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40화 (40/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40화

    방패의 망집 세글리트(3)

    순식간이었다.

    널려 있던 방패들이 밀집하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세글리트다……!’

    확실히 제대로 찾아온 건 맞다만.

    지금은 세글리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

    방패가 한 곳으로 모여드는 것을 지켜보며 촉각을 곤두 세웠다.

    말초신경이 바짝 타들어가는 감각이 이어지는 동안 녀석이 천천히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칼렛 : 기묘하군. 방패가 의식을 지닌 것처럼 움직이다니.]

    이 공간에 널려 있던 수백, 수천여 개의 방패들이 뭉쳐 한 덩어리가 되었다. 딱 보기에도 엄청난 크기다.

    저것이 방패의 망집 ‘세글리트’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쿠웅!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부대원들이 모조리 휘청거릴 만큼.

    [누자베스 : 햄토리!]

    햄토리가 내 부름을 듣고 곧장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쮸우, 쮸!”

    그와 동시에 후열에서 대기하던 고블린 서비스 부대와 그레이브 야드 부대가 재빠르게 전투 대형을 갖췄다.

    ‘간 좀 보게 해달라고, 세글리트.’

    특가야선 부대의 돌격과 동시에 뭉쳐져 있던 방패의 덩어리가 꿈틀거렸다.

    “고오오오오오-”

    방패들이 잔뜩 뭉친 덩어리. 세글리트가 갑자기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개?’

    아니, 딱 개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다만 그 대략적인 형태로 보아 네 발 달린 짐승에 가까웠다.

    “쮸-!!”

    “쮸쮸!!”

    언더 케이지 부대가 일제히 세글리트를 향해 달려 들었고, 그대로 몸을 던졌다.

    그야말로 회피나 방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움직임이고, 내가 뒤져도 한 대는 패고 간다는 일념이 담긴 돌격이었다.

    캉, 캉캉캉! 캉캉! 캉캉캉!

    언더 케이지 부대의 맹목적인 공세가 퍼부어졌지만.

    “고오오오오-!”

    쿠우웅!

    세글리트가 앞발을 휘두르자 폭풍이 일었다.

    데미지를 입고 쓰러졌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렛맨 전사들이 공중에 흩뿌려졌다.

    일격에 머릿수가 1/5는 줄어든 언더 케이지 부대가 허겁지겁 물러났고, 곧장 스칼렛이 입을 열었다.

    [스칼렛 : 이런, 아무래도 통상적인 공략법은 통하지 않겠군.]

    [누자베스 : 아, 역시 그거네. 딱 봐도 그거야.]

    [스칼렛 : 그거라니?]

    [누자베스 : 물리저항이 말도 안 되게 높은 보스 몬스터란 말이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외견만 봐도 물리 공격에 엄청난 저항력을 지닌 형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방패 덩어리 아닌가? 방패를 두들겨 봤자 제대로 된 데미지를 주기 힘들었다.

    이대로 고블린 서비스의 석궁 사격이 이어져도 무의미하긴 마찬가지.

    ‘일이 언젠가 이렇게 될 줄은 대충 예상했지.’

    내 소설의 전개 과정이 대부분 그렇다.

    초반엔 물리 공격만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만 등장하지만, 점점 레벨이 높아져가며 여러 내성을 지닌 몬스터가 등장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세글리트 역시 마찬가지.

    나 같은 초보 하이브 마인드에겐 가장 까다로운 내성인 ‘물리 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아주 수가 없는 건 아니지.’

    내가 말하지 않았나?

    유연하면 부러질 일이 적다고.

    만약 머리가 진공관 컴퓨터 수준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천재라면,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해둘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도 안 되는 가정이다.

    그렇게 머리 좋은 놈이 세상에 어딨겠나?

    만약 그렇게 머리 좋은 놈이 있다면 분명 길에서 마주치자마자 헛구역질을 할 만큼 못 생긴 놈일 게 분명하다.

    그게 이 세상의 밸런스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엔 정밀도 싸움이 되겠군.’

    모든 부대원이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움직여 줘야만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누자베스 : 스칼렛. 파이어볼 스크롤 남았지?]

    [스칼렛 : 파이어볼 스크롤은 질릴 만큼 많이 쌓여 있지. 재고만 해도 백 장은 넘을 걸세.]

