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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130화 (130/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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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자베스 : 얘들아 우리 이렇게 다시 모이니까 너무 좋다, 그치? 각하는 너희가 이런 개지랄을 떨 때마다 창자가 아파. 이미 구멍이 숭숭 뚤려서 곱창이 새어나오고 있을 거야.]

    [루칸다 : 나름 즐거운 전희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스칼렛 : 일단은 협력은 하겠지만, 아직 나는 주군을 유대 관계의 상대로 인정한 건 아닐세…….]

    [누자베스 : 전희라…… 이게 전희였다는 말이지…….]

    눈물이 또르르 흐를 것만 같다.

    확실히 루칸다는 윤왕님이라 그런지 전희의 끌라스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나같이 범상한 전쟁 군주 나부랭이는 전희만으로 홍콩으로 승천할 뻔했단 말이다.

    업계의 전문용어로 더블피스 프리홍콩이라는 것이다.

    [누자베스 : 어쨌거나 다음부터는 각하의 레벨을 고려한 전희로 부탁한다, 진짜로…….]

    외신의 간섭을 초래하는 주문을 읊은 여파가 아직도 남아 몸의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며 쑤셨다.

    고작 7초 정도다.

    외신 놈들에게 내 존재를 노출하고, 놈들에게 인지당한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뻔했단 말이다.

    ‘중세 판타지라 다행이었어.’

    만약 내가 쓰던 소설의 장르가 무협이었다면 나는 이미 백복치처럼 산치 치솟아서 그 자리에서 즉사였겠지.

    백복치 얘기는 이쯤하고.

    다시 브리핑의 본론으로 돌아오자.

    ‘루칸다가 성도에 도착하자마자 윤회를 완성시켜 준 덕분에 상황은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돌아가겠네.’

    역시 우리 둥지의 하드캐리 머신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다. 뭐든지 시키지 않아도 척척 해주는 만능 챔피언 아닌가?

    루칸다는 바하무트와 녀석의 별동대를 확실하게 저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겸사겸사 서프라이즈 테스트도 치렀고, 기회가 된다면 스칼렛까지 찢어 죽일 수 있는 기회였겠지.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스칼렛이 전성기 때의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과, 루칸다가 불완전한 윤회였다는 것이다.

    만약 둘이 완벽히 능력을 복구해서 풀파워로 맞다이를 떴다면, 나 같은 가엾고 연약한 전쟁 군주는 주변에서 구경하다가 가루가 되지 않았겠나?

    [누자베스 : 솔직히 이번엔 브리핑이고 작전이고 전술이고 다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루칸다의 그림자 군세와 스칼렛이 이끄는 칼리아나 정원의 흡혈귀 군대만 어택땅 찍어도 될 것 같다.

    제 아무리 바하무트가 날고 기는 놈이라도 반 르낙시아의 존재 둘을 상대로 빤스런 안 하고 버틸 수 있을까?

    [루칸다 : 상대가 바하무트뿐이라면 말이죠.]

    [누자베스 : 왜 그러냐, 진짜…… 불길하게.]

    [스칼렛 : 그런가, 역시 다른 쪽 차원의 균열이 느껴졌는데.]

    [루칸다 : 각하, 이계의 용사가 이번에도 개입할 수 있습니다.]

    [누자베스 : 자지스 크라이스트…….]

    류시혁과 백주월.

    어느 쪽인지 100% 확실하게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따지자면 백주월의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 근거는 전부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있었지만, 가장 유력한 근거는 내가 쓴 원고 내에선 류시혁이 밤의 성도가 목적지인 메모리얼 전투를 수행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메모리얼 전투는 나름대로의 흐름이라는 게 있다. 갑자기 흐름에서 확 벗어나 엉뚱한 메모리얼 전투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류시혁은 밤의 성도에 관련된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거의 지니지 않고 있었다.

