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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22화 (22/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22화

    동족포식(1)

    준비는 순조로웠다.

    루칸다는 부대 운용 경험이 있었던 것처럼 언더 케이지 부대와 고블린 서비스 부대를 익숙하게 활용했다.

    지하 수도와 비탄의 숲을 오가며 부화장을 계속해서 가동시킨 덕분에 병력도 꾸준히 늘어났고, 획득한 전리품이나 골드 역시 늘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늘었는지 볼까.’

    코볼트들이 작업하는 토굴 근처에 누워서 보급식을 꾸역꾸역 먹는 게 내 유일한 일과가 되어 있었다.

    틈틈이 둥지의 발전 현황도 확인하고 말이다.

    <765호 둥지 부대 편제>

    [제1부대 : 언더 케이지]

    -부대장 : 햄토리(엘리트 렛맨)

    -부대원 : 렛맨 68체

    -정보 : 근접전에 특화된 클로징 컴뱃 부대입니다. 방패와 중장갑을 활용한 돌격은 적의 진영을 순식간에 붕괴시킵니다.

    [제2부대 : 고블린 서비스]

    -부대장 : 와탈라(고블린 사수)

    -부대원 : 고블린 사수 40체

    -정보 : 석궁으로 무장한 이 고블린 부대는 산악 및 험지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기동력을 보여줍니다. 일부 지역에서 매복 기습은 기대 이상의 효율을 지닙니다.

    아, 고블린 서비스 부대는 루칸다의 추천에 의해 원거리 지원 부대로 편성되었다.

    빠르게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활이 아닌 석궁으로 무장한 것이 특징이다. 엎드려서 매복한 채로 기습 사격을 가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단점이라면…….

    일정 거리 이상의 표적에 대한 명중률이 절망적일 만큼 낮다는 것. 그리고 석궁 자체도 비쌌지만, 볼트값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대원이 늘어날수록 운영비가 무서울 기세로 늘어나는 놈들이다.

    '아, 그리고 다른 부대가 세 개 더 있었지.'

    정규 전투 부대는 아니지만 말이다.

    [제1작업대 : 핫산과 친구들]

    -부대장 : 코틀러(코볼트)

    -부대원 : 코볼트 15체

    -정보 : 똑바로 서라, 핫산!

    [제2작업대 : 비자발적 야근 동호회]

    -부대장 : 코탈린(코볼트)

    -부대원 : 코볼트 15체

    -정보 : 어째서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았지?

    음.

    그 뭐냐.

    매일 눈에 띄진 않지만 내 둥지의 발전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주는 애들이다.

    그런데 이 부대명은 도대체 무슨 원리로 정해지는 거야?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하나 더 유의해서 봐야 될 부대가 있었다.

    [지휘자 직속 제1부대 : 비르겐슈타인]

    -부대장 : 없음(루칸다)

    -부대원 : 정예 고블린 살수 5체

    -정보 : 이들은 죽음과 삶에 대한 처절한 질의를 던지는 집단입니다. 그리고 칼날이 향하는 방향에 확고한 결말을 제시하는 부대이기도 합니다. 페이드레트 지방의 ‘타르샬라류’ 암살 기술로 무장한 이 고블린들은 그림자만큼 은밀하며, 죽음을 향하고 있는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정확합니다.

    ‘루칸다가 암살 부대까지 하나 새로 만들었지.’

    실제로 본 적이 있다.

    검은 거적때기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발소리도 안 내며 걸어 다니는 고블린 놈들이다.

    ‘루칸다의 강력한 요청으로 한 마리에 정제된 마나를 300이나 쏟아 부었는데.’

    그 결과물로 나온 것들이 그런 소름 끼치는 고블린들이었단 말이다!

    솔직히 그런 소름 끼치는 고블린들을 눈앞에 두고 보자면……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그렇다.

    ‘훌륭해! 너무 멋져! 모가지 따버리고 싶은 놈 있으면 요청하면 되나?’

    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비싼 마나를 잔뜩 때려 넣은 고블린 다섯 마리를 루칸다가 매일같이 붙잡고 가르친 결과물들이었다.

    “슬슬 내 둥지도 다른 하이브 마인드 놈들의 둥지만큼 순조롭게 커져가는데, 이름을 하나 붙여야 하지 않겠냐?”

    누운 채로 바짝 마른 빵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땀을 뻘뻘 흘리며 곡괭이질을 하던 코틀러 및 코볼트 몇 놈이 뒤를 돌아봤다.

