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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66화 (66/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66화

    삼파전(2)

    “애초에 말이야. 하이브 마인드한테 배설 기관은 필요 없잖아. 소화효율이 너무 좋아서 딱히 배설 행위를 하지 않으니까.”

    “하이브 마인드는 외형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었던가? 주군이 그런 식으로 원했으니 그런 형태가 된 것이겠지.”

    “그건 그런데…… 그래, 확실히 엉덩이 사이에 구멍이 없으면 이상하게 보긴 하겠지. 쓸 곳이 없다는 게 유일한 고민거리지만…….”

    기껏 달려 있으니 어딘가 써야 될 것 같다는 강박관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엉덩이에 암기를 숨겼다가 꺼내 쓸까? 멋지지 않아?”

    “……너무 멋져서 눈물이 날 것 같구만.”

    스칼렛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진지한 고찰을 흘려 넘겼다.

    그나저나 흡혈귀도 배설 행위를 안 하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그럼 흡혈귀도 배설 기관이 없는 건가?

    “인간의 몸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있긴 있네. 그리고 그런 실례되는 상상은 그만두게.”

    스칼렛은 이쪽을 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현재의 능력을 검토해 보라고 했지. 배설 기관의 활용법을 생각하라곤 안 했네.”

    “아, 그렇지…….”

    너무 깊게 몰두하고 말았다.

    일단 진격하기 전에 내 능력과 부대의 능력 검토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동안 꽤나 레벨이 올랐었지.’

    그간 꽤나 많은 전투를 겪어오며 내 능력치도 상당히 올라 있었다.

    바로 인터페이스창을 켜서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이름 : 누자베스]

    [레벨 : 108]

    [클래스 : 하이브 마인드]

    +[마계 평가 : 4등급 침식 둥지]

    -이명 : 없음

    +[왕조 평가 : 2단계 국지적 주의 단계]

    -이명 : 신예 전쟁 군주(아리카 섬)

    <스테이터스>

    [근력 : 60(50)] [민첩 : 60(50)]

    [체력 : 57(48)] [마력 : 113]

    [지배력 : 200(285) +210]

    <정보>

    [진화 진행도 : 8%(4회)]

    [경계도 : 1320] [위장 친화도 : 20]

    [지배 : 2110/2520]

    ‘드디어 100레벨을 넘겼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리카 섬에서 배양막을 뚫고 나왔을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별의 별 해괴한 개자식들과 투닥거리며 현재에 도달한 것이다.

    세글리트를 토벌하거나, 아비엥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메모리얼 전투에서 얻은 경험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후엔 북동부에 포진된 둥지를 집어 삼키며 지금의 레벨에 도달하게 되었다.

    진화도 두 번이나 더 했고.

    드디어 마계와 왕조에서도 내 존재를 겨우 ‘인식’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왕조 평가의 최고치는 규격 외 판데믹 단계거나, 1등급 성지화 령이지.’

    이 단계까지 도달한다면 내가 만들어낸 빌어먹을 사이코패스 두 놈을 제외하곤 공략이 불가능하게 된다.

    지금 내 등급은 ‘2단계 국지적 주의 단계’니까.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과 비슷한 정도의 경계도였다.

    ‘그리고 가장 체감되는 성장은…….’

    두 번째 진화를 거치며 얻은 두 개의 스킬.

    크랙 펠론 렌드마이어.

    크랙 에임페리얼 콜.

    이 스킬들을 전투에서 거듭해서 사용한 덕분에 랭크가 상당히 올랐다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 스킬을 얻었을 땐 발을 헛디뎠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스킬의 랭크가 상승하며 어쭙잖게 두 녀석의 능력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크랙 펠론 렌드마이어.

    류시혁처럼 검 한자루로 일기당천의 기세를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병력 열 마리 정도는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오거가 상대라면 5분 정도는 단신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

    이건 진짜 깜짝 놀라서 펄쩍 뛸 만큼의 성장이다. 내가 오거를 5분이나 붙잡고 있을 수 있다니!?

    만성 운동부족으로 매일같이 요통을 호소하던 내가 오거하고 맞다이 5분을 버티게 된 거란 말이다. 이 성장세에 안 놀라면 뭐에 놀라겠는가?

    ‘그리고 백주월 녀석의 스킬도 꽤나 쓸 만해졌지.’

    처음 스킬을 손에 넣었을 땐 손바닥만 한 나이프 몇 자루를 동시에 소환하는 게 고작이었다.

    조금만 구조가 복잡하거나, 질량이 큰 건 소환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간단한 포탄 정도는 수십 발도 동시에 소환해 낼 수 있었다.

    채널링 확장이 안 됐으니 현재 내가 속한 세계선의 병기만 소환할 수 있지만, 이 세계의 무기도 쓰다보면 쓸 만했다.

    물론 저번에 백주월이 보여준 핵미사일 수백 발 동시 전개 같은 건 도저히 따라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 짓이 가능했으면 일찍이 했다!

    카타쿨라의 둥지에 뚱뚱한 놈을 한 발 떨구고, 갈라우드의 성에 쪼끄만 놈을 한 발 떨궈서 개박살을 냈을 거란 말이다!

    ‘핵미사일까진 안 바라니까 헬파이어 정도는 소환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대 정보 창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 참가하는 병력은…….”

    스칼렛의 직계 부대인 ‘그레이브 야드’가 메인이다.

    구울 머스킷티어 870마리.

    모두 대륙의 국가 중 하나인 ‘솔라티아 연방국’의 제식 머스킷티어로 무장한 상태. 구울의 유일한 약점인 머리만 철제 투구로 덮어 놓은 덕분에 꽤나 현대식 군대처럼 보인다.

