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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16화 (16/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6화

    고블린 사냥(2)

    인간은 자신과 같은 형태에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인간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외견이란 평범에 가까운 형태일 것이다.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평범에서 거리가 먼 외견은 어떤 느낌일까?

    정답은 간단하다.

    이질감이다.

    평범과 거리가 멀면 멀 수록 이질감은 짙어진다.

    그렇기에 페페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아마 ‘지독한 이질감’에 가까울 것이다.

    “…….”

    길드의 구석진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던 소년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우연히 그곳으로 시선이 향했고, 우연히도 그 소년이 시야에 들어왔을 뿐이다.

    얼핏 보기엔 선이 고운 이미지의 소년이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만큼이나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는 소년의 머리카락과 완벽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누구나 첫눈에 호감을 느낄 법한 얼굴이다.

    하지만 페페는 소년을 본 후 알 수 없는 이질감을 가장 먼저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날카로운 듯, 혹은 지친 듯 권태로워 보이는 눈매.

    아마도 저런 형태의 미형에 분류를 붙이자면 ‘폭력적’이라는 수식어가 적당할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축적되어 온 미의 관념이 산산이 부서질 만큼 폭력적인 외견이었다.

    ‘정말 인간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너무나 짙은 이질감에 페페는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홀로 화풍이 다른 것 같은 느낌.

    물 위에 떠있는 한 방울의 기름 같은 존재감.

    페페는 아직 19살의 나이였지만 어렸을 적 그녀의 마을이 도적들에게 유린당한 이후 줄곧 검 한 자루에 의지하여 살아왔다.

    마물을 베어 본 경험도 적지 않았다. 전투에 관한 경보 장치. 그 직감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

    두근.

    가장 신뢰할 만한 경보 장치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투 직전의 고양감과 비슷한 감정이 그녀의 중추 신경을 내달리며,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페페? 갑자기 왜 그래요?”

    카를린이 걱정하듯 상냥하게 물었지만, 페페는 조용히 카를린의 가슴을 밀어내며 반대편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소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두근, 두근.

    전신의 신경이 더없이 예리하게 곤두섰다.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기민하게 반응하기 위해서였다.

    저벅.

    페페가 누자베스의 앞에 서자, 누자베스 역시 그녀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고개를 돌려 페페를 올려다봤다.

    “저기 너…….”

    “예, 무슨 일이죠?”

    “옷을 벗어 줘야겠어. 혹시 이 자리가 불편하다면 보는 눈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도 상관없고.”

    페페는 검의 손잡이를 손끝으로 타닥타닥 치며 누자베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항할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허리춤에 채워진 검을 손끝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울렸다. 마치 저항하려 한다면 벨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그게 무슨…… 뜻이에요……?”

    누자베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목소리도 더듬거린다. 명백하게 동요하는 모습.

    ‘인간의 모습으로 의태하는 마물도 있었지.’

    페페는 거의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의 추측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저렇게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꽤나 연기가 서툰 마물일 것이다.

    “네 알몸을 지금 당장 보고 싶다는 뜻이야.”

    페페는 검지와 중지로 검의 손잡이를 천천히 훑어 내려가며 이어 말했다.

    그 다음 대답을 내뱉는 순간이 마지막이다.

    ‘의복으로 가려지는 부분의 의태까지 완벽한 마물은 거의 없었어.’

    예를 들어 유성생식의 흔적이다.

    성기가 없는 경우가 가장 흔했으며, 그 경우는 의심의 여지없이 마물이라고 확정해도 좋았다.

    그 외에도 배꼽, 혹은 유두가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옷만 벗겨보면 의태한 마물인지 진짜 인간인지 9할 이상은 분간이 가능했다.

    누자베스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렇게까지 겁에 질릴 이유가 없지.’

    페페가 그렇게 확신하며 검을 뽑아 들려는 찰나!

    “벼…….”

    “벼?”

    “변녀다아아아! 도와주세요! 변녀가 저를 강제로 벗겨서 겁탈하려고 해요!!”

    “어, 어……? 거, 겁탈!? 아니, 잠깐……!”

