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11화 (11/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1화

    언더 케이지(1)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매일 눈을 뜨면 지하 수도로 향하길 사흘째.

    이제는 둥지와 인접한 지하 수도의 지리는 어느 정도 외우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거기에 시궁쥐가 밀집해 있는 지역과 드문 지역도 파악이 끝났다.

    일반적인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밀집 지역으로 ‘닥돌’해서 죄다 목을 따버렸겠지만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진짜 평범한 일반인이란 말이다.

    그 덕분에 수도에서 은밀하고, 정밀하게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사냥감은 언제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고립된 시궁쥐였으니까.

    “비교적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바체트 령에서 마왕배 하이브 마인드 결투 대회 같은 거 열리면 내가 우승할 거 같지 않냐?”

    스릉!

    검집에서 숏소드를 뽑으며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하자.

    “키……. 코틀러 배고프다.”

    “죽인다! 시궁쥐! 코탈린 죽인다!”

    양옆 사이드에 서있던 코탈린과 코틀러도 곡괭이를 양손으로 꽉 쥐며 자세를 취했다.

    진짜 징그러운 나날이었다.

    그 한 푼을 아끼겠다고 직접 현장에서 뛰는 하이브 마인드는 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런 고생의 나날도 오늘로 끝이었다!

    “찍, 찍찍!”

    “찌익, 찍!”

    내 앞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

    두 마리의 시궁쥐가 이쪽을 발견하고는 잔뜩 경계하듯 몸을 낮췄다.

    “두 마리를 한 번에 상대해보는 건 처음인데.”

    휘릭!

    뽑아 든 검을 반 바퀴 돌리며 역수로 쥐었다.

    지금까지 수십여 마리의 시궁쥐를 상대하며 터득한 요령이다.

    어차피 이런 허접한 검으로는 베어봤자 저지력이 나오지 않는다. 역수로 쥐고, 쐐기를 박듯 찔러 넣는 것만이 훨씬 더 유효했다.

    “코틀러, 코탈린. 평소대로 하자고, 평소대로.”

    시간이 지나며 동원하게 된 코볼트는 이 2마리뿐이었다. 나머지 8마리는 지금도 둥지의 재정 상황 개선을 위해 밤잠을 잊고 성실히 노동 중이란 말이다.

    “한 마리씩 마킹해라.”

    거기까지 말한 후 지하 수도를 내달렸다.

    비교적 수심이 얕은 가장자리를 따라 달리자, 시궁쥐 두 마리도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단 한 마리는…….’

    까앙!

    시궁쥐의 주먹만한 앞이빨이 코틀러의 곡괭이 자루에 가로막혔다.

    촤아아악!

    그 충격으로 코틀러가 시궁쥐와 함께 크게 뒤로 밀려났지만, 중심을 잃지 않고 버텨냈다.

    며칠간의 전투 경험이 축적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코탈린!”

    “키!”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코탈린이 나머지 한 마리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곡괭이를 위가 아닌, 뒤로 쭉 뺀 채로 접근한 뒤.

    촤악!

    곡괭이를 밑에서 위로 크게 올려쳤다.

    “찍찍!”

    시궁쥐 역시 쉽사리 당해줄 생각은 없었는지, 옆으로 펄쩍 뛰며 피해냈지만.

    ‘그렇게 움직일 줄 알았지!’

    콰드득!

    바로 측면에서 덮쳐들어 숏소드를 박아 넣었다. 질긴 가죽을 찢고, 안쪽 깊숙이 박혔다.

    “찌이이익!”

    시궁쥐가 발광하기 시작했고, 예전 같았으면 그 충격으로 떨어져 나갔겠지만.

    터억!

    다리를 뻗어 시궁쥐의 목을 휘감았다.

    양쪽 다리로 몸을 고정시킨 후 숏소드를 움켜쥔 손을 몸 안쪽으로 당겼다.

    “찌익!”

    수로에 검붉은 선혈과 내장이 쏟아져 나와 흘렀다. 이걸로 한 마리 제압 끝.

    나머지 한 마리는 이제 3:1의 상황이다.

    “혼자 왔니?”

