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105화 (105/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05화

    포 힐케인(1)

    “햄토리야, 여기 딱 앉아 봐. 형아가 이번에 마왕성에서 개쩔었던 얘기를 해줄 테니까.”

    “쮸!”

    햄토리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이번에 마왕성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불사왕 브람스? 그 새끼가 멀리서부터 건들거리면서 형아를 존나게 야리고 있는 거야. 새끼가, 아주 가오를 그냥 영혼까지 끌어 모으고 있는데 형아는 무슨 그 새끼 가오가이거인 줄 알았어. 파이널퓨전 준비하는 줄 알았다니까?”

    “쮸우- 쮸쮸!”

    “그래! 형아가 가만히 있을 위인은 아니지. 그래서 딱 앞으로 나가서 한 마디 해줬지. 마! 싸움 좀 하나! 으디서 눈까루를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엘리베이터질을 하고 있냐? 여기서 한 다이 깔까? 어!?”

    “쮸쮸, 쮸- 쮸우!”

    “그랬더니 바로 눈을 내리깔고 몰라 뵈어서 죄송하다고 무릎을 꿇더라니까! 햄토리, 형아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이제 알겠지?”

    “쮸쮸!”

    “하핫! 그래그래, 불사왕도 별거 없다니까.”

    햄토리의 복슬복슬한 머리털을 쓰다듬으며 침대를 뒹굴고 있었다.

    “대단하시군요. 불사왕 브람스라면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한데 선빵 안 맞은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우왁, 깜짝이야!”

    어느샌가 루칸다가 머리맡에 나타나 있었다!

    “제 생각에 각하께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옆에 흡혈귀를 끼고 있었던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브람스가 성격이 불 같아도 혈계의 규율이란 것이 있으니 말이죠.”

    “스칼렛이 없었으면?”

    “그 자리에서 양손으로 각하를 붙잡아 몸을 반으로 찢어 죽였을 겁니다.”

    그래, 솔직히 나도 알고 있다.

    스칼렛이 나르시안의 직계손이니 어느 정도의 허세를 부린 것이다. 그리고 쫄아서 입도 뻥긋 못한 것에 비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어쨌거나 이번 마왕성에서 있었던 일을 루칸다에게도 말해줬다. 아니, 내가 브람스에게 허세를 부린 얘기가 아니라.

    내게 접촉해온 하이브 마인드 셋에 관한 얘기다.

    “투아하와 유리아는 잠시 보류하는 게 좋겠습니다. 조급한 결정보단,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유예를 두고 간을 보자는 얘기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하이브 마인드. 포 힐케인 섬을 관리하고 있는 녀석이다.

    물론 포 힐케인은 아리카에 비하면 상당히 거대한 섬이기에 혼자 관리하고 있는 게 아니지만 말이다.

    “포 힐케인은 거대한 화산섬입니다. 제가 알기론 포 힐케인을 관리하고 있는 하이브 마인드는 셋입니다.”

    섬의 중앙에는 거대한 화산이 있기에 실질적인 영토는 그 변두리가 되겠지만.

    “북부, 남부, 그리고 동부가 되겠군요. 정확하게 삼등분된 상태라면 다툼 없이 공평했겠지만.”

    포 힐케인 섬의 동부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브 마인드 ‘넬쟈’는 거의 짜투리 부분을 얻어먹은 것에 불과하다.

    북부와 남부의 하이브 마인드가 섬 면적 지분의 80%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내게 접촉해 온 하이브 마인드는? 바로 동부의 짜투리 땅을 얻어먹은 넬쟈였다.

    “본래 하이브 마인드의 영토 분쟁에서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는 건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바깥에서 친구를 불러오지 않는 게 국룰이긴 하지.”

    그게 하이브 마인드 간의 예의이고 도리였다. 그리고 한정된 땅에서 입을 늘리지 않기 위한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했고 말이다.

    “윗동네 놈하고 아랫동네 놈이 더 욕심을 부리면 안 됐어. 그 벼룩 간만한 동부까지 나눠 먹으려다가 드디어 폭발한 거지.”

    포 힐케인 섬의 북부를 담당하고 있는 하이브 마인드 ‘트올리카’.

    포 힐케인 섬의 남부를 담당하고 있는 하이브 마인드 ‘비올리네’.

