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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58화 (58/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58화

결전(2)

거대하게 펼쳐진 화면에는 아리카 섬의 북동부 지역이 비치고 있었다.

시트란테 서도의 감찰관 레오란드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상황을 지켜봤다.

‘765호 둥지의 관리자 누자베스.’

그리고 누자베스가 이번에 상대하게 된 적수는.

‘701호 둥지의 관리자 아비엥.’

701호와 765호.

두 둥지 모두 짧은 기간 동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장을 이뤄냈다.

성장 기반이 빈약하여 환경이 척박한 아리카 섬에서 이뤄낸 성과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레오란드는 종종 다른 지역의 감찰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이렇게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의 성장을 이뤄낸 하이브 마인드는 없었다.

‘아비엥은 초석 채굴장을 기반으로 초반에 빠르게 둥지를 성장시켰다. 게다가 에르바키나 연맹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

아비엥이 에르바키나 연맹의 시트란테 서도 지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레오란드도 알고 있었다.

에르바키나 연맹은 아리카 섬의 고착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리카 섬은 시장이 될 수 있는 지역이었으니까.

시장을 만들고, 우량 고객을 키워낸다.

그 과정에서 들어가는 약간의 코스트를 감수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점찍은 인물이 하이브 마인드 ‘아비엥’이었다.

‘그에 비해…….’

765호 둥지의 관리자 누자베스.

누자베스는 레오란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하이브 마인드였다.

아비엥처럼 확실한 초반 기반 시설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에르바키나 연맹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자베스는 그저.

아주 약간 기괴한 수를 취하는 둥지 관리자였다.

레오란드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판단. 합리성과 무연해 보이는 그 기행이 현재의 결과를 빚어냈다.

차라리 대놓고 유능했다면 이렇게 골치를 썩힐 일도 없었을 것이다.

레오란드는 여전히 누자베스에 대한 평가를 보류 중이었다.

‘이번 전투로 스스로의 평가에 종지부를 찍겠군.’

어떤 판단을 내렸고,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에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전투. 701호 둥지와의 결전에서 승리하여 아비엥의 둥지를 집어 삼킨다면?

누자베스는 자신이 아리카 섬의 주인이 될 만한 하이브 마인드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 된다.

지금까지 평가를 보류해 왔던 레오란드의 안목을 조소하듯 말이다.

“1인자와 2인자. 서로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던 놈들입니다. 이번 결전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스러운 3인자가 무대 위에 오른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군요.”

“코쿠라.”

레오란드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코쿠라가 집무실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코쿠라는 레오란드의 옆에 서서 아리카 섬의 전경이 펼쳐진 화면을 올려다 봤다.

레오란드는 짐짓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연맹에서 투자하던 쪽이 이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에르바키나 연맹의 시트란테 서도 지부장 코쿠라는 그 가시돋힌 말을 듣고는 빙긋 웃었다.

“예. 저희가 투자하던 쪽이 이기면 더 없이 좋겠지요.”

“혹여나 765호 둥지가 이기게 된다면 손해가 크겠습니다.”

레오란드가 그렇게 말하자, 코쿠라는 껄껄 웃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감찰관 나리? 투자하던 쪽이 765호 둥지인데.”

“헛소리! 701호 둥지의 편의를 봐준 걸 확인한 사안만 수십 개가 넘습니다!”

마치 자신을 장님 취급하는 듯한 코쿠라의 발언에 레오란드가 언성을 높였다.

비록 이런 벽지로 밀려난 처지였지만, 둥지 감찰관은 상당한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마족만이 얻을 수 있는 직위였다.

“그렇게 도끼눈 뜨지 마십쇼, 감찰관 나리.”

“그렇다면 코쿠라는 765호의 승리를 예상하고 지원을 해왔다고 말하는 겁니까?”

“예.”

코쿠라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대답했다.

“보이지 않으십니까? 저렇게나 먹음직스러운 만찬을 준비해 놨습니다. 미래의 우량 고객을 위해서 말입니다.”

