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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73화 (73/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73화

    미완성의 이 세계(2)

    어떤 세계에서 왔냐고?

    그 질문은 이상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질문은 내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지만. 질문자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상한 것이다.

    리제는 내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어린애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대답이 없길래 잠든 줄 알았잖아. 그냥 별 의미 없이 물어본 거야.”

    “인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농담인가?”

    “이런 낭만적인 농담이 어딨겠어.”

    확실히.

    지금의 질문은 그저 악질적인 떠보기에 불과하다. 리제는 다시 낚시찌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이어 말했다.

    “누자베스 너는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어? 존재 자체가 이질적이라고 말이야. 마치 물웅덩이 위에 떠 있는 한 방울의 기름처럼.”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마물이란 이질적인 존재겠지.”

    “단순한 종의 차이라. 그 말에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네 이질성은 얕지 않은데…….”

    리제는 손목을 이용해서 낚싯대를 얕게 까딱였다. 낚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 저런 행동이 물고기를 낚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럼 잠깐 얘기를 바꿔 볼까?”

    “인간 영주와 하이브 마인드가 공감할 수 있는 화제는 그리 많지 않아. 이종간 같은 건 어때? 예를들어 ‘고블린 쇼’라던가? 본도의 인간들은 고블린을 붙잡아다 그런 식으로 쓴다는데.”

    “오크는?”

    “들어본 적은 없군.”

    “오, 그래? 누자베스 네가 본도에 진출하면 그쪽 술집을 차려보는 건 어때? 전쟁 자금을 쏠쏠하게 벌어들일 수 있을 거 같은데.”

    “천재냐…….”

    오크도 고블린 만큼이나 메이저한 마물 아니던가? 오크를 채용하면 쪼끄만한 고블린이 깨작거리는 것보다 훨씬 화끈한 쇼가 되겠지.

    고블린 쇼 같은 얘기를 하면 루칸다가 정색하면서 역정을 내니까 오크로 살짝 바꾸는 것이다.

    “아하핫! 귀여운 여배우가 필요하면 불러줘.”

    “귀족 가문의 아가씨가 하기엔 조금 거친 일일텐데.”

    “지금보다 더 거친 일은 없어.”

    리제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밝은 어조로 이어 말했다.

    “출연료만 두둑이 챙겨준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아리카 섬은 농경지로 쓸 만한 땅이 적어서 어떤 식으로든 외부에서 들여오는 수입원을 늘려야 해.”

    “주장뱅이들 앞에서 오크와 놀아나는 영주님이라. 백성들이 꽤나 자랑스러워하겠군.”

    “굶주리는 백성들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조차 없어서 저택에 틀어박힌 채 순결한 영주보다는 자랑스러워하겠지.”

    리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어깨를 늘어뜨리며 날숨을 토해냈다.

    “누자베스. 모두가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 마치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올바름을 강요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야. 마치 깨끗한 물에 살던 물고기가 이 강까지 거슬러 올라와 이렇게 더러운 물에서 살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해내는 것처럼.”

    리제는 한쪽 발을 슬쩍 들어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리제의 다리에는 더러운 진흙이 들러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물에서 사는 물고기도 있는 법이야. 그렇지?”

    “그런 식으로 모든 얼룩을 합리화하며 살면 마음은 편하겠어.”

    내가 그렇게 비꼬듯 툭 내뱉자, 리제는 쓸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얼룩은 그런 식으로 되삼켜야 해. 얼룩을 감추기 위해 청결한 척 가식을 떨며, 타인에게 깨끗함을 강요하고, 그런 식으로 얻은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덮는 게 아니라.”

    “어느 쪽이든 역겹군.”

    “인간은 원래 역겨운 생물이야.”

    리제는 낚싯대를 거두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입질조차 오지 않는 모양이다. 다시 자리를 옮기려는 듯 하류 쪽으로 걷다가 멈춰섰다.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엔 너무 어리지만, 마냥 깨끗하고 순수한 소녀로 살아가기엔 너무 나이를 먹었잖아?”

    곧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운 미소였다.

    언제 완전히 망가질지 모를 만큼.