    두 녀석은 서쪽의 전선을 동결시키고, 동부의 전선을 확장시키려 했다. 표면적으로는 우연히 확장 방향이 일치한 것에 불과하지만.

    “약아빠진 새끼들이지. 체면 차리려고 동맹이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실제 북부와 남부의 동맹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동부의 약소 둥지부터 정리하고 섬을 이분하겠다는 생각이다.

    넬쟈는 애초에 섬의 최약체였고, 북부와 남부의 압박을 견디고 견디다 궁지에 몰렸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는 예의고 도리고 없는 거야. 외부 세력을 부르지 않는 게 국룰이라고 해도, 자기가 뒤지게 생겼으면 반칙이라도 해서 살아야지.”

    넬쟈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이번 마왕성의 모임에 참석한 것이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며, 너무 거대하지도 않고, 싸움이라면 확실한 하이브 마인드의 조력을 얻기 위해서.

    “약한 애를 둘이서 괴롭혀? 내 안에서 정의감이 존나게 불타오르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루칸다?”

    “환상통일 겁니다.”

    루칸다는 큭큭 웃으며 모피 망토를 둘렀다. 이번에 새롭게 제작하여 보급한 제복이다.

    망토에는 국화꽃을 물고 있는 삵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저 문양이 바로 ‘아릿카사’를 상징하는 증표였다.

    “슬슬 작업 착수하자.”

    “챔피언들을 부르겠습니다.”

    “첫 비즈니스인 만큼 스마트하게 처리해 줘야지.”

    의뢰인 100% 만족을 목표로 노력해 보자.

    * * *

    하이브 마인드는 개체의 차이가 있는 합성 생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선천적인 성향이 이후의 둥지 규모나 병력의 육성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하이브 마인드 자신의 진화 성향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모든 하이브 마인드가 누자베스처럼 탐욕스럽고 지랄맞은 미친개가 아니란 말이다.

    “저기…… 누자베스 경? 정말로 괜찮을까요? 답답한 마음에 도움을 구하긴 했지만, 혹시라도 이 일을 트올리카나 비올리네가 알게 됐다가는…….”

    “왜? 그 새끼들이 알면 뭐 어떻게 되는데?”

    누자베스가 병력을 이끌고 포 힐케인 섬에 도착한 건 일주일 뒤였다. 당연히 넬쟈의 영역인 섬 동쪽의 선착장을 이용해 상륙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번에 동원된 부대는 넷.

    로아의 직속 공수 부대인 크라울 비젠.

    루칸다의 직속 암살 부대인 비르겐슈타인.

    그리고 제3부대 비비큐 파티와 제4부대 블랙 비즈니스 부대다.

    아리카 섬에는 나머지 병력과 스칼렛이 남아 둥지 방위를 맡고 있었다.

    누자베스가 루칸다와 로아를 대동하여 나타나자, 넬쟈는 바로 둥지 안으로 초대를 했다.

    그리고 현재 이렇게 심부에서 정확한 업무 내용의 상의를 하게 된 것이다.

    누자베스는 테이블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봐, 전쟁 군주 양반. 말해두지만 우리는 이런 일에 관해선 존나게 전문가야.”

    “저, 전문가라니…….”

    넬쟈가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되묻자.

    누자베스는 피식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펴서 루칸다를 가리켰다.

    “찢고.”

    손가락의 방향을 돌려 로아를 가리켰다.

    “때려 부수고.”

    마지막으로 누자베스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발 그냥 다 죽사발을 만들어 놓는데 일가견이 있는 아주 유명한 프로패셔널 씹새끼들이란 말이지.”

    “아하…….”

    “그러니까 쓰잘데기 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어떤 놈부터 손봐주면 되는지 말만 해.”

    넬쟈는 그저 포 힐케인 섬에서 맡은 사명을 수행하며 평화롭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다.

    나무 정령의 모습으로 의태한 넬쟈의 외형도 그런 그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었다.

    심약해 보이고, 싸움이라도 목격한다면 금세 눈물을 글썽일 것 같은 얼굴이다.

    “처, 처음엔 모두와 사이좋게 지냈어요. 저는 싸움 같은 건 전혀 못하니까…… 트올리카와 비올리네가 제 둥지를 같이 지켜줬죠.”

