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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47화 (47/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47화

    결전(2)

    페페는 촉이 좋은 편에 속하는 모험가였다.

    모험가의 필수 덕목인 논리적 추론 과정에 관해선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경험에서 비롯되는 직관과 본능적인 직감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밤 이렇게 페페가 비탄의 숲으로 발을 들인 것도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마물? 어째서 저 정도 규모의 병력이 출전해 있는 거지?’

    그리고 페페가 목격한 것은 701호 둥지의 병력.

    머스킷으로 무장한 수백 마리의 고블린 부대다. 게다가 대륙제 병기로 보이는 대포도 드문드문 보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따로 있었다.

    ‘오거.’

    그리고 단신으로 오거에 맞서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다. 헛웃음이 나올 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애초에 오거는 숙달된 모험가 팀이 집단으로 사냥해야 되는 마물이다. 게다가 반드시 상대해야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상책.

    그런 위험한 마물을 홀로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의 분투는 페페의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때때로 흐릿한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갈 때면, 소년은 일순간이지만 오거를 밀어붙이는 듯한 형세까지 보였다.

    소년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다른 모험가가 있다는 얘긴…….’

    그 순간 페페의 뇌리에 섬광이 스쳤다.

    저 체형. 저런 체형의 모험가는 흔치 않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오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소년이 누군지 명확해졌다.

    “서, 설마 누자베스……!?”

    경악하거나 놀랄 여유는 없었다.

    이미 누자베스는 오거에게 당한 상처로 만신창이였으니까. 여기서 여유롭게 놀라고 있다간 누자베스가 오거에게 으깨져 죽으리란 점은 확실했다.

    페페가 가파른 절벽을 단숨에 도약하여 전장으로 발을 들였다.

    “저 멍청이는 뭐하는 거야!”

    오거를 단신으로 상대하다니!

    무모한 짓도 정도가 있었다.

    페페는 허벅지의 홀스터에서 재빠르게 투척용 나이프를 뽑아 던졌다.

    쉭!

    나이프는 밤공기를 가르며, 정확하게 분다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갔다.

    하지만 분다는 그 찰나의 순간 고개를 틀어 나이프를 피해냈다. 이 정도의 기습까지 대응할 정도의 민첩성!

    타닷!

    그러나 페페도 어중이떠중이 같은 아마추어 모험가가 아니다. 그대로 지체 없이 거리를 좁혔고, 지면 위로 뛰어 올랐다.

    빠아악!

    지켜보던 모든 이가 입을 쩍 벌릴 만큼 통쾌한 발차기였다. 분다의 턱이 돌아가는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크억!!”

    분다의 입에서 솟구친 핏방울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어, 페페? 내가 죽을 때가 다 돼서 헛것을 보는 건가…….”

    “헛소리 그만하고 검이나 내놔!”

    갑작스러운 난입에 놀란 누자베스가 멈춰 섰고, 페페는 누자베스의 검을 낚아채듯 뺏더니 다시 한 번 오거에게 달려들었다.

    ‘죽일 필요까진 없어. 전의만 꺾고, 누자베스를 데리고 자리를 뜨면 그만이야.’

    확실히 전문가다운 판단이었다.

    이미 오거 분다는 ‘전투 고양’으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상당히 상승한 상황이다. 초보 모험가팀은 이런 특성을 모르고, 오거를 장기전으로 상대하다 역으로 당하기 마련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아무리 페페라도 당장 큰 피해를 감수하며 오거를 사냥할 필요가 없었다.

    모험가와 마물의 관계는 사냥꾼과 사냥감의 관계와 같다.

    결코 사투를 벌여서는 안 된다. 자신이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피해량 제로를 목표로 안전하게 사냥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죽인다! 분다 아프다아-!!”

    “도루란만 데리고 왔어도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 놓는 건데!”

    페페는 조잡한 검을 고쳐 쥐며 분다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일순간 페페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붉은 궤적이 분다의 몸을 꿰뚫었다.

    “크아아악!”

    촤아악!

    다시 모습을 드러낸 페페는 자세를 숙여 속도를 줄였다. 흙바닥이 긁히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다시 도약했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

    붉은 궤적이 유아한 곡선을 그리며 분다의 목과 어깨 사이를 사선으로 갈랐다.

