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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33화 (33/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33화

    삼각문해(5)

    키잉!

    날아든 칼날을 쳐내며 재빠르게 옆으로 굴른 직후.

    쉭!

    콱!

    방금 전가지 서있던 곳에 마체테가 날아와 꽂혔다.

    “캬아아아!”

    고블린 놈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악독하게 달려들었다.

    휘릭!

    고블린 정예 전사의 마체테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더니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캉!

    막아내고.

    “캬르아!”

    쉭!

    측면에서 파고들며 찔러오는 녀석을.

    퍼억!

    발로 차 밀어냈다.

    하지만 녀석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젠장, 혼자서 다섯 놈은 맡고 있는 것 같군.’

    격하게 움직이고 있는 덕분에 스태미너 소모가 심했다. 벌써부터 숨이 차고, 팔다리가 피로한 느낌이다.

    하이브 마인드라고 몸 쓰는 걸 게을리 한 결과다. 아니, 솔직히 이렇게 최전선에서 칼부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다행히도 일전에 2차 진화에서 얻었던 류시혁의 고유 스킬 ‘펠론 렌드마이어’ 덕분에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모든 무기의 숙련도를 대폭 상승시키는 스킬의 열화판 카피에 불과하지만, 그 차이는 엄청났다.

    솔직히 펠론 렌드마이어 스킬이 없었다면 최전열에서 나서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키륵!”

    잠시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뒤쫓아온 다른 고블린 정예 전사가 몸을 날렸다.

    동시에 방금 전 쳐냈던 두 녀석도 지면을 박차며 거리를 좁혀왔다.

    “하, 징그러운 새끼들.”

    쉭!

    “캬르악!”

    가장 먼저 왼편에서 달려든 고블린 놈의 허벅다리를 베어냈다. 놈인 다리를 베인 통증 때문에 바로 경직을 먹고 주춤거렸다.

    그리고 흐르는 검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궤도를 따라 힘껏 휘둘렀다.

    서걱!

    확실한 손맛이 전해졌다.

    몸을 날린 고블린 놈의 몸뚱이가 공중에서 양단되었다.

    푹!

    복부에 헤집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순간, 의식을 잃을 만큼의 작열통이었다.

    시선을 내려 아래를 바라보자, 방금 전 다리를 베었던 놈이 틈새를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촤악!

    검을 휘둘러 녀석의 목을 쳐냈다.

    데굴데굴.

    잘려나간 머리통이 흙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후우…….”

    순식간에 세 마리가 당해서 흙바닥을 나뒹구는 동안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에 가까워져 있었다.

    칼에 베인 상처에서 붉은 피가 번져 나왔다.

    ‘슬슬 진짜 한계인데…….’

    푹!

    방금 전 어깨를 베여 버둥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검끝으로 찔러 마무리 지은 후.

    휘릭!

    검을 고쳐 잡으며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키르…….”

    “키르륵…….”

    저벅.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이쪽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파르카의 시선이 느껴졌다. 파르카는 여전히 달려들 기색은 없어 보였다.

    저벅.

    다시 한 걸음.

    좋아, 이대로 거리를 벌리고.

    저벅.

    다시 한 걸음 더 물러난 순간!

    “캬아, 카르카!!”

    투웅!

    파르카가 지면을 박차며 매섭게 달려들었다.

    전투 도끼를 머리까지 치켜들고 말이다.

    “하아…… 너 빠꾸가 없는 놈이구나?”

    솔직히 내가 가장 자신 없는 분야가 검술이다.

    일주일 동안 스칼렛에게 설렁설렁 배우긴 했지만…….

    ‘귀공에겐 재능이 없네.’

    ‘진짜? 코딱지만큼도?’

    ‘그래. 구태여 비유하자면 개미의 발톱만큼 정도는 있네만.’

    ‘검술 좀 가르쳐달라고 선생 시켜주니까 말을 그냥 아주 우아하게 하네.’

    ‘하지만 귀공에겐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지.’

    ‘뭔데?’

    ‘바로 귀공의 검술 스승이 이 몸이란 사실일세. 지금까지 검술을 가르쳤던 애송이들이 모두 소드마스터 정도는 됐으니 귀공도 그 정도는 될 수 있지 않겠나?’

    부웅!

