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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12화 (12/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12화

언더 케이지(2)

‘진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같네.’

마인드 모드로 지하 수도를 나아가고 있는 ‘언더 케이지’ 부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햄토리가 선두에 서고, 코틀러와 코탈린이 그 뒤를 따르며 전방과 측면을 경계하는 삼각 포지션이다.

‘아직까진 별 문제없이 무난하고.’

혹시나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내가 지시하는 방향대로 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나하나 입으로 말하며 명령하지 않더라도, 마인드 모드가 활성화되어 있을 땐 내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시가 하달되는 모양이다.

[햄토리 : 쮸, 쮸쮸쮸, 쮸우, 쮸!]

[코탈린 : 키…… 안 된다. 부어 먹으면 맛없다.]

[햄토리 : 쮸쮸! 쮸!]

[코틀러 : 누렁이 입맛 인정한다. 키…….]

아니, 잠깐.

셋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야?

코볼트 놈들은 공용어를 할 줄 아는데 왜 햄토리만 말을 못하는 거지?

게다가 코볼트들이 저 쮸쮸거리는 소리를 알아 듣는 게 더 신기하다.

[햄토리 : 쮸쮸, 쮸우우! 쮸!]

[코틀러 : 맞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게 맛있다.]

[햄토리 : 쮸!!]

뭐지?

혹시나 내 둥지에 오크가 생기면 다 같이 튀겨 먹자고 작당을 하고 있는 건가? 대화의 흐름으로 유추해 보자면 햄토리 저 쥐새끼가 부먹충이다.

그런 느낌으로 언더 케이지 부대가 지하 수도를 나아가는 걸 지켜보던 중.

‘드디어 한 마리 발견했군.’

드디어 내 시야에 시궁쥐 한 마리가 포착되었다.

바로 마인드 모드로 명령을 하달했다.

[누자베스 : 사담은 거기까지다. 언더 케이지 부대 제군들.]

진행 방향에서 우측으로 꺾인 수로.

그 구석에서 시궁쥐 한 마리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었다.

[누자베스 : 우측, 적 개체 하나. 전투 개시다.]

언더 케이지 부대의 실효성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차례였다.

‘지금은 첫 전투니까 내가 직접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번 전투를 큰 문제없이 수행하면 완전히 자율 행동을 시켜도 되겠지.’

임무의 흐름도 간단하다.

지하 수도를 탐색한다.

시궁쥐를 사냥한다.

꼬리를 잘라 보관한다.

시궁쥐의 시체를 가져와 부화장에 던져 넣는다!

이 과정만 계속 반복하면 되는 매우매우 심플하고 간단한 임무다. 내가 직접 해봐서 안다. 신물이 나올 만큼 지루해서 그렇지, 어렵거나 복잡한 일은 아니었다.

‘드디어 서로를 인식했군.’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전투가 일어난 곳을 주시했다. 시궁쥐 한 마리와 언더 케이지 부대가 대치하듯 섰다.

‘전투 병력은 햄토리 하나. 코탈린과 코틀러는 어디까지나 전투 지원이다.’

코볼트 두 마리를 전력 외로 치더라도 1:1의 상황이다. 나도 1레벨 때부터 시궁쥐를 사냥했다. 햄토리보다 훨씬 낮은 능력치로 말이다.

그러니까 개고생을 한 끝에 정제된 마나까지 쏟아 부어 만든 ‘엘리트 렛맨’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과연 어떨까?’

살짝 기대 섞인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자.

[햄토리 : 쮸우, 쮸쮸!]

햄토리가 먼저 기세 좋게 숏소드를 치켜 들며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시궁쥐를 향해 숏소드를 내리쳤다.

휙!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고.

“찍!”

시궁쥐가 재빠르게 햄토리의 검격을 피하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순간 자세가 무너진 햄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완벽하게 빈틈이 생긴 측면!

[누자베스 : 야, 잠깐……!]

퍼억!

시궁쥐의 맹렬한 몸통박치기가 햄토리의 몸뚱이에 작렬했다!

[햄토리 : 쮸!]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날 만큼 화려하게 날아가 버렸다. 하수 위를 첨벙거리며 몇 바퀴나 구른 뒤에야 멈췄고, 코탈린과 코틀러가 뒤늦게 햄토리를 커버하기 위해 앞으로 다가섰다.

[누자베스 : 아니, 뭐야? 중국산이야? 중국산이냐!? 중국산 햄토리도 아니고 쥐새끼한테 진다고?]

입이 쩍 벌어졌다.

아무리 레벨 1짜리 1성급 마물이라고 해도…… 이건 기대 이상으로 끔찍했다.

‘할렐루야다 진짜…….’

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 * *

‘될놈될, 안될안.’

세상의 이치는 이 한 마디로 설명된다.

될 놈은 뭘 해도 승승장구하며, 안 될 놈은 필사적으로 아등바등해도 안 되는 법이다.

뭐,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얘기다.

하지만 운이 좋아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결국 성과를 빚어내는 것은 언제나 노력이다.

뭐든 날로 먹을 수는 없단 말이다.

운이 좋아 매일 같이 진수성찬을 대접받게 되더라도, 숟가락을 들어서 입으로 퍼넣는 노력 정도는 언제나 필요했다.

“당장 날아오는 칼만 막으면 다냐?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준비하라고!”

퍽!

햄토리의 옆구리를 거칠게 걷어차며 발을 뻗어 거리를 좁혔다.

“쮸……!”

햄토리가 비틀거리는 동안 바짝 붙어 상체를 숙였다.

‘하단에서 파고들면?’

지금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주입시킨 공격 패턴이다. 궁지에 몰린 채 접근을 허용한 햄토리는 순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터엉!

