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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30화 (30/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30화

삼각문해(2)

701호 둥지의 관리자 아비엥.

비탄의 숲 동남쪽에 위치한 지맥 동굴이 바로 그의 둥지였다.

여타 비슷한 시기에 각성한 하이브 마인드의 둥지보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 둥지의 발전 동력은 단 하나.

“대륙에서도 자체적으로 생산이 가능하지만, 이 하얀 보석 가루는 언제나 상회의 인기 품목이지.”

아비엥은 거대한 갑각류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단단한 외골격과 위협적으로 보이는 집게발.

게다가 빠르게 땅굴을 파고 숨을 수 있는 능력까지! 이것이 아비엥이 도출해낸 최적의 생존 형태였다.

아비엥은 자신의 능력으로 빠르게 지하 공간의 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예기치 못한 큰 보물더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에르바키나 연맹의 얘기로는 글로레나 왕조 때 개발된 채집장이라는군.”

하얀 흙.

아비엥의 옆을 지키고 있던 파르카는 하얀 흙을 한 줌 집어 유심히 바라봤다.

“대륙에서 패주한 인간 왕조는 이 아리카 섬을 전초 기지 삼아 바체트 령을 침략했다. 그때 수많은 것들이 아리카 섬에 만들어졌고, 지금 이렇게 남겨져 우리가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

“하얀 흙. 값어치 있다.”

파르카도 아비엥의 말에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파르카는 비탄의 숲을 장악하기 이전에 하이브 마인드의 챔피언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 같은 하이브 마인드가 아닌 아리카 섬 최강이라고 평가되는 ‘카타쿨라’의 둥지에서 말이다.

파르카는 고블린 결사대의 선봉대장이었고, 카타쿨라가 아리카 섬의 절반을 장악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아리카 섬에서 부분적인 자유를 허락받은 것이다.

어쨌거나 파르카는 카타쿨라 밑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운 고블린이다.

이 하얀 흙. 초석 가루가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 물건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둥지는 이 초석을 기반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앞서 왔다.”

아비엥은 초석을 연맹과 거래하여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규모의 둥지에서 보자면 무한에 가까운 공급량이다. 그런 초석을 활용해 ‘머스킷티어 부대’를 운용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지금까지 아비엥의 둥지와 인접한 하이브 마인드의 둥지 네 곳이 포식을 당했다. 머스킷으로 무장한 고블린 전열보병 부대는 북동부에서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없을 만큼 강력했으니까.

“그 눈엣가시 같은 고블린 놈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아비엥의 목소리에 격한 감정이 묻어났다.

파르카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이브 마인드 돕는다. 루칸다. 우리. 명분이 없다.”

아비엥과 파르카는 어디까지나 상호 협력적인 관계였다.

고블린의 주요 서식지인 비탄의 숲을 온전히 손에 넣으려는 파르카.

그리고 초석 채굴 작업에 사용할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아비엥.

그 둘의 이해관계는 일치하고 있었지만, 손을 잡고 같은 배에 타는 것까진 무리가 있었다.

애초에 아비엥은 카타쿨라의 챔피언이었던 파르카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파르카 역시 모처럼 얻게 된 자유의 권리를 다시 하이브 마인드인 아비엥에게 일임하고 싶지 않았고 말이다.

“내가 녀석의 뒷배를 포식한다. 너는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한다.”

파르카의 부하로 보이는 고블린이 가죽에 그려진 조잡한 지도를 가져왔다.

비탄의 숲 남서쪽의 한 지점을 표시한 지도였다.

“765호. 누자베스. 100마리 남짓한 고블린과 렛맨 전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비엥과 파르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파르카는 하라부의 촌락을 공격하여 초석 작업장에서 사용할 고블린들을 생포해 오면 되었고, 아비엥은 765호 둥지를 짓밟으면 그만이었다. 둘에게 어려울 일은 없었다.

* * *

[누자베스 : 좋아, 제군들. 브리핑을 시작하지.]

[햄토리 : 쮸!]