    ‘아니, 무슨 이런 촌동네에 저런 수준의 모험가가 다 있어?’

    누자베스는 페페의 수준을 드디어 정확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별거 없는 섬에 있을 리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수준의 모험가다.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왕도에서 직계 왕령을 받아 활동하는 팀에 속할 수도 있었다.

    “분드아아아! 아프드아아아!!”

    쿠웅!

    분다가 찢겨나간 부위를 움켜쥐며 무릎을 꿇었다.

    운이 좋았다.

    페페는 분다가 성체 오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냈다. 만약 성체 오거였다면 저 정도 상처를 입어도, 더 격하게 날뛰었을 것이다.

    페페는 혀를 차며 구부러진 검을 내던졌다.

    “어느 둥지에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해볼래? 징그러운 둥지에 틀어박힌 것보단 상황이 좋은데.”

    페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는 고요한 숲의 대기를 타고 아비엥에게 똑똑히 들렸다.

    “아비엥 각하. 사크바하의 부대가 퇴각하고 있습니다.”

    “퇴각하는 사크바하를 쫓아 765호의 본대가 돌아올 겁니다.”

    각 부대장이 아비엥에게 현황을 보고했다.

    아비엥은 이빨을 바득바득 갈며 쓰러져 가는 누자베스를 노려봤다.

    사크바하 부대의 패주.

    분다의 전투 불능 상황.

    거기에 상당한 실력의 모험가가 난입해 왔다.

    여기서 더 이상 전투를 치렀다간 막심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누자베스…….”

    게거품이 뿜어져 나올 만큼 속이 뒤집혔다.

    양측이 그 어떤 소득도 없이 물러나게 되었지만, 이번 전투는 701호의 명백한 패배다.

    상당한 병력의 손실을 입은 701호와 달리, 765호의 피해라고 해봤자 관리자 누자베스가 중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다는 것뿐이었다.

    저런 근본도 없는 허접한 둥지에게 두 번이나 등을 보이게 된 것이다. 아비엥의 자존심에 수복될 수 없을 정도의 흠집이 났다.

    마왕군과 에르바키나 연맹의 평가가 어떤 식으로 곤두박질칠지 명확했다.

    그러는 사이에 누자베스는 비틀비틀 일어나 아비엥이 위치한 쪽을 향해 팔을 뻗었다.

    치켜세워진 가운데 손가락 너머로 명백하게 조소하는 얼굴이 보였다.

    “으아아아!! 누자베스……!! 죽여버리겠다! 갈기갈기 찢어서 개먹이로 만들어주겠다!! 이 몸에게 감히 덤벼든 죗값은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 노성이 701호 둥지의 퇴각 신호가 되어 울려 퍼졌다.

    * * *

    곤란했다.

    누자베스는 지금 더없이 곤란하고도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뭐야, 이 마물들은?”

    “아, 이것이 모험가라는 인종인가? 어째서 귀공과 친근해 보이는 겐가? 하이브 마인드와 모험가는 견원지간이 아니던가?”

    “쮸우, 쮸쮸!”

    “누자베스 각하. 목격자는 처리해두는 편이 위신에 좋을 겁니다. 다른 동료는 보이지 않으니 지금 바로 처리해 두겠습니다.”

    페페가 남아 누자베스의 상처를 돌보고 있던 중이었다. 비르겐슈타인 부대는 재빠르게 모습을 숨겼지만, 이쪽을 향해 돌아온 스칼렛 그리고 루칸다와 딱 마주친 것이다.

    “누자베스?”

    “아니, 그게 아니라 제 말을 좀 들어본다면…….”

    페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수백 마리에 달하는 마물이 이쪽을 사방으로 둘러싼 상황.

    판단과 결정. 행동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은 길지 않았다.

    페페는 재빠르게 누자베스의 뒤로 돌아가 제압했다. 한쪽 팔로 누자베스의 목을 휘감고, 반대편 손으로 나이프를 목에 겨눴다.

    “흐, 흐아악! 사, 사람 살려!”

    “지금 이 마물들이 하이브 마인드라고 했지? 설명을 해줄래?”

    “모, 몰라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이 정신 나간 마물들이 왜 저를 하이브 마인드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이브 마인드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면 어째서 공격을 해오지 않는 건데?”

