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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103화 (103/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103화

늑대와 삵(3)

이 모임의 이유?

그건 하이브 마인드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하이브 마인드는 기본적으로 다른 하이브 마인드와 공존하려는 성질을 그다지 지니고 있지 않다.

아주 가끔 특수한 환경이나 조건에서 결탁하여 컴플렉스 형태의 둥지를 만들긴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만 따지자면.

하이브 마인드는 동족을 집어 삼키며 성장하는 생물이다.

그런 하이브 마인드들을 모아놓고 뭐 대단한 친목 도모를 하겠다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겠나?

이유야 뻔하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놈들을 가끔씩 모아서 성장 방향을 정하게 하려는 거겠지.’

동쪽으로 둥지를 확장해야 할지.

서쪽으로 둥지를 확장해야 할지.

그런 기로에 서게 된다면 이번 모임을 천천히 되짚어 볼 것이다.

어느 방향에 잡아먹기 좋은 호구 놈들이 많았는지 말이다.

‘로아나 스칼렛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군.’

연회장에 들어오기 전에 누자베스가 지시한 사항이다.

로아와 스칼렛에게 단독으로 행동하지 말고, 자신의 양옆 사이드에 딱 달라붙어 있으라고 말해놨다.

그러니까 매우매우 간단한 테스트다.

만약 로아와 스칼렛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놈이야말로 진짜 잡아먹기 좋은 잔챙이란 소리다.

“시트란테 서도 출신이라고? 그딴 촌구석에도 전쟁 군주가 있었나? 아니면 요즘은 배양막도 안 벗겨진 버러지를 하이브 마인드 취급해 주냐?”

누자베스는 발밑에서 깨진 술병을 슬쩍 내려다본 후 다른 요리의 접시를 집어 들었다.

완전히 푸가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하이브 마인드들이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말이다!

‘진화 횟수나 지배력도 별 볼 일 없는 하이브 마인드 주제에……!’

이런 굴욕을 참아서는 안 된다.

이 연회장은 이미 전장이었다.

바체트령 전국의 굵직한 하이브 마인드들이 모여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

여기서 얕보였다간 사방에서 물어뜯길 게 뻔했다.

“각하, 이 노루야칸이 혼쭐을 내주겠습니다.”

그리고 푸가의 챔피언이자 ‘고대 골렘’인 노루야칸이 앞으로 나섰다.

‘좀 더 굵직한 놈이 걸렸으면 좋았을 텐데.’

누자베스는 달콤한 양념에 절여진 고기를 우적우적 씹으며 푸가와 노루야칸을 슬쩍 살폈다.

‘아니, 진짜 거물 분들은 관람석 쪽으로 자리를 옮기셨군.’

이미 로아에게 정보를 들은 상태였다.

바체트령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하이브 마인드들은 신중하게 누자베스를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째려보면 무서워서 체할 것 같잖아, 교양 없는 새끼야. 여기가 연회장인지 투견 합사인지 분간이 안 되네.”

누자베스가 그렇게 말한 것과 동시에 로아가 연미복의 상의를 벗으며 앞으로 나섰다.

챔피언의 능력은 곧 하이브 마인드의 능력.

물론 챔피언의 전투력이 하이브 마인드의 능력 그 자체를 대변하진 않는다.

하지만 챔피언의 전투력만 봐도 어느 정도 수준의 둥지인지 파악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로아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병력의 지휘 능력이나 행정적 업무의 처리 능력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대인 전투력만 놓고 따지자면 1티어의 챔피언이다.

헬베르카의 분가인 ‘루스날’의 정식 후계.

전투 능력만으로 따지자면 본가인 헬베르카와 필적하거나,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로아는 ‘성소’급의 둥지에 배치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챔피언이다.

그런 로아를 상대로 고대 골렘인 노루야칸에게 승산이 있을까?

부웅!

노루야칸의 바위 주먹이 허공을 갈랐고.

쿠웅!

궤도의 바깥에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로아가 노루야칸의 몸뚱이에 주먹을 쳐박았다. 폭발음과 흡사한 굉음이 울렸고.

콰아앙!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 노루야칸이 축 늘어졌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차이다.

대결이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전쟁 군주들은 로아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그래, 저 얼굴 기억나는군.”

“설마 루스날? 국화의 후계를 챔피언으로 거느리고 있다고?”

“천박한 놈이 어울리지도 않게 과분한 챔피언을 손에 넣었군…….”

로아에 대한 평가는 확실했다.

반 르낙시아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가문의 분가 출신.

그것만으로도 더 따지고 들 요소는 없었다.

국화 문양을 이어받은 마족은 바체트령 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특등품이었으니까.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푸가는 더 이상 덤벼들지도 못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누자베스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누자베스는 슬쩍 고개를 들어 푸가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친구야, 앞으론 아가리 생각하고 열어. 강냉이가 뒤통수로 쏟아지게 해줄 수 있으니까.”

“건방진 애송이가……!!”

