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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9화 (9/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9화

    군단의 첫걸음(2)

    “다행이다야. 진짜 다행이야. 슬슬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지하 수도가 나왔구나!”

    그동안 슬슬 내가 두더지인지 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름도 바꿔야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까지 했단 말이다.

    솔직히 좀 생각해 놨다.

    두키 마우스다.

    ……미안하다. 이건 못 들은 걸로 해줬으면 좋겠다. 두키 마우스도 좀 불안하니까.

    “코벨스! 지하 수도를 찾아낸 공로를 인정해 개명을 해주겠다. 코들러하고 코나 중 골라라. 코탈린도 된다!”

    “코탈린! 코탈린!”

    “그래그래, 코탈린 잘했다.”

    코틀러의 원망스러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벽면에 다가가 섰다.

    ‘이 벽 너머가 지하 수도.’

    습기를 머금은 벽돌을 손끝으로 훑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하 수도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세 가지.’

    첫 번째는 인간들이 개입할 가능성이 적은 광대한 지하 도로다.

    ‘지하 수도는 아리카 섬 구석구석에 이어져 있었지. 전부는 아니지만, 굵직한 마을의 밑은 다 지나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안전한 사냥터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는 둥지에 갇혀 있어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말이다.

    시궁쥐를 사냥하며 전투 경험치를 얻고, 그걸로 능력치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화장을 가동시킬 만큼의 재료를 모을 수 있다.’

    이게 핵심이다!

    지금까지 마물 통판 카탈로그나 보며 아이쇼핑만 했지만, 드디어 그 망할 카탈로그에서 눈탱이 처맞아가며 몬스터를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솔까 이거 좀 바가지 아니냐? 코볼트 10마리가 이틀 내내 땅굴 파서 얻은 철광을 전부 팔아야 고블린 한 마리라고? 이 새끼들 이거, 혹시 용팔이들이 이세계로 온 거 아닐까?”

    용팔이라든 동팔이든 알게 뭔가?

    손님 눈탱이 패면서 어이없는 가격으로 마물을 팔고 있다는 건 마찬가진데.

    심지어 배송료까지 따로 받는단 말이다.

    “자, 그럼 바로 부화장을 설치해 볼까?”

    위치는 이미 정해놓았다.

    지하 수도 벽면의 바로 앞이었다.

    * * *

    “부화장이 설치됐다고?”

    레오란드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관리하고 있는 둥지들에서 일어나는 중요 변동 사항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집무실의 사면에는 거울처럼 생긴 수정판이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둥지의 변동 사항이 로그처럼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그런 수많은 실시간 보고 중 레오란드의 눈길을 끄는 것은 765호 둥지의 변동 사항이었다.

    “두 달도 채 되지 않아서…… 아니, 이제 5주차인가.”

    솔직히 경이로울 정도의 속도였다.

    이렇게 단기간에 부화장 설치까지 도달한 하이브 마인드는 거의 없었다. 아니, 아리카 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아서 순도 높은 마력석을 잔뜩 지니고 있는 토벌대를 물리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레오란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765호 둥지의 정보가 올라오고 있는 수정판 앞으로 다가갔다.

    “지면에 묻힌 미량의 마나석을 모아서 벌써 부화장을 설치한다라…….”

    대단히 기발하다거나 천재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꽤나 흥미로운 시도였다. 초기 자금으로 작업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그 결과 상당히 빠르게 부화장 설치에 성공했다.

    기묘한 시도와 나쁘지 않은 결과.

    레오란드는 765호 둥지의 관리자 누자베스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 섬을 온전히 제 손에 넣을 때까지요.’

    코웃음이 절로 나올 만큼 허무맹랑한 야망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하이브 마인드 한 마리가 아리카 섬의 파워 밸런스를 뒤집을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하이브 마인드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레오란드는 누자베스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 이레귤러가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지 조금 흥미가 동했다.

    ‘부화장 설치가 반드시 이득이 되는 건 아니니.’

    부화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저 주변의 경계심을 올리는 구조물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레오란드는 자연스럽게 ‘의뢰서’를 모아놓은 서랍장을 열었다. 진도가 빠른 학생에겐 그에 맞는 대우가 필요한 법이다.

    * * *

    스킬 발동은 간단하다.

    스킬창을 열고 스킬을 선택하면 바로 발동되니까.

    증강현실 게임을 하듯 눈앞에 떠오른 인터페이스창을 조작했다.

    [하급 부화장을 생성합니다.]

    [하급 부화장 생성에 ‘정제된 마나’가 300 소요됩니다.]

    [하급 부화장을 생성하시겠습니까?]

    꾸르륵, 꾸륵!

    그 다음 손을 뻗어 위치를 지정하면 끝이다.

    지정한 곳에 폭이 3미터쯤 되는 구덩이가 뚫리더니, 검붉은 액체가 치솟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건 너무 그로테스크하잖아.”

    뒤로 후다닥 물러나며 다시 구덩이 쪽을 바라봤다.

    구덩이에서 솟아나온 검붉은 액체는 주변으로 퍼져 나가더니 이내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스킬을 사용한 지 10초도 채 되지 않아 지름 3미터 정도의 시설물 ‘하급 부화장’이 생겨났다.

    “오늘 먹었던 보급식 토할 거 같다야.”

    꾸물, 꾸무울.

    어, 이 형태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래. 떠올랐다.