    물론 먼 미래의 류시혁이거나, 내가 쓴 원고 이후에 갑작스럽게 흐름이 드리프트해서 밤의 성도 쪽으로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면 류시혁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촉이 백주월인데.’

    내 본능에 탑재된 용사 탐지 레이더가 반응하고 있었다.

    이 등허리가 오싹오싹한 감각은 류시혁보다 백주월 쪽에 가까웠다.

    류시혁 그 위선자 놈은 최소한 대화의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백주월은?

    그 새낀 그냥 사이코패스 학살마란 말이다. 아마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응애!!’가 아니라 ‘나를 죽여!!’ 같은 소리를 내뱉었을 게 틀림없다.

    자신이 위험한 놈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자각했을 테니까!

    장하다, 백히틀러 인류를 네 손으로 멸망시켜 버리렴…… 같은 말이 엄마한테 들은 최초이자 최후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교적 진심이다.

    내가 거기까진 캐릭터 설정을 짜놓진 않았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누자베스 : 할렐루야다 진짜…… 백주월 그 새끼면 윤왕이고 상속 신분이고 없다니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류시혁이 격하게 보고 싶었다.

    [루칸다 : 병력을 나누시겠습니까?]

    [누자베스 : 그럴 여력이 있을까. 내 생각엔 바하무트를 후딱 조지고 빤스런하는 게 최선이야.]

    루칸다와 스칼렛은 병력의 지휘를 위해 불가결한 챔피언들이다. 둘 중 하나라도 빼서 시간을 지체하는 건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로아도 지금은 바하무트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중이다.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을 텐데 그런 로아를 또 백주월 쪽으로 돌리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겠나?

    ‘이번에도 나잖아. 나밖에 없잖아. 이 빌어먹을 하꼬 둥지 운영은 연재 편수가 130편이 넘어도 뭐 달라지는 게 없네.’

    아아, 보인다.

    코코아페이퍼 독자들의 댓글이 눈에 선하게 보이고 있었다.

    -쥔공이 그만 굴려라 아주 그냥 굴렁쇠여 굴렁쇠!

    -자까 새끼 굴렁쇠 박이임!? 무슨 굴렁쇠필리아임? 심각하네ㅋㅋ 이 정도면 병원 가보세요ㅋㅋㅋㅋ

    -으아아! 누자베스장! 집안에 산다!!

    -(대충 하차한다는 이모티콘)

    -발가락 보여줘

    -찐

    -주인공 너무 구르는 게 보기 불편한데 이거 전체 이용가 맞나요? 구르는 거 보면 15세 받아야 되는 거 같은데…….

    아직 원고를 박태준 팀장에게 넘기지도 않았고, 런칭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댓글들이 눈에 선히 보인단 말이다!

    솔직히 이 만큼 전개됐으면 슬슬 사이다만 먹이면서 완결각 잡는 게 일반적인 웹소설의 형태 아닌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또 맞다이를 강요받는단 말인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사이코패스 학살마하고 면상 맞대고 나뒹굴어야 된단 말인가!

    예?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이러려고 하이브 마인드가 됐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으며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었지만!

    [누자베스 : 용사 쪽은 내가 바지끄댕이 붙잡고 늘어지고 있을 테니까…… 후딱 정리하고 각하 구하러 와라…….]

    만약 진짜 백주월이면 바지 붙잡아 보려다가 면상에 미사일 탄두 박히는 엔딩이었으니까.

    * * *

    “쿠엔틴 타란티노는 본인도 자기가 B급 감독이라고 인정했잖아? 솔직히 스탠리 큐브릭이나 구로사와 아키라하고 동급으로 취급하면 안 되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7인의 사무라이도 그냥 서부극 클리셰 가져와서 뒤범벅한 영화 아닌가?”

    백주월이 미간을 찌푸리며 핀잔하듯 내뱉었다.

    “무식한 건 죄가 아니지만, 무식한 소리를 주둥이로 내뱉고 다니는 건 죄야. 서부극 클리셰를 가져온 게 아니라 그 반대라니까. 서부극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증거란 말이고.”

