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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116화 (116/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116화

사각문해(1)

“포 힐케인 섬은 각하의 정식적인 종속령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북부의 트올리카와 동부의 넬쟈는 이후 괴뢰 둥지의 관리자로써 각하의 명령을 수행할 것입니다.”

“아리카 섬에 이어서 두 번째 영토를 손에 넣었네.”

정작 포 힐케인 섬의 노른자인 흡혈귀의 파편은 감찰관 우렌이 챙기게 되었지만 말이다.

담뱃잎을 버번에 적시며 로아의 보고를 들었다. 우렌의 일처리는 상당히 빠릿빠릿한 편이었다. 아리카 섬에 도착한 직후 바로 정식 지령서가 발급되었을 정도니까!

‘카쿠쟈 우렌. 얕잡아 볼 놈은 아니었지.’

볼품 없는 외견과 비굴한 태도와 달리.

알고보니 우렌은 하이브 마인드들 사이에서 상당한 유명 인사였다.

녀석의 손에 의해 박살이 난 둥지만 수백여 곳에 달할 정도다. 채찍이란 별명이 딱 들어맞을 만큼 흉악한 놈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가시적인 성과를 쫓는 관료에 불과하다면 나는 아직 녀석의 사냥감이 아니겠고.’

자신의 업무를 유흥의 일환으로써 소비하는 장교라면?

그때부터가 문제가 시작된다.

우렌의 성향에 따라 내가 녀석의 사정권에 들어갈지 말지가 결정될 테니까.

버번에 젖은 담배잎을 펼쳐서 건조대에 널고 있자, 보고를 끝마친 로아가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루칸다는 부러진 팔 다 나았다냐?”

“예, 각하. 오늘 아침부터 다시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그래, 둘 다 고생 많았어. 로아 너도 오늘 하루 정도는 푹 쉬고. 저번에 에르바키나 연맹에서 보낸 걔 이름이 뭐였지? 길리도 대신 이쪽 담당이 된 애.”

“데이나입니다, 각하.”

“젠장 이름 외우기도 이젠 귀찮네. 등장하는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독자들도 다 까먹었을 거야. 나는 걔 그냥 마이에브라고 부를래. 피부색이 포도색이잖아.”

분명 핥으면 신 포도맛이 날 것이다.

오오, 사랑하는 티란데…… 그대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시오……!! 마이에브! 만 년 동안 응어리진 자-멘을 맛봐라!

뭐, 그런 전개가 나오는 게 세상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아, 참고로 자-멘이란 게르나의 고어로 ‘증오’라는 의미다. 다른 의미가 있을 리 없지 않나?

“어쨌든 걔 빠른 시일 내에 나랑 좀 보자고 해라. 슬슬 페쉬나이트 처분해야지.”

카테라도에서 채취한 페쉬나이트를 아리카 섬으로 옮겨와 주괴로 제련해 놓은 게 이미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리카 섬의 인간들을 노역에 동원하고 있는 덕분에 상당한 노동력을 손쉽게 충족시킬 수 있었다.

아리카 섬의 서부를 거대한 제철소로 만들었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철괴는 내 둥지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다.

초석과 철괴는 연맹과 꾸준하게 거래하고 있었지만, 페쉬나이트의 보유 현황은 아직 공개한 적이 없었다.

‘류시혁이 소환된 직후 대륙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지.’

덕분에 페쉬나이트의 수요량이 크게 늘었고, 가격 역시 폭등하게 된다.

그 전쟁은 류시혁이 론트라섬에서 페쉬나이트 광맥을 차지하고 있는 하이브 마인드들을 처리하라는 지령을 받는 촉발 사건이 된다.

물론 대륙을 비롯해 바체트령 각지에 페쉬나이트 광맥이 분포하여 있었기에 공급이 점진적으로 수요량을 따라가기 시작하지만.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에르바키나 연맹에게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양의 페쉬나이트 주괴가 달콤하게 보일 것이다.

“바로 연락을 넣어두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리고 우렌 그 새끼가 서큐버스는 안 보냈어?”

“지령서 외엔 도착한 것이 없습니다만.”

“하…… 개자식이.”

내 둥지에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거대한 슴가일 것이다.

애초에 둥지의 성별불균형은 큰 문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남자만 채용하는 둥지라고 소문이라도 나 봐라! 어떻게 되겠나? 어?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여성 챔피언을 채용할 필요가 있었다. 가슴이 수박만한 챔피언이면 특채다, 특채!