    그러니까 ‘저것’이 내가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무책임한 결과물의 말로였다.

    이제와서 내가 엉뚱한 책임감을 품는다면. 그것은 책임감처럼 느껴지는 환상통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어설프게 형태를 잡아 놓은 캐릭터는 완전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 세상의 섭리가 제멋대로 짓뭉갠 끝에 끔찍한 괴물이 된 것이다.

    저것이 결과다.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어렴풋이 느껴지는 동질감에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기괴함에 공감해 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리제는 이 세상이 내게 보내는 경고다.

    내가 남긴 얼룩을 스스로 지우길 독촉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감 따윈 관계없었다.

    이 세상은 내게 정해진 형태의 비극을 종용하고 있는 것뿐이었으니까.

    ‘박태준 팀장보다 더한 담당자에게 걸린 기분이야.’

    훨씬 악질적인 퇴고 작업을 강요받고 있는 것뿐이다.

    * * *

    승기는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리제와 누자베스가 손을 잡은 이후부터 카타쿨라는 빠르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방위 병력을 파견하여 전선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병력이 분산되기 시작하자, 페페가 이끄는 모험가팀 역시 활로를 얻게 되었다.

    누자베스는 모험가팀이 둥지의 심부로 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동시에 페페에게 부족했던 물자를 남겨두고 떠나는 등의 간접적 지원까지 하고 있었다.

    누자베스와 리제가 아리카 섬을 온전히 통일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만연했다.

    그 어떤 하이브 마인드도 해내지 못했고, 역대 갈라우드의 군주들 역시 해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완전한 위업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누자베스 그 녀석 대단하니까! 세상에 혼자서 트롤 소대를 개박살내고 멀쩡하게 빠져 나오는 걸 내가 봤다고!”

    “짜식아, 누자베스 님이 네 친구냐. 마물이라고 해도 군주잖아. 전쟁군주.”

    “하이브 마인드도 둥지가 커지면 작위를 받는다는데. 이제 곧 누자베스 남작님이 되시겠군.”

    “누자베스 님이 해방시킨 마을만 벌써 스무 곳이 넘습니다. 스텔라 님의 사자가 하이브 마인드의 몸으로 강림하신 거라는 소문이…….”

    갈라우드의 병사들 사이에서도 누자베스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었다. 주둔지에서 누자베스의 이름을 모르는 병사는 없었다.

    게다가 처음엔 마물과 협력하는 것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던 병사들도 누자베스의 실력과 성품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누자베스가 스텔라의 사자라는 뜬소문을 진지하게 믿는 병사도 늘어났다.

    “그러면 카타쿨라를 처리하고 나면 어찌되는 거야?”

    병사들 중 누군가 그런 의문을 떠올렸다.

    현재는 카타쿨라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지만, 카타쿨라가 제거된 뒤에 리제와 누자베스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솔직히 누자베스 님이 차기 영주가 돼도 괜찮을 거 같은데.”

    “하기야 리제 님이 아무리 잘났어도, 중요한 일은 남자가 맡아야 하는 법이지.”

    “제정신들인가? 마물은 마물이지! 마물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싶다고?”

    “그건 그렇지만…… 여자가 영주인 건 모양새가 좀…….”

    잠자코 이야기를 흘려듣던 시릴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는 병사들이 모인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지? 방금 그 불경한 소리를 지껄인 자는.”

    뒤늦게 시릴스가 다가온 걸 눈치챈 병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다들 입을 꾹 다문 채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경고해 두지. 한 번만 더 지금 같은 헛소리를 떠들고 다니는 병사가 있다면 현장에서 처형해서 본보기로 삼겠다.”

    시릴스는 병사들의 얼굴을 기억해 두려는 것처럼 한 사람씩 노려본 후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런 협박이 그다지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시릴스도 잘 알고 있었다. 병사들 사이에서 누자베스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걸 막을 수도 없었다.

    누자베스는 뛰어난 무력과 우두머리로써의 아량을 갖춘 하이브 마인드다. 게다가 누구나 호감을 품을 법한 수려한 외모까지.