    꾸우욱!

    나이프의 칼날이 누자베스의 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그대로 살갗을 찢고 파고들 기세였다.

    “마물들을 뒤로 물려, 누자베스.”

    “쮸!! 쮸쮸!!”

    “햄토리! 햄토리 이 쉐끼야! 카, 칼 버려! 형아 죽는다아!”

    누자베스의 명령대로 765호의 부대원들이 뒤로 물러나 무장을 해제했다. 그제야 누자베스의 목을 겨누고 있던 칼날이 조금 떨어졌다.

    여전히 목에 닿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이보게, 인간. 일단 그 칼부터 치우고 얘기할 수 있겠나?”

    “웃기지 마. 마물 따위와 나눌 얘기는 없어.”

    페페가 으르렁거리며 스칼렛을 노려봤다.

    스칼렛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잠자코 뒤로 물러났다.

    “역시 마물이었어. 내 촉이 틀릴 리가 없었어!”

    페페는 누자베스를 윽박지르듯 소리쳤다.

    누자베스는 어깨를 흠칫 떨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그래요…… 사실 저는 하이브 마인드였어요. 지금까지 속여서 미안해요, 페페…….”

    “이쪽을 속이면서 꽤나 즐거웠겠지. 그렇지, 누자베스?”

    페페는 배신감에 괜스레 울컥했다.

    솔직히 말해서 페페는 누자베스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라, 같은 모험가로서 느끼는 동질감. 그리고 어린 나이에 홀로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 섬에서의 일이 끝나기 전에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과 도움이 뭐가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누자베스가 하이브 마인드였다니.

    그 사실을 알게 된 페페가 느끼는 감정이란 지독한 배신감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문이 하나 남아 있었다.

    어째서 누자베스가 다른 하이브 마인드와 싸우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페페는 동족포식의 습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동족포식은 각자의 둥지 내에서 이뤄지는 침략전과 방어전이다. 이런 둥지와 아무 상관없는 평야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하이브 마인드라는 걸 알게 됐으니 저를 죽일 생각이죠?”

    “그래, 하이브 마인드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야.”

    페페는 딱 잘라 단언했다.

    그녀가 자라오며, 그리고 모험가로 활동하며 하이브 마인드에 의해 파괴된 무수한 삶을 떠올렸다.

    힘없는 백성들의 고통은 언제나 하이브 마인드와 녀석들의 마물 군세가 원인이었다.

    “그래요…….”

    누자베스는 어쩐지 쓸쓸하지만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그의 의중을 읽은 것인지 765호 둥지의 마물들이 뒤로 물러났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페페의 눈에 보이는 누자베스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어?”

    페페가 물었고. 누자베스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어조로 조그맣게 말했다.

    “다행이에요.”

    “뭐가 다행이라는 건데?”

    “페페가 무사해서요.”

    “뭐, 뭐……?”

    “페페뿐만이 아니에요. 굴덴 마을의 모두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게, 그게 무슨 소리야……? 마치 네가…….”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어요. 701호 둥지가 굴덴 마을을 침략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제가 굴덴 마을을 지키려 했다간 정체를 들켜서 죽을 수도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죽음을 각오했던 것이다.

    하이브 마인드인 누자베스가 굴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두 하이브 마인드가 이런 평야에서 격돌한 것도 납득이 간다.

    ‘701호 둥지가 굴덴 마을을 침략하려 했고, 누자베스가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감수했다고?’

    그런 하이브 마인드가 있다는 얘긴 처음 듣는다.

    하지만 누자베스가 굴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마을의 북쪽 숲에서 아비엥의 군대에 맞선 장면은 페페도 목격했다.

    누자베스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저도, 저도……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었어요……. 하이브 마인드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페페나, 다른 모두들처럼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역시 저는 쓸모없는 아이겠죠……?”

    눈물이 누자베스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페페의 손등을 적셨다.

    칼을 쥐고 있던 페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모두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누자베스…….”

    “다시 태어난다면, 제게 다음 생이 허락된다면…… 그때는 같은 인간으로 만나고 싶어요.”

    누자베스는 눈물로 젖은 얼굴로 페페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죄악감을 덜어주려는 듯 애써, 무리해서 지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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