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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26화 (26/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26화

    밑작업(1)

    내 소설에서는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던 하이브 마인드의 생태에 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조금 변명을 해보자면 여타 다른 소설들 전부가 그렇지 않나?

    비중 있는 악역도 아니고, 스테레오 타입의 괴물 우두머리를 자세히 상술하는 소설이 어디 있겠는가?

    솔직히, 그래 솔직히 토로하자면 그렇다.

    하이브 마인드란 마물 놈들을 뭉칠 구심점이 필요해서 대충 구상해서 만들어낸 설정이다.

    녀석들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자세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마왕 아일라드가 바체트 령 각지에 뿌려 놓으면 알아서 성장하고, 그중에서 몇몇 하이브 마인드만이 생추어리라고 불리는 대규모 둥지를 짓는데 성공하지.’

    일단은 현시점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생추어리 단계에 돌입한 둥지는 그 어떤 모험가도 공략할 수 없게 된다. 왕국군이 존망(存亡)을 걸고 일제 공세를 펼치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마왕군을 상대하고 있는 왕국군이 일개 둥지 하나에 병력을 모조리 투입할 리도 없으니, 일단은 공략이 불가능하다는 설정이 타당했다.

    물론 생추어리 공략은 현시점에서나 불가능한 것이고.

    ‘류시혁과 백주월. 두 놈이 오면서 사정이 바뀌지.’

    이세계에서 온 미지의 전이자들.

    두 망나니 새끼가 말도 안 되는 사기 능력으로 생추어리를 개박살내면서 다니는 이야기가 내 소설 ‘던전 부수는 플레이어’였단 말이다.

    ‘류시혁은 모든 무기를 베테랑급 이상으로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

    펠론 렌드마이어.

    모든 무기 숙련도를 마이스터급까지 끌어올리는 능력이다. 손도끼부터 전략 폭격기까지 모조리 말이다.

    난생처음 보는 마법 스태프만 쥐어줘도 9서클 마법사 양 뺨을 후려칠 만큼 엄청난 마법을 구사할 수도 있었다.

    만약 식칼을 ‘무기’라고 정의한다면 고든 램지 뺨을 후려갈기고 얼굴을 식빵 사이에 끼워 넣을 만큼 끝내주는 요리도 만들 수 있겠지. 설정 상으로는 ‘무기의 숙련도’가 향상된다, 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실제 작중에서는 그 무기를 가지고 해낼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낸다는 느낌이었으니까.

    모든 무기를 베테랑급 이상으로 다룰 수 있다는 능력은 그 정도의 사기 능력이었다.

    백주월은?

    ‘무기로 생산되어 무기로 사용되다 무기로써 수명을 다한 무기를 소환하는 능력.’

    에임페리얼 콜.

    그런 식으로 불리는 능력이었다.

    인류 역사상 생산되어 사용되다 원형을 잃게 된 무기는 모조리 소환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조건은 꽤나 까다롭다.

    만약 요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칼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사용되다 부서졌다면?

    이 경우는 ‘무기’로써 생산되지 않았기에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기로써 ‘전투도끼’를 만들었다고 치자. 하지만 실제로 사용된 용도는 장작 패기라면 이것도 조건 불충이다. 그리고 반드시 원형을 잃고 파괴된 무기여야만 한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모조리 덧붙여도 백주월이 소환해낼 수 있는 무기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칼이나 소환해서 무한의 검제 놀이나 하지. 미친 새끼…….’

    그 편이 훨씬 간지가 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백주월은 이세계로 전이되어서 처음 소환해낸 무기들이 ‘백린탄’이거나 ‘고폭탄’이었다.

    내 둥지에서 수백 발의 백린탄이 소환되어 폭발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약점이 없는 두 괴물 놈을 어떻게 처리한다…….’

    내가 만들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두 녀석은 약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살육병기이며, 하이브 마인드를 찢어 죽이는 재미로 사는 사이코패스 놈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최종적으로 마주해야 될 최강의 적은 류시혁과 백주월이 될 테고.

    그런 이유로 내가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될 형태 역시 그 둘을 상대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여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후 고개를 들자 눈앞에 거대한 천칭 저울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내게만 보이는 고유 오브젝트인 모양이다.

