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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24화 (24/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24화

동족포식(3)

매복 사격으로 적의 사기를 일순간 꺾은 후.

타이밍 좋게 투입된 언더 케이지 부대의 효율은 상상 이상이었다.

“히, 히익……! 사, 살려…… 사람 살려! 꺽!”

“아아아악! 죽을 거 같아! 죽을 거 같다고!! 그만 찔러!”

“으아아악!”

매복 사격 후 남은 자경단의 수는 13명.

그중에서도 몇몇은 이미 석궁 볼트를 맞아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언더 케이지 부대의 렛맨들에게 제대로 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전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이건 그저 단조로운 학살극이었다.

[누자베스 : 챙길 수 있는 건 챙기고, 시체는 모조리 불태워라.]

누자베스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마인드 모드를 종료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눈 주위를 손끝으로 꾹 누르며 문질렀다.

“키…… 오야지 괜찮냐?”

코탈린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괜찮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하이브 마인드 누자베스다.’

누자베스는 자신이 흔들림 없는 구심점이라는 사실을 쉴 새 없이 증명해야만 했다.

코탈린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장을 벗어났다.

역시 이딴 세상은 픽션이었을 때가 나았다.

누자베스는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떠올렸다.

* * *

“하핫! 완전 노다지구만. 이런 허접한 새끼들을 처리한 것만으로도 부대 레벨이 꽤나 오르잖아. 다른 마을 자경단은 없나? 맨날 쳐들어 와줬으면 좋겠는데.”

“키륵! 키르륵, 키륵!”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스시 먹으려고 손 씻었다고?”

“키륵!”

“그래그래, 와탈라 잘했다. 나중에 스시 먹으러 가자.”

“키르륵! 키륵!”

고블린 서비스의 부대장 와탈라가 자경단을 해치우고 얻은 전리품을 가져왔다.

싸구려 무구와 장비들뿐이라 돈이 될 것 같은 물건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구성된 자경단을 토벌하고 얻는 전투 경험치는 마물의 배 이상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마물을 처리하는 것보다 인간을 죽이는 편이 훨씬 효율이 좋다는 말이었다.

‘둥지가 규모를 갖추면 어느 정도의 모험가들을 일부러 끌어 들이는 편이 좋겠군.’

그렇게 생각하면 하이브 마인드와 둥지란 ‘파리지옥’ 같은 것이다. 파리를 유혹해 끌어들인 후 목숨을 걸고 먹는다.

실패하면 죽는 것이고, 삼키는 데 성공한다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구태여 둥지로 끌어들이는 이유?’

오늘처럼 필드에서 전투를 치룰 수도 있다.

하지만 하이브 마인드의 홈그라운드는 둥지다.

같은 수준의 병력이라면 둥지 내부에서 싸우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어쨌거나 이번 전투로 언더 케이지 부대와 고블린 서비스 부대의 성장도를 확인한 후.

“루칸다.”

“예, 각하.”

내가 부르자마자 루칸다가 내 뒤편에서 나타났다.

“우발적 해프닝으로 내 군대가 721호 녀석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군.”

“차악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패널티를 감수해야만 하는 적기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경쟁 상대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721호 둥지의 관리자가 저능아가 아닌 이상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취할 것이다.

‘블러디 배럴을 가동하고 있다면 녀석의 고블린 부대를 신경 쓸 때가 아니지.’

구울 부대를 숨겨놨을 가능성이 상당했다.

최악의 경우는?

블러디 배럴. 통칭 ‘와인통’이라고 불리는 시설이 생산해내는 최종적인 마물은 하나뿐이다.

‘흡혈귀는 곤란하지. 그런 고위급 마물을 이미 손에 넣었다면 곤란해.’

흡혈귀를 상대로 렛맨과 고블린 부대로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인간 놈들에게 발견돼서 시설을 파괴당하는 것보단 이게 나았지만.’