[스칼렛 : 일단은 귀공의 명령에 따르겠지만 까탈스러운 필멸종과 함께 움직이는 건 되도록 사양하고 싶네.]

[루칸다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각하. 냄새나는 시체들과 함께 서는 전장에 그 무슨 명예가 있겠습니까?]

[햄토리 : 쮸쮸!]

[누자베스 : 너희들 주문이 너무 많아. 이래서 통일이 안 되는 거라니까. 이 쥐꼬리만한 둥지에서도 이런 불협화음이라니.]

사실 이번 작전에선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일은 없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누자베스 : 일단 파르카 그 망할 고블린 새끼 뒤를 봐주는 양아치가 누구라고?]

[루칸다 : 701호 둥지의 관리자 아비엥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파르카가 생포한 고블린들이 그 둥지로 끌려가는 걸 목격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누자베스 : 망할 새끼. 고블린들을 둥지에 데려다가 뭘 하는 거지 도대체? 혹시 둥지에 여자 무투가라던가 성직자 같은 걸 챙겨 놨나?]

[스칼렛 : 미안하지만 브리핑 도중 그런 역겨운 상상은 그만둬 주게.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들여다보다가 토할 뻔했으니까.]

[누자베스 : 아니. 아니, 진짜로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야?]

[스칼렛 : 추상적인 이미지를 흐릿하게 들여다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네만.]

진짜냐…….

그럼 지금까지 검술 수련을 하면서 스칼렛을 보고 떠올렸던 약간의 망상들까지 모두 들켰다는 얘기가 된다.

젠장, 여기 오기 전날 밤에 섀도우버스를 하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스칼렛 : 흡혈귀의 번식은 포옹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뤄지는 걸세. 인간과 같을 리 없지 않나? 그나저나 귀공의 상상력은 가끔 이 늙은이를 놀라게 하는군. 특히 탈자…….]

[햄토리 : 뀽, 뀽뀽!]

[누자베스 : 그만! 그만그만! 그만. 더 이상 내 은밀하고 개인적인 취향을 만천하에 폭로하지 말아주세요. 햄토리, 너 이 새낀 왜 갑자기 뀽뀽거리는 거야!?]

[루칸다 : 각하, 파르카의 군세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을 스위칭하며 비탄의 숲의 상황을 내려다봤다. 루칸다의 말대로 파르카가 명백하게 자신의 영역을 넘어 서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누자베스 : 후우…… 좋아, 좋다고. 우리가 마침 타이밍이 좋았네. 선빵을 처맞기 직전에 여러모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

눈대중으로 이쪽 병력의 위치와 파르카의 진행 경로를 가늠했다.

[누자베스 : 파르카 자식이 지금까지 얌전히 죽빵 맞아주다 갑자기 더 이상 참기 힘들어져서 막무가내로 나온 건 아닐 테고.]

[스칼렛 : 귀공과 동등한 전쟁 군주의 묵인이 있었겠군.]

[루칸다 : 양동일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하라부의 촌락 방어에 나선다면 그 사이에 내 둥지를 털어먹을 작정이다.

혹여나 내가 그 작전을 간파하여 병력을 양분하여 두 곳을 방어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적어도 내 둥지가 약화된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으니까.

[누자베스 : 우리도 빈집털이 전문가들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겠네.]

[루칸다 : 명을 받들겠습니다.]

[누자베스 : 루칸다. 비르겐슈타인 부대를 이끌고 가서 701호 녀석의 목을 치고 와라.]

그리고 이제 남은 병력으로 하라부의 촌락 방어와 내 둥지의 방어를 해내야만 한다.

[누자베스 : 햄토리 오랜만에 형이랑 둘이서 놀아보자.]

[햄토리 : 쮸우, 쮸쮸!]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와 햄토리. 그리고 언더 케이지 부대와 고블린 서비스 부대가 파르카의 군대를 상대로 촌락을 방어한다.

나머지 부대인 ‘그레이브 야드’는 스칼렛의 지휘 하에 둥지를 방어한다는 작전이었다.

[누자베스 : 녀석들의 핵심 전력은 둥지를 노리겠지.]