    도끼날이 아슬아슬하게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며 성인의 몸뚱이만한 나무 두세 그루를 순식간에 토막 냈다.

    ‘위력도 상당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파르카의 움직임을 쫓았다.

    파르카는 회전력을 줄이려 하지 않고, 그 회전력을 이용하여 쉴 새 없이 연계 공격을 시도했다.

    ‘덩치에 비해 상당히 민첩하군. 게다가 테크닉도  거의 흠 잡을 곳이 없네.’

    고블린킹 파르카가 카타쿨라의 둥지에 소속되어 있었던 놈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의 전투 경험과 숙련도라면 평가를 갱신할 필요가 있었다.

    하기야 그 카타쿨라의 둥지에서 백인장의 지위를 얻었을 정도다. 일개 평범한 고블린 놈들과 격이 다르다는 건 명백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사실이다.

    카앙!

    날아든 도끼날을 빗겨낼 때마다 손목의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삐걱거렸다. 정타를 맞은 것도 아니고, 정면으로 막아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공격을 한 방이라도 제대로 허용하는 순간 즉사다, 즉사.

    ‘빌어먹을, 이러다간 진짜 오늘 숟가락 놓고 하이브 마인드 은퇴하겠네.’

    파르카의 움직임을 읽으며 필사적으로 막고,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 수준의 마물이라면 어지간한 모험가들 네다섯 정도는 몰려와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파르카도 내가 일방적인 수세에 몰렸다는 걸 인지했는지, 더욱 거침없이 공세를 이어나갔다.

    캉! 카앙! 캉, 캉!

    “카아아앗! 크카앗!”

    드디어 승리를 확신했는지 파르카 놈이 신나게 목소리를 높이며 도끼를 휘둘러댔다. 드디어 협곡의 끝자락까지 몰린 순간.

    카앙!

    몇 번이고 파르카의 도끼를 막아내던 검이 부러져 두 동강이 났다.

    “하아…….”

    충격의 여파로 손목부터 팔꿈치, 어깨가 모조리 시큰거렸다.

    파르카도 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기색이었다. 이제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깊게 한숨을 토해냈다.

    “있잖아, 우리 무승부로 할래?”

    부러진 검을 내던진 후 양손을 들어 보였다.

    완전히 구석에 몰린 채 한 자루뿐인 검조차 부러졌다. 파르카가 보기엔 완전히 다 차려놓은 밥상일 것이다.

    “따까리들 대가리 쪼갠 건 사과할 테니까 말이야.”

    “캬르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파르카는 도끼를 치켜든 채 이쪽을 향해 도약했다.

    중상에 가까운 부상을 입은 하이브 마인드. 그것도 무기조차 없는 맨손 상태.

    녀석이 조심해야 될 이유 따윈 무엇 하나 없었다.

    파르카의 도끼날이 닿기 직전!

    ‘아마 이렇게 썼었나?’

    그러니까 내 소설에서 백주월이 보여줬던 여러 묘기 중 하나였다.

    물론 등장 후 채널링이 확장된 백주월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까지 소환해내 가엾은 하이브 마인드의 정수리에 꽂아 넣는 등의 사이코패스 짓거리를 즐겨하게 되지만 말이다.

    녀석도 나처럼 초반엔 여러모로 제약이 있었다.

    에임페리얼 콜이라는 스킬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백주월의 잔기술 중 하나를 시도해볼 좋은 기회였다.

    캉!!

    파르카의 도끼가 허공에서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순간적으로 내 머리 위에 소환된 단검에 가로막힌 것이다.

    ‘진짜 되네. 진짜로 되는 거 보니 진짜 내가 쓴 소설이 맞나봐…….’

    에임페리얼 콜 스킬로 소환된 무기는 허공에 구현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스킬의 시전자가 붙잡기 전까지 아주 잠깐 동안 소환된 위치에 정지해 있다가, 이후 중력에 의해 지면으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백주월은 이 부동 시간에 착안하여 잔재주를 고안해낸 것이다.

    사용자가 손을 대기 전까지 그 자리에 정지해 있다면, 어느 정도의 물리력이 가해져도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서 있을까?

    그 정답은 소환된 무기에 물리적인 힘을 가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그 정지해 있으려는 성질이 상당해서, 어지간한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파르카의 도끼질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일전공세다. 빌어먹을 고블린 새끼야!”

