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10화 (10/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10화

    군단의 첫걸음(3)

    “우왁! 코틀러, 코틀러! 멜빵바지 입었냐? 쥐새끼 멜빵바지 입고 직립보행 하냐? 혹시 그러면 얼른 말해라! 눈 꼭 감아야 되니까! 묘사하는 순간 끝이니까!”

    나는 코볼트들과 함께 재빠르게 후퇴했다.

    시야의 사각에서 기습을 당하는 순간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어디서 뭘 보고 배운 건 아니지만 상식적인 판단에 기인한 행동이다.

    ‘거리를 확보한 뒤 시야에 넣는다.’

    일사불란하게 갈림길에서 물러나 5미터 정도 떨어지자.

    “찍, 찌익…….”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시궁쥐도 이쪽을 발견하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한주호 이 미친 새끼야……. 저게 어딜 봐서 쥐새끼야…….”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원고를 쓰는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 뒤에 직접 첨삭 작업을 해주고 싶었다.

    아리카 섬의 지하 수도에 사는 시궁쥐는 크기 15센티 정도에 앙증맞고 귀여운 포유류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저게 멧돼지지 어딜 봐서 쥐냐고…….”

    크기는 1미터 30센티 정도가 아닐까?

    중량도 80킬로그램에 근접할 정도다.

    눈대중으로 봐도 도저히 쥐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멧돼지다. 꼬리가 쥐처럼 긴 멧돼지가 있다면 딱 저런 형태일 것이다.

    아, 하지만 겉보기가 흉악해서 그렇지 의외로 순할지 않을까?

    “찌이익!”

    아니었다. 성격도 지랄 맞았다.

    내 간절한 바람을 찢어발기듯 시궁쥐가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타다다닷!

    순간 이쪽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흩어져! 흩어져서 주의를 분산시켜!”

    코볼트들에게 그렇게 소리친 것과 동시에 시궁쥐가 지면을 딛고 도약했다.

    “찍, 찍!”

    첫 목표는 바로 나였다.

    몸통 박치기라도 당하는 순간 끝이다. 저런 거대한 쥐새끼가 들이받는 순간 늑골 바사삭이란 말이다!

    탓!

    주저 없이 몸을 측면으로 내던졌다.

    첨벙!

    나는 끈적끈적하고 냄새나는 하수 위로 미끄러졌지만, 역겨운 냄새에 얼굴을 찌푸릴 여유는 없었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시궁쥐의 위치를 확인했다.

    ‘덩치에 비해 상당히 재빠르고.’

    물론 굼벵이처럼 느려빠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 덩치에 저 만큼의 민첩성은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다.

    ‘류시혁 그놈은 이세계 오자마자 고블린 썰고 다녔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내가 쓴 소설이 얼마나 개연성과 현실성이 엉망인지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냉병기라고는 군대에서 대검 좀 만져본 게 전부인 현대의 일반인이다. 그런 놈을 데려다가 검을 쥐어주니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를 상대로 무쌍을 찍는다고?

    말도 안 된다.

    네이티브 잉글리쉬로 불쉣이다!

    일본어로는 손나 바카나! 라고 한다.

    어쨌거나.

    겁에 질려 벌벌 떨다가, 오줌 지리면서 도망만 안 가도 용감한 수준이란 말이다.

    물론 진짜 그렇게 썼다간 댓글창이 난리가 나겠지만……. 머릿속에서 대략 예상이 간다.

    -주인공 개쫄보쉑이네ㅋㅋ 하차함.

    -겨우 고블린 상대로 겁먹는 쥔공…… 더 읽어야 될까?

    -답답하다 답답해. 하차한다.

    뭐 이런 분위기 아니겠나?

    젠장, 알게 뭔가.

    지금 내 눈앞에 동네 버스만한 쥐새끼가 잔뜩 약이 올라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데!

    ‘코볼트들을 전력으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고작 시궁쥐 한 마리가 나타난 걸로 혼비백산 상태다. 애초에 전투 능력은 한없이 낮고, 전의 역시 거의 존재하지 않는 편.

    이런 코볼트들을 구태여 데리고 올 필요가 있었을까?

    ‘필요하지.’

    내가 쓴 소설 ‘던전 부수는 플레이어’에선 다양한 하이브 마인드가 등장한다. 맨날 똑같은 던전만 부수고 다니면 흥미도가 떨어지니 말이다.