파르카는 어디까지나 미끼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번 작전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짊어지게 된 사람은 스칼렛이었다.

[누자베스 : 격퇴까진 바라지 않으니까 나와 루칸다가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겠냐?]

[스칼렛 : 나쁘지 않은 리허빌리가 되겠군.]

[누자베스 : 자, 그럼 각자 움직여 보자고.]

마인드 모드에서 예측 동선을 확인한 후 마인드 모드를 종료시켰다.

이제 행동에 나설 때였다.

* * *

[루칸다 : 파르카는 본래 하이브 마인드 카타쿨라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고블린입니다.]

[누자베스 : 그럼 지금은?]

[루칸다 : 카타쿨라에게서 해방되어 비탄의 숲에 정착한 것이죠. 결사대의 대원들을 이끌고 왔기 때문에 규격 자체가 다릅니다. 숲의 절반을 순식간에 장악한 이유도 그 때문이죠.]

[누자베스 : 퇴역한 놈들이란 말이군.]

[루칸다 : 만만치 않은 상대일 겁니다.]

[누자베스 : 그렇지. 조잡하게 뭉친 들개 무리와 군견 부대는 엄연히 다르니까.]

둥지에서 나와 언더 케이지 부대를 이끌고 빠르게 파르카의 뒤를 쫓고 있었다. 이미 파르카는 중앙의 경계선을 넘어 하라부의 촌락을 공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루칸다 : 일단 지금 당장은 고블린을 포획하는데 급급해 보입니다.]

[누자베스 : 혹시 고블린으로 요리라도 해먹나? 너무 맛있어서 한번 먹으면 끊을 수 없을 정도라던가.]

[루칸다 : 각하…….]

[스칼렛 : 농담은 그쯤하고 집중하도록 하지. 그나저나 귀공은 정말 그대로 부딪칠 생각인가?]

[누자베스 : 무슨 문제라도 있어?]

[스칼렛 : 단순한 산수의 문제다만.]

스칼렛이 뭘 말하고 싶은지는 뻔했다.

이쪽의 근접전 병력은 언더 케이지 부대 뿐. 60마리 남짓한 렛맨 전사가 전부였다.

그에 비해 고블린킹 파르카의 부대는 200마리를 훌쩍 넘는 규모다. 게다가 그 부대를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의 고블린이 카타쿨라의 휘하에서 맹약하던 고블린 결사대의 일원들이란 말이다.

[누자베스 : 스칼렛, 내가 여기 와서 경험해본 바로는 말이다. 전쟁의 1차적 요소는 규모의 경쟁이지만, 승패란 단순히 숫자를 더하고 빼서 나온 결과로 정해지는 게 아니란 말이지.]

[스칼렛 : 재밌는 견해로군. 증명을 기대하도록 하지.]

[누자베스 : 뭐, 일종의 요령이란 말이야.]

이 분야에 관해선 어느 정도의 식견이 생겼다.

급발 전투에선 선공권을 쥔 쪽이 유리하다.

적이 당황하면 치고, 정비하면 빠진다.

적의 몸집이 크다면 끌어들여 갉아먹는다.

물러나면 달려들고, 뭉치면 산개를 강요한다.

이러한 모든 전투는 언제나 ‘속임수’를 대전제로 삼는다. 이것이 내가 이 빌어먹을 세계로 끌려온 뒤 깨달은 지론이었다.

‘슬슬 녀석도 추격대가 왔다는 걸 눈치챘을 테고.’

파르카의 부대가 부락을 더 박살 내기 전에 끝장을 봐야했다.

[누자베스 : 이번 작전명은…….]

[햄토리 : 쮸, 쮸쮸, 쮸우-쮸! 쮸쮸!]

[누자베스 : 그래, 오퍼레이션 ‘충격과 빤스런’을 개시한다.]

스릉.

허리춤에 꽂혀 있던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산한 산바람이 낮게 흔들렸다.

[누자베스 : 자, 그럼. 깜짝 놀랄 만큼의 공훈을 기대하도록 하지.]

명령을 하달받은 직후 언더 케이지 부대가 지체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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