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107화 (107/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07화

    포 힐케인(3)

    고작 사흘이 걸렸다.

    누자베스의 군대는 순식간에 포 힐케인 섬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애초에 누자베스의 군단은 트올리카나 비올리네의 군대와 규격 자체가 다르다.

    머스킷으로 무장한 하이오크 병단.

    그것도 야간 한정의 불가시 상태인 드라코너에 탑승하여 강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공수 부대까지 갖췄다.

    핵심 시설을 타격하고 무력화시키는 것은 누자베스에게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일이었다.

    트올리카는 전선을 뒤로 물리다 못해 둥지 안으로 완전히 틀어박히게 되었고. 허겁지겁 수성 태세를 갖춰야만 했다.

    그리고 남부의 비올리네는?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루 만에 둥지의 챔피언 중 셋이 당했다.

    비르겐슈타인 부대는 순식간에 포 힐케인 섬에서 ‘검은 유령들’이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거기에 비비큐 클럽의 자주박격포 다섯 대의 후방 지원 포격. 전열에는 전차형의 베놈 다섯 대가 보병 전력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압도적이었다.

    압도적이다 못해 잔혹해 보이기까지 했다.

    “넬쟈. 언제까지 그렇게 꽁해 있을 거야? 좀만 더 있으면 이 섬은 온전히 너와 내 것이 될 텐데.”

    “…….”

    “우리 비즈니스 파트너께서 뭐가 그리 불만이실까?”

    누자베스는 손에 들고 있던 포크의 끄트머리로 넬쟈의 머리카락을 툭툭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럼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사실 내가 전직 소설가였거든?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전직 소설가였던 하이브 마인드라니.”

    누자베스는 클클 웃으며 자신의 몫으로 놓여 있던 고깃덩어리를 포크로 푹푹 찔렀다.

    “이해가 될진 모르겠는데 이런 실제 책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곳에 업로드를 해서…… 아니, 이렇게 설명해도 모르려나. 어쨌거나 판매량에 맞춰 등수를 차례대로 나열해 놓거든? 그래, 경마처럼. 경마 같아.”

    문득 어렸을 적 읽었던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어른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얼마나 멋진 캐릭터인지, 작품성은 어떤지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한다.

    플랫폼에서 1위인 소설이라고 설명해 줘야만 ‘아, 그거 참 훌륭한 작품이구나’라고 수긍하는 것이다.

    “가장 잘 달리는 말이 1등인 것처럼, 가장 잘 쓴 소설이 1등인 게 당연한 거야. 하지만 그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거든.”

    누자베스는 송아지의 등심을 푹 찔러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한참을 우물거린 후 고기를 삼키며 말했다.

    “1등이 존재하기 위해선 2등도 필요하고, 3등도 필요하고. 도대체 몇 등인지 분간도 안 갈 만큼 밑바닥인 소설도 필요해. 그러니까 이런 타의로 강요되는 희생을 짓밟아야만 1등이 되는 거지. 내 생각엔 이런 희생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걸 짓밟을 각오가 되어 있는 놈이 1위가 되는 거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이 섬에서 그딴 순위는 필요 없어…….”

    누자베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넬쟈를 노려봤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이 가늘어졌다.

    “희생하기도 싫고, 희생을 짓밟기도 싫다라.”

    딸각.

    누자베스는 포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리를 맛본 적 없는 패배자들이나 품을 법한 감상이네. 그러니까 내가 다른 놈을 짓밟고 올라서는 쾌감을 가르쳐 줄게.”

    넬쟈의 방을 나서자 로아가 문 옆에 서서 누자베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하이브 마인드를 상대로는 필요 이상의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래?”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가? 나랑 닮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농담이시겠죠.”

    누자베스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 * *

    이상하다.

    충분히 이상했다.

    류시혁에게 이 세계는 너무나 이상하게 보였다.

    그래.

    삼류 작가가 아무렇게나 두들긴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이 그 소설의 주인공이며, 자신의 모든 삶이 정체도 알 수 없는 누군가들에게 관음당하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이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류시혁은 자신이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쳐 버린 것이다.

    언제부터?

    잘 모르겠다.

    그가 처음으로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눈 채 방아쇠를 당겼을 때였을까?

    누구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광적인 이슬람의 원리주의자였을 것이라 추측해 볼 뿐이다.

    생사도 알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류시혁은 자신이 쏜 총알에 맞은 누군가가 살아 있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같은 나날이 반복되었고.

    류시혁은 어느샌가 몇 시간이고 기도를 올리지 않아도 잠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가 보는 세상의 풍경이 달라진 것은.

    “개연성이라고 하나? 소설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맞는지 모르겠군. 다르게 말하자면 인과관계 말이야.”

    류시혁의 곁에는 앳된 티가 채 가시지 않은 미녀가 서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여성의 이름은 ‘밀리아’.