    한 축의 기둥을 중심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끄트머리마다 저울 그릇이 달려 있다.

    총 16개.

    마치 무슨 놀이기구처럼 생긴 기괴한 저울이다.

    [하이브 마인드 누자베스의 진화 성향 평가가 개시됩니다.]

    [평가되는 덕목은 열여섯 항목입니다.]

    끼리리릭.

    거기까지 목소리가 들려온 후 저울이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아래로 떨궈진 그릇.

    그 그릇의 밑받침에는 ‘탐욕’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탐욕]

    -당신은 굶주린 짐승만큼이나 탐욕스럽습니다. 당신은 포만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일부 고귀한 가치를 지닌 동포들에게 경멸받습니다만, 그 대가로 뭔가를 더 삼킬 수 있겠죠.

    -진화 효과 : <스킬-산란장 생성>

    과연.

    진화 성향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스킬이 달라지고, 둥지의 테크트리도 달라지는 것이었다.

    '산란장은 초반에 대규모 군대를 빠르게 생산해내는데 유용하지만…… 내 계획과는 안 맞네.'

    그나저나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항목이 탐욕이라니. 내가 아리카 섬에 와서 얼마나 근검절약하며 스토익하게 살아왔는지 모르는 것 같다.

    어쨌거나 탐욕과 더불어 높은 평가를 받은 나머지 두 항목을 살펴보자.

    [위선]

    -당신은 매력적인 악의의 표본입니다. 순수하게 정제된 악의는 때때로 심리상태에 반발작용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죄책감이 환상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진화 효과 : <키메라 연구소 개방>

    키메라 생산 시설.

    확실히 이것도 매력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도 마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초월 의지]

    -둥지는 언제나 믿음직한 방호 시설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하나의 유기 개체로서 완벽에 가까워지려 합니다. 이 돌연변이성 항목은 극히 일부 하이브 마인드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진화 효과 : <마족 평가치 50 하락>, <인지하고 있는 스킬(둥지 관리 스킬 제외)>을 열화된 상태로 2개까지 습득합니다.

    “어? 이거 이래도 돼?”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탐욕 진화를 선택하면 산란장 시설을 구축할 수 있고, 위선 진화를 택하면 키메라 연구소를 둥지에 마련할 수 있다.

    어느 쪽도 준수하여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마지막 평가 항목인 ‘초월 의지’의 진화 효과에 비하면 그 둘은 아무것도 아닌 정도다.

    ‘내가 알고 있는 스킬을 두 가지 택하게 해준다고?’

    두 번째 진화를 진행하게 되는 하이브 마인드의 수준을 고려하여 밸런스가 짜인 거겠지.

    기껏해야 자신의 둥지에 쳐들어온 자경단이나 허접한 모험가 팀이 쓰던 스킬을 본 게 전부일 테니까.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에게 운 좋게 쓸만한 스킬의 정보를 들었을 수도 있다.

    물론 열화판을 불완전한 상태로 습득하는 거라 100% 동일한 스킬을 카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스킬이든 허용된다면 그 정도의 패널티는 감수할 수 있다. 마족 평가치가 절반 이상이나 떨어지는 패널티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건 고민할 가치가 없다.

    내가 선택할 진화 항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진화 ‘초월 의지’를 선택했습니다.]

    [상위 평가 항목 ‘탐욕’의 효과로 산란장 생성 스킬을 정제된 마나로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위 평가 항목 ‘위선’의 효과로 키메라 연구소를 정제된 마나로 획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배력이 30% 하향 조절됩니다.]

    [근력, 체력, 민첩의 스테이터스가 20% 상향 조절됩니다.]

    [스킬 선택권 2개가 지급됩니다.]

    지배력이 상당히 하향 조정되고, 그 대신 직접 몸을 쓰는 스테이터스가 다시 상향 조정되었다.

    그리고 가장 핵심인 스킬 선택권이 지급된 직후.

    내가 선택할 스킬을 떠올렸다. 이미 마음을 정해놨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세상엔 아직 존재하지 않을 두 스킬을 떠올렸다.

    ‘펠론 렌드마이어. 그리고 에엠페리얼 콜이다.’

    물론 열화판은 허접하게 베끼는 수준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성능을 지닌 두 스킬을 동시에 얻는 건 상당한 이점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한테 당한 워포레이처럼 되지는 않겠지.

