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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99화 (99/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99화

    시릴스(3)

    전투가 시작되기 앞서 잠깐 신규 편성 부대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제4부대 : 블랙 비즈니스]

    -부대장 : 투리앗사(하이오크 척탄병)

    -부대원 : 하이오크 척탄병 615체

    -정보 : 살육과 약탈! 그리고 때때로 가끔의 겁탈! 전장에서 마땅히 이뤄져야 하는 일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면, 이곳에 스페셜 리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이 검은 오크들은 전장의 화이트칼라니까요.

    드디어 이번에 새롭게 생성된 병력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었다.

    하이오크 척탄병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그레이브 야드 부대의 구울들과 마찬가지로 머스킷티어로 무장했지만.

    구울의 최대 약점이었던 백병전 능력이 월등히 뛰어났다. 참호전의 가능성까지 생각하자면, 상당히 반가운 병종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도끼와 야삽을 들고 거침없이 적의 참호 안으로 뛰쳐들어가는 오크 병사들만큼 만족스러운 병종도 없지 않나?

    ‘이걸로 제4부대까지 개설되었군.’

    제1부대 언더 케이지.

    제2부대 고블린 서비스.

    제3부대 비비큐 클럽.

    제4부대 블랙 비즈니스.

    ‘여기서 지휘자 직속 부대까지 합치면.’

    이번에 새롭게 개설된 지휘자 직속 부대도 하나 더 있었다.

    [지휘자 직속 제1부대 : 크라울 비젠]

    -부대장 : 없음(로아)

    -부대원 : 정예 하이오크 척탄병 100체, 드라코너 5체

    -정보 : 오오, 밤하늘에 내리는 장송곡이여! 검은 빗방울은 지상을 붉게 적실 것입니다! 이 부대는 이름 그대로 ‘하늘’에서 내리는 ‘장송곡’입니다.

    부유종 드라코너에 탑승한 정예 하이오크 척탄병들은 빠르게 적진의 한복판에 낙하하여 칼 같이 임무를 수행합니다. 카톨리제의 귀족들이 공수 부대 육성에 혈안이 되었던 것도 이해가 되는군요.

    “세글리트 토벌 때 얻었던 알이 드디어 실전에 투입되는군.”

    세글리트를 토벌하고 얻었던 의문의 알을 중급 부화장에서 부화시킨 결과!

    드라코너라는 징그럽게 생긴 마물이 튀어나왔다.

    미안하다.

    드라코너도 내 둥지의 소중한 병력인데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이 안 된다.

    딱 묘사해주겠다.

    겨울날 누군가 술을 진탕 마시고 계단 난간에 토해놓은 게 순식간에 굳어버린 것처럼 생겼단 말이다.

    크기도 20여 미터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연체동물이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이동 속도는 답답해서 죽을 만큼 느리지만.

    일정 명도 이하에선 육안으로 포착되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야간 한정 스텔스 열기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 드라코너에 태울 병력은 챔피언 셋의 격렬한 토론…… 토론이 아니라, 주먹만 안 쓰는 난투 끝에 정예 하이오크 척탄병으로 결정!

    그리하여 세 번째 지휘자 직속 부대.

    크라울 비젠이 결성된 것이다.

    ‘이걸로 총 7개의 부대가 가용 상태가 되었군.’

    루칸다의 비르겐슈타인.

    스칼렛의 그레이브 야드.

    로아의 크라울 비젠.

    스칼렛의 직속 부대를 제외하고는 루칸다와 로아의 직속 부대는 특무 병종으로써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비르겐슈타인 부대는 암살 특화. 크라울 비젠은 줄곧 꿈에 그리던 공수 부대로 활약해줄 수 있을 테고.’

    이번엔 크라울 비젠의 실효성을 검증할 기회가 없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누자베스 : 로아. 지금까지 맞아주느라 고생했다. 이번에 시원하게 스트레스 해소나 해야지?]

    [로아 : 아, 응…….]

    [누자베스 : 모조리 짓밟아 줘라.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잖냐?]

    어쩐지 로아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어딘지 석연치 않은듯, 내키지 않는 일에 나선 사람처럼 말이다.

    [누자베스 : 화장실 안 다녀왔으면 지금 얼른 다녀올래?]

    [로아 : 그런 게 아니라…….]

    로아는 잠시 우물쭈물하는 기색이었다.

    ‘리제가 볼매인 캐릭터이긴 하지.’

    이쪽의 코스트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늘 이날까지 소극적으로 상대해주며 물러났다고는 해도.

    로아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리제와 같은 전장에 섰다. 리제가 전장에서 보여주는 처절한 사투는 사내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무언가가 있었다.

    비록 적이라지만.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 리제를 영입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을 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과 180도 다르지 않나?

    [로아 : 인간 챔피언은 본도 진출 이후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어. 인간들과 교섭하기 위한 사자로 쓸 수도 있을 테고.]

    [누자베스 : 그리고?]

    [로아 : 병력의 운용이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흐름을 읽는 감이 좋아. 전투 능력 자체도 인간 치고는 재능을 타고난 편이야.]

    [누자베스 : 오호, 우리 로아가 그렇게까지 고평가를 할 줄은 몰랐네. 가능하다면 내 둥지의 챔피언으로 영입해야겠어.]

    뭐든지 독점은 좋지 않다.

    지금 스칼렛이 둥지의 유일한 히로인이라고 기고만장해서는…… 아니, 지금 스칼렛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까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누자베스 : 물론 가능하다면 말이야.]

    [루칸다 : 탁월한 통찰력이십니다, 각하.]