    휘릭!

    동시에 소환해낸 다른 단검을 오른손에 쥐고 휘둘렀다.

    푸욱!

    파르카가 순간 당황하여 빈틈을 보였고, 녀석이 물러나거나 도끼를 거두기 전에 가슴팍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카르아아아!!”

    파르카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도끼를 휘둘렀지만.

    캉!

    이제 요령을 터득해서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다시 소환된 단검이 측면에서 횡단으로 휘둘러진 도끼날을 막아냈다. 도끼가 그 반동으로 크게 튕겨나가며 파르카의 자세가 무너진 순간.

    파바바박!

    “크가아악!!”

    십여 발의 화살이 날아와 파르카의 등에 꽂혔다.

    파르카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래, 이 순간을 기다렸다.

    처음부터 이 순간만을 고대하며 버틴 것이다.

    [누자베스 : 너무 늦었잖냐, 각하 뒤질 뻔하셨습니다. 빨리 하라고, 빨리.]

    [와탈라 : 키륵, 키륵!]

    [햄토리 : 쮸쮸!]

    내가 파르카의 주의를 끄는 동안.

    언더 케이지 부대와 고블린 서비스 부대가 고블린 정예 전사들을 모조리 정리한 것이다.

    전투가 치러지는 동안 파르카를 완전히 붙잡아 둔 덕분에 아군의 손실은 제로에 가까웠다.

    이지 게임이다.

    이빨을 바득바득 갈며 이쪽을 돌아보는 파르카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 들었다.

    “검술이고 뭐고, 싸움질 잘해봤자 다구리에 장사 없지?”

    사냥을 정리할 때가 왔다.

    승기는 완전히 기울어 있었으니까.

    * * *

    쿠웅!

    묵직한 소리를 울리며, 고블린킹 파르카가 흙바닥에 쓰러졌다.

    “아이고, 피통이 왜 이렇게 크냐. 무슨 고슴도치를 만들어 놨네, 고슴도치를! 석궁 볼트를 몇 발이나 쏜 거야? 이거, 이 볼트 전부 뽑아서 재활용할 수 없냐? 이거 다 멀쩡할 텐데 왜 재활용이 안 돼? 공명이 적벽대전에서 배를 보내지 말고, 이 망할 고블린 새끼를 헤엄치게 해서 보냈어야 돼.”

    아무리 전투에 사용한다고 해도 볼트를 이렇게 잔뜩 사용하면 속이 쓰린 법이다.

    햄토리에게 파르카의 목을 베어 놓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랄프에게 가져다주고 보상을 받아야 되니 말이다.

    자, 그럼 다른 쪽의 상황은 어떤지 확인해 보자.

    [누자베스 : 얘들아 놀라지 마라. 이 각하가 파르카를 맞다이로 잡았다는 거 아니냐. 젠장, 내 검술 능력이 너무 소름 돋는 거 아니냐. 하이브 마인드 때려치우고 소드마스터 누자베스 해야겠다. 이름도 개명할까? 베이션으로? 소드마스터 베이션!]

    [햄토리 : 쮸쮸! 쮸!!]

    [누자베스 : 마지막에 다구리쳐서 잡았다는 얘길 꼭 해야겠습니까, 햄토리 씨?]

    [스칼렛 : 이쪽도 대충은 일이 정리됐네. 이번 작전에서 유일하게 허탕을 치고 돌아온 건 필멸종 하나뿐이군.]

    스칼렛이 쿡쿡 웃으며 말했고.

    [루칸다 : 면목 없습니다, 각하. 701호 둥지의 관리자를 처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루칸다는 침울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누자베스 : 그래?]

    701호 둥지의 관리자를 처리하지 못한 이상 완전히 일을 매듭 짓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파르카는 처리했지만 문제의 근본인 하이브 마인드 아비엥은 여전히 살아있을 테니까.

    [누자베스 : 우리 루칸다가 허탕을 칠 정도면 녀석의 둥지도 만만치 않다는 의미겠지. 그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이제부터 둥지로 돌아갈 테니 뒷정리나 해보자.]

    701호의 관리자 아비엥이라.

    호락호락한 하꼬 둥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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