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55화 (55/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55화

    쥐와 고양이(3)

    백주월.

    나는 이 새끼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웹소설 작가로 살아오며 창조해낸 캐릭터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일 만큼 또라이 새끼다.

    물론 백주월의 포악함을 ‘또라이’라는 한 단어에 모두 일축할 수도 없고, 감히 형언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광견.

    또라이.

    미친 새끼.

    사이코패스.

    그게 아니면 뭐 진성 인격파탄자든 뭐든.

    백주월의 사고 매커니즘은 매우 단조롭고 단순하다.

    눈에 거슬리면 죽인다.

    거슬릴 거 같으면 죽인다.

    거슬리지 않아도 죽인다!

    그냥 이놈이고 저놈이고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죽이고 본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나 죄악감 따윈 눈곱만큼도 없는데, 기가 막히게도 뭔가를 죽이는 능력은 톱클래스다.

    형식적으로는 글로레나 왕국의 공화정 지지파가 소환해낸 용사였지만. 하고 다니는 일은 마왕 뺨따구 후려칠 만큼 잔인한 놈이었다.

    ‘내 과거의 업보를 여기서 마주하게 되는구나…….’

    원고 작업하기 싫다는 이유로.

    생각하며 글쓰기 싫다고 만들어낸 킬링머신 사이코패스와 이런 식으로 조우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

    솔직히 고백하자면 좋았다.

    백주월이란 캐릭터를 주연으로 삼아 원고 작업을 할 때는 편했단 말이다!

    나쁜 놈이든 착한 놈이든 백주월을 방해하는 캐릭터들을 적당히 등장시키고, 백주월이 2편 분량만에 모조리 공중폭발시켜버리는 결말을 쓰면 끝이었으니까!

    그런 스테레오 타입의 에피소드를 쓸 때는 편하고 좋았는데, 내가 스테레오 타입 에피소드의 희생양이 될 줄이야!

    ‘젠장, 젠장젠장! 하필이면 백주월이냐!!’

    방금 전의 폭발로 확신이 섰다.

    피르에나 왕녀의 유격대를 박살내고, 퇴각시킨 장본인이 바로 백주월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지? 이제 어쩌지? 도망칠 수 있나?’

    불행 중 다행이라면 백주월과의 거리가 꽤 된다는 점이다. 이쪽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거리.

    마인드 모드로 필드 전체를 확인해야만 백주월이 서 있는 언덕이 보였다.

    10키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는 소리다.

    이건 꽤나 이쪽에게 기행이 따라준 상황이다.

    ‘특정성만 식별당하지 않으면 된다.’

    나와 내 부대는 그저 백주월에게 성가신 날파리 무리 정도로 인식되면 다행이다.

    도망치는데 성공만 한다면 백주월도 집요하게 이쪽을 쫓는 등의 귀찮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루칸다! 쿠아가 황야에는 언제 도착해?”

    “각하 저도 십수 년 전의 일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습니다. 이제 곧 전진 기지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만…… 그나저나 방금 그 폭발은…….”

    “메테오 아냐? 마왕군 상급 부대에 속한 리치는 7서클 마법도 쓸 줄 안다는데.”

    페페가 나름대로 그럴싸한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저건 메테오 같이 미적지근한 게 아니다.

    155㎜ 유도 대인유탄 병기.

    일명 ‘엑스칼리버’라고 불리는 최신예 병기다.

    단 한 발을 던져본 건 백주월의 능력이 그 정도뿐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간을 본 것뿐이다.

    이쪽이 그럴싸한 대응을 취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끝장을 내려 할 것이다.

    한 발이 아니라 수백 발의 대인유탄 세례를 쏟아부을 예정이란 말이다.

    ‘미친 새끼…… 중세판타지 배경인데 대인유탄 같은 걸 쓰는 건 반칙이잖아.’

    하기야 백린탄도 거리낌없이 퍼붓는 인간말종인데 그딴 걸 신경 쓰겠나?

    ‘녀석의 눈에 띄는 건 진짜 피하고 싶지만…….’

    만약 다음에 다시 포격을 가하려 한다면 이쪽도 비장의 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댓가로 녀석의 흥미를 끌게 되고, 특정성을 인식당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어처구니 없게 죽는 것보단 낫지 않나.

    바짝 엎드린 채 다음 캐스팅을 기다려 보자.

    “…….”

    역시나 백주월의 주변에 거대한 시공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녀석의 고유 능력인 ‘에임페리얼 콜’의 전조 현상이다. 저 균열에서 말도 안 되는 무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최근에 쓴 원고에선 채널링이 거듭되어 확장되며 ‘엔터프라이즈 호’를 소환하니 마니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물 위에 떠다니는 구시대의 병기가 아니라, 등록번호 NCC-1701인 바로 그 함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쓴 원고에선 백주월이 메모리얼 전투에 참가한 적이 없으니까.’

    그 이후의 백주월이란 말이다.

    한 마디로 은하계를 상대로 혼자 싸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백주월이다.

    구태여 엑스칼리버를 쓰고 있는 건 이쪽의 수준이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구더기 같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얘기겠지.

    그리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시공 균열에서 솟아난 것은 수백 발의 엑스칼리버였다.

    “하…….”