    “뭐 좋은 아이디어 있냐? 개쩔게 멋있는 둥지명 아이디어 내는 놈은 오늘 하루 작업 면제다.”

    코틀러는 잠시 곡괭이질을 멈추고는 5초 정도 생각하다가 내뱉었다.

    “키…… 크레타?”

    “키아아앗!”

    “하지 마. 하지 마 자식들아. 키아아앗 소리 낸 놈은 앞으로 일주일 동안 무수면 노동이다.”

    “키…….”

    “키! 사쿠라! 사쿠라!”

    “둥지명이 사쿠라는 이상하잖아! 나중에 모험가들이 찾아올 텐데 뭐라고 하겠어, 어?”

    내 둥지 안으로 발을 들인 모험가들이 ‘이곳이…… 사쿠라의 안……?’ 같은 소리나 할 게 뻔하지 않나!

    게다가 그 사쿠라가 어떤 사쿠라인지도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그 뭐냐.

    닌자인지 마술사인지 카드 모으는 애인지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아스…….”

    “하지 말라니까.”

    “키! 그만두랑께!”

    “이제 완전 둥지명하고는 관계없잖아!”

    “더러운 둥지구만!”

    “키! 코탈린! 코탈린이 아이디어 낸다! 일가실각!”

    “너희들 제대로 아이디어 낼 생각 없지? 실장석 관련도 안 된다.”

    “누와아아아앙-! 피곤하구마아아안!”

    “드립인 척하면서 본심 말하지 마라.”

    “키! 정답! 유혹의 메이즈!”

    “퀴즈쇼가 아니니까! 퀴즈쇼 아니라고!! 너희들 이제 됐어. 곡괭이질이나 해, 자식들아.”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애초에 765호라는 편제 등록 번호도 의미심장하지 않나?

    여기가 둥지인지 아이돌 사무소인지 가끔 헷갈릴 지경이다.

    “각하, 여기 계셨군요. 직접 작업을 지휘하고 계신 겁니까?”

    “오, 루칸다.”

    때마침 루칸다가 찾아왔다.

    방금 전까지 직접 사냥에 나섰던 것인지 몸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뭐든지 척척 해주는 챔피언이 온 덕분에 나도 이렇게 빈둥거릴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빈둥거리는 걸 부정하시진 않는군요.”

    “작업하는 척이라도 할까?”

    슬금슬금 일어나 곡괭이를 집어들려고 하자, 루칸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야?”

    “반쯤은 그렇습니다.”

    루칸다는 뺨에 묻어 있는 핏물을 손으로 훑어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이 둥지와 700미터 떨어진 거리에 다른 하이브 마인드의 둥지를 발견했습니다.”

    “이웃사촌과의 첫 대면이구만.”

    내가 씨익 웃어 보이자, 루칸다 역시 쓴웃음을 머금었다.

    * * *

    하이브 마인드의 습성은 단순하다.

    둥지를 확장하고, 병력을 모은다.

    그 과정은 ‘합리적 사고’에 기반하며, 과정에서 장애물이 되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그 간단한 행동 메커니즘을 지닌 합성 생물체가 바로 ‘하이브 마인드’다.

    백주월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을 좀먹는 암세포’였고 말이다.

    그렇다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경쟁하게 된 두 마리의 하이브 마인드는 어떻게 지낼까?

    사이좋게 선의의 경쟁이나 하며 상부상조하는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일까?

    아니다.

    이 자리에서 단언할 수 있었다.

    하이브 마인드는 ‘동족포식’이라는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더 덩치가 큰 녀석이 작은 녀석을 잡아먹고, 그 둥지를 흡수하며 덩치를 더 키운다.

    감찰관은 물론이고 마왕 역시 이러한 하이브 마인드의 습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동족포식 습성이 하이브 마인드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좁은 지역에서 여러 마리의 하이브 마인드가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 한 마리가 거대한 둥지를 통솔하는 편이 훨씬 생존 확률이 올라가니까 말이다.

    약한 녀석이 강한 녀석의 먹이가 되고, 강한 녀석은 더욱 강해진다.

    이것이 하이브 마인드의 습성 중 하나인 ‘동족포식’의 원리다.

    “765호 둥지는 상당히 유리한 지리적 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섬에서 가장 강력한 두 세력과 상당한 거리가 있으니 말이죠.”

    섬의 남동쪽으로는 아리카 섬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지닌 하이브 마인드 ‘카타쿨라’의 둥지가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인 서쪽은 아리카 섬의 영주 ‘갈라우드’의 영지가 펼쳐져 있었고 말이다.