“그래, 어쨌든 로아 이번에 네가 고생이 많았다. 푹 쉬고, 있다가 루칸다한테 한 번 들르라고 전해줘.”

담배잎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슬슬 말아 놓지 않으면 부숴지기 쉬웠다. 반쯤 건조되어 적당한 점성을 띈 담배잎을 말며 그렇게 말했지만, 어째선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로아가 있는 곳을 흘깃 바라보자,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염병…… 이번엔 또 뭐가 문제야?’

물론 로아는 내 둥지에서 가장 말을 잘 듣는 챔피언이다. 나를 완전히 어린애 취급하는 스칼렛이나, 가끔씩 독자적인 판단을 우선하는 루칸다에 비하면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집착과 질투가 심한 챔피언 역시 로아였다.

저 얼굴을 보면 100% 알 수 있었다.

또 뭔가 수틀려서 삐진 게 틀림없다.

담배잎을 말던 손을 멈추고, 로아를 쳐다보자 고개를 홱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이건…… 중노 레벨이군.’

스칼렛을 오랫동안 상대해 온 경험으로 보자면 저건 ‘중노’ 레벨의 상태다.

한 달에 1~2번 정도 있는 일로 언성을 높이거나, 상관인 내게 약간의 폭력을 휘두를 우려가 있는 상태란 말이다.

보통은 내가 스칼렛의 의류를 몰래 가져와 개인적인 용무로 사용할 경우…… 아차, 이건 실언이다 실언!

내가 둥지의 챔피언이 입는 의류로 무슨 짓을 하겠나? 이상한 상상 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래, 고백하겠다.

사실 내가 여장하는 성벽이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다른 방향의 오해는 삼가해 주길 바란다.

젠장, 여자 수영복 입고 남자랑 키스하는 정신병자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여장이 뭐 대수란 말인가?

어쨌거나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로아가 중노 상태라는 것이었다.

“로아? 혹시 화났니?”

“아닙니다, 각하. 제가 어찌 감히 각하께 그런 불온한 감정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로아는 혹시 언행불일치라는 사자성어를 알고 있을까?”

“다섯 글자인데 어떻게 사자입니까? 물론 각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런 것이겠지만요.”

“앰병, 화난 거 맞네.”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지만 여섯 글자인 사자성어도 있단 말이다.

앞수레가 엎어지면 뒷수레는 그걸 보고 교훈으로 삼는다는 사자성어 ‘전복주입거근’이라고 있었다.

“저번에 젖소 몇 마리 잡아 왔잖아? 각하랑 시원한 우유나 한 잔 하러 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겠냐. 짜식아 남자끼리는 원래 어? 우유 한 잔 하고 섭섭한 건 다 털어내는 거야.”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헬베르카 출신의 마물은 유당에 취하는 체질을 지니고 있었다.

참고로 로아는 우유를 샷으로 다섯 잔 연거푸 마셔도 멀쩡한 놈이다. 겁나 화끈한 사나이란 말이다.

겉모습은 미소녀 같지만…….

특히 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로아의 차밍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혹시 내가 밀리아 못 죽이게 해서 화났어?”

“아닙니다. 절대! 저얼대애! 그런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로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화가 났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저 새침한 눈빛은 위험하다.

맛만 좋으면 남자라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몹쓸 상상을 하게 된단 말이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저와 그 흡혈귀를 대하실 때의 거리감이 다른 게…… 저기, 그건 조금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로아는 우물쭈물하며 뭔가 더 말하고 싶은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진정해라, 진정해라 누자베스 2세. 저건 남자다. 남자다. 남동생이란 말이다.’

어찌되었든!

둥지의 챔피언이 제기한 컴플레인은 확실히 수용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관리자로써의 역할이다.

담배를 말던 손을 대충 수건에 닦은 후 침대의 이불을 주섬주섬 들어 안으로 누웠다.

“어…… 언제든 와라, 로아! 각하는 언제나 준비만전이다!”

“저,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챔피언을 차등 대우하는 건 내 둥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로아가 주춤거리며 다가왔고, 한쪽 무릎을 시트 위에 올리며 상체를 숙이자. 머스크향이 섞인 체취가 가깝게 느껴졌다.

‘여기선 대충 어리광 좀 받아주고 어르고 달래 놔야지. 이런 불만이 쌓이면 나중에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니까.’

대충 그런 심산으로 팔을 뻗으려던 찰나.

덜컹!

문이 거칠게 열리며 루칸다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한창 즐기시던 중에 죄송합니다만, 긴급한 보고입니다.”

“아, 안 즐겼어! 오, 오…… 오해하지 마라 루칸다! 이건 그저 형제애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아니, 그보다 긴급한 보고는 뭔데?”