어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시간은 철저하게 721호의 편이었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복잡하게 얽힌 머릿속을 비워냈다.

그리고는 날숨과 함께 명령을 토해냈다.

“루칸다. 지금 즉시 721호 둥지를 제압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레오란드가 얼마나 개지랄을 할지는 나중에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자.

* * *

독실한 성직자. 혹은 귀족 집안의 영애.

그들의 혈액은 상당히 높은 ‘블러드 포텐션’을 지닌다. 쉽게 말해 흡혈귀가 선호하는 맛의 혈질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주변에 성직자나 귀족 영애가 없다면 차선책으로 사용되는 것이 순결한 처녀의 피였다.

721호 둥지의 관리자 ‘워포레이’는 근처 마을에서 납치해 온 어린 소녀들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본관은 운이 좋다.’

현재도 바체트 령 각지에 흩뿌려지는 하이브 마인드의 수는 수만 마리를 넘는다.

하지만 하이브 마인드가 1년 동안 살아남을 생존율은 0.03%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둥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경단에 당하거나, 자경단까지 무사히 처리해내도 모험가 팀의 침략을 받아 죽는 경우가 대다수.

일반적인 하이브 마인드가 구성할 수 있는 병력의 질이나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인간들 역시 수십 년에 걸쳐 하이브 마인드와 둥지에 관한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 대응 방법은 현재에 이르러 상당히 체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제 곧 본관의 둥지는 몇 단계를 단번에 초월하게 될 테니까.’

하이브 마인드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경지.

인간들의 분류법에 따르면 ‘생추어리’라고 불리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거기까지 도달하면 더 이상 그 어떤 모험가도 침범할 수 없게 된다.

공략 불가 판정.

그 영역까지 단번에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워포레이는 단숨에 둥지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과 우연히 조우하게 되었다.

“키륵키륵!”

“키!”

이제는 꽤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코볼트들은 소녀들의 발목을 묶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는 머리 밑에 큰 통을 놓자, 고블린 한 마리가 단검을 들고 묶여 있는 소녀 쪽으로 향했다.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동시에 소녀의 몸에서 검붉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채집된 혈액은 이 공터의 구석에 심어져 있던 한 그루의 나무 쪽에 뿌려졌다.

‘혈루목.’

3미터 남짓한 작은 나무는 피를 뿌려주자 작게 흔들렸다. 마치 식물이 아닌, 기괴한 생물체인 것처럼 말이다.

혈루목은 높은 혈질을 지닌 혈액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마계 식물 중 하나였다.

코를 틀어막을 만큼 끔찍한 악취를 풍기며, 짙은 갈색의 잎사귀에 미세한 핏줄이 돋아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비록 식물이긴 하지만 구울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이 나무는 상당히 민감하고 예민하여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다.

햇빛이 닿으면 안 되었고,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나 혈질에 따라 금방 시들어 죽기도 했다.

그렇다면 워포레이는 어째서 이런 번잡한 식물을 구태여 기르고 있는 것인가? 단순히 취미 생활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번잡하고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혈루목에서 극소량 채집할 수 있는 ‘테네브레의 눈물’이 목적이었다. 어느 정도 성장을 끝마친 혈루목에선 끈적끈적한 수액을 채집할 수 있었다.

그 수액이 다시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치면 테네브레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액체가 된다.

혈루목의 수액 2000cc 정도에 테네브레의 눈물 한 방울이 생산된다.

그리고 이 테네브레의 눈물은 고위급 흡혈귀의 기호품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상당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포레이는 테네브레의 눈물을 판매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제 머지않았다. 곧 본관의 둥지가 아리카 섬을 지배한다.”

워포레이는 시선을 돌렸다.

혈루목의 반대편.

철창으로 사면이 가로막혀 있는 거대한 감옥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새하얀 드레스 차림의 시체가 한 구.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체가 아니었다.