    다른 하이브 마인드 녀석들이 암살 부대를 운영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으니까.

    스킬 선택까지 끝마치자 눈앞에 떠올라 있던 천칭 저울이 사라지고, 새롭게 갱신된 스테이터스 창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곳은 스킬창이다.

    <스킬>

    [전쟁 군주(패시브)-지배중인 마물의 전투 경험치 20%를 회수합니다.]

    [하급 부화장 생성(액티브)-하급 부화장을 생성합니다.]

    일단 내가 지니고 있던 하이브 마인드 기본 스킬은 변함이 없다.

    [크랙 펠론 렌드마이어(패시브)-모든 병기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크랙 에임페리얼 콜(액티브)-병기를 소환합니다.]

    생겼다!

    진짜로 생겨났다!

    솔직히 반신반의하던 구석이 없지 않았다는 점, 고백한다. 왜냐면 이 스킬들은 현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건 류시혁이나 백주월 녀석이 이쪽 세계로 넘어오면서 여신 스텔라에게 받은 에픽 스킬이란 말이다.

    즉, 두 녀석이 오기 전까진 이런 스킬은커녕 비스무리한 것도 없었다.

    “일단은 스킬의 세부 정보부터 살펴보자.”

    내가 얻은 두 스킬은 어디까지나 열화판.

    진짜 류시혁과 백주월의 능력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다면, 내가 먼치킨 소설의 주인공이겠지만.

    아쉽게도 이건 어디까지나 열화판이다.

    얼마나 비스무리하게 흉내 낼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만 했다.

    [크랙 펠론 렌드마이어(패시브)]

    [등급 : F]

    [1.검, 단도, 도끼, 등의 참격 무기의 이해도가 약간 상승합니다.]

    [2.활, 석궁, 머스킷 등의 사격 무기의 이해도가 약간 상승합니다.]

    [3.둔기, 철퇴 등의 타격 무기의 이해도가 약간 상승합니다.]

    [4.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5.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6.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7.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8.채널링 된 월드(1개)입니다. 현재 등급에서 채널링 확장이 불가능합니다.]

    ‘말이 좋아서 펠론 렌드마이어지 그냥 일반적인 컴뱃 마스터리잖아…….’

    아무리 열화판이라고 해도 이건 좀 정도가 심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컴뱃 마스터리 스킬과 차별화된 점이라면, 향후 스킬을 계속해서 단련할수록 진짜 펠론 렌드마이어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어서 백주월의 스킬인 에임페리얼 콜도 확인해 보자. 내 소설에선 백린탄이나 고폭탄뿐만 아니라 아파치 헬기 편대까지 소환해내서 헬파이어 미사일 샤워까지 가능했다만…….

    [크랙 에임페리얼 콜(액티브)]

    [등급 : F]

    [1.마나를 소모하여 무기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2.질량 600g 이하의 단순한 구조의 무기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3.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4.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5.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6.소환 유지 시간은 최대 3분입니다.]

    [7.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8.채널링 된 월드(1개)입니다. 현재 등급에서 채널링 확장이 불가능합니다.]

    바로 시험 삼아 권총을 하나 떠올리며 소환해 보려 했지만.

    [현재 채널링된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현재 스킬 등급으로 소환하기에 너무 복잡한 구조입니다.]

    [소환에 실패했습니다.]

    이런 얼토당토 않는 메시지만 눈앞에 떠올랐다.

    “아니…… 내가 아파치 헬기까진 기대 안 했는데, 권총 정도는 가능하게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질량 600g 이하의 무기.

    그것도 소환 시간이 고작해야 3분이다.

    아마 이 최대 소환 시간이란 건 무기를 하나만 소환해냈을 때의 이야기일 것이다.

    백주월도 한 번에 여러 개의 무기를 소환해내면 유지하는 시간이 극도로 짧아졌으니까.

    그러니까 현재의 나는 조잡한 단검 한 자루를 3분 동안 소환해내는 게 고작이란 말이다.

    “산란장 생성 스킬이나 얻을 걸 그랬나.”

    그렇게 뒤늦은 후회를 하는 동안 721호 둥지의 심부 정리 작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번 전투의 진짜 수확품을 확인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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