    아직도 피르에나 왕녀와 유격대는 쿠아가 황야에 도착하지 못했는지 전투가 완료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제발 이런 시답잖은 잔재주로 관심 가져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마인드 모드를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시공 균열에서 포탄이 절반쯤 소환되어 현화한 순간.

    백주월을 중심으로 두고 ‘침묵의 밤’스킬을 발동시켰다.

    파아아아앗!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백주월이 서 있는 지역 전체를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열려 있던 시공 균열이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결국 에임페리얼 콜 역시 스킬의 일종.

    내 스킬인 ‘침묵의 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흐아아…… 저질렀다. 이번엔 진짜 저질렀다.”

    유격대의 퇴각을 도운 것도 백주월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짓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해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직접적으로 백주월의 스킬 캐스팅을 방해하는 것과 비교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페페…… 죽기 전에 소원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가슴을 만져보고 싶었어요.”

    미소녀 가슴도 만져보지 못하고 끝나면 이세계물 소설로써 실격 아닌가.

    진짜 진심이 담긴 진실된 진담이다.

    * * *

    백주월의 손이 멈췄다.

    바위에 걸터 앉아 닥터마틴 워커화의 끈을 묶고 있던 중이었다.

    고개를 들자, 성별이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수려한 얼굴이 드러났다. 강박증에 시달리는 조각가가 깎아낸 듯 조형적인 완벽함을 갖춘 이목구비와 턱선.

    눈을 깜빡일 때마다 깊어져가는 듯 보이는 갈색의 눈동자. 신경질적인 성격을 대변하는 삼백안.

    그리고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별빛을 반사하는 강물처럼 보이는 긴 남색 머리카락. 꽤나 볼륨감이 풍부하지만, 여러모로 솜씨 좋게 정돈된 느낌이다.

    백주월이 이 세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 인물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백주월은 주변을 둘러보며 시공 균열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눈가에는 아주 약간의 당혹감과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잠시 후.

    수 초가 지난 후 백주월은 상황을 파악했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 것은 그와 동시였다.

    하지만 반응은 딱 거기까지였다.

    고작 이런 잔재주에 백주월이 감탄하거나 흥미를 지닐 리 없었다. 더군다나 위기감 따위는 더더욱 느낄 리 없다.

    버러지 주제에 구르는 재주가 하나쯤은 있네.

    그 정도의 감상이었을 것이다.

    백주월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워커화의 신발끈 구멍에 끈을 꿰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곱게는 안 죽여.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봐주는 거야.”

    그런 혼자말을 중얼거리는 사이에.

    하늘을 가득 뒤덮을 만큼 거대한 균열이 열리기 시작했다.

    고작 국지의 스킬 캐스팅을 캔슬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규모였다.

    그리고 고통없이 일격에 죽여준다는 건 백주월이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였다. 물론 살려준다는 선택지 따윈 머릿속에 처음부터 없었다.

    균열에서 솟아나오기 시작한 것은 핵탄두를 탑재한 ICBM 수백 발이었다.

    소환이 완료되고 ICBM이 일제히 지면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한 것과 동시였다.

    [목표 : 르 만타나 유격대 격퇴(1/1)를 완료했습니다.]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메모리얼 전투 ‘교차하는 시간선’을 완료했습니다.]

    [캐릭터 도감에 ‘누자베스’가 추가되었습니다.]

    [메모리얼 전투 ‘마왕 누자베스의 영지’가 등록되었습니다.]

    백주월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지겨운 작업에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목표 : 피르에나의 생존(1/1)을 완료했습니다.]

    [목표 : 루칸다의 생존(1/1)을 완료했습니다.]

    [목표 : 쿠아가 황야의 전진 기지 도착(1/1)을 완료했습니다.]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메모리얼 전투 ‘쿠아가 황야를 향하여’를 완료했습니다.]

    [보상 : 드워프 박격포 분대×5를 획득했습니다.]

    [캐릭터 도감에 ‘백주월’이 추가되었습니다.]

    숨이 토해졌다.

    순간 눈앞을 가득 채운 시스템 메시지 너머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내 둥지. 765호 둥지의 심부였다.

    응축되어 있던 공포가 해소되며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살았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멈추지 않는다.

    바로 눈앞까지 수백 발의 미사일이 쏟아지는 걸 목격한 직후였다.

    진짜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살았다, 난 살았다고……! 살았어, 난 살아 있다!! 니기 ×부랄 놈들아!!’

    눈물이 찔끔난다.

    가루도 남지 않고 증발할 뻔한 경험은 흔치 않을 것이다.

    무사히 증발하기 직전 메모리얼 전투가 완료된 덕분에 상처 하나 없이 둥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페페한테 얻어 맞은 뺨이 욱씬거리는 것만 빼면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보상, 보상은?”

    내가 목숨을 걸고 얻어낸 보상 말이다!

    부가 목표의 보상이었던 우키라의 석궁은 고블린 서비스의 부대장인 보르가에게 넘기기로 하고.

    진짜 목적이었던 박격포 분대가 아직 안 보인다.

    “설마 무슨 오류 같은 걸로 못 받는다거나 그런 3류 쓰레기 전개면 하차한다. 인생 하차한다!”

    인생이 아니라 마생이지만.

    어쨌거나 두근거리는 심장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잠시 기다리자.

    이쪽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소환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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