“잔챙이들 많이 데려왔냐? 더 데려온 챔피언 있으면 상대해 줄게.”

푸가의 휘하에 있는 챔피언 전부를 데려왔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로아에게 대적할 만한 챔피언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푸가는 상상도 못 한 모멸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두, 두고 보자! 언젠가 네놈의 둥지를 갈기갈기 찢어 삼키겠다!”

“나중에 두고 볼 게 뭐 있어? 여기서 이름 까고 선언 박아, 쫄보 새끼야.”

여기서 겁을 먹고 물러선다면 전쟁 군주로서 끝이다. 게다가 시트란테 서도라면 테오르케 섬까지 거리가 꽤 되는 곳이다.

지금 동족포식을 선언하더라도 맞부딪칠 확률은 극히 적었다.

“좋다, 테오르케 동부령 3군 204호 둥지의 관리자 푸가. 그 도전을 받아들이겠다.”

“테오르케 섬? 빌어먹을 더럽게 멀구만.”

누자베스는 아쉽다는 듯 혀를 끌끌 찼따.

“이름을 밝혀라.”

푸가는 애써 당당한 척 누자베스에게 그렇게 고했고. 누자베스는 들고 있던 포크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리카의 엘베제 누자베스다.”

누자베스가 신분을 밝힌 순간 연회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멀찍이 떨어져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던 고위급의 전쟁 군주들까지 일순 눈을 깜빡이는 걸 잊을 만큼 말이다.

* * *

마족들이 아리카 섬에 지니고 있는 감정은 각별한 것이었다.

인간들에게 처음으로 빼앗긴 바체트령의 섬.

글로레나 왕조의 발판이 된 애증의 전략 요새.

그리고 수백 년의 시간 동안 탈환하지 못한 섬이었다. 그런 아리카 섬을 통일시킨 전쟁 군주가 나타난 것이다.

놀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놀랄 일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지만.

‘엘베제? 헬베르카 계열의 전쟁 군주인가?’

엘베제라는 칭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출생 성분이 헬베르카와 관계가 없다면 아리카 섬을 통일시켰다 해도 다른 칭호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엘베제는 오로지 ‘헬베르카 계열’의 마족에게만 허락되는 호칭이었으니까.

‘과연 그래서 루스날의 후계를 챔피언으로 두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옆의 흡혈귀는…… 음, 그러고보니 오르키아나 녀석도 흡혈귀를 곁에 두길 즐겼지.’

연회장의 구석에서 조용히 상황을 살피던 여성은 꽤나 누자베스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간만에 재밌는 녀석이 나타났군요. 유리아 님께서 그렇게나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신 건 오랜만입니다.”

“그냥 조금. 오르키아나랑 조금 닮았구나 싶어서.”

“성도의 은사자 말입니까? 저는 직접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상상하던 모습과 많이 다르군요.”

유리아는 엘더 엘프의 형태를 취한 하이브 마인드였다.

론트라 섬의 중부로부터 서쪽으로 1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대수림’을 통째로 집어삼킨 고위 전쟁 군주이기도 했다.

둥지나 병력의 규모 면에서 따지자면, 단신으로 마왕 아일라드를 압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유리아의 부관 ‘아실라’는 곁에 바짝 붙듯이 서서 낮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그보다 방금 전 제필프의 그릇으로 추정되는 인간 사내를 발견했다는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유리아는 아실라의 보고를 듣고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이번에도 꽝일 거 같은데.”

“하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조치를 취하심이 어떨지.”

“그러네. 좁은 땅덩어리에서 옛동포는 그다지 달가운 존재가 아니니까.”

유리아는 쿡쿡 웃으며 손을 저어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나저나 제필프의 그릇으로 의심되는 인간은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루아 카날다 쪽은 그다지 보이질 않네.”

“바체트령이 아닌 대륙 쪽에서 나타난 것이라면 저희의 관할은 아닙니다.”

유리아는 누자베스에게 시비를 걸던 푸가가 연회장에서 후다닥 도망치는 걸 지켜본 후 입을 열었다.

“테오르케 섬으로 비집고 들어갈 구멍이 있는지 탐사 병력을 보내. 생각보다 빈틈이 많아 보이네.”

“흥미가 동하신 건 그쪽이셨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유리아는 피식 웃으며 다시 시선을 누자베스 쪽으로 돌렸다.

테오르케 섬을 갉아 먹으려는 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업무의 일환이다.

유리아의 사적인 관심은 오로지 누자베스에게 향해 있었다.

“저기 계신 엘베제 님에게 정중히 전해. 기반이 단단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필요하면 시간 좀 내달라고.”

이번 모임에 참석한 건 단순한 변덕이었지만. 덕분에 재밌는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유리아는 연회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한 번 더 누자베스 쪽을 흘깃 바라봤다.

“역시 닮았어.”

유리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극복하지 못했던 벽과 닮아 있었다.

물론 그녀가 지금의 이름이 아닌 ‘유스티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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