    페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황급히 누자베스를 붙잡아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누자베스는 더욱 버둥거리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놔, 놔주세요! 이대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가서 전체연령가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상스러운 짓으로 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셈이죠!? 인생의 절반을 손해 봤다고 외치게 만들 생각이잖아요! 에로 망가처럼!!”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니까 일단 진정해!”

    “저는 절대로 그런 저열한 쾌락에 굴하지 않을 거예요! 생긴 게 이렇다고 오네쇼타물에 나오는 어리숙한 어린애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제발 부탁이니까 입 좀 다물어! 오해라고 말하고 있잖아!”

    “동네 사람드으을!! 으, 읍읍!!”

    콰당!

    페페가 누자베스를 바닥에 쓰러뜨렸고, 그 위에 올라타서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뺨이 화끈거렸다.

    죽을 만큼 부끄러웠지만 이제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인간으로 의태한 마물인지 확인해 보려고 했던 거야! 그, 그래…… 내가 경솔했어.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면 오해를 할 수도 있지. 아, 그래…… 벗는 게 안 된다면 잠깐 손으로 확인만 해볼 테니까 가만히 있으면…….”

    “으읍!! 읍!”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마물인지 인간인지 확인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페페의 손이 누자베스의 아랫배를 지나 그 밑으로 흘러내리려던 찰나.

    “페페! 안 돼요!!”

    카를린이 달려들어 페페와 누자베스를 떼어놓았다. 페페가 아연한 얼굴로 카를린을 멍하니 올려다보자, 카를린 역시 페페처럼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말했다.

    “아무리 이 남자애가 마음에 들었다지만, 스텔라 님께서 지켜보고 계신 대낮에 그런 부끄러운 행위를 해서는 안 돼요! 적어도 그런 건 해가 뜨지 않은 밤에…….”

    “태클 거는 게 그쪽이냐!”

    멀찍이 떨어져 앉아 화살대를 깎고 있던 잘론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고.

    “후훗, 페페도 벌써 그런 나이가 됐군. 하지만 남자는 의외로 섬세한 생물이라 그렇게 강제로 하려고 해봤자 정상적으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구.”

    “입 다물어요, 한스 아저씨!”

    페페는 중장갑을 걸친 중년의 남성 ‘한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연하의 예쁘장한 소년이 취향이었다니…… 회춘 포션의 개발을 서둘러야겠어.’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있던 마도술사 ‘도루란’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이 엉망진창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가까스로 페페에게서 벗어난 누자베스가 재빨리 일어나 길드 건물 밖으로 도망쳤다.

    유일하게 이 상황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인물이자, 이 모험가 팀에서 가장 상식이 있는 잘론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페페. 다음에 저 소년과 만나면 제대로 사과해라.”

    “내가 왜? 나는 분명 그 애가…….“

    “인간으로 의태한 마물일지도 모른다. 그런 촉이 왔을지도 모르지만, 역으로 그쪽의 상식대로 사고해 보자면 길드는 적진의 한복판이다. 구태여 여기까지 찾아와서 무방비하게 멍하니 앉아 있을 리 없잖아. 지금까지 그런 마물도 없었고.”

    확실히 반박의 여지가 적은 정론이었다.

    할 수 없이 페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페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뜨거워진 뺨을 숨기듯 양손으로 문질렀다.

    * * *

    “그 뭐냐?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말이다. 그 여자가 굶주린 짐승처럼 덮쳐들었을 때 눈을 부릅뜨고 말했지!”

    “쮸! 쮸쮸!”

    “이봐 여자. 내 15마력 피스톤 엔진에 불을 붙이는 건 상관없다만, 한번 점화된 엔진은 아무런 대가 없이 멈추지 않는다. 15마력 피스톤질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그만둬라, 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쳤다니까! 어떠냐, 햄토리. 형님이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알겠냐?”

    “쮸우!”

    “하핫! 모험가 놈들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쫄 필요가 없어요.”

    “쮸!”

    그렇게 모험가 앞에서도 당당한 놈이 어째서 렛맨을 10마리나 둥지 밖으로 끌고 나와서 하천 밑 다리 밑에 세워두냐고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이 있다.

