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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90화 (90/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90화

    아릿카사(2)

    카타쿨라는 하이오크 투사의 시체들을 바쁘게 옮기는 코볼트 작업대를 눈으로 쫓았다.

    루칸다의 일방적인 공세로부터 일시적으로 퇴각하고 있는 덕분에 방해하거나 훼방을 놓을 수는 없었지만.

    아니, 애초에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시체를 모아서 뭘 하려는 건지 말이다.

    ‘산란장과 부화장 시설을 점거하고…….’

    부화장.

    유기물질을 넣으면 병력으로 치환되는 생산 시설이다. 하지만 이곳은 111호 둥지. 둥지의 모든 시설은 카타쿨라의 권한 하에 놓여 있었다.

    아무리 누자베스가 이 생산 구역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해도 부화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설령 시체를 이용해서 부화장을 돌리기 시작한다고 해도, 태어난 병력은 111호 둥지의 병사로써 카타쿨라의 의지에 복종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볼트들은 허겁지겁 갑옷을 벗기고 장비를 해체한 후 시체를 부화장에 던져 넣기 시작했다.

    [카타쿨라 : 잠깐…….]

    부화장의 효율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정예 하이오크 투사의 시체 4구 정도를 넣어야 새로운 한 마리가 생산되는 정도란 말이다.

    게다가 구태여 시체를 부화장에 넣어서 카타쿨라를 도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카타쿨라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났다.

    [카타쿨라 : 설마……!]

    부화장에서 드디어 하이오크 투사가 생산되었다. 코볼트들이 벗겨놨던 장비를 챙겨 다시 입히는 동안. 카타쿨라가 코볼트들을 공격하도록 명령했지만, 어째선지 새롭게 생산된 하이오크 투사는 카타쿨라의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현재 병력의 보충 수단이 전무한 카타쿨라와 달리, 누자베스는 111호 둥지의 대규모 생산 시설을 점거하고 있다.

    게다가 입구 쪽에선 불사성이 강화된 구울 머스킷티어 부대 2천 마리가 착실하게 병력을 깎아내고 있었다.

    [카타쿨라 : 퇴각 중지다! 전병력 부화장 점령을 우선시하겠다!]

    미적지근하게 시간을 끌어선 누자베스에게 승기를 쥐어주는 꼴이 된다.

    단번에 몰아붙여 숨통을 끊어야만 했다.

    그 어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말이다.

    * * *

    [누자베스 : 이야, 드디어 눈치챘나 보네. 화가 아주 많이 났어. 슬슬 빼줘라 루칸다.]

    [루칸다 : 지금부터 비르겐슈타인 부대를 운용하여 카타쿨라의 위치를 특정하겠습니다.]

    [누자베스 : 그래, 죽이진 말고. 우리 이웃사촌한테 내가 신세를 많이져서 보답 좀 해줘야 하니까.]

    이번 작전명은 ‘오퍼레이션 NTR’이었다.

    아,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너네 와이프가.

    털보 아저씨랑.

    라면 먹고 있더라의 약자니까!

    뭐, 실제로 중의적으로 내포된 의미는 같지만…… 사실 그다지 중요한 얘기가 아니다.

    핵심은 카타쿨라 녀석의 생산 시설을 일시적으로 탈취하여 병력을 즉석에서 생산해 낸다는 것이다!

    ‘헬베르카’를 지향점 삼아 진화한 덕분에 새로운 스킬을 하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콜 오브 헬베르카(액티브)]

    [등급 : A]

    [1.지정된 지역 내에서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마족 전부를 일시적으로 복종 상태로 만듭니다.(지속 시간 최대 3분)]

    [2.둥지의 시설이 지정될 경우 최대 2시간 동안 소유권을 지닐 수 있습니다.]

    [3.복종되거나, 소유권을 탈취한 생산 시설에서 생산된 마물은 고유 버프 ‘밤의 군단’이 적용됩니다.]

    눈물이 또르르 흐를 만큼 감동적인 스킬이다. 병력 생산 시설에서 깽판을 치며 어그로 끄는 동안 루칸다에게 카타쿨라의 암살을 맡길 작정이었는데, 이 스킬 덕분에 급하게 노선까지 변경하게 되었다.

