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106화 (106/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106화

포 힐케인(2)

끼기이이익.

어둠 속에서 거미 형상의 병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유압 프레스의 가동음이 적막한 밤의 풍경에 녹아들었다.

철그덩, 철그덩.

열 마리의 강철 거미.

전부 야전 사양으로 새롭게 도색되어 짙은 묵빛을 띄고 있었다.

카타쿨라의 둥지에서 탈취한 고대 병기 ‘베놈’의 개량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놈을 해체하여 새롭게 만들어낸 신형 병기에 가까웠다.

동체 자체는 베놈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다리의 개수가 가장 큰 차이였다.

본래 베놈은 산악 지형에서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기동하기 위해 여덟 개의 다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번에 포 힐케인 섬에 모습을 드러낸 병기는 4개의 다리밖에 달려있지 않았다. 가장 값비싼 다리 부분을 나눠서 개체수를 늘린 것이다.

때문에 베놈만큼 재빠르게 기동할 수도 없었고, 험준한 지형에서 제한적인 움직임을 취할 수밖에 없었지만.

평지나 얕은 언덕이라면 시속 20~30키로의 속도로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중 다섯 대는 등에 박격포를 달고 있는 자주박격포의 형태.

나머지 다섯 대는 이전의 베놈과 마찬가지로 동축기관총과 주포가 달린 전차의 형태였다.

[두르난 : 비비큐 클럽 명령 대기 중일세!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라구!]

[누자베스 : 저는 비위 약해서 핏물 나오는 고기 못 먹어요.]

[두르난 : 그러면 웰던이로군!!]

누자베스는 시선을 돌려 보급지를 바라봤다. 북쪽의 하이브 마인드 ‘트올리카’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게 보였다.

[누자베스 : 넬쟈가 얼마나 호구로 보였으면 전선 바로 뒤쪽에 보급지를 차렸을까? 그것도 지상에다가!]

[루칸다 : 그 경솔함의 댓가를 치뤄야 하겠죠.]

[누자베스 : 포 힐케인 섬에 도착한 기념으로 폭죽 좀 터뜨려 줘라. 폭죽값 내줄 물주도 있으니까 아끼지 말고.]

누자베스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불꽃놀이 축제를 방불케 하는 굉음과 폭발이 지상을 뒤덮었다.

비비큐 클럽은 1킬로미터의 거리에서 화력 지원이 가능한 부대다. 트올리카의 병력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거리에서부터 일방적으로 보급지를 때려 부술 수 있었다.

“크캬아악!”

“으아악, 으악!”

“불이다, 불! 불이다아! 크악!”

보급지를 지키던 트올리카의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보급품이 불타고, 백여 마리의 오크 전사들이 팝콘처럼 튀어 올랐다.

쾅, 콰앙!

산의 중턱에서 여유롭게 포탄을 날리고 있는 비비큐 클럽과 상반된 분위기다.

몇몇 오크 궁수들이 빛무리가 뿜어져 나오는 곳을 향해 화살을 날려보긴 했지만, 닿지도 않을 뿐더러 닿는다 하더라도 별다른 피해도 줄 수 없었다.

포격을 개시하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트올리카의 병력이 보급지를 포기하고 모조리 퇴각하고 있었다.

조각조각난 시체 조각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해안가는 검게 그을리거나 붉은 얼룩이 번졌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참극이었다. 포 힐케인 섬의 패러다임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리카 섬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아리카 섬을 온전히 손에 넣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수백 년 동안 섬 주변을 기웃거리는 외세를 물리친 게 전부인 포 힐케인 섬의 하이브 마인드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헉, 허억…… 이런, 이런 건 바라지…… 저, 저는 이런 걸…… 바라지 않았어요…….”

넬쟈는 마인드 모드를 종료하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늑골을 튀어나올 만큼 거칠게 뛰었다.

손끝을 덜덜 떨며 누자베스를 바라보다, 이내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이런 걸 바라지 않았어……! 거, 거…… 허억, 겁만…… 겁만 줘서 내쫓아 준다고…… 읍, 우웨엑!”

넬쟈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속을 게워냈다. 손과 가슴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누자베스의 첫인상?

곱상한 도련님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딱한 처지를 이해해 주고, 상냥하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자신이 섬으로 불러들인 존재는 상냥한 전쟁 군주도 아니었고, 도련님 같은 것과 전혀 무연한 사내였다.

하수구의 밑바닥에서 처절한 독기를 품고 기어 올라온 악마일 뿐이다.

누자베스는 넬쟈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탁대로 겁을 좀 줬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다른 방법이 있나? 흰 천이라도 뒤집어쓰고 녀석들 앞에서 춤이라도 출까?”

넬쟈는 파르르 떨며 누자베스를 노려봤다.

“미친 자식…….”

그런 표독스러운 독설을 내뱉었지만, 누자베스는 오히려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오해하진 마. 나는 전혀 안 미쳤어. 멀쩡하다고, 진짜 멀쩡해. 물론 나도 내가 미쳤는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문제에 얼마나 진지할 수 있었는지 고민하고 있거든.”

“꺄악!”

콰악!

누자베스는 넬쟈의 머리채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쿠웅!

그리고는 넬쟈의 머리를 벽면에 처박은 후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문화의 상대성이야. 지금부터 내가 녀석들에게 아리카 식의 예법을 가르쳐 줄게. 아리카에선 대부분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니까.”

