초 이상 공방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그 전에 팔과 어깨가 모조리 으스러질 테니까 말이다.
빠악!
류시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주저 없이 누자베스의 복부에 왼쪽 주먹을 박아 넣었고, 누자베스의 몸이 일순간 허공에 떠올랐다.
“컥!”
쇳소리가 목구멍을 헤집고 토해졌다.
창자가 모조리 으깨지는 듯한 통증이 전신을 내달렸다. 류시혁은 폭 고꾸라진 누자베스의 목덜미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그다지 시간에 여유가 없어서 깔끔하게는 안 됐군. 바로 고통 없이 끝내주마.”
류시혁의 주먹을 그대로 맞았으니 내출혈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무리 마물이라도 장기가 파열된다면 극심한 통증에 몸부림치게 된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는 건 류시혁 역시 그다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설령 그 상대가 마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류시혁의 손아귀에 붙잡힌 누자베스는 선혈을 토해내며 흘리며 필사적으로 바둥거렸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할 정도의 통증일 것이다. 하지만 누자베스는 류시혁의 손등을 손톱으로 긁으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악을 내지르고 있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누자베스는 여전히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류시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독한 원리주의자들조차도 죽음의 앞에서 이런 눈빛을 하진 않았지.’
적어도 지금까지 류시혁이 죽여 온 인간들은 그랬다. 언제나 천국을 찬양하고, 천국에 당도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이들 조차 말이다.
막상 천국으로 보내준다면, 겁먹은 어린 짐승 같은 눈빛으로 목숨을 구걸했다. 지금 손아귀에 붙잡힌 누자베스만큼 독한 놈은 흔치 않았다.
“이봐, 형씨. 빨리 처리해. 그 새끼 왠지 찝찝한데.”
“확실히 불길하군. 이렇게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마물도 오랜만이야.”
류시혁과 백주월의 의견이 일치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누자베스에게서 뭔가가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피차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류시혁이 누자베스의 목에 검을 꽂아넣기 위해 치켜든 순간.
[목표 : 바하무트의 퇴각(1/1)을 완료했습니다.]
[목표 : 메를로의 생존(1/1)을 완료했습니다.]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메모리얼 전투 ‘성도 방위전’을 완료했습니다.]
[보상 : 헬베르카 정예 척탄병×100을 획득했습니다.]
[캐릭터 도감 ‘류시혁’이 추가되었습니다.]
[캐릭터 도감 ‘백주월’이 갱신되었습니다.]
[메모리얼 전투 ‘세컨드 오메가(백주월)’가 추가되었습니다.]
[메모리얼 전투 ‘세컨드 오메가(류시혁)’가 추가되었습니다.]
간발의 차로 바하무트가 밤의 성도에서 퇴각했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루칸다와 스칼렛이 바하무트를 몰아내는데 성공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번째 메모리얼 전투가 끝맺어졌다.
그렇게 누자베스가 이 세계선에서 사라지기 직전. 뒤늦게 도착한 바하무트는 그 흐릿한 모습을 포착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형태를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뇌리에 각인시켰다.
* * *
숨이 토해졌다.
폐에 가득 차 있던 공기가 빠져나오며, 눈이 떠졌다.
“쿨럭, 쿨럭! 염병! 뒤지는 줄 알았네!! 하, 하아…… 큽, 쿨럭! 허억, 하…… 하아…….”
바닥을 나뒹굴며 숨을 가다듬었다.
고기반죽처럼 으깨진 창자도 이미 다 회복되었는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메모리얼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모두 회복되는 게 이렇게 고마운 일이었을 줄이야!
배빵 한 방에 치명상이었단 말이다!
용사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스텔라에게 받은 사기 능력을 안 써도 충분히 살육 머신이었다…….
“지자스 크리토리스…… 할렐루야다 진짜. 내가 다시는 메모리얼 전투 안 한다. 내가 한 번만 더 메모리얼 전투 한다고 깝치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바닥에 털썩 앉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도 용사 두 놈과 조우했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각하?”
고개를 들자, 낯익은 얼굴의 고블린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칸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그 꽃미남 몸뚱이는 또 어디다 버리고 왔어?”
“본체 말이군요. 아무래도 본래의 세계선으로 복귀할 때도 가지고 올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뭐, 메모리얼 전투도 만능이 아니라 여러모로 제한이 있다는 말이군.”
메모리얼 전투에서 루칸다는 분명 윤회를 완성시켜 ‘루아 카날다’라는 형태로 존재했다.
하지만 메모리얼 전투가 끝나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오자 다시 이 고블린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스칼렛은?”
“저쪽에서 혼자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루칸다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스칼렛이 벽에 기댄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뭔가를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는 모양이다.
잠깐 말을 걸어보려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스칼렛은 바로 눈을 뜨며 말했다.
“주군, 내가 자고 있는 동안 가슴을 훔쳐봤군.”
“아니…… 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훔쳐본 게 아니라 확인만 한 건데…… 아니 아니, 그보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그렇게 묻자, 스칼렛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기억의 혼선…… 아니지. 이건 혼선이 아니라 병합됐다고 봐야겠네. 그 메모리얼 전투라는 간섭은 이 늙은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치는군.”
스칼렛은 거기까지 말한 후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나하고 시선을 마주치기 싫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잘못된 정보를 꽤 멋대로 떠들었던 것 같으니 정보를 정정해 주겠네. 오늘 밤에 시간을 비워두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스칼렛이 자리를 떴고, 로아까지 무사히 돌아온 걸 확인한 후.
이제 남은 건 이번 메모리얼 전투에서 목숨 걸고 얻어 온 보상들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헬베르카 정예 척탄병! 그리고…….”
내가 달성해 낸 부가 목표가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