    그 대신 넬쟈는 북부와 남부의 경작지 관리를 도왔다. 전투나 싸움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지만, 넬쟈는 작물을 기르는데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넬쟈가 소중히 관리한 농경지는 언제나 풍년이었다. 덕분에 트올리카와 비올리네는 동일한 면적을 관리하고 있던 하이브 마인드들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식량보급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지랄들인데? 그 새끼들 밥에 오줌이라도 갈겼냐?”

    “각하…….”

    “농담이야, 농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트올리카와 비올리네는 제 소중한 친구에요. 제게는 여전히 소중한 친구…….”

    누자베스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마터면 쌍욕을 내뱉으며 넬쟈의 안면을 주먹으로 후려칠뻔 했으니까.

    ‘착한 생각, 착한 생각하자 누자베스. 밤피 생각. 이리야 생각. 스칼렛 생각…….’

    진정됐다.

    누자베스는 짧게 숨을 훅 내뱉은 후 말했다.

    “그 자식들 목구멍에 오줌 갈긴 것도 아니면 갑자기 왜 덤벼드는 건지 설명 좀 해줄래?”

    “사실 싸움을 먼저 시작한 건 트올리카 쪽이에요. 그러니까…….”

    넬쟈의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이러했다.

    대부분의 하이브 마인드는 점령지 탈환을 위한 목적으로 인간들의 땅에 심어진다.

    그러나 포 힐케인 섬은 인간들이 살지 않는 마족들의 섬이었다. 그렇기에 포 힐케인 섬의 하이브 마인드들은 특수한 목적으로 이곳에 심어진 것이다.

    그 특수한 목적이란 봉인을 지키기 위함이다.

    ‘로아도 이곳에 흡혈귀가 봉인되어 있다고 했지. 그 말이 사실이었군.’

    그런 연유로 인해 포 힐케인 섬의 하이브 마인드들은 각자 흡혈귀의 살점, 뼈, 혈액을 나눠 지키게 된 것이다.

    북부의 트올리카가 살점.

    남부의 비올리네가 뼈.

    마지막으로 동부의 넬쟈가 혈액이었다.

    “흡혈귀를 노리고 쳐들어오던 외부의 전쟁 군주들은 트올리카와 비올리네가 내쫓아 왔지만, 어느 날 찾아온 그 흡혈귀 때문에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 흡혈귀?”

    “프로릴의 불사왕…… 브람스요.”

    브람스가 먼저 접촉한 건 트올리카였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꼬드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트올리카는 비올리네와 넬쟈가 가지고 있는 뼈와 혈액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흡혈귀는 확실히 욕심을 낼만한 물건이지.’

    실제로 누자베스는 둥지에 흡혈귀를 지니고 있었고, 그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트올리카가 흡혈귀를 복구하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쨌든 처음은 트올리카와 비올리네의 싸움이었고, 쩌리인 넬쟈는 관심 밖이었지만.

    넬쟈가 가지고 있는 흡혈귀의 혈액을 먼저 손에 넣는 게 더 간단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비올리네가 먼저 넬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여라도 비올리네에게 흡혈귀의 혈액을 빼앗길까봐 트올리카 역시 동부 쪽으로 군사를 돌렸고 말이다.

    물론 넬쟈가 이래보여도 일단은 하이브 마인드다. 기본적인 방위 병력과 시설은 가지고 있었다.

    어찌어찌 북쪽 전선과 남쪽 전선의 공세를 버텨오긴 했지만, 슬슬 한계가 가까워졌고.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외부의 하이브 마인드 ‘누자베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것이다.

    “부, 부탁드려요! 누자베스 경. 트올리카와 비올리네를 적당히 겁을 줘서 내쫓아 주기만 해도 되니까…….”

    “아, 그래?”

    이번 의뢰인의 의뢰가 뭔지 확실해졌다.

    누자베스는 바로 루칸다를 향해 말했다.

    “들었지, 루칸다? 우리 의뢰인께서 놈들 바지를 축축하게 적셔 주란다.”

    “준비해 뒀습니다.”

    “역시 수완이 좋아. 우리 루칸다가 말을 안 해도 척척이라니까.”

    누자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넬쟈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넬쟈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재미난 농담처럼 키득거리며 속삭였다.

    “마인드 모드 켜. 지금부터 재밌는 거 보여줄게.”

    그 순간 넬쟈는 깨달았어야 했다.

    자신이 섬으로 불러들인 존재가 무엇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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