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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23화 (23/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23화

    동족포식(2)

    “으아…… 힘들어 죽겠네, 여기까지 오는 데만 체력 다 쓴 거 같아.”

    “거 시끄럽게. 아까부터 계속 힘들다 힘들다 노래를 부르니까 다른 놈들도 힘들어하잖아.”

    “차툰 형님, 말은 똑바로 합시다. 제가 불평해서 힘든 겁니까, 아니면 그냥 이 길이 빡세서 힘든 겁니까? 저쪽 길로 돌아가면 더 가깝다니까 아주 똥고집을 부리더니…….”

    “뭐? 똥고집? 내가 너만한 조카가 있어 이 어린노무 새키야!”

    “늙은 조카 있어서 좋겠수다.”

    “야!!”

    트레카 마을의 자경단 리더를 맡고 있던 ‘차툰’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내질렀다.

    자경단은 이번 둥지 토벌을 위해 비탄의 숲을 경유해 지나가야 했다. 비탄의 숲은 고블린들의 영역이니 조용히 해야 된다고 몇 번이나 거듭해서 강조하던 차툰 본인이 먼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조용히 안 하면 고블린들 몰려오잖아!”

    “하핫, 자네 고블린 같은 게 무섭나?”

    “넌 인마, 분뇨 바른 단검에 안 맞아봐서 그래. 그거 맞으면 몇 달은 낫지도 않아.”

    트레카 마을의 자경단 수는 20여 명.

    평소엔 농사나 짓던 농부가 대다수지만, 자경단 활동 경험은 꽤 적지 않았다.

    이제 막 생성된 하이브 마인드의 둥지를 토벌한 경험도 각자 서너 번 정도는 있다. 이번에 토벌에 나선 둥지도 비슷한 수준이다.

    둥지를 발견하면 먼저 길드에 보고하게 되고, 길드에서는 둥지의 마나량을 측정하여 수준은 가늠한다.

    그 측정법이 언제나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다수의 둥지는 이 측정법으로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성장한 둥지일수록 더 큰 마나량을 저장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트레카 마을의 자경단이 토벌에 나선 둥지의 경우, 길드에서 ‘의뢰 거절’ 판정이 난 곳이다.

    너무 수준이 낮아 자경단이 나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곳이란 의미였다.

    길드에서 의뢰를 받아 주더라도, 수준 낮은 둥지를 짓밟기 위해 구태여 나서는 모험가 팀은 없었다.

    “저기, 저곳이네.”

    숲의 남쪽에서 빠져나오자 구릉지 밑자락에 뚫린 동굴의 입구를 자경단원이 가리켰다.

    “기껏해야 코볼트나 고블린 몇 마리가 전부일 거야. 다들 정신만 바짝 차리면 큰 탈 없이 처리할 수 있어.”

    자경단의 리더 차툰이 단원들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길드에서 의뢰 거절을 하는 둥지의 수준은 뻔했다. 차툰의 말대로 정신만 바짝 차리면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었다.

    * * *

    “키륵…….”

    “키!”

    부스럭.

    자경단의 앞에 나타난 것은 고블린이었다.

    자경단이 둥지로 향하던 중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고블린의 수는 다섯 마리. 무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조잡한 단검을 꼬나 쥔 모습이었다.

    하지만 끈적끈적한 침을 주둥이 아래로 질질 흘리며, 핏발이 선 눈을 굴리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오금이 저릴 것이다.

    “윽, 징그러운 놈들…….”

    “토비! 활 쏘는 연습 좀 했다며. 실력 좀 보여줘봐.”

    둥지 토벌 경험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전투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존재했다.

    모두 내색하진 않았지만 적지 않게 겁을 먹은 상태.

    서로의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래서 자경단 놈들은……!’

    차툰은 혀를 차며 다가오기 시작한 고블린들을 노려봤다. 그 역시 지금은 자경단에 속해 있었지만, 그래도 2년 전까진 영주의 성에서 병사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성 주변에 생겨난 둥지라던가 마물의 부락을 토벌해 본 경험도 적지 않았다.

    차툰은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다들 침착하게 상대해! 아무리 위협적으로 생겼어도 겨우 고블린이다! 머릿수도 우리가 더 많으니까 겁먹지 말라고!”

