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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14화 (14/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14화

마스커레이드(2)

“하, 하루 만에 이만큼을 잡았다고? 꼬맹이 너 혼자서?”

굴덴 마을의 촌장 바커스.

어째선지 토벌 의뢰 보상을 받으려면 촌장의 집을 찾아가 보라는 말을 다울에게 들었기에 발걸음을 돌려 찾아왔다.

자루에 담아 온 시궁쥐 꼬리를 쏟아놓고 보수를 달라고 했을 때, 바커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기 바빴다.

“혹시 다른 동료들이 있었나?”

“아뇨, 저 혼자요.”

“혼자서 하루 만에 30마리를?”

“의뢰받은 것 이상 잡으면 안 되나요?”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바커스는 사뭇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시궁쥐 토벌 의뢰에 실패해서 하루 만에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럼 돈을 받을 수 있나요?”

“아, 그렇지. 보수, 보수를 줘야지.”

자루에 담아온 시궁쥐 꼬리의 개수를 헤아린 후 바커스가 안쪽에서 금화가 든 주머니를 들고 왔다.

주머니를 열어 금액을 확인하자 정확히 400벨이 들어 있었다.

“10벨이 더 많은데요.”

내가 받아야 될 금액은 390벨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묻자 바커스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더 넣었네. 솔직히 반신반의였는데, 자진해서 이런 험한 일을 맡아준 게 고마워서 말일세.”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단순히 사냥의 효율이나 합리성을 고려하면 지하 수도는 상당히 비합리적인 지역이다.

‘하지만 내가 공공연하게 활동하기엔 지하 수도가 제격이지.’

첫 번째로 부화장까지 사냥감의 시체를 옮기는데 시간이 훨씬 걸리게 된다. 지하 수도에서 시궁쥐를 잡아 산지직송으로 부화장에 공급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그렇다면 부화장을 지상에 설치하는 건?

그래. 그것도 나쁘진 않다.

나도 가끔 내가 그런 얼간이 같은 짓을 태연하게 해내는 저능아이길 바랄 때가 있었으니까.

뭐, 어쨌든.

두 번째 문제. 지금은 내 병력을 공공연한 장소에서 활동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지하 수도라면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렛맨 부대가 발각될 위험은 거의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지하 수도에서 시궁쥐를 사냥하는 게 베스트.’

쥐 죽은 듯이 지하에서 병력을 늘리고, 힘을 비축하는 게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밝힐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시궁쥐 토벌 의뢰를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지만.

“고맙네, 정말 고맙네…… 누자베스.”

바커스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지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알다시피 마을의 재정이 그리 좋지 않아 이 이상의 금전적 지원은 불가능하다만. 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네가 마을을 위해 고생했다는 사실을 전해줍세. 혹시나 필요한 물건이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사양 말고 부탁하게나.”

이건 나쁘지 않은 전개다.

‘아무리 벽지의 마을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인프라는 갖추고 있었지.’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잡화점이라던가 대장간 같은 시설도 존재했다.

현재까진 둥지의 모든 매각과 매입이 빌어먹을 에르바키나 연맹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

간단한 거래 정도라면 굴덴 마을을 이용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바커스 덕분에 마을 주민들의 평판도 꽤 오를 테니 말이다.

“그럼 다른 토벌 의뢰도 받겠나? 다울에게 듣자하니 마을의 북쪽에도 마물들이 꽤 늘어났다는데.”

“예를 들면 어떤 마물이 있습니까?”

“북쪽 숲에는 몇 년 전부터 고블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지.”

“고블린이라…….”

“물론 모험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의뢰는 둥지 토벌 의뢰겠지만.”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소리다.

둥지 토벌 의뢰가 가장 인기 있다는 얘기를 듣고, 좋아할 하이브 마인드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둥지 토벌은 상당히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니 좀 더 실력을 쌓고 동료를 모은 뒤에 도전하는 게 좋네.”

“지금 이 주변에서 둥지 토벌 의뢰를 하고 있는 모험가 팀이 있나요?”

“글세. 모험가들의 관리는 내가 아니라 다울이 맡고 있는 거라 말일세. 내가 알기론 한 팀 정도가 있는 것 같더군.”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릿속에 정보를 입력시켰다.

굴덴 마을은 내 둥지와도 상당히 가까운 곳이다.