“말도 안 됩니다. 아비엥과 누자베스. 어딜 어떻게 보든 아비엥이 우세한 게임이었습니다. 누자베스에게 배팅하는 건 장사꾼이 아니라 도박꾼입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제게 765호 둥지의 관리자 누자베스가 헬베르카의 말예라는 사실을 알려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감찰관 나리입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이요? 헬베르카는 반 르낙시아의 시대를 열었던 전설적인 가문입니다. 설령 765호 둥지의 관리자가 그 전설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반푼이일지라도. 밤의 어머니께서 사랑하시지 않을 리 없습니다.”

헬베르카는 밤의 어머니 테네브레가 사랑했던 가문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면 누자베스가 지금까지 연달아 얻어 왔던 기연은 아주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그 총애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코쿠라는 지금까지 누자베스에게 먹일 돼지를 살찌워놨다는 겁니까?”

“제가 정성스럽게 키워낸 둥지입니다. 누자베스가 701호 둥지를 포식한다면 카타쿨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누자베스를 지원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그런 의문을 내뱉으려 했지만.

레오란드는 이내 코쿠라의 진의를 간파했다.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고 있었다.’

레오란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저 음흉한 상인 코쿠라를 바라봤다.

‘동시에 누자베스가 차려놓은 만찬을 먹을 자격이 있는 인물인지 시험했군.’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

‘전가되는 책임의 양을 최소화하기까지.’

코쿠라가 아비엥을 지원한 이유가 명백해졌다.

레오란드는 그 행동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아리카 섬에 드디어 삼파전의 시대가 도래하겠군요. 그리고 누가 살아남든 아리카 섬은 온전하게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인간의 영주 갈라우드.

하이브 마인드 카타쿨라 남작.

그리고 이번 결전의 승리자가 난입한 삼파전 양상.

“이 비루한 장사치는 이미 배팅을 끝냈습니다. 이 독존극의 주역이 누가 될지 점찍어 놨단 얘기입니다.”

“누자베스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비릿한 미소였다.

“감찰관 나리도 어서 줄을 서는 것이 좋겠습니다. 콩고물이라도 하나 더 얻어먹으려면 말이죠.”

과연 누가 ‘아리카’의 이름을 이어 받을 것인가?

레오란드의 고심은 깊어져 갔다.

* * *

아비엥의 부대는 세 줄기로 나눠져 진격을 개시했다.

중앙의 구릉선을 따라 곧장 내려오는 쪽이 제1부대. 아비엥이 후방에서 직접 지휘를 하고 있기에 챔피언이 붙지 않았다.

그리고 남쪽의 굴덴 마을까지 이어지는 하천을 따라 진격해 오는 쪽이 제2부대. 이쪽엔 챔피언 ‘분다’가 지휘를 맡고 있었다.

마지막 북쪽 비탄의 숲을 끼고 산세를 넘는 쪽이 제3부대. 지휘자는 사크바하.

[누자베스 : 제2부대는 루칸다와 비르겐슈타인, 고블린 서비스가 저지한다. 부대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다.]

200마리가 넘는 머스킷티어 부대를 상대로 어찌 싸움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제필프의 최종선고’로 무장한 분다가 선두에서 달려들면 누자베스의 병력은 순식간에 전멸 확정이었다.

저지라기 보다는 거리를 확보한 상태로 최대한 진격 속도를 늦추는 것이 목표였다.

[누자베스 : 스칼렛. 구릉선 따라 오는 놈들은 300마리 쯤 되는 거 같은데?]

[스칼렛 : 이쪽의 3배로군.]

3배 차이.

이 규모차는 어지간한 수단으로 상쇄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구울의 불사성을 이용한 역습은 이미 사용했으니 아비엥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이번 전투에서 ‘은탄’으로 무장하지 않았나?

‘아무리 스칼렛의 머스킷티어 부대가 질적으로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이건 안 되겠지.’

사크바하가 이끄는 제3부대를 일단 뒤로 미루고, 언더 케이지 부대를 중앙에 추가 배치할지 고민하던 찰나.

[스칼렛 : 성배를 받아간 값은 치루도록 하지.]

[누자베스 : 뭐 좋은 작전이라도 있어?]