    앞에서 한 사람이 고블린의 이목을 끌면, 측면이나 후방에서 창으로 찔러 천천히 처리하면 된다.

    수는 고작 다섯.

    자경단의 수는 20명이다.

    게다가 강하지도 않은 고블린이니 여기서 고전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덤벼 봐! 덤벼 이 괴물 자식들아!”

    “키륵, 키르륵!”

    캉!

    차툰이 날아든 박도를 쳐내며 고블린의 몸통을 크게 베어냈다. 훌륭한 실력은 아니지만, 딱 기본은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캭!”

    고블린 한 마리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자, 뒤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자경단원들이 용기를 얻어 달려들었다.

    “생긴 것만 흉측하지 별거 없어!”

    “멀리서 찔러! 등을 찔러서 죽여!”

    “화, 화살 쏠게요! 쏴요! 쏴…… 으아아앗!”

    “으악! 어딜 쏘는 거야, 토비!”

    순식간에 자경단원들이 달려 들었다.

    “캬륵, 캬륵!”

    “키르륵!”

    남은 고블린 4마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의 입구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놓치지 마! 녀석들이 둥지에 도착하면 하이브 마인드가 자경단이 온 걸 눈치채게 된다!”

    이 정도 거리에서 고블린들이 먼저 둥지에 도착한다면?

    하이브 마인드도 아주 가만히 앉아서 당해주진 않을 것이다. 둥지 토벌이 실패로 이어질 확률은 적었지만, 더 까다로워진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했다.

    “쫓아!”

    “달려, 달려!”

    차툰이 앞장서서 내달리기 시작했고, 그 뒤를 자경단원들이 따라 달렸다. 구릉지의 아래를 향하는 추격전이 시작된 참이었다.

    * * *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이 질의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은 도출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웹소설 작가 한주호가 아니라, 하이브 마인드 누자베스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 중 하나였다.

    ‘소설로 쓸 때만큼 가볍지는 않네.’

    인간을 죽인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조리 송두리째 빼앗는다는 의미였다.

    누군가의 아버지일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형제일지도 모르며.

    누군가 죽도록 사랑했던 누군가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악한 행위를 자행하기 직전의 지점.

    나의 원래 삶에서 꽤나 떨어져 나왔다는 실감이 뒤늦게 중추신경의 안쪽을 내달렸다.

    내 일상의 중력이 미치지 않는 먼 곳까지 튕겨져 나온 것이다. 돌아가야 할 지점이 어딘지 분간조차 가지 않을 만큼 말이다.

    우주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것만큼 공허한 부유감에 휩싸여, 숨을 토해낼 때마다 선명해지는 악몽 속에서 나는 나의 대답에 대한 검증을 끝마쳐야만 했다.

    [루칸다 : 누자베스 각하. 녀석들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누자베스 : 그래.]

    짧게 대답한 후 눈앞에 펼쳐진 구릉지의 풍경을 내려다 봤다. 루칸다의 말대로 고블린들을 쫓고 있는 자경단의 모습이 보였다.

    눈앞의 고블린을 쫓기 위해 대열이 꽤나 길게 늘어나 있었다.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자경단의 한계다.

    대열이 늘어진 상태에서 받게 될 기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누자베스 : 전부 죽겠군.]

    [루칸다 : 각하께서 원하신다면 한 놈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루칸다는 ‘적을 괴멸시킨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일개 고블린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들 정도의 판단이다. 루칸다는 ‘자경대를 물린다’는 목표를 잊지 않고 있었다.

    필요 없는 살생으로 코스트를 높이는 짓은 처음부터 염두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대화로 저 자경단이 물러가 준다면 루칸다는 기꺼이 대화에 나설 놈이었다.

    [누자베스 : 내가 저들을 다치게 만들거나, 죽이는 걸 원치 않는다면?]

    [루칸다 : 존귀하신 전쟁 군주의 의지라면. 그 무엇이든.]

    [누자베스 : 솔직히 말해 봐라, 루칸다.]

    [루칸다 : 그 이유를 묻겠습니다.]

    [누자베스 : 내가 죽음의 무게조차 견딜 수 없는 심약한 녀석이라고 가정해 보자고.]

    [루칸다 : 재밌는 가정이군요.]