    “자, 그럼 적당히 일하러 가볼까?”

    때마침 통로의 후방 쪽에서 리제가 뒤늦게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복잡 미묘한 심경의 변화가 가장 먼저 가슴을 두들겼다.

    ‘흙탕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물고기도 있는 법이지만.’

    더러운 흙탕물을 찾아 헤매는 것과.

    흙탕물을 만들려는 건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당장은 카타쿨라 제압에 집중하자.’

    키잉!

    양손에 검을 소환하여 움켜쥔 후 앞으로 나섰다. 결과는 이미 도출되었고, 검증의 과정만이 남아 있었다.

    * * *

    투명한 수정탑이 산발적으로 지면에서 치솟았다. 후방에서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다.

    하이오크 투사들은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솟아난 수정탑에 꿰뚫려 단말마를 내질렀다.

    “크카아!”

    “크롸아아아!”

    하이오크 투사들이 수정탑이 솟구쳐 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아르테간트를 쥐고 있는 리제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하이오크 투사들조차 리제의 위세에 일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생물은 본능적으로 이질적인 것에 공포를 품는다. 이해가 불가능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제는 단순히 인간 소녀라고 보기엔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수천에 달하는 군세를 눈앞에 두고 저렇게나 침착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금빛의 앞머리에 반쯤 가려진 눈빛은 침착하다 못해 무기질적일 만큼 매말라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리제의 머릿속에는 죽음이란 개념이 전무했으니까.

    그렇기에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바깥쪽의 죽음을 관찰하며 어렴풋이 짐작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밖에 삶을 실감할 수 없게 만들어진 인간이다.

    수천 마리의 하이오크들을 눈앞에 두고도 태연자약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뿐이라면 그저 간땡이가 부은 놈에 불과했겠지만.

    휘릭.

    리제는 아르테간트를 역수로 쥐어 등 뒤에 위치시켰다. 정면에서 달려오는 공격에 무방비한 자세다.

    “크롸카, 크라아아아!!”

    하이오크 투사가 도끼를 번쩍 치켜들며 리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이 공격할 최적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이오크 투사의 도끼 공격은 어지간한 굵기의 나무라도 단번에 양단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다! 어설프게 막으려 한다면 오히려 손목이 꺾이거나, 팔이 부러질 것이다.

    “후우.”

    리제가 짧게 날숨을 내뱉었고.

    도끼날이 머리를 갈라내기 직전이었다.

    쩌적!

    대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하이오크의 움직임이 멈췄다.

    쩌저적!

    지면이 얇은 피막에 코팅되듯 투명한 막이 일대에 전개되었고, 주변에 서 있던 하이오크 투사들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 과연. 이런 식으로 쓰는 거였구나.”

    리제는 아르테간트의 검신에 붙어 있던 분자들을 털어내며 빙긋 웃었다.

    “이게 올바른 사용법이라고는 해도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네.”

    카앙!

    아르테간트는 게르나의 고어로 ‘석화의 눈’이란 의미다. 본래 무식하게 거대한 수정탑을 솟구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아니란 말이다.

    리제는 피막에 뒤덮여 그대로 굳어버린 하이오크 투사의 목을 쳐서 부러뜨리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커녕 죽음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선천적인 재능.

    거기에 111호 둥지의 군세와 수없이 싸워오며 축적된 전투 경험. 결정적으로 아르테간트를 다루는 숙련도가 처음에 비해 놀라울 만큼 성장해 있었다.

    지금의 리제라면 아르테간트를 사용한다는 가정 하에 루칸다나 로아와 거의 호각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 더 화끈한 편이 흥분될 거 같은데.”

    콱!

    리제가 아르테간트를 지면에 꽂아 넣으며 일순간 대량의 마나를 주입시켰다.

    대륙제 고대 병기를 일정 숙련도 이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협적인 일인지.

    그 사실을 증명하듯 통로의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에서 수백, 수천 개의 거대한 수정탑이 치솟았다!

    잔혹극의 개막이었다.