    그러니까 하이브 마인드의 바리에이션을 다양하게 해서 매번 새로운 던전을 정복하는 재미를 주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이번에 코볼트를 동원한 이유는.

    ‘방벽의 역할은 할 수 있다.’

    실제로 내 소설에서 코볼트들을 활용한 전법이 있었다. 둥지에 설치된 방어 시설인 ‘발리스타’의 앞을 작업 중이던 코볼트로 가로막는 방식이다.

    공격 능력은 기대할 수 없지만, 발을 묶거나 이동의 제약을 줄 수 있다. 그걸로 발리스타가 최고 효율의 딜량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번엔 내가 발리스타 역할을 맡고.’

    코볼트들을 움직여 시궁쥐의 주의를 분산시킴과 동시에 발을 묶는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코틀러! 다음에 다시 달려들면 주위를 둘러싼다!”

    내 명령과 동시에 코틀러가 먼저 앞으로 뛰쳐나가 시궁쥐의 시선을 끌었다.

    확실히 코볼트들은 겁에 질린 표정이다.

    당장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만, 내가 ‘하이브 마인드’인 덕분에 명령에는 어느 정도의 강제력이 깃들어 있었다.

    “찍, 찍!”

    이번에는 시궁쥐가 코틀러를 향해 달려들었다.

    코틀러를 향해 몸을 던진 거대 쥐새끼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다음 행동을 재빠르게 곱씹었다.

    “키!”

    탓!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코틀러도 몸을 던져 시궁쥐의 도약 공격을 회피했다.

    타다닷!

    그와 거의 동시에 나머지 코볼트들이 곡괭이를 꽉 쥔 채 시궁쥐의 주변을 둘러쌌다.

    나는 시궁쥐의 주의가 코볼트들에게 돌아간 틈을 타고 뒤로 우회했다.

    “찍!”

    내가 뒤에서 접근하는 걸 눈치챈 시궁쥐가 황급히 몸을 틀려 했지만.

    푸욱!

    치켜든 숏소드를 측면에서 놈의 목덜미에서 박아 넣었다.

    “찌이익!”

    몸뚱이에 반쯤 박힌 숏소드를 꽉 쥐었다.

    “젠장, 가만히 좀 있어라!”

    여기서 떨어져서 바닥을 나뒹구는 순간 끝이다.

    그대로 목덜미를 물어뜯길 게 뻔했다.

    숏소드를 꽉 움켜쥔 채 반대편 손으로 수면 아래를 훑었다. 때마침 하수 밑에 가라 앉아 있던 돌덩이가 손끝에 닿았고.

    퍼억!

    그대로 돌덩이를 들어 올려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찌익, 찍!”

    퍽, 퍼억!

    “제발 죽어어!”

    아니 무슨 맷집이 이렇게 좋아?

    이게 게임이었으면 레벨링 디자인 실패로 무수한 컴플레인이 빗발쳤을 게 뻔하다. 공식 사이트가 마비될 만큼 말이다.

    퍼억!

    다시 한 번 후려갈기자 시궁쥐가 크게 펄쩍 뛰었다.

    “우왁?”

    “찍찍!”

    첨벙!

    시궁쥐의 몸에 박혀 있던 숏소드가 빠졌고, 그대로 지면에 나자빠졌다.

    내가 드디어 몸에서 떨어진 걸 눈치챈 시궁창 쥐가 독기 어린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미안, 우리 무승부로 할래?”

    “찍……!”

    무승부로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황급히 떨어진 숏소드를 쥐려 했지만, 간발의 차로 시궁쥐 쪽이 더 빨랐다.

    죽는다.

    이대로 죽는다.

    그런 예감이 들면서 눈앞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거지 같은 소설을 쓴 벌을 받는구나…….’

    다음 생애에 태어나면 장르소설 작가 같은 건 하지 말자. 그냥 미연시 시나리오 라이터나 되자. 그렇게 다짐했다.

    젠장, 내가 쓴 게 이세계 전이물이 아니라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었으면 지금쯤…… 주인공이 빨주노초파남보 형형색색 머리카락의 히로인들을 모조리 후리고 다니는 걸 구경이나 했겠지.

    적어도 이런 냄새나는 하수구에서 쥐새끼에게 물려 죽는 것보단 낫지 않나? 혹시 모르지 않나? 혹시나 장르가 NTR이면 나한테도 기회가 올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떠올리며 마지막을 각오한 순간.

    퍼억!

    “찌익!”