저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형태와 가까운 아인종의 마물. 통칭 흡혈귀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저 흡혈귀는 ‘가사 상태’로 수백 년 동안 지하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의 흡혈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지하에서 가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흡혈귀는 흔치 않다.

현재 이 아리카 섬에서 비견될 수 있는 상대는 없을 것이다. 그 강대한 세력을 지닌 카타쿨라조차도 말이다.

“테네브레의 눈물은 곧 완성된다.”

테네브레의 눈물은 고위 흡혈귀들의 기호품으로 소비되기도 하지만, 강력한 각성 작용을 지니고 있다. 즉 가사 상태의 흡혈귀를 깨우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워포레이는 점액처럼 꾸물거리는 몸뚱이를 끌고 철창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놓았던 와인잔을 들었고, 자신의 손목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었다.

흑갈색의 혈액이 콸콸 쏟아져 나와 와인잔을 채웠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다.

워포레이 자신의 혈액에 테네브레의 눈물 한 방울을 섞어 흡혈귀에게 마시게 하는 순간. 눈을 뜬 흡혈귀는 워포레이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하게 된다.

“키르륵! 키륵키륵!”

“키륵!”

그 직후.

둥지의 바깥에서 경계를 서던 고블린 부대가 호들갑을 떨며 돌아왔다.

불길한 예감이 워포레이의 뇌리를 스쳤다.

* * *

[누자베스 : 시체가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구만.]

[햄토리 : 쮸! 쮸쮸, 쮸…… 쮸쮸, 쮸쮸우.]

[루칸다 : 프로릴의 남부 전선이 떠오르는 냄새군요.]

721호 둥지의 안으로 전진할수록 냄새는 짙어져 갔다. 블러디 배럴을 가동시키기 위해선 대량의 혈액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희생양이 된 인간들의 시체가 썩는 냄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이 냄새는 조금 다르군.’

단순히 시체가 썩는 냄새가 아니다.

오히려 푹 썩혀서 발효시키고 있는 냄새에 가까웠다.

‘블러디 배럴이 아니라면…….’

서둘러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설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높은 혈질을 지닌 혈액을 대량으로 사용하며, 끔찍할 만큼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시설이 또 있었던가?

[누자베스 : 잠깐, 프로릴? 루칸다 너 본도에도 가본 적 있었냐?]

[루칸다 : 애초에 본도 출신입니다, 각하.]

[누자베스 : 프로릴. 프로릴이라면…….]

흡혈귀의 군주.

그러니까 ‘프린스’의 직위를 지니고 있는 ‘브람스’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백주월이 초반 챕터에서 깽판을 부리고 다니는 곳이기도 했다.

‘프로릴의 전초 기지에서는 혈루목 재배가 이뤄지고 있었지. 중요한 보급품을 만들기 위해서.’

테네브레의 눈물이다.

주로 장교급 흡혈귀들의 향락품으로 보급하기 위해 재배하고 있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흡혈귀에게 진통제로 사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혈루목. 테네브레의 눈물을 생산해내기 위한 시설이 이 둥지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블러디 배럴로 고작 구울이나 하급 흡혈귀를 생산해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위험도였다.

721호 둥지의 관리자는 이미 ‘흡혈귀’를 손에 넣었고, 그 흡혈귀에게 사용하기 위해 혈루목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으니까.

[누자베스 : 루칸다! 721호 둥지의 관리자를 선결적으로 처리한다. 현시점을 기점으로 전 병력의 지휘권은 햄토리에게 일임하겠다.]

내 명령과 동시에 수십 마리의 고블린 무리가 선두에 나와 있던 언더 케이지 부대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자베스 : 좋아, 흡혈귀가 나타난다면 교전은 최대한 지양한다. 최소한의 피해로 퇴각한다.]

[햄토리 : 쮸!]

그리고 언더 케이지 부대의 앞을 가로막은 고블린 무리.

붉게 충혈된 눈.

쉴 새 없이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거품.

확실히 일반적인 고블린의 모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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