[스칼렛 :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않나? 그냥 귀공의 고민 하나를 줄여준다는 의미일세. 중앙의 제1부대는 그레이브 야드 부대만으로 저지하고 있을 테니 다른 쪽으로 병력을 돌리게.]

그렇다면 마지막 제3부대는 자연스럽게 햄토리의 언더 케이지 부대가 맡게 된다.

[누자베스 : 햄토리.]

[햄토리 : 쮸쮸!]

[누자베스 : 나랑 이 짓거리 해먹는 것도 지랄 맞지 않냐. 어떻게 지금까지 쉬운 싸움이 한 번도 없냐 진짜.]

[햄토리 : 쮸!]

[누자베스 : 지금까지 쉽지 않았던 싸움뿐이었지만. 그 쉽지 않았던 싸움에서 언제나 언더 케이지 부대가 한 건씩 해냈지.]

[햄토리 : 쮸, 쮸쮸!]

[누자베스 : 햄토리, 녀석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지랄맞은 싸움만 해왔는지 알려줘라.]

따악!

누자베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둥지 입구 근처에 설치되어 있던 박격포가 불을 뿜었다.

다섯 발의 농축 마력탄은 밤하늘을 꿰뚫을 듯 치솟았고, 이내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콰과과광!!

포탄이 떨어진 곳은 701호 둥지의 제2부대가 진격하던 방향이었다.

“캬악!”

“키륵! 키륵!”

정열된 고블린 머스킷티어 부대의 측면으로 떨어져 빗맞은 수준이었지만. 폭발에 휩쓸려 고블린 십수 마리가 갈기갈기 찢겨 허공으로 치솟았다.

첫 포격이 결전의 막을 올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아비엥의 군세가 무서운 기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 놈은 무대 아래로 퇴장해야만 했다.

* * *

서걱!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고블린 머스킷티어의 몸뚱이가 두동강났다.

서걱, 서걱!

이어서 두 마리가 더 당한 뒤에야 701호 둥지의 제2부대는 사태를 파악했다.

“키! 키륵!!”

고블린 머스킷티어 한 마리가 재빠르게 섬광탄을 꺼내 허공을 향해 던졌다.

펑!

허공에서 폭발한 섬광탄은 더욱 높게 치솟았고.

퍼엉!

두 번째 폭발과 함께 주변이 대낮처럼 환하게 물들었다.

고블린 살수가 접근한 것이다.

765호 둥지의 ‘비르겐슈타인’ 부대에 대해선 이미 대비책을 세워 놓고 있었다.

일정 명도 이상에선 모습을 숨길 수 없으니 각 부대마다 섬광탄을 지참하고 있었다.

“키륵?”

“키륵키륵!”

“키륵!”

하지만 비르겐슈타인 부대도 섬광탄의 효과 시간 동안 근접해 있을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섬광탄을 꺼내는 걸 확인한 것과 동시에 거리를 벌려 모습을 숨긴 뒤였다.

덕분에 잠시 부대의 진격이 멈춘 순간.

파바바밧!

수풀 사이로 수십여 발의 석궁 볼트가 날아와 꽂혔다.

“캬악!”

“키!”

쉬이이익!

그리고 한 발의 석궁 볼트는 청색의 궤적을 그리며 기괴한 궤도로 날았다. 마치 실로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곡선을 그리며 날더니.

파바박!

나란히 서 있던 고블린 머스킷티어 세 마리의 측두를 차례대로 꿰뚫었다.

“키륵키륵.”

고블린 서비스의 부대장 보르가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보르가가 쥐고 있는 석궁은 이번에 둥지의 관리자 누자베스에게 받은 새로운 무기였다.

‘우키라의 석궁’에서 발사된 볼트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사냥감을 찾아 허공을 헤엄쳤다.

“키륵.”

보르가가 석궁을 재장전하며 부대원들을 향해 퇴각 신호를 내렸다. 다시 뒤로 물러나 한 번 더 기습하고, 그런 식으로 진격 속도를 늦출 생각이었다.

“우워어어어어어!!”

그 순간.

거대한 그림자가 수풀이 우거진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깜짝 놀랄만큼 빠르군.”

루칸다가 씹고 있던 담배잎을 내뱉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번 전투에서 오거 분다의 담당자는 루칸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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