    부무장으로는 ‘대검’ 1자루.

    그리고 76식 투척탄’ 1발.

    그리고 ‘레드문 포션’ 2병.

    “우리는 카타쿨라가 아직 갈팡질팡하길 기도하며 움직여야겠네.”

    솔직히 이번엔 요행을 바래야 했다.

    이런 국지적 땅따먹기에 카타쿨라가 혈안이 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쪽의 병력도 양분된 상태에서 카타쿨라의 총력전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두르난 아재요. 관측반 쪽에서 연락은 없었어?”

    궐련을 입에 물며 비비큐 클럽의 부대장인 두르난을 향해 묻자. 두르난은 풍성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아직까진 이렇다 할 보고는 없구만. 그나저나 교전 규모가 커질 수록 포탄의 질적 향상을 꾀해야 하네. 내가 저번에 마나 정제소를 업그레이드해야 된다고 건의를 올렸는데 그건 언제쯤…….”

    “지금보다 농축도를 올리면 진짜 감당 안 된다니까. 지금도 한 발에 들어가는 마나석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째째한 소리를 하다가는 화력에서 밀리게 된단 말일세! 화력이 밀리는 순간 보병 부대는 그냥 걸어 다니는 표적에 불과하네!”

    “아,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업그레이드할게! 하겠습니다!!”

    “그래!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구먼! 으음?”

    두르난이 시선을 들어 석양이 지는 지평선 쪽을 바라봤다.

    휘이잉.

    자주빛 발광석 가루를 묻힌 화살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여러 방향에서 몇 번인가 더 화살이 솟구쳤다. 이쪽을 공격할 작정이라면 저런 얼간이 같은 사격을 해서는 안 된다.

    저건 어디까지나 비비큐 클럽의 관측반이 쏘아 올린 신호였다.

    “1024마리 이하. 오크. 9할 이상의 무장. 중장갑이군!”

    두르난은 바로 화살의 의미를 해석하여 전달했다.

    “카타쿨라네 애들이 드디어 우리랑 한번 뒹굴고 싶어졌나 보네.”

    킬킬 웃으며 궐련을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두르난, 스칼렛. 765호 둥지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놈들에게 똑똑히 알려줘야 되지 않겠냐?”

    야전 코트의 앞섬 버튼을 채우며 앞으로 나섰다.

    “그나저나 오크 놈들에게 조금 미안해지네. 우리 둥지에선 공주기사 같은 건 안 키우는데 말이야. 도대체 뭘 기대하고 저렇게 혈안이 돼서 달려오고 있는 걸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는 중장갑 오크 전사들을 내려다 봤다.

    “뭐…… 어쨌든 우리의 이웃사촌과 드디어 첫인사를 나누게 됐는데 대충 넘길 수 없지. 성대하게 환영해 줘라.”

    마인드 모드를 개시하자 허공에서 넓게 펼쳐진 평야가 한 눈에 보였다.

    [누자베스 : 내가 언덕 막기 유즈맵 초고수였다는 얘긴 전에 했었나?]

    일단은 중장갑 오크 1000여 마리.

    어느 정도 선에서 퇴각시킬 수 있을지 유의하며 전투를 개시해 보자.

    * * *

    “바체트령은 꽤나 기형적인 계급 구조를 지닌 지역이지. 글로레나 왕조는 본도에 상륙 후 빠르게 마족들을 쫓아내고, 영토를 확장해야만 했다. 확장 속도에 비해 인구 수의 증가는 더뎠고, 밀도가 떨어진 영토는 금새 다시 마족들의 수중에 떨어졌지.”

    오베론은 마상에서 두꺼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나란히 진격중이던 전술 부사관 오크 ‘그로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오베론. 곧 텐즈 강이 보인다. 조금 더 전투에 도움이 되는 얘길 하는 게 어떤가?”

    “그러니까 나는 이 기형적 구도가 우리의 전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하고 있네.”

    오베론은 그로카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인 뒤 이어 말했다.

    “영지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선 토착민들과 결착하는 게 우선이었지. 바체트령이 줄곧 마왕 아일라드의 영토였다고는 해도, 부족 단위로 모여 살던 인간들이 있었으니까.”

    바체트령에 세워진 영지의 대부분은 글로레나 왕조 출신의 귀족들이 영주 자리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영주는 본래 자신의 영지에 살던 ‘호족’들의 우두머리와 협력하여 영지를 유지해야만 했다.

    대륙의 영주들이 자신의 영지에서 왕처럼 행세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바체트령의 영주들은 ‘호족회’와 협력하여 공생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분명 아리카 섬에도 토착민들이 있었지. 현재 갈라우드와 긴밀하게 협력을 유지하고 있는 호족은 여덟 곳.”

    그 중에서도 호족장 조시네스의 호족이 단연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갈라우드가 아무리 아리카 섬의 영주라도 조시네스의 동의가 없다면 무엇 하나 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었다.

    조시네스의 호족은 이 섬에 글로레나 왕조의 귀족들과 마왕 아일라드의 군세가 터를 잡기 전부터 아리카 섬에서 살아온 일족이다.

    수천 년 간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고목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고목은 땅위로 드러난 것보다, 지면에 묻힌 뿌리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법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까지 뿌리가 뻗어 있을 만큼.

    오베론은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로카. 가장 체력이 좋고 발이 빠른 부대원 100명을 선별하여 가벼운 복장으로 대기시키도록.”

    “알았다, 오베론.”

    그로카가 오베론의 곁에서 벗어나 진격하고 있는 오크 부대 쪽으로 말을 몰았다.

    “누자베스라고 했던가? 이 늙은이를 너무 혹사시키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오베론은 느릿하게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진격의 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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