    * * *

    흔들리기 시작한 균형은 순식간에 기울었고, 무서운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력으로 사용 가능한 챔피언을 지니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카타쿨라는 전적으로 하이오크 투사 병대에 의지해야만 했다.

    물론 8천 마리에 달하는 하이오크 투사 부대는 충분히 위력적이다. 하지만 뛰어난 대인전 능력을 지닌 챔피언이 없다는 것이 구멍이 되고 있었다.

    베놈 편대의 편대장 마르테제가 누자베스에게 당했고. 믿고 있었던 로아마저 누자베스에게 패배해 생포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챔피언 없이 정예 하이오크 투사만을 운용한 결과. 카타쿨라는 드디어 막다른 길에 몰리고 있었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어…… 111호 둥지가…… 이 카타쿨라 남작이……!!”

    누자베스와 리제. 그리고 페페의 모험가팀이 하이오크 투사들을 쓰러뜨릴 때마다 새로운 하이오크 투사들이 생산되었다.

    새롭게 생산된 하이오크 투사들이 합류하며 점점 덩치를 불려나가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말도 안 되는 능력만 없었더라면 누자베스도 리제도 언젠가 제풀에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보충되는 병력들 덕분에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다.

    “가, 각하! 입구가 돌파당했습니다! 흡혈귀의 군세가 둥지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각하! 일단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둥지는 다시 지을 수 있습니다!”

    “입 닥쳐라! 닥쳐! 내가 패배했다고? 패배할 리가 없다. 밤의 어머니 테네브레께 사랑받는 이 내가……? 근본도 없는 그딴 애송이에게 패배할 리가 없다!!”

    카타쿨라는 부들부들 떨며 검을 뽑아들었다.

    일시적인 이변일 뿐이다.

    패배할 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얼처구니 없게 패배할 리가 없지 않나?

    곧 누자베스의 조잡한 잔재주가 끝이 나고, 전투는 카타쿨라의 승리로 끝맺어질 것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낙관적인 관점으로 보려고 해도…… 이미 누자베스 휘하의 하이오크 투사의 수가 400마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입구 방어에 나섰던 병력도 저지에 실패하여 그레이브야드 부대에 침입을 허가한 상황.

    “내가 직접 전선에 나서겠다! 쓸모없는 놈들……!”

    카타쿨라가 분노에 파르르 떨며 소리쳤고, 남아 있던 카타쿨라의 야전 지휘자들도 혀를 차며 고개를 떨궜다.

    이미 패색이 짙어졌다.

    침몰하고 있는 배라면 어서 갈아타는 편이 신상을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

    “귀한 분께 힘든 걸음을 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여기서 편하게 해드려야겠군.”

    웃음기 섞인 익숙한 목소리였다.

    카타쿨라는 천장쪽 굴곡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야전 지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야전 지휘자들이 새파랗게 질려 소리를 내질렀다.

    “서, 설마 이 목소리는……!”

    “도…… 도망가아아아!”

    “젠장, 벌써 심부를…… 루, 루칸…… 캬악!”

    피분수가 솟구쳤다.

    검이 휘둘러진 궤적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타닷.

    세 마리의 야전 지휘자를 순식간에 베고 모습을 나타난 자는. 765호 둥지의 챔피언 루칸다였다.

    “루칸다아아!! 이 배은망덕한 박쥐 놈!”

    카타쿨라는 차마 덤벼들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나며 악을 내질렀다.

    그리고 루칸다의 뒤편에서 구두굽 소리가 울렸다. 카타쿨라의 시선이 그의 옆쪽을 향하자.

    “오, 진짜야? 요즘 우리 루칸다가 뒤통수 잘 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나도 언제 맞는 거 아냐?”

    “뒤통수만 잘 치겠습니까? 전후좌우로 두개골 복합 골절시키기도 특기입니다.”

    “역시 우리 루칸다야. 못 하는 게 없네.”

    누자베스가 킬킬 웃으며 그림자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벽까지 바짝 몰려 검을 꽉 쥔 카타쿨라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 X나게 만나고 싶었잖아. 아기새처럼 지저귈 준비는 됐냐, 카타쿨라?”

    누자베스는 오른손에 든 검을 어깨에 툭 걸치며 카타쿨라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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