빠르게 제정신을 차리고 왼팔에 장착하고 있던 방패로 내 몸을 밀쳐냈다.

“쮸! 쮸!”

그리고는 내게 자세를 가다듬을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 방패를 치켜들고 자세를 숙인 채 맹렬하게 돌진해왔다.

‘연계의 원리를 드디어 습득한 것 같네.’

게다가 저 돌진 자세도 흠잡을 곳이 없다.

텅!

치켜든 방패를 향해 숏소드를 내리치자, 햄토리는 바로 방패를 측면으로 휘둘러 검을 크게 쳐냈다.

“쮸!”

그리고 그 찰나의 빈틈.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매서운 찌르기가 들어왔다.

‘나쁘지 않군.’

키잉!

가볍게 몸을 틀어 피했고, 숏소드가 동굴의 벽면을 긁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지형도 미리미리 파악해 놔야지.”

카앙!

햄토리의 숏소드를 쳐내자, 숏소드가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지면에 떨어졌다.

“쮸우…….”

햄토리는 항복한다는 듯 양팔을 들었다.

“좋아,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자.”

“쮸우, 쮸!”

“그래그래 많이 늘었어.”

북슬북슬한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준 후 생각을 정리했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나.’

그동안 매일같이 틈만 나면 햄토리를 데리고 전투 훈련을 거듭했다. 내 전공이 칼싸움은 아니지만 이래봬도 시궁쥐 놈들을 상대로 사투를 거듭해온 몸이다.

적어도 시궁쥐 한 마리 제대로 못 잡는 렛맨을 가르칠 만한 수준은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햄토리의 전투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지.’

마물의 학습 속도는 솔직히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내 움직임의 7할 이상을 흉내 낼 수 있게 됐다.

잠깐 마물 정보창을 열어봤다.

[이름 : 햄토리]

[레벨 : 7]

[클래스 : 엘리트 렛맨]

<스테이터스>

[근력 : 16]

[민첩 : 18]

[체력 : 16]

<스킬>

[포이즌 패시브 : 일반 공격에 6%의 중독 확률을 추가합니다.]

[컴뱃 마스터리 : 근접 전투에서 20%의 공격 보너스를 얻습니다.]

<정보>

[충성도 : 60]

[상태 : 햄토리는 ‘휴식이 길면 검이 녹슬지’라고 생각합니다.]

전투와 훈련을 거듭할 결과 ‘컴뱃 마스터리’라는 새로운 스킬까지 생겨났다.

‘이제는 혼자서 시궁쥐 세 마리 정도는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 됐지만.’

중요한 건 햄토리가 혼자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햄토리를 데리고 다시 둥지 하단의 부화장이 위치한 곳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쮸!”

“쮸쮸!”

“쮸우, 쮸!”

부화장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던 렛맨들이 일제히 일어나 떠들기 시작했다.

햄토리를 포함해서 총 5마리.

정제된 마나를 10씩 사용하여 생산한 덕분에 엘리트 렛맨이 아닌 ‘일반 렛맨’이지만 말이다.

모두가 햄토리와 똑같이 ‘낡은 숏소드’와 ‘세글리트의 미혹 파편’이라는 방패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방패는 둥지 확장 작업을 하면 부산물로 얻을 수 있고, 숏소드는 철광을 매각한 돈으로 구매한 것들이지.’

철광과 마나석의 생산은 코볼트들이 계속해서 일해주고 있는 덕분에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병력 생산과 장비 구입으로 보유량은 쉽사리 늘지 않고 있는 실정.

‘어쨌거나 이걸로 렛맨을 5마리나 모았고,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지?’

때마침 얼마 전 지하 수도를 탐색하던 중 마을을 하나 발견했다.

내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설정 정도는 존재했다.

‘굴덴 마을. 아리카 섬의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이지.’

이걸로 내 둥지가 정확히 어느 부근에 위치해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게 된 것이다.

류시혁이 이 섬으로 오게 되더라도, 당장 동북쪽은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심플하다.

‘동남쪽에 이 섬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 놈이 있으니까.’

카타쿨라!

아리카 섬 에피소드의 보스 격인 하이브 마인드다.

당연히 아리카 섬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지닌 하이브 마인드고 말이다.

수천 마리에 달하는 병력을 지니고 있으며, 둥지 역시 상당히 거대한 편이었다.

‘그러면 뭐하나. 류시혁 그 망할 괴물 놈이 와서 칼부림 한 번 부리니까 초토화됐는데.’

나 역시 안심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다.

카타쿨라가 메인으로 얻어터질 뿐이지, 다른 하이브 마인드들 역시 처맞긴 마찬가지니까.

작중에서 상세하게 묘사되진 않았지만.

‘류시혁은 다음날 나머지 하이브 마인드들의 둥지를 모조리 박멸했다.’

이렇게 짧은 한 줄짜리 문장으로 모조리 일축돼서 죽임을 당한단 말이다!

너무 잔챙이들이라 단 한 줄로 그들의 모든 죽음이 축약되는 것이다. 너무나 슬픈 결말이다.

그 세상 끔찍한 괴물 놈에게 맞서 싸울 내 병력들이란…… 저, 저기서 쮸쮸거리고 있는 쥐새끼들 다섯 마리가 전부란 말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게다가 전면전을 상정하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빠르게 아리카 섬에 묻혀 있는 고대 유물 및 마도구를 회수해서, 류시혁 그 괴물 놈에게서 무사히 도망칠 궁리를 하는 것이다.

도망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이 섬에 있는 사기적인 아티팩트들을 빠르게 회수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은 굴덴 마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자.”

공생을 가장한 기생.

나는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매서운 발톱도 없는 미물이다. 그런 미물이 살아남기 위해선 그다지 유해해 보이지 않는 기생충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주제 파악 끝났으면 할 일이나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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