    거적때기를 뒤집어쓰고 쮸쮸거리는 렛맨들의 긴장을 풀어주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궁금하겠지. 어째서 너희들이 차출되어서 여기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지.”

    “쮸우, 쮸쮸! 쮸쮸!”

    “입 다물어, 햄토리. 내가 여자애 한 놈한테 겁먹어서 그럴 리가 없잖아.”

    “쮸우…….”

    “아니, 그러니까 걔네들 머릿수가 다섯이나 있더라니까. 그중에서 여자는 둘 밖에 없었어. 머리카락이 빨간 그 여자하고, 성직자 같은 옷차림새를 한…… 어쨌거나 가슴이 멜론만한 여자.”

    나머지는 남자다!

    미리 말해두지만 남자를 상대하는 취미는 결코 없었다. 내 주유구에 끈적끈적하고 냄새나는 디젤유 같은 걸 주입하는 건 사양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혹시나 내가 그놈들에게 쫓기게 된다면 여기로 합류할 테니까, 요격한다.”

    “쮸!”

    햄토리와 렛맨 부대가 킬킬 웃으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숏소드를 절그럭거렸다.

    사람을 죽인다니까 저렇게 기뻐할 줄이야!

    역시나 아무리 외견이 귀여워도 마물은 마물이다.

    저런 귀여운 얼굴의 이면에는 잔혹한 본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솔직히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마음에 든다! 마음이 든든해지고, 평온이 찾아온다!

    “그, 그럼 다녀올 테니까 자리 이탈하지 말고 잘 숨어 있어라.”

    나는 혹시나 길드에 아직도 녀석들이 남아 있을까봐 최대한 조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길드에 도착하자 다행히도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휴…….”

    한숨을 내쉬며 일단 안도했다.

    그 페페라는 여자는 눈빛이 예리했다.

    나를 흘깃 본 것만으로도 마물이 아닐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의심당해본 적이 없었기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런데 옷은 왜 벗기려 했던 거야?’

    혹시나 인간의 모습으로 의태한 마물의 속살은 인간과 어딘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경우는 모든 부분이 인간의 형태와 일치한다. 옷을 벗겼어도 다른 점은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지, 뭔가 다른 구분법이 있었을지도 몰라.’

    이 세상이 비록 내가 쓴 소설의 설정을 기반으로 생성된 곳이라고는 해도, 내가 모르는 설정들이 넘쳐났다.

    마치 내가 미처 만들어내지 못했던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처럼 말이다.

    ‘가능하다면 그 녀석들 중에서 한 놈만 생포하고 싶군. 모험가들이 아는 정보를 캐낼수록 상황을 유리하게 굴릴 수 있으니.’

    어쨌거나 지금 이곳에 온 이유는 랄프의 사전 의뢰를 받기 위해서다.

    방금 전까지 페페와 그녀의 무리가 보고 있던 의뢰서의 앞에 섰다.

    ‘고블린 부락을 토벌하는 퀘스트라…….’

    그것도 한 곳도 아니고, 다섯 곳의 부락이다.

    게다가 시간제한까지 걸려 있었다. 방금 전에 한 번 도망쳤기 때문에 꽤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진짜 지랄 맞은 놈이구만.’

    물론 뭐든지 제시해 보라고 말한 건 나였지만, 이건 꽤나 노골적인 악의가 엿보인다.

    대놓고 엿을 처먹어 보라는 의도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무리 고블린이 시답잖은 몬스터라도 말이다.

    ‘낙오해서 약탈질이나 하는 고블린들과 부락 고블린은 명백하게 다르지.’

    그러니까 이제 막 모험가가 된 꼬맹이가 홀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는 의뢰다.

    마치 의뢰서에 ‘알아 들었으면 꺼져라’라고 적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꺼지라고 해서 꺼지고, 입 다물라고 해서 다물며 살 수는 없다. 내게는 시간과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앞으로 반년도 채 되지 않아 그 괴물이 이 섬으로 찾아오기 전에 많은 것을 해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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