    고블린 서비스 부대의 매복 지점까지 300미터 정도. 자경단 놈들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달리기 바빴으니까.

    [루칸다 : 오늘 죽이지 않으면 내일 죽게 될 겁니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겁니다, 각하. 수많은 희생을 흙발로 짓밟으며 서있는 것이 ‘살아간다’라는 의미입니다. 희생을 짓밟고 서있을 각오와 용기가 없다면 누군가에게 짓밟힐 뿐이겠죠.]

    [햄토리 : 쮸쮸! 쮸! 쮸우-! 쮸, 쮸쮸!]

    루칸다는 낮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루칸다 : 확실히 그 말대로군요. 해변의 모래사장에 모래 한 스푼 보태는 것뿐입니다. 그 행위의 경중은 대상하는 세계의 넓이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 식의 관점도 있겠지.

    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은 그렇게 객관적이고 냉철한 관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언젠가 저 둘에게 알려주자.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말이다.

    [누자베스 : 이런 고뇌는 싸구려 비극의 서두 같군.]

    [루칸다 : 각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누자베스 : 한 놈도 빠짐없이 데드 엔딩이다.]

    수풀 속에 잠복하고 있던 고블린 사수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 * *

    피슉!

    날카로운 파공음이 평지를 가로질렀다.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자경단원의 머리가 날카로운 볼트에 꿰뚫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헉, 헉…… 토비 인마! 누굴 쏘는 거야!?”

    “아니에요! 제가 아니라구요! 방금 분명 저쪽에서…… 끅!”

    자경단원 토비의 목덜미에 두 뼘 길이의 볼트가 날아와 박혔다. 왼쪽에서 오른쪽. 토비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에 박힌 볼트를 더듬었다.

    “이런 망할! 마물 놈들이 매복하고 있었잖아!”

    “끄, 끄극…….”

    자경단원들이 재빠르게 엎드렸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발을 들인 곳은 고블린 사수들의 킬존이다. 두 그룹으로 나눠진 고블린 사수들에게 십자포화를 받기 딱 좋은 위치였다.

    “토비! 얌마, 토비 정신 차려!”

    “읍, 으…… 으으…….”

    “괜찮아, 그냥 스친 거야. 화살이 목을 스친 거라 마을로 돌아가서 치료하면 금방 낫는다고!”

    “어, 엄마아…… 흑, 흐윽…… 엄마, 엄마…….”

    “가만히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마.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곧 괜찮아질 거야.”

    “베이커, 아저씨…… 저, 정말 괘…… 찮아요? 괜찮…… 헉, 괜찮아…… 보여요……?”

    토비는 이내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는 축 늘어졌다.

    더 이상 경련하듯 떨지도 않았고, 피거품을 토해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지도 않았다.

    “으아아아아!!”

    베이커는 창을 꽉 움켜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덤벼! 덤비라고 개자식들아! 겁쟁이처럼 숨어서 화살만 쏘는 게 전부냐!”

    “베이커!! 엎드려!”

    피슉! 피슉!

    순간 연달아 석궁이 발사되는 소리가 울렸다.

    볼트가 날아드는 방향을 향해 달려들던 베이커의 몸이 멈췄다. 이미 여섯 발의 볼트가 그의 가슴과 복부에 꽂혀 있었다.

    “끅, 끄륵…….”

    순식간이었다.

    자경단이 이렇다 할 전투도 해보지 못한 채 당한 것이다.

    자경단의 리더를 맡고 있었던 차툰도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십자포화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고? 길드에서 의뢰를 맡기 거절한 둥지의 하이브 마인드가 이 정도로 지능이 발달할 수 있는가?’

    완전한 판단 미스였다.

    만약 상대가 마족의 정규군이었거나, 성장을 어느 정도 끝마친 하이브 마인드였다면 충분히 가능한 전법이다.

    하지만 이제 막 생겨난 하이브 마인드가 구사하리라곤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철그덕.

    이미 자경단 인원의 절반 정도가 줄어든 순간.

    언덕 너머에서 철소리가 울렸다.

    까마귀 같은 가면을 뒤집어 쓴 중장갑병이 어림잡아 60여 마리.

    “원군일 리가 없겠지.”

    이런 시시한 일로 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차툰도 자경단의 단원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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