    밀리아는 왕국의 수도에서 용사 류시혁을 위해 마련한 길잡이였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스텔라 교단의 은장급 무력 집행자 자격을 얻었고, 18살이 되던 해에 교단의 신성 증명을 통해 ‘벨루나드(차상위계 전령)’의 자리에 올랐다.

    빼어난 미모뿐만이 아니라, 교단 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전투 능력도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각종 고어 해석이나, 역사적 시료 분석도 가능하며. 마물에 관한 지식에도 해박했다.

    용사의 동료가 되기에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한 여성이었다.

    밀리아는 류시혁의 말을 한 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마주하며 집중하는 자세를 보였다.

    물론 그를 향한 동경과 연심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밀리아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온도차는 명백했다.

    이런 완벽한 미녀의 호감 어린 시선을 받고 있음에도 류시혁은 오히려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현실이란 의외로 개연성이 없는 것이었어. 사건과 사건의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지. 개연성이 필요한 건 이 세상이 아니라 인간이 아닐까? 어떤 식으로든 사건과 사건을 인과의 고리를 묶어서 스스로 납득하지 않으면 금세 겁에 질릴 정도로 나약한 존재니까.”

    이해가 불가능한 현상과 존재에 공포를 품는 본능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모든 현상을 자신이 지닌 지식의 범주 내에서 납득 가능한 원인을 덧붙여 놔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사건과 현상이 딱딱 들어맞더군. 구태여 생각해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설명되기 시작했어. 현실이 아니라 소설처럼.”

    류시혁은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딱히 초자연적인 현상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조현병 같은 현실적인 원인도 있지 않나?

    하지만 류시혁이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길 택하기 직전.

    이 세계로 소환된 것이다.

    본래 살던 세계보다 더 작위적이고, 꺼림칙한 세계였다.

    소환에 응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의문의 해답이 있는 장소로 안내해 주겠습니다.’

    류시혁의 인지 능력으로는 감히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그렇게 속삭였다.

    그 존재의 달콤한 꼬임에 류시혁은 소환에 응했고, 이렇게 바체트 령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와아! 그렇구나. 밀리아는 잘 모르겠지만, 용사님은 늘 어려운 생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멋져요!”

    밀리아는 손뼉을 치며 되는대로 류시혁을 찬양하는 미사어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가끔은 이 밀리아에게도 의지해 주세요! 밀리아는 언제나 용사님의 편이랍니다. 밀리아는 절대로 용사님을 배신하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 있을게요.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요! 절대로요!”

    “…….”

    류시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상 밀리아와 얘기를 나눴다간 더 골치가 아파질 것 같았다.

    이 지루한 시간을 얘기라도 나눠보며 떼워 보려고 했던 게 실책이었다.

    밀리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한 여자였다. 주변 누구도 밀리아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류시혁에겐 명백하게 이상해 보였다.

    밀리아는 마치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지정된 스크립트를 반복적으로 재생하고 있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류시혁은 밀리아를 두고 객실에서 나와 바로 갑판으로 향했다. 그를 태운 거대한 범선은 아직도 바다의 한가운데였다.

    ‘포 힐케인 섬.’

    본격적으로 용사의 여정에 나선 류시혁에게 내려진 두 번째 임무였다.

    원래는 아리카 섬의 하이브 마인드 토벌 의뢰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수도에서 도둑맞은 헬베르카의 혈액으로 만들어진 하이브 마인드. 그 괴물을 처리해야만 했지만.

    다행히도 류시혁이 나서기도 전에 왕궁에서 파견했던 모험가 팀이 카타쿨라를 처치하고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아리카 섬의 호족장들도 섬의 상황이 안전해졌다고 전하며, 수도에서는 아리카 섬의 우선순위를 낮췄다.

    ‘아리카 섬 정리를 대신해서 내려온 임무였지.’

    임무의 내용은 간단했다.

    포 힐케인 섬에 뿌리를 박고 있는 세 마리의 하이브 마인드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둥지에 가지고 있던 흡혈귀의 살점과 뼈, 혈액을 회수하여 수도로 보내는 것이었다.

    ‘이런 여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군.’

    이쪽 세계의 주민들은 이계에서 소환된 용사인 류시혁에게 무한한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지만.

    류시혁에게 둥지 제거라던가 마왕 토벌 같은 것은 부수적인 일에 불과했다.

    그가 소환에 응한 이유는 하나뿐이었으니까.

    류시혁은 초월적인 무언가가 내뱉은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당신의 여정에서 당신은 품고 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겠죠.’

    ‘명쾌한 해답을 지닌 존재를 찾아내세요.’

    ‘그 다음은 당신의 선택일 뿐이랍니다.’

    이쪽 세계로 소환된지 열흘이 더 지나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그럴싸한 인물과 전혀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나.”

    류시혁은 짧게 숨을 토해낸 후 멀리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봤다.

    드디어 긴 항해 끝에 포 힐케인 섬이 수평선 밑에서부터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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