넬쟈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놔준 후 누자베스는 당연하다는 듯 넬쟈의 자리에 털썩 앉았다.

“로아. 북쪽 놈을 계속해서 밀어붙여. 상황에 따라선 크라울 비젠의 사용을 허가한다.”

로아는 루칸다 쪽을 흘깃 바라본 후 이내 대답했다.

“알았어.”

그리고 뒤이어 루칸다에게도 명령을 하달했다.

“루칸다, 북쪽 놈 바지가 축축해졌는데 남쪽 놈만 뽀송뽀송한 바지 입고 다니면 불공평하겠지?”

“야전 지휘자 놈들부터 처리해 놓겠습니다.”

북쪽은 블랙 비즈니스와 크라울 비젠.

남쪽은 비비큐 클럽과 비르겐슈타인.

누자베스에겐 어렵지도 않은 싸움이었다.

짝!

누자베스를 한번 손뼉을 쳐서 주의를 환기시킨 후 입을 열었다.

“간만에 착한 일 좀 해서 스텔라한테 점수 좀 따놓자구. 혹시 모르잖아? 나 같은 놈도 극락에 갈 수 있을지.”

포 힐케인에 봉인된 흡혈귀는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덤이고 말이다.

* * *

14년.

수백 년을 포 힐케인 섬을 지켜온 트올리카에겐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다.

애초에 포 힐케인 섬은 규모가 한정적인 섬이다. 이렇다 할 적대 세력도 없었기에 자아를 얻고 수 년 정도만 둥지 확장과 병력 육성에 힘썼을 뿐이다.

그 뒤론?

트올리카와 그의 두 동료 하이브 마인드와 함께 이 섬을 지켜왔다. 더 이상의 성장을 갈구하지도 않았고, 그 덕분에 쭉 정체되어 있었지만 섬의 바깥에서 찾아오는 외적을 쫓아내긴 충분했다.

평온한 시간이었다.

수다쟁이 비올리네와 온화한 성격의 넬쟈. 두 동료는 서툴고 과묵한 트올리카를 믿고, 지지해 줬고, 함께 협력하여 섬을 지켜줬다.

풍파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이 고요한 섬처럼 평온한 시간이었다.

14년 전 우연히 해변가에서 인간의 아기를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다.

트올리카는 조금 이 섬의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던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자극을 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변덕이 버려진 인간의 아이를 거두게 된 이유였다.

트올리카는 인간의 아이에게 ‘카베르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트올리카가 자아를 각성한 후 지금까지 봤던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카베르네는 죄인의 신분으로 섬에서 해체되었고, 그녀를 구성하던 살점과 뼈와 혈액은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에 매장되었다.

그런 옛이야기와는 관계없이 카베르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자라났다.

인간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건 다른 동료들에겐 비밀이었기에 조마조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긴 했지만.

어쩌면 비올리네와 넬쟈는 자신을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카베르네가 16살이 되면 둘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결정을 따르자고 결심했었다.

만약 섬에서 인간을 기르는 것에 반대한다면 카베르네를 본도로 보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트올리카의 기대와 달리 카베르네가 16살의 생일을 맞이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14살이 된 후부터 카베르네는 갑자기 쇠약하기 시작했다. 에르바키나 연맹에게서 각종 인간의 치료약을 사서 시험해 봤지만, 무엇 하나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점점 카베르네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섬에 불사왕 브람스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역시나 혼령이 현화한 것인가.”

브람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첫 마디를 내뱉었다.

“이것은 그 어떠한 병도 아니니 약이 듣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세.”

그저 현화한 혼령을 붙잡아둘 매개체가 없기에 섭리에 의해 소멸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브람스는 설명했다.

카베르네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이 섬에 매장된 살점과 뼈와 혈액을 모으는 것뿐이다.

하지만 뼈와 혈액은 트올리카의 동료인 비올리네와 넬쟈가 지니고 있었다.

그 둘에게 주어진 사명을 배반하고, 흡혈귀를 부활시키자고 부탁한들 들어줄 리 만무했다.

‘나는 내 선택이 합리성에 부합하는 것인지 몇 번이고 자문했다.’

트올리카는 지쳐 잠든 카베르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살점을 써서 유예 시간을 늘리긴 했지만, 앞으로 카베르네가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명을 버리고, 수백 년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검을 겨누면서까지 흡혈귀를 지켜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합리성에 부합하지도 않으며.

트올리카가 하이브 마인드로써 흡혈귀를 지켜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 어떠한 도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란 말이다.

“빌어먹을!”

트올리카의 가슴 속에서 답답함이 토해졌다. 그 소리에 누워 있던 카베르네가 퀭해진 눈을 힘겹게 떴다.

“아빠……?”

“미, 미안하구나, 카베르네. 아무것도 아니니 더 자도 된단다.”

트올리카가 이불을 카베르네의 어깨까지 덮어주자, 카베르네가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으로 트올리카의 거친 손등을 꼭 붙잡았다.

“저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저는 더 이상 아빠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조금만 힘을 주면 바스라질 것 같은 손가락이 트올리카의 손등 위에 얹어져 있었다.

그 순간 트올리카는 가까스로 납득할 수 있었다. 하이브 마인드와 흡혈귀 파편. 그런 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시간이었다.

14년.

14년이란 그런 시간이었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서로가 서로를 더 없이 의지하게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 섬은 하이브 마인드로써 합리성이 배제된 전장이다.

트올리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 싸워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아버지로써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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