    루칸다가 로아를 조소하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루칸다 : 아무리 용맹하더라도 광견을 번견으로 삼는 주인은 없다. 주인을 지키는 번견은 언제나 엽견 뿐이지.]

    [로아 : 너한테 묻지 않았어, 루칸다.]

    [루칸다 : 각하의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 것뿐이다만. 그게 아니라면 네놈의 사적인 욕망을 각하의 의지보다 우선할 셈인가?]

    [로아 : 나는 그저……!]

    [루칸다 : 각하. 한 번 일어난 실수는 두 번 일어나기 힘듭니다만. 두 번 일어난 실수는 반드시 세 번도 있습니다.]

    [누자베스 : 루칸다는 우리 로아한테 너무 깐깐하네. 그 실수 덕분에 내가 이렇게 멀쩡히 숨통 붙어 있는 건데.]

    더 이상 로아를 책망할 필요는 없다.

    로아도 대충은 알아먹었을 것이다.

    [누자베스 : 로아.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야. 괜히 길들여 보려다가 손 물리지 말고, 머리통을 으깨 놔.]

    [로아 : 알겠습니다…… 각하.]

    로아의 대답과 함께 제4부대 ‘블랙 비즈니스’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자베스 : 스칼렛. 우리 다수결로 정해 볼까? 지금 찬성이 한 표고, 반대도 한 표인데.]

    스칼렛은 대답을 대신하여 인간 보병 부대를 움직였다. 북동쪽의 평야를 빼곡하게 덮고 있는 대규모 병력이다.

    호족장들이 출자한 보병 1800명.

    그레이브 야드 부대는? 당연히 따로 쓸 곳이 있었다.

    그리고 리제의 진영 남쪽에선 로아의 블랙 비즈니스 부대가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읏차.”

    마인드 모드를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루칸다가 솜씨 좋게 자른 궐련을 내밀었다.

    궐련을 받아 입에 물고 발밑 아래로 펼쳐진 전장을 내려다 봤다.

    “존나게 슬픈 일이야, 그치 루칸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삶이라니. 무슨 느낌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루칸다는 담배잎을 한 장 꺼내 우적우적 씹으며 대답했다.

    “용서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짐승은 사후 스텔라가 마련한 극락의 땅에 도달할 수도 없고, 밤의 어머니의 품에 안길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럼 어디로 가는데? 구천을 떠도는 망령이 되나?”

    내 질문에 루칸다는 끌끌 웃었다.

    “글세요. 다만,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용서받을 권리를 잃은 짐승은 마지막 순간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극락도, 어머니의 품도.

    용서의 기회나 권리 조차.

    결국은 신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

    “걸죽한 가래침을 내뱉고, 시건방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겠죠.”

    그딴 건 처음부터 필요하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루칸다. 양산은 튼튼한 놈으로 준비해라.”

    “여차하면 이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드리겠습니다.”

    내가 절벽에서 가볍게 뛰어 내리자.

    그 뒤로 루칸다와 비르겐슈타인 부대가 따라붙었다.

    * * *

    이상했다.

    전장을 흐르는 공기가 이질적이었다.

    리제는 흰색 천으로 덮인 레오번의 시체 앞에 서서 연신 담배를 태웠다.

    지난 밤 리제와 얘기를 나눈 후 살해당한 것이라 추정될 뿐이었다. 야영지의 보초를 서던 병사들도 레오번이 당하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다.

    “누가 죽였는지는 이제와서 중요치 않겠지. 그치, 레오번?”

    모든 죽음에는 당연하게도 합당한 이유가 있을 뿐이다. 리제는 레오번의 시신을 덮고 있던 천의 윗부분을 걷어냈다.

    잠에 든 것처럼 평온해 보이는 레오번의 얼굴이 드러났고, 리제는 물고 있던 담배를 레오번의 입에 물려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주 님! 누자베스의 군대가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측 초소에 있던 초계병이 뿔나팔을 짧게 끊어 불고 있었다. 적의 급진. 연기가 피어 오르는 초소의 방향을 확인한 후 리제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시릴스?”

    “예, 아가씨.”

    원래부터 그녀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시릴스가 바로 나타나 대답했다.

    “북동쪽 언덕에 집결해 있는 보병들이 지원군이라고 생각해?”

    “호족장들이 보낸 병력입니다. 바로 그쪽의 지휘자와 접촉하여 연계하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우리 지원군이겠지. 당연히 그렇겠지.”

    리제는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호족들은 이런 식으로 병력을 보내지 않아. 이렇게 입을 꾹 다물고 병력을 파견하는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었어?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고,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덧붙이지 않으면 병사 한 사람도 보내지 않는 게 호족장들이야.”

    함정에 빠진 것이다.

    아니, 함정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상황이다.

    누자베스는 처음부터 리제를 진지하게 상대해줄 생각 따윈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로아의 하이오크 부대를 소극적으로 부딪히며 시간을 질질 끌었던 것도 납득이 된다.

    직접 손을 써서 처리할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으니까. 그저 겁에 질린 늙은이들의 손을 빌려 리제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뿐이다.

    리제는 양쪽에서 다가오는 병력을 번갈아 훑어본 후 빠르게 추론의 조각들을 정리했다.

    조시네스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된 일이다.

    누자베스가 리제 자신을 몰아넣기 위해 가장 먼저 밀어본 도미노 조각은 무엇이었을까?

    “시릴스 혹시 너 말이야…….”

    시릴스가 리제의 차가운 시선에 얼어붙은 순간.

    콰앙!

    이전보다 한층 더 강화된 박격포 포탄이 주둔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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