    “찍, 찍찍…….”

    빙긋 웃어 보이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제 한 마리 정도는 여유로웠다.

    * * *

    “꼴이 말이 아니군요.”

    “아, 눈치챘나요? 감찰관님 오신다고 해서 신경 써서 꾸미고 기다렸는데.”

    둥지에 도착하자 레오란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시궁쥐 시체를 내려놓은 후 능숙하게 꼬리를 잘라냈다.

    그리고는 시궁쥐의 혈액과 내장, 그리고 각종 오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가볍게 훑어 닦아냈다.

    “부화장 설치 후 4일 만에 재료 수급을 완료하다니, 놀랍군요.”

    코탈린과 코틀러가 시궁쥐 시체를 부화장으로 밀어 넣는 걸 보며, 레오란드가 사뭇 감탄한 듯 말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하다 보니까 어찌어찌 되더라구요.”

    어깨를 으쓱이며 부화장 쪽을 바라봤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병력 생산이다!

    감격에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다. 이 지긋지긋했던 시궁쥐 사냥도 오늘로 끝이다.

    “아, 그러고 보니 말해주는 걸 깜빡했는데.”

    “예?”

    “병력을 생산할 때 정제된 마나를 사용하면 더 우월한 개체치를 지닌 마물이 생산됩니다.”

    “정제된 마나를요?”

    지금까지 모은 정제된 마나는 350 정도다.

    그중에서 300은 하급 부화장 생성에 사용했으니 남은 마나는 50.

    “마나를 많이 사용할수록 더 높은 개체치를 지닌 마물이 태어나죠.”

    “많이 넣을수록 좋은 거라니…….”

    “물론 지금 지닌 정제된 마나의 양은 한정되어 있으니 스스로 조절하길 바랍니다.”

    “안 넣으면요?”

    “마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병력은 생산됩니다만, 군단의 핵심은 병력의 질입니다. 병력 생산에 인색하게 구는 건 추천할 수 없습니다.”

    “아,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그래, 레오란드의 말도 일리가 있다.

    마나 좀 아끼려고 하다가 결과물이 정크품이면 억울하지 않나?

    마나를 사용해서 병력의 질이 확연히 달라진다면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코볼트들을 계속해서 채굴 작업을 시킨 게 정답이었군. 병력 생산까지 마나가 들어갈 줄이야.’

    둥지의 시설 및 병력 생산에는 정제된 마나가 소요된다. 이 정보를 되뇌며 기억한 후 부화장에 넣을 마나의 양을 조절했다.

    ‘10만 넣을까? 아니, 아니지. 그래도 기념비적인 첫 병력이니까 50을 몽땅 털어 넣자.’

    그렇게 마나량을 분배한 후 잠시 더 기다리자.

    꾸르르륵, 꾸륵!

    부화장에서 4일쯤 묵은 숙변이 드디어 나올 것 같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오오!”

    드디어, 마침내, 고생 끝에!

    기념할만한 첫 마물이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제작 진행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꾸르륵!

    부화장의 입구가 울컥거리며 점액이 솟구쳤고, 점액과 함께 팔 한쪽이 쑥 올라왔다.

    뒤이어 나머지 팔도 올라왔고, 힘겹게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쮸, 쮸!”

    [1성급 몬스터 ‘렛맨’이 제작되었습니다.]

    1미터 30센티 정도의 조그마한 체구.

    온몸이 털로 뒤덮인 것을 빼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였다. 아, 그리고 머리가 통째로 쥐였다.

    몬스터라고 하기엔 꽤나 귀여운 얼굴인데.

    그, 좀 더 위협감 넘치는 이목구비를 원했다만.

    “생산된 마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경우 더 빠르게 충성도가 상승합니다.”

    “미키…… 아니, 아니지! 햄토리! 넌 햄토리다!”

    고민 없이 바로 이름을 지었다.

    그러자 눈앞에 햄토리의 스테이터스가 떠올랐다.

    [이름 : 햄토리]

    [레벨 : 1]

    [클래스 : 엘리트 렛맨]

    <스테이터스>

    [근력 : 6]

    [민첩 : 8]

    [체력 : 6]

    <스킬>

    [포이즌 패시브 : 일반 공격에 6%의 중독 확률을 추가합니다.]

