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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54화 (54/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54화

    쥐와 고양이(2)

    순식간에 전투의 양상이 기울기 시작했다.

    구울 머스킷티어 부대는 스컬지 부대의 부대장 우키라의 예상 이상으로 선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단순히 잘 훈련된 부대라고 치부하기엔 그 움직임이 너무나 정교했다.

    구울 머스킷티어들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완벽하게 연계하듯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하급 마물인 구울을 이 정도 수준까지 훈련시킬 수 있을 리는 없다. 애초에 그렇게 지능이 높은 마물이 아니란 말이다.

    지능뿐만 아니라, 모든 능력치 자체가 낮은 마물이다.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는 특징만 빼면 보잘것없는 마물이었다.

    통상적인 구울 부대란.

    느릿하게 움직이는 석궁 사격 표적판이다.

    그런 우키라의 예상을 비웃듯 구울 머스킷티어 부대는 착실하게 스컬지 부대를 각개 격파하고 있었다.

    ‘어떻게 구울 따위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구울 부대의 지휘자가 나르시안의 직계에 해당하는 흡혈귀였기 때문이다.

    수백 마리에 달하는 구울을 대상으로 일제히 정신 간섭을 행할 수 있다. 구울들이 별도의 훈련도 받지 않았음에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니까 이 전투의 승패는 병력의 질과 규모에서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다.

    지휘자의 능력 자체가 규격이 달랐다.

    아무리 우키라가 우수한 지휘자라고 할지라도.

    나르시안의 직계 자손. 그것도 ‘반 르낙시아’의 현존과 비견될 수는 없었다.

    비록 스칼렛이 모든 힘을 잃고 몰락한 흡혈귀라고 할지라도 그 태생적 한계치는 명확했다.

    “꽤나 재빨라서 맞추기가 어렵군.”

    타앙!

    스칼렛은 칠면조 사냥에 나선 노인처럼 느긋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100여 마리에 달하는 구울 부대를 각개 지휘하면서도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거기에 기묘한 방패를 지닌 렛맨 전사까지 가세해서 공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어째선지 석궁의 볼트를 방패로 막아낼 때마다 드루에나에 타고 있던 석궁 사수가 픽픽 쓰러져 나갔다.

    “쮸우, 쮸쮸. 쮸, 쮸쮸-!”

    텅텅!

    방패를 두들기며 스컬지 부대원들을 도발하기까지!

    이 더러운 전선을 전전하며 별의별 쌍욕은 다 들어본 우키라라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너희 엄마 인간이라니!

    그런 패륜적인 모욕은 마생 30년 동안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저 쥐새끼부터 죽여어어!!”

    우키라가 지휘용 검을 빼들어 햄토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우키라가 타고 있던 드루에나 역시 햄토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쉬익!

    “큭!”

    예리한 검격이 우키라의 어깨를 스쳤다!

    순간적으로 상체의 방향을 틀어 피하지 않았다면 몸이 양단됐을 만큼 위력적인 일격이었다.

    페페는 곧장 추격타를 가하려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드루에나가 방향을 틀기 위해 잠시 속도를 줄인 순간!

    페페의 시선이 우키라의 뒤쪽으로 향했다.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그 찰나의 신호를 놓칠 우키라가 아니었다.

    ‘뒤쪽에서 협공?’

    바로 뒤를 돌아본 순간.

    우키라는 자신이 저급한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기를 가르며 추락하는 소리가 머리 위쪽에서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우키라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봤다.

    “뭐냐, 저건……!!”

    우키라의 머리 위에서 수십여 자루의 투창이 추락하고 있었다.

    마치 소나기의 빗방울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투창들과 함께 누자베스가 전장에 발을 들였다.

    * * *

    [부가 목표 : 마왕군 병력 처치(100/100)를 완료했습니다.]

    [부가 목표 : 추격대 대장 우키라 처치 (1/1)를 완료했습니다.]

    [부가 보상 ‘정제된 마나 12000’, ‘우키라의 석궁’을 획득했습니다.]

    “후우! 이거 첫 메모리얼 전투라고 쉬운 게 걸렸나 보네.”

    순식간에 전멸한 스컬지 부대의 잔해를 둘러보며 숨을 돌렸다.

    이번에 레벨이 오르며 ‘에임페리얼 콜’의 스킬 랭크가 같이 올랐고. 그 덕분에 단검보다 더 큰 질량을 지닌 무기까지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선 단검이 아닌 투창을 허공에 소환해서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트랩을 만들어본 것이다.

    우키라 녀석이 꽤나 재빠른 놈이라 모조리 맞아주진 않았지만, 드루에나가 투창에 꿰뚫려 즉사했고 그 다음에 우키라를 페페와의 협공으로 처리해 냈다.

    나머지 병력은 내 둥지의 하드캐리 머신인 스칼렛이 알아서 다 처리해줬고 말이다.

    “그럼 이제 추격대도 다 처리했으니까…….”

    아직까진 메모리얼 전투의 메인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컬지 부대를 모조리 전멸시켰으니 이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피르에나 왕녀의 유격대가 무사히 쿠아가 황야에 도착할 것이다.

    이 메인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메모리얼 전투가 종료되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구조다.

    “이런, 제가 조금 늦은 모양이군요.”

    “루칸다 이번엔 꿀 좀 많이 빨았냐.”