    고블린 부락에서 주술사를 사냥하면 심심치 않게 얻을 수 있는 아티팩트니까 말이다.

    [누자베스 : 지니고 있는 스크롤은?]

    [스칼렛 : 수중에는 10장 정도가 있군. 30회 사용 가능하네.]

    좋다.

    세글리트가 사기적인 물리 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대신, 맞기만 하면 사지가 뒤틀릴 만큼 내성이 낮은 속성도 존재할 것이다.

    만약 화염 저항까지 높다면?

    그때는 내 유연함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인정하고, 부대를 퇴각시켜야만 한다.

    사람은 언제나 이기는 싸움만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패배한 타이밍을 최대한 빠르게 캐치하는 것, 그리고 미련 없이 물러날 줄 아는 결단력이다.

    즉, 지는 싸움에 익숙한 쪽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다.

    [누자베스 : 언더 케이지 부대 계속해서 세글리트의 주의를 끌며 기동한다.]

    [햄토리 : 쮸, 쮸쮸-쮸우-!!]

    [누자베스 : 보르가. 멍하니 서서 꿀 좀 많이 빨았냐? 슬슬 일해 줘야 전리품 슬쩍할 때 양심이 덜 찔리겠지?]

    [보르가 : 키륵키륵!]

    언더 케이지 부대가 앞서 세글리트에게 충돌.

    그 후에 퇴각하며 거리를 벌릴 때 고블린 서비스 부대가 지원 사격을 가한다.

    세글리트의 주의가 고블린 서비스 부대에 돌아간 순간, 그레이브 야드 부대가 다시 한 번 측면 혹은 후면에서 충돌한다.

    꽤나 간단해 보이는 핑퐁 작업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정밀한 기계 부품처럼 움직여주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 역시 한순간이었다.

    [누자베스 : 스칼렛. 언더 케이지 부대가 주의를 끌며 발을 묶는 동안 파이어볼로 데미지를 준다.]

    [스칼렛 : 내가? 이런 스크롤은 사용해본 적이 없네만.]

    [누자베스 : 그럼 누가 있겠어? 내가 가서 던지리? 싫으면 너도 지휘관하던가. 내가 챔피언 할게.]

    [스칼렛 : 늙은이를 거칠게 다루는구만…….]

    솔직히 스칼렛의 제구력을 믿는 건 아니다.

    다만 이 거리에서 저만한 덩치를 못 맞추는 게 더 힘들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누자베스 : 자, 그럼 다시 움직여 보자고 제군들.]

    명령이 하달된 것과 동시에 다시 언더 케이지 부대가 세글리트의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고오오-오!”

    “쮸쮸, 쮸!”

    완전 빠꾸가 없는 놈들이다.

    언더 케이지 부대가 주저 없이 세글리트에게 달려들어 숏소드를 휘둘러 댔고. 세글리트가 가소롭다는 듯 앞발을 다시 휘두르려던 찰나!

    “쮸!!”

    부웅!

    아까와는 달리 햄토리가 먼저 퇴각 신호를 보냈다. 덕분에 방금 전과 달리 물에 젖은 휴지조각처럼 날아가 천장에 찰싹 붙은 건 한 마리에서 그쳤다.

    “키륵, 키륵!”

    “고오오오-!”

    콰앙!

    세글리트가 퇴각하는 언더 케이지 부대를 뒤쫓으려던 순간.

    파바바박!

    고블린 서비스 부대의 사격이 개시됐다. 흠 잡을 곳 없는 타이밍이었다.

    ‘타이밍 한 번 귀신같네.’

    세글리트가 일순간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고블린 서비스 부대의 일제 사격은 그 정도의 충격량이 있었던 것이다.

    데미지는 크지 않겠지만, 제대로 맞으면 동레벨의 몬스터도 일격에 스턴에 걸릴 만한 공격이다.

    그런 볼트 사격을 혼자서 다 맞았으니 아무리 보스 몬스터라도 잠깐 경직하는 건 당연했다.

    [누자베스 : 스칼렛!]

    [스칼렛 :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찢어서…….]

    스칼렛은 미리 파이어볼 스크롤을 꺼내 준비하고 있었다. 명령과 함께 스크롤의 모서리를 찢자.