    밑에서부터 기세 좋게 올려쳐진 곡괭이가 시궁쥐의 아래턱을 호쾌하게 타격했다.

    그 찰나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숏소드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무방비하게 노출된 시궁쥐의 복부에 숏소드를 꽂아 넣었다.

    “으아아! 죽어어어……!”

    콰드득!

    늑골을 꿰뚫으며 창자를 찢는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무게를 실어 깊숙이 찔러 넣었다.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 핏물과 배설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숏소드를 박아 넣으며 시궁쥐가 움직임이 멈추자, 코볼트들도 일제히 달려와 곡괭이로 시궁쥐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시궁쥐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버둥거리다, 이내 축 늘어졌다.

    [경험치 35를 획득했습니다.]

    [‘전투 군주’ 효과로 경험치 7을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

    “하…… 하아…… 망할 쥐새끼…… 한 마리 상대하기도 더럽게 힘드네.”

    전직 웹소설 작가로서 이 전투를 기록하자면.

    아마도 5편 정도의 분량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전투 신 하나로 5편이나 날로 먹었다. 개꿀!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그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솔까 더럽게 빡세다.

    “아까 곡괭이로 후려친 놈 누구냐?”

    내가 시궁쥐에게 물어 뜯겨 넝마조각이 되기 직전. 한 줄기 구원의 빛처럼 날아든 일격! 그건 칭찬해줄 만했다.

    “코탈린! 코탈린이다!”

    코탈린이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섰다.

    “코탈린 동지는 내 생명의 은인이오. 우리 힘을 합쳐 바체트 열도를 사회주의 낙원으로 만듭시다.”

    얼굴을 흠뻑 적신 핏물을 훔쳐내며 코탈린의 어깨를 다독였다. 어쨌거나 이걸로 드디어 첫 사냥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쥐새끼 이거. 이놈 이거 숏소드 박으면 꼼짝도 못해.”

    “코볼트 재밌다. 하수도에서 싸움도 하고 재밌다.”

    “오야지가 최고야?”

    “키…… 숏박꼼! 숏박꼼!”

    이제 남은 건 시궁쥐의 시체를 옮기는 일 뿐이었다.

    * * *

    레벨업으로 얻은 포인트를 근력과 체력 그리고 민첩에 균등하게 분배했다. 아무리 하이브 마인드라지만 기본적인 신체 능력을 발달시켜 놓을 필요가 있었다.

    “아, 잠깐.”

    코볼트들이 시궁쥐의 시체를 들어 옮겼고, 둥지의 입구에 도착한 후.

    시궁쥐의 시체를 그대로 부화장에 던져 넣으려던 걸 일단 제지했다.

    시궁쥐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게 하고 숏소드를 뽑아 꼬리를 잘라냈다.

    ‘시궁쥐에겐 현상금이 걸려 있으니까.’

    이것도 내가 쓴 소설이라 알고 있는 설정이었다.

    이곳 아리카 섬의 영주 갈라우드는 적극적이진 않지만, 시궁쥐의 개체수 조절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개체수가 늘어나면 지하 수도에서 빠져나와 마을의 곡물 저장소를 털거나, 사람을 습격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마을의 촌장들에게 시궁쥐의 토벌 의뢰를 항시 대리로 맡기고 있었다.

    ‘시궁쥐 한 마리에 10벨이나 받을 수 있지.’

    꼬리를 가져가면 돈으로 환전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시체는 부화장에 넣어서 병력 생산에 사용하고, 꼬리는 돈으로 바꾸면 된다.

    게다가 전투 경험치까지 주니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알찬 마물이란 말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코볼트들이 시궁쥐의 시체를 부화장에 던져 넣었다.

    [하급 부화장에 재료가 추가되었습니다!]

    [최대 수용치 -198/1200(유기체 흡수 중)]

    [제작 상황 -2/4000(제작 진행 중)]

    [예상 마물 -???]

    “한 마리만 넣으면 병력 나오는 거 아니었어?”

    단순히 계산하자면 시궁쥐 한 마리당 200포인트. 그러니까 4,000포인트를 채우려면…….

    “20마리!?”

    아니.

    이건, 아니.

    잠깐만, 아니아니. 좀 너무하지 않나?

    내가 여기 끌려와서 개고생한 것만 원고로 써도 50편은 족히 넘었을 텐데. 50편 넘는 동안 병력 하나 없다는 건 너무 심하지 않냐고?

    “19마리 더 잡아야 된다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