“13차폐구의 긴급 원군 요청입니다.”

“거기에도 포 힐케인 섬처럼 허접한 놈들이 있었나?”

내가 묻자, 루칸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죠. 원군을 요청한 건 13차폐구의 트라이어드입니다.”

“어휴…… 튼실한 중견 기업이 우리 같은 하꼬 둥지한테 무슨 지원을 받고 싶어서 그런다냐?”

로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로아는 사뭇 아쉬운 듯 어깨를 늘어뜨렸지만, 긴급한 사안이니 어쩔 수 없었다.

“왜? 용사라도 쳐들어 왔대?”

“아무래도 13차폐구의 페쉬나이트 광맥이 화근이 된 것 같습니다. 인간 놈들의 군대가 나섰습니다.”

“용사는?”

“보고된 사항이 없습니다.”

“흠…… 그럼 인간 쪽의 군대는?”

“사실 상 최악의 상대입니다.”

루칸다는 한때 피르에나의 근위유격대에 소속되어 있었던 만큼 글로레나 왕조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었다.

“왕립 제6특무사단의 할칸 기갑연대입니다. 성처녀 에르멜이 이번 총지휘를 맡았습니다.”

“오우야…… 내 예상보다 페쉬나이트 값이 훨씬 많이 뛸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면 할칸 기갑연대와 성처녀 에르멜이 동시에 나설 리가 없었다.

용사 류시혁과 백주월을 제외하자면.

글로레나 왕조가 뽑을 수 있는 카드 중 최강의 패에 속하는 군대였으니까!

이건 확실히 13차폐구의 트라이어드 놈들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였다.

어떤 의미에선 용사가 직접 파견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상황일 테니까.

‘13차폐구는 류시혁이 쳐부수는 편이 좋았는데.’

보통 용사라는 놈들은 가장 값비싼 것만 몇 개 챙겨가고 끝이다. 용사가 떠나면 바로 찾아가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을 작정이었다만.

인간의 군대가 움직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놈들은 진짜 바닥에 떨어진 국물까지 싹싹 핥아 먹고 떠날 놈들이니까.

군대가 움직이기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니 최대한 본전을 뽑으려는 건 이해하지만.

“동쪽으로는 성처녀 에르멜의 기갑연대가 진격해 오고 있고, 그 반대편으로는.”

루칸다는 론트라 섬의 지도 위에 깃발을 하나씩 세우며 빠르게 개요를 설명했다.

“감찰관 우렌의 13021편제 부대. 카쿠쟈가 서쪽으로부터 접근 중입니다.”

“그 돼지 새끼가 우연히 근처에 있다가 허겁지겁 원군으로 나선 건가?”

“표면적인 명목과 진짜 목적. 어느 쪽을 먼저 듣고 싶으십니까?”

“표면적인 명목부터 듣지.”

“13차폐구의 전쟁 군주들이 지역 방어에 실패한다면, 임시적으로 인간 군대로부터 지역을 방위하기 위해 채류한다는 것 같습니다.”

“트라이어드의 둥지가 괴멸한다면 13차폐구를 차지할 작정이군.”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13차폐구는 내가 뚫고 나가야 할 유일한 길목. 만약 트라이어드가 아닌, 우렌이 자리를 깔고 앉게 된다면?

본도 진출의 난이도는 어마어마하게 상승될 것이다.

“우렌 그 돼지 놈이 뒷짐 지고 구경만 해줄까?”

“녀석은 이미 각하를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13차폐구의 전투에 뜬금없이 발을 들이려는 것 역시.”

“13차폐구를 차지하고 시트란테 서도를 압박할 셈이로군.”

애초에 성질머리 더러운 문제아를 본도에 풀어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13차폐구의 트라이어드를 공격하진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뒤에서 더럽고 치사한 공작을 펼칠 것이다.

상황에 따라선 실수를 가장하여 둥지의 병력을 공격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13차폐구의 북쪽.”

시선이 13차폐구의 위로 향했다.

바로 그 위치에는 시트란테 서도와 아리카 섬이 보였다.

“엘베제 누자베스의 군단. 아릿카사는 결정을 보류중입니다.”

루칸다는 내쪽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방금 전에 말아 놓았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번엔 사각문해로군.”

13차폐구의 트라이어드.

성처녀 에르멜의 할칸 기갑연대.

감찰관 우렌의 13021편제 부대 카쿠쟈.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서.

각자의 이유로 포기할 수 없는 땅을 향해 진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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