이 근방에서 둥지 토벌에 나설 정도의 모험가 팀이 있다는 건 하이브 마인드로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었다.

‘일단 한 팀 정도.’

이후 다울에게서 정보를 더 듣기로 하고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그래서 다음은 어떤 의뢰를 받을 생각인가? 하루 만에 시궁쥐를 이 만큼 잡아온 걸 보니 기본은 된 것 같은데.”

바커스는 뭔가 말을 아끼는 기색이었다.

‘아직 지하 수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지하 수도의 오염과 시궁쥐의 개체 폭증은 마을 주민들에게 적지 않은 문제였다. 바커스 역시 꽤나 곤란한 기색이었고 말이다.

그렇다고 시궁쥐를 잔뜩 잡고 온 놈에게 또 같은 부탁을 하는 건 염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기야 그 끔찍할 만큼 역겨운 지하 수도에서 쥐새끼들 상대하는 걸 좋아할 놈이 어디 있겠나?

쥐꼬리만한 푼돈밖에 못 버는데!

아마도 없을 것이다. 분명 없을 게 틀림없다. 그런 놈이 있을 리 없지만.

‘나는 아니지.’

무조건 시궁쥐다.

더 잡는다.

잔뜩 잡는다.

지겨워서 토할 정도로 잡는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잡아 죽인다!

지하 수도에서 시궁쥐의 씨가 마를 때까지 잡는다! 가능한 만큼 렛맨 부대의 규모를 늘려서 최소 중대 규모의 부대를 편성한다.

이것이 내 제1목표다.

“시궁쥐를 더 죽이고 싶습니다.”

“뭐, 뭐……? 누자베스 너 지금 뭐라고…….”

“무조건 시궁쥐입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이어 말했다.

“시궁쥐만 잡아 죽입니다. 제가 이 마을을 찾아온 이유는 시궁쥐를 모조리 박멸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커스가 양손을 모아 입을 가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여자였다면 청혼하고 싶을 만큼 멋지군……!”

“아,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허허, 농담일세! 그럼 자네에게 계속 지하 수도의 정화 의뢰를 맡기겠네. 이제 더 이상 다른 놈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겠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걸로 모험가 길드에서도 다른 모험가들에게 시궁쥐 토벌 의뢰를 알선할 일도 없을 것이다.

방해 요소도 하나 줄었고, 당분간은 시궁쥐 사냥에 집중할 작정이었다.

* * *

둥지의 병력은 눈덩이가 구르듯 삽시간에 불어나기 시작했다. 렛맨 부대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하 수도에서의 전투도 속도가 붙기 시작한 덕분이다.

실제로는 2주 정도 지난 것에 불과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코볼트들을 끌고 지하 수도에 발을 들인 게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질 만큼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언더 케이지’ 부대의 병력이 렛맨 30마리에 도달했을 무렵이다.

“쮸, 쮸쮸!”

“쮸!”

햄토리의 지시에 따라 렛맨들이 옮겨온 시궁쥐 시체를 둥지의 구석에 가지런히 쌓고 있었다.

물론 꼬리는 내가 시킨 대로 모조리 잘라놨지만, 바로 하급 부화장에 넣는 일은 없었다.

“징그럽게도 많이 잡았네. 여기가 둥지인지 애완용 쥐새끼 지하 무덤인지 분간이 안 되잖아.”

이미 산더미처럼 쌓인 시궁쥐 시체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쮸!”

“나도 알아, 자식아. 많이 잡아온 건 잘못이 아니지.”

임무에서 복귀한 햄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체의 산을 올려다봤다.

“세상에, 시궁쥐 잡는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마나가 부족할 줄 누가 알았겠냐.”

드디어 자원의 공급량이 역전된 것이다!

초기엔 정제된 마나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햄토리를 만들 때는 50이나 쓸 수 있었고, 다른 렛맨을 제작할 때도 꾸준히 10씩 투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렛맨 부대의 규모가 커지며 하루 동안 잡아오는 시궁쥐의 수가 너무나 많아졌다.

그 결과?

코볼트들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죽어라 땅굴을 파내도 마나석이 부족한 상황까지 온 것이다.

“코볼트들의 수도 20마리로 늘렸는데 이러네.”

현재는 코틀러와 코탈린이 각자 조장을 맡아 반대 방향으로 둥지 확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전보다 2배는 더 빠르게 채굴을 하고 있지만, 마나석의 공급량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

“애초에 마나석은 땅을 파서 얻는 게 아니니까.”