    “두세 마리 정도가 후미에 달라붙은 걸 처리했습니다. 그 외엔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

    루칸다가 뒤늦게 돌아왔고, 이걸로 내 부대가 모두 무사히 집결했다. 구울 부대에서 20여 마리에 달하는 전사자가 나오긴 했지만, 메모리얼 전투에서 생긴 피해는 본래 세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실제로 류시혁의 동료들이 메모리얼 전투에서 죽어도 다시 되살아났고 말이다.

    ‘그나저나 류시혁 그 녀석이 죽은 적이 없네. 메모리얼 전투의 주체인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당장 고민해 봐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루칸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유격대의 첫 패전 원인이 뭐였어?”

    이건 꽤나 당연한 질문을 하는 것 같아 민망한 기분이 든다.

    당연히 상대가 더 강했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하지만 르 만타나 유격대는 무패를 자랑하던 최강의 정예부대가 아니던가?

    그 패전에는 꽤나 이질적인 이유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묻자, 루칸다는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는 오른쪽 어깨의 뒷부분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의 마왕군은 처음 보는 병기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공중에서 기폭되어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포탄이었죠.”

    루칸다의 어깨에는 끔찍한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표면이 그을린 것이 아니라, 움푹 패인 화상 자국이다.

    “그 신병기에 유격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연기에 닿으면 꺼지지 않는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고, 연기에 닿지 않아도 독성에 당한 것처럼 죽는 전우들도 수두룩했습니다.”

    불이 붙은 곳을 검으로 도려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유격대에게 그 병기는 ‘죽음의 천사’라고 불렸다.

    ‘잠깐? 유격대의 패전은 내 소설의 시간대보다 이전인데. 그런 신병기가 개발되었다면 소설 내에서도 언급이 됐을 텐데?’

    게다가 어쩐지 그 ‘죽음의 천사’라는 병기의 특징이 내가 알고 있는 병기와 너무나 흡사했다.

    “혹시 마왕군 쪽에 예쁘장하게 생긴 인간도 있었어?”

    “인간 말입니까? 워낙 난전이 거듭됐던 터라……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목격하진 못했습니다.”

    “포탄의 발포음은?”

    “……없었습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발포음이 없는 걸 기괴하게 여겼기에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확정이었다.

    확실해졌다.

    피르에나 왕녀의 유격대가 패배한 원인이 무엇인지 말이다.

    ‘메모리얼 전투의 참가 요건만 따지자면…… 백주월도 가능성이 있었지.’

    류시혁도 가능하고, 나도 가능하다면 백주월 역시 불가능할 리가 없다.

    내가 쓰던 원고에선 메모리얼 전투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백주월이 메모리얼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분했다.

    ‘죽음의 천사라는 그 병기는 아마도 백주월이 즐겨 쓰는 백린탄이겠지.’

    그 사이코패스 새끼는 냉병기 시대에 대한 존중과 로망이 없는 놈이다.

    검과 마법! 중세 판타지! 이런 매력적인 세계관을 즐긴다는 발상은 전혀 없는 놈이다!

    9서클 대현자의 마나 배리어를 ‘대륙간 탄도 미사일’로 뚫어버리고 비웃는 게 일상인 놈이란 말이다.

    백주월에 비하면 류시혁은 아주 양반이다.

    양반도 그냥 양반이 아니고 상양반이다!

    ‘혹시 백주월이 피르에나 왕녀를 타깃으로 삼아서 메모리얼 전투에 참여했던 거라면…….’

    눈이 질끈 감겼다.

    눈물이 바들바들 떨리고 손발이 난다.

    ‘나 설마 그 사이코패스 새끼가 하는 짓에 훼방을 놓은 거야……?’

    등골이 오싹했다.

    식은땀까지 맺힐 지경이다.

    호흡곤란이 온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고, 속이 다 울렁거린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이거 언제 끝나냐…… 유격대가 언제쯤 쿠아가 황야에 도착할까?”

    메인 목표는 유격대가 쿠아가 황야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다. 그때까진 메모리얼 전투가 종료되지 않는다.

    “방금 전의 이동 경로를 봐서는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나저나 각하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우, 우리도 그럼 뒤를 따라갈까? 여기에 멍하니 있는 것보단 운동도 되고 좋을 것 같은데.”

    만에 하나.

    확률은 희박하지만.

    추격대가 전멸한 덕분에 피르에나 왕녀가 무사히 쿠아가 황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녀석이 알게 된다면…….

    ‘죽는다. 진짜로 죽는다…….’

    곱게 죽지도 못하겠지.

    붙잡히는 순간이 끝이다.

    내 둥지의 병력으로는 그 사이코패스 새끼를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백주월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짓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다. 붙잡혀서 묘사할 수도 없을 만큼 잔인한 짓을 당하다가 끔찍하게 살해당할 것이다.

    “챙길 거 다 챙겼으며 바로 이동한다! 최대한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콰앙!

    시야의 전체가 새하얗게 번질 만큼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덮쳐왔고, 시각과 청각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지면을 몇 바퀴나 굴렀다.

    와르르륵!

    그리고 그 폭발 직후 협곡이 무너지며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페페가 재빠르게 다가와 나를 감싼 덕분에 폭발의 잔해에 휩쓸려 죽는 건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몸이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제대로 호흡조차 할 수 없다.

    저 정도 위력의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흔치 않다는 사실은 확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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