    <정보>

    [충성도 : 10]

    [상태 : 햄토리는 ‘피 끓는 전투가 나를 부르는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트 렛맨!

    앞에 엘리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마나를 몽땅 털어 넣은 효과를 본 건가? 어쨌거나 1레벨치고는 상당히 우수한 능력치다.

    마력과 지력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나보다 훨씬 더 강하지 않나?

    “햄토리야! 크하핫! 드디어, 드디어 이 엿 같은 노가다를 대신할 놈이 왔구나!”

    “쮸우, 쮸!”

    햄토리를 격하게 쓰다듬는 동안 레오란드가 설명을 덧붙였다.

    “이제 생성된 마물을 부대에 편성할 수 있습니다. 부대 편성은 귀관의 직할 부대로 설정하여 직접 지휘할 수도 있지만, 챔피언이 있다면 지휘자로 설정하여 하위 부대를 생성할 수도 있습니다.”

    “얘 혼자는 행동 못해요?”

    “쭈우!”

    부들부들한 털로 뒤덮인 햄토리의 목을 쓰다듬으며 묻자.

    “아주 간단한 명령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공격이라던가, 도망 같은 명령 말이죠. 하지만 복잡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챔피언이나 귀관이 직접 지휘를 맡아야 합니다.”

    “저는 챔피언 없는데요?”

    “그럼 귀관이 직접 부대장이 될 수밖에 없군요.”

    역시 자동화의 길은 멀고도 먼 것인가.

    물론 나를 대신해서 그 끔찍한 쥐새끼와 맞상대를 해줄 놈이 생겼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자.

    새롭게 활성화된 부대 편성 기능을 사용해 나를 지휘관으로, 휘하 부대원으로 햄토리를 편성했다.

    ‘아차, 그리고 아직 병력의 수가 부족하니 코볼트를 임시로 같이 편성해줘야겠지.’

    뒤이어 코틀러와 코탈린 역시 같은 부대로 편성했다.

    [첫 번째 부대의 편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부대 ‘언더 케이지’가 결성되었습니다.]

    바로 부대 정보를 확인했다.

    [제1부대 : 언더 케이지(1/10)]

    [정보 : 기본적인 클로징 컴뱃 부대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무난한 성능을 보이지만, 변칙적 상황에서 대응력이 부족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휘자>

    -누자베스(lv.5)

    <부대원>

    -햄토리(lv.1)

    -코틀러(lv.4)

    -코탈린(lv.4)

    여기까진 순조로웠다.

    햄토리가 내게 바짝 다가와 쭈쭈거리기 시작했다.

    “지휘자가 있는 부대는 명령에 따라 자율 행동도 가능하지만, 귀관이 직접 ‘마인드 모드’로 지휘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까?”

    “옙!”

    딸칵.

    부대 편성과 함께 활성화된 마인드 모드를 시작하자.

    부우웅.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와 허공으로 치솟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시야의 상승이 멈추자, 어느새 내가 높은 고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시점이 되었다.

    ‘이건 가상현실게임의 1인칭 시점이 아니라, RTS의 시점이잖아.’

    과거에 유행했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같다. 햄토리가 조그마한 유닛처럼 보였고, 그 뒤로 내가 멍하니 서있는 것도 보인다.

    [레오란드 : 마인드 모드로 지휘할 때는 귀관이 직접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니 안전한 장소에서만 지휘하는 걸 추천합니다.]

    [햄토리 : 쮸!]

    [누자베스 : 알았어요, 그럼 잠깐 마인드 모드를 해제하고.]

    마인드 모드를 끝내고 돌아와서 내 허리춤에 장착하고 있던 숏소드를 해제했다. 그리고 햄토리에게 숏소드를 건넸다.

    “쮸, 쮸우쮸!”

    햄토리는 새로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 숏소드를 치켜들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자, 그럼 기본적인 무장도 시켰으니까 바로 실전 유효성을 검토해 볼까요?”

    이제 부대 운용의 유효성을 검증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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