레오란드에게서 들은 정보.

그리고 내가 이 세계의 설정을 짤 때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마나석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덕분에 어딜 파도 미량의 마나석은 얻을 수 있지만.’

막무가내로 땅을 파내서 얻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마나석을 얻기 위해선 광맥을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소설을 쓸 때 넣은 도움도 안 되는 쓸데없는 설정을 떠올려 보자.

‘마나석 광맥은 매우 희귀하다. 게다가 마나석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범용성 높은 광석. 발견된 마나석 광맥은 왕국의 철저한 통제 하에 관리된다.’

쉽게 말해서 더럽게 비싸다는 말이다!

실제로 에르바키나 연맹에서도 하이브 마인드들을 상대로 마나석을 판매하고는 있었다.

‘100짜리 마나석이 3,600벨이라고? 창렬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노양심 새끼들…….’

그런 주제에 매입 가격은 터무니없이 후려친다!

내가 팔 때는 100짜리 마나석이 880벨이 되는 기적의 논리!

분명 소설을 쓸 때는 이런 녀석들이 아니었다.

주인공 놈들이 에르바키나 연맹에 가입된 상회를 이용할 땐 간도 쓸개도 다 떼어줄 기세로 헐값 매각을 했던 놈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하이브 마인드들에겐 이렇게나 창렬하단 말인가?

“제엔자앙, 더러워서 하이브 마인드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철광값은 왜 또 내렸어? 우리가 계속 공급해준다고 막 가격 후려치는 거야 뭐야? 햄토리야 내가 더 참아야 되겠냐? 이게 맞는 일이냐?”

“쮸! 쮸쮸!”

“그래, 다 때려 부수고 이런 개짓거리 때려치우자. 애들 소집해라 오늘 에르바키나 연맹 새끼들 이승에서 숟가락 놓는 날이다.”

“쮸!!”

“좋긴 뭐가 좋아, 이 미친 전쟁광 쥐새끼야. 정신 차려. 그 새끼들한테 덤비는 순간이 우리 기일이야.”

“쮸……!”

햄토리의 뒤통수를 툭 치며 다음 수단을 강구했다.

일단 내 능력치부터 확인해 보자.

[이름 : 누자베스]

[레벨 : 9]

[클래스 : 하이브 마인드]

<스테이터스>

[근력 : 10]

[민첩 : 10]

[체력 : 8]

[마력 : 23]

[지배력 : 30]

<정보>

[진화 진행도 : 89%(1회)]

[경계도 : 10]

[위장 친화도 : 70]

[지배 : 50/160]

스킬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언더 케이지 부대를 운용하며 계속해서 시궁쥐를 잔뜩 사냥한 덕분에 상당히 레벨이 올라 있었다.

‘이 정도면 처음보단 꽤나 성장한 편이지.’

그 다음은 둥지의 정보.

19급이었던 둥지의 등급은 어느덧 한 단계 상승하여 18급이 되어 있었고.

‘병력은 코볼트 20마리와 렛맨 30마리.’

시설 현황도 큰 변화는 없다.

마나 정제소 하나와 코볼트 작업 움막.

그리고 추가된 것이 ‘하급 부화장’과 ‘렛맨 막사’ 정도였다.

그리고 진짜 문제가 되는 자원 생산량.

<자원 생산>

-철광(17/h)

-황산(1/h)

-마나석(0.5h)

코볼트 작업 부대의 규모를 두 배로 늘렸지만 마나석의 공급량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마나석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보니 굴덴의 잡화점에서 질 낮은 마나석을 팔고는 있었다. 하지만 상당한 벽지인 탓에 물가가 비싼 편이었다.

그렇다면 굴덴 마을로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가서 모조리 털어버리는 건?

‘아직 그 정도의 뒷감당은 무리지. 게다가 굴덴 마을은 이후에도 이용 가치가 높으니까.’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러고 보니 내 소설에선 류시혁 그놈이 초반에 어떻게 마나석 같은 걸 손에 넣지?’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처음 마나석을 얻는 장면이 언제였더라.

분명 초반에 고블린 사냥에 나섰다가…….

“고블린 주술사!”

그놈들의 지팡이에 박혀 있던 것이 무엇인지 뒤늦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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