    “영화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군.”

    “에휴, 됐다. 내가 형씨랑 무슨 얘기를 하겠어. 여기 끌려오기 전에는 군인이었다며? 주특기가 뭐였어?”

    백주월이 그렇게 묻자.

    물에 젖은 성냥을 소매 끝에 문질러 닦고 있던 류시혁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인.”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하고 별 다를 것도 없잖아. 좀 더 구체적인 뭔가가 있었을 거 아냐?”

    “글세…… 폭살, 총살, 참살,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살인이었을 뿐이다. 특별할 건 무엇 하나 없었지.”

    류시혁은 어깨를 작게 으슥인 후 성냥의 물기를 닦아내려고 했지만, 백주월이 성냥을 휙 빼앗아 내던졌다.

    류시혁이 백주월을 지긋이 응시하자.

    파앗!

    백주월의 손에서 지포 라이터가 소환되었다. 류시혁은 지포 라이터를 받아들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무기로 생산되어 무기로 사용된 물건만 소환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그렇긴 한데. 이 라이터도 어째선지 소환이 되네. 원래 무기였던 거 아냐?”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일회용 라이터는 소환이 불가능한 걸 보니, 백주월의 가정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류시혁은 지포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고, 백주월이 종이로 된 담배갑을 꺼내 들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꽤나 괴리 간격이 큰 차원으로 도약했는데. 이번 전투 목표는 뭐야?”

    “이번 메모리얼 전투는 꽤나 이질적이군.”

    류시혁은 인터페이스 창을 열어 메모리얼 전투의 정보를 확인했다.

    일단 이번 메모리얼 전투에서 인원 제한은 2명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메르세데스를 데리고 와서 빠르게 정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메모리얼 전투의 난이도가 점점 오르며 ‘확정 엔트리’라는 시스템이 새롭게 등장했다.

    류시혁이 원하는 멤버만 골라 데리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정해진 멤버가 포함되어야만 진행할 수 있는 메모리얼 전투 퀘스트였다.

    이번 메모리얼 전투의 인원 제한은 류시혁 본인을 포함하여 2명. 게다가 확정 엔트리로 ‘백주월’이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멤버들 없이 류시혁과 백주월 단 둘이 다녀와야 하는 메모리얼 전투였다.

    물론 류시혁과 백주월은 같은 용사라지만 항상 함께 있는 일은 없었다. 어쨌거나 둘은 왕정파와 공화정파가 각각 소환해낸 이계의 용사.

    공통의 이익이 있을 경우엔 일시적으로 협력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쟁하는 관계였다.

    같은 먹잇감을 노릴 때는 무력으로 충돌할 만큼 험악한 분위기인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메모리얼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다시 일시적 협력이 시작된 것이다. 퀘스트의 수행 주체는 류시혁이지만, 메모리얼 전투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백주월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류시혁의 참가 요청에 순순히 응한 것이고 말이다.

    류시혁은 눈앞에 증강현실처럼 떠오른 인터페이스창을 손끝으로 휙 밀어 백주월 쪽으로 보냈다. 같은 용사인 백주월과는 이 시스템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흐음…….”

    백주월은 이번 메모리얼 전투의 개요를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누자베스 처치?”

    “이 지역의 지배자쯤 되는 놈이겠군.”

    “어차피 마물놈 하나 족치는 퀘스트인 건 알고 있었는데.”

    류시혁도 백주월도 누자베스란 마물에 대해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름이 웃기지 않아? 누자베스라니.”

    “마족의 이름에 관해선 아는 게 별로 없다만. 흔치 않은 해괴한 이름인가?”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거야? 누자베스 몰라?”

    아무래도 누자베스가 힙합DJ라는 사실을 아는 건 백주월뿐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마물의 이름이 ‘누자베스’라는 건 확실히 기괴했다.

    마치 마물이 백주월과 류시혁이 살던 본래의 세계에 관한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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