    내 둥지의 위치는 섬의 북동쪽. 두 덩치와 멀찍이 떨어진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다.

    “앞으로 각하께서 둥지를 확장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카타쿨라와 결착을 내야 할 겁니다.”

    “이쪽의 덩치가 커지면 그 녀석이 알아서 입맛을 다실 테니까.”

    “그 전에 북서쪽의 둥지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칸다는 양피지에 목탄으로 그려온 지도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내 둥지로부터 북쪽으로 7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편제 등록 번호는 721호 둥지입니다. 감찰관은 레오란드라고 하는 하급 서기관이군요.”

    “우리 둥지도 레오란드 관할인데.”

    “그렇다면 얘기가 빠를 겁니다. 감찰관을 통해 ‘포식 선언’을 하시면 제가 알아서 요리해 두겠습니다.”

    동족 포식도 최소한의 서류적 절차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선전 포고’같은 것이다.

    해당 둥지의 감찰관에게 포식 선언을 하면 감찰관은 공정하게 하이브 마인드 둘을 대면시키고, 동족포식의 절차를 진행한다.

    포식 선언을 당한 쪽에 거부권은 없다.

    전쟁에서 진다면 먹힐 것이고, 이긴다면 먹게 되는 것뿐이다.

    “그건 그렇고 자신만만하네, 루칸다. 상대의 전력은 어느 정도라고 예상하는 거냐?”

    “훈련되지 않은 고블린 20마리. 코볼트가 10마리 정도입니다. 그 외에 둥지의 방호 시설이 몇 갠가 설치되어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잘도 조사해 왔네. 그렇다면 우리가 그쪽을 삼키는데 필요한 코스트는?”

    고작 서른 마리 남짓한 마물과 둥지를 손에 넣기 위해 큰 피해를 감수할 수는 없었다. 현재 제1목표는 고블린킹 파르카의 토벌이다.

    병력의 손실은 시간의 지체를 의미한다.

    “이 정도 크기의 둥지라면 비르겐슈타인 부대를 운용하여 우두머리의 목을 칠 수 있습니다.”

    “전면전을 벌일 필요는 없다?”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죠.”

    루칸다는 마치 전부터 동족포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기에 정규 부대가 아닌 암살 부대를 별도로 양성해낸 것이다.

    “변수는?”

    이번엔 산수의 문제다.

    이쪽이 확신하고 있는 승산에서 얼마나 빼야 할지 생각할 차례였다.

    루칸다는 품에서 뼛조각을 몇 갠가 꺼내 내 앞에 늘어놓았다.

    “인간의 유골입니다. 둥지에서 80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내가 뼛조각을 만지작거리며 살펴보고 있자, 루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유골은 전부 어린 인간 암컷이었습니다.”

    “우리 이웃사촌이 좋은 취미를 지니고 있군.”

    “누자베스 각하. 어린 인간 암컷을 재료로 소비하는 행위는 몇 가진가 있습니다만.”

    “산란장인가?”

    산란장은 일부 마물 종족을 고속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중급 시설이다. 만약 우리의 이웃사촌인 721호 녀석이 산란장을 돌리고 있다면 병력의 규모 면에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산란장은 가임기의 포유류 암컷이라면 뭐든 활용할 수 있습니다. 굳이 어린 인간 암컷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와인 제조 시설을 갖췄을 수도 있습니다.”

    “블러디 배럴이라고?”

    이건 또 해괴한 테크트리를 타는 놈이 이웃에 있었다.

    ‘와인을 만들고 있다면 유골 외의 증거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좀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만에 하나 721호의 관리자가 와인을 이미 완성했고, 그 완성품을 사용하고 있다면 이쪽의 승산은 한없이 희박해진다.

    “루칸다. 조금 더 상세하게 조사를…….”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루칸다의 뒤편에 그림자가 불쑥 솟아올랐다.

    그 섬뜩하고 기괴한 광경에 잠시 입을 멈추자, 그림자가 내 쪽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721호 둥지로 트레카 마을의 자경단이 향하고 있습니다.”

    그 보고와 함께 루칸다와 내 눈이 마주쳤다.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루칸다.”

    “예, 각하.”

    “내가 침 바르고 있던 걸 뺏길 수는 없겠지?”

    “불청객들을 쫓아내겠습니다.”

    루칸다는 벗어놨던 가죽 망토를 어깨에 두르며 서둘러 자리에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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