    심지어 리제도 누자베스가 병사들의 호감을 사고 있는 걸 딱히 견제하려는 기색도 없었다.

    ‘마음에 안 들어.’

    시릴스에겐 누자베스가 눈엣가시였다.

    이대로라면 카타쿨라를 처리하는데 성공하더라도, 누자베스가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아가씨께선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카타쿨라를 처리한 후 누자베스를 어떻게 제거할지 물어봐도 리제는 진지하게 대답한 적이 없었다.

    ‘어? 그럼 누자베스랑 결혼이라도 할까? 그러면 평화롭게 해결이 가능하잖아.’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농담만 웃으면서 내뱉을 뿐이었으니까.

    물론 이후의 문제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시릴스뿐만이 아니었다.

    * * *

    “111호 둥지의 항의서가 다섯 통이나 왔습니다. 시트란테 서도에 위치해 있는 다른 하이브 마인드들 역시 현재 765호 둥지의 행보에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래?”

    레오란드는 가지고 온 공식 서류를 누자베스 앞에 모조리 털어냈다.

    인간 영주와 협력하여 동지의 영역을 공격하고 있는 누자베스를 향한 비난이 적힌 서류들이었다.

    “이 항의서에는 765호 둥지에 대한 제재 조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항의서에는 마왕 폐하에 대한 역모죄를 적용시켜 처벌해야 된다고 적혀 있군요.”

    카타쿨라는 전투에서 패배하며 물러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감찰관인 레오란드에게 서신을 보냈다.

    인간 영주와 손을 잡은 누자베스를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내로남불이 따로 없구만. 자기가 갈라우드와 불가침 조약을 맺고 안전하게 힘을 비축한 건 로맨스고, 내가 하는 건 불륜이야?”

    “누자베스 님. 이건 더 이상 제 선에서 막을 수 없습니다. 공식 보고 조치를 묵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이 상부에 알려진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찰관 양반. 걱정하지 마. 내가 일주일 안으로 그 새끼 손가락 모조리 잘라서 귀찮게 못하게 할 테니까.”

    누자베스는 큭큭 웃으며 레오란드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그리고는 야전 코트를 어깨에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레오란드를 상대해줄 가치가 없다는 듯한 행동이다. 성장한 하이브 마인드가 감찰관을 대놓고 무시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레오란드는 어금니를 꽉 물며 농담기가 섞이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당장 인간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정정당당하게 동족 포식을 선언하십시오.”

    레오란드가 그렇게 말하자, 누자베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뒤를 돌아봤다.

    “레오란드. 그거 나한테 한 말이야?”

    “765호 둥지의 관리자 누자베스. 감찰관의 권한으로 최후 통보를 하는 것입니다.”

    “한 번만 못 들은 걸로 해줄게. 앞으로는 입 조심해서 열어.”

    “이건 경고입니다, 누자베스. 둥지의 관리자는 감찰관의 정당한 지시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경고?”

    그 순간 누자베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휘릭!

    레오란드의 시야가 상하로 반전되었고, 자신이 허공에 뜬 채 반바퀴 돌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쿠웅!

    “큭!”

    레오란드의 멱살을 붙잡아 그대로 바닥에 쳐박은 누자베스는 웃음끼 없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전쟁군주 누자베스다. 나의 모든 의지와 의도는 오로지 밤의 어머니의 뜻에 귀결되며, 나의 군세는 존귀한 혼돈의 의지를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감찰관 따위의 아가리에서 토해지는 싸구려 경고에 좌지우지 될 만큼 가볍지 않다. 그딴 시답잖은 경고로 겁을 주고 싶으면, 배양막도 안 벗겨진 애새끼들이나 데리고 놀아. 그 명패뿐인 직책과 목을 잘 간수하려면 아무쪼록 조심해야지. 안 그래?”

    레오란드는 확실할 수 있었다.

    누자베스는 더 이상 어린 하이브 마인드가 아니었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무기질적인 눈빛.

    명실상부한 전쟁군주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진짜 하이브 마인드가 됐군.’

    더 이상 판단을 보류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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