    화르륵!

    허공에 거대한 화염구가 생겨났다.

    [누자베스 : 하핫! 바베큐 파티다!!]

    부우웅!

    스칼렛의 손끝에서 벗어난 화염구가 포물선을 그리며 잠깐 경직된 세글리트에게 날아갔고.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피탄면에 화염이 솟구쳤다.

    “고오오오오-!!!”

    됐다!

    효과가 있었다.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확실하게 데미지가 들어간 게 보였다.

    “고오오오!!”

    ‘어?’

    불길이 솟구친 곳에 방패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방패가 떨어진 부위에 푸른빛의 액체가 꿀렁이는 게 보였다.

    하지만 불길이 점차 약해지자, 지면에 떨어졌던 방패들이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다시 세글리트에게 붙으려 했다.

    [누자베스 : 보르가!! 사격! 방패 떨어진 곳에 사격 개시!]

    [보르가 : 키륵!]

    명령을 내린 것과 동시에 세글리트를 범위 안에 두고, 침묵의 밤을 발동시켰다.

    [세글리트의 패시브 스킬 ‘영원불멸’이 봉인되었습니다.]

    “그래! 이거지!”

    역시나 방패가 수복되려는 현상도 스킬이었던 것이다.

    파바바바박!

    방패의 수복이 멈춘 직후.

    고블린 서비스 부대가 석궁을 발사했고, 발사된 볼트들이 전부 방패가 떨어진 곳에 적중했다.

    “고오오오오-!!”

    [누자베스 : 좋아, 이대로 반복한다! 스칼렛 2차 캐스팅 준비해! 햄토리! 발을 묶는다!]

    [스칼렛 : 오, 이대로라면 손쉬운 사냥이 되겠군.]

    [햄토리 : 쮸, 쮸?]

    [보르가 : 키륵, 키!]

    * * *

    세글리트 토벌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언더 케이지 부대와 그레이브 야드 부대가 교대로 어그로를 교환하며 세글리트의 발을 묶었고, 그러는 사이에 스칼렛의 파이어볼이 작열했다.

    파이어볼이 적중해 방패가 떨어진 곳에 고블린 서비스 부대의 석궁 사격이 이어진다.

    이 일련의 과정을 오차 없이 해낸 덕분에 세글리트는 이렇다 할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파이어볼 스크롤이 한 장 남았을 때는 어찌되나 싶었지만.”

    수북하게 쌓인 방패 무더기를 바라보는 동안 흡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역시 세글리트가 빈사 직전에 내가 나서서 막타를 쳤고, 그 결과 무려 3레벨이나 오르게 되었다.

    현재의 레벨은 41.

    41레벨이 되자마자 새로운 스킬이 생겨났다.

    [스킬 : 중급 부화장 생성]

    [정보 : 중급 부화장을 생성합니다.]

    <세부 정보>

    1.중급 부화장의 생성에는 정제된 마나 1,500을 소모합니다.

    2.중급 부화장은 소모하는 재료에 따라 생성해내는 몬스터의 종류가 결정됩니다.

    3.중급 부화장은 70%의 재료 효율과 20%의 제작 시간 보너스를 얻습니다.

    4.중급 부화장은 동시에 최대 다섯 마리의 몬스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5.중급 부화장은 특수 탐지 스킬로만 감지됩니다. 발견될 시 중급 부화장이 위치한 지역과 인접한 마을의 경계도가 10% 상승합니다.

    6.중급 부화장은 정제된 마나 없이 20%의 확률로 엘리트 개체를 생산합니다.

    상위 생산시설!

    하급 부화장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여러모로 발전된 형태였다.

    일단 재료 효율과 생산 속도가 증가했고, 동시 생산 개체수도 두 배 넘게 증가했다.

    게다가 이제는 육안으로 발견되는 게 아니라, 특수한 탐지 스킬을 사용해야만 발각되니 더욱 안전해진 것이다.

    결정적으로 마나의 소모 없이 20%의 확률로 엘리트 개체 생산이라니, 이건 확실히 상당한 이점이다.

    ‘생산 코스트가 정제된 마나 1,500이라는 게 충격적이긴 한데…….’

    현재 마나는 여전히 부족한 자원이란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