    하급 부화장은 마치 끔찍한 치질에 걸린 거대한 항문처럼 생겼다. 그것도 살아 있는 것처럼 뻐끔거리며 끈적끈적한 검붉은 액체를 줄줄 흘리고 있단 말이다.

    “자, 그럼…… 대충 이 정도인가.”

    하급 부화장에서 10미터 정도 물러난 뒤.

    타닷!

    그대로 도움닫기를 하듯 내달렸다.

    그리고 부화장의 윤곽에 발이 닿은 순간!

    있는 힘껏 도약!

    촤아악!

    아슬아슬하게 3미터 정도의 구덩이를 뛰어넘었다.

    “와오! 떨어지는 줄 알았네!”

    제자리에서도 2미터는 거뜬히 뛰었던 것 같은데.

    역시 이 저질 체력의 몸뚱이가 되니까 도움닫기를 해도 3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수준이었다.

    ‘음…… 그럼 다음은, 하급 부화장 자동화 설비를 갖춰야겠지.’

    물론 언제나 문제는 빈곤한 주머니 사정이다.

    에르바키나 연맹이란 상회 놈들은 고객들 뒤통수 후리고 주머니나 털어가는 게 전부다. 그러니 둥지 경영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철광값이 똥값이라 전부 다 팔아도 제대로 된 병력도 못 살 테고.”

    이제 슬슬 내 작품에 등장했던 중견급 하이브 마인드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딴 저질스러운 지원을 받고 어떻게 거기까지 둥지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거지?

    ‘지금까지 모은 철광을 전부 처분하면 고블린 15마리 정도는 고용할 수 있겠지만.’

    부화장까지 설치한 지금 병력을 돈 주고 사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모은 자원이라고 해봐야.

    철광석.

    아주 약간의 마력석.

    그리고 ‘세글리트의 미혹 파편’이라는 방패가 4개 정도다.

    카강! 카강!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코볼트들은 부화장 앞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폭은 2미터, 높이는 3.5미터 정도로 파라고 지시를 해놓았다.

    내 둥지와 지하 수도를 가로막고 있던 벽돌들이 금방 무너져 내렸고, 작업을 끝마친 코볼트들이 다음 지시를 기다리듯 내 쪽을 바라봤다.

    “…….”

    아!

    그래, 코볼트들이 있었지.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땅굴 파느라 고생들 많았고. 혹시 여기서 내가 가장 빡세게 일했다. 땅굴 그만 파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 다섯 놈만 앞으로 나와봐.”

    “키!! 코틀러! 코틀러 일 가장 많이 했다!”

    다른 놈들이 눈치를 보는 사이 코틀러가 가장 먼저 튀어 나왔고, 그 다음으로 코탈린. 이후로 세 마리 정도가 더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섰다.

    호기롭게 앞으로 나선 코볼트 다섯 마리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기세 좋게 입을 열었다.

    “좋아! 오퍼레이션 SCV를 개시한다!”

    내가 기세 좋게 소리치자 코볼트 놈들이 지들끼리 뭔가를 쑥덕이다 울상이 되어서는 입을 열었다.

    “아이고 맙소사! 우린 다 죽었어.”

    “나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하지만 오야지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

    “작전을 정지합니다, 정지합니다. 안 되잖아?”

    “그만. 그 이상 불평하는 놈은 선봉대로 삼아주마.”

    코볼트들의 불평불만을 적절히 커트하며 지하 수도 쪽을 바라봤다.

    원래 아쉬울 땐 일꾼이라도 써야 하는 법 아닌가?

    * * *

    보유하고 있던 철광의 일부를 매각했고, 그렇게 얻은 돈으로 싸구려 숏소드를 하나 구매했다.

    에르바키나 연맹과의 거래는 일방적일 만큼 불공평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부화장에서 병력을 뽑아내는 작업만 끝마치면 자체 생산 시설을 갖추거나, 새로운 유통 루트를 찾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둥지에서 벗어나 지하 수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처음으로 이쪽을 반겨온 것은 시궁쥐가 아니라 코가 썩어 문드러질 정도의 악취와 음습한 공기였다.

    “우왁…… 냄새 너무 심하잖아.”

    내가 소설로 쓸 때는 이 만큼 지독하다고 묘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류시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태연하게 돌아다녔단 말이다.

    내가 소설에다가 ‘지하 수도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치즈를 오거가 잔뜩 처먹고 설사를 무더기로 싸놓은 것만큼 지독했다’라는 묘사라도 넣어 놨으면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얼마나 냄새가 심하냐면 위에 써놓은 그대로다.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서 더 세세하게 묘사해주고 싶지만, 일단은 당장 그런 여유는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중립 몬스터가 등장하는 지역이다.’

    이곳의 냄새보다 지독한 현실적 위기감이 덮쳐들었다.

    소설이나 게임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아니 현실 그 자체였다.

    아무리 내가 쓴 소설이 배경이라고 해도, 아무리 게임 같은 시스템이 존재하는 세계라도 해도.

    ‘죽을 수 있다.’

    우호적인 몬스터와 나뿐인 둥지와 달리 지하 수도는 중립 지역. 게다가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덕분에 시궁쥐의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있다.

    ‘류시혁 그 자식은 날숨만 토해도 시궁쥐들이 모조리 증발해버렸지만.’

    그런 괴물을 나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류시혁은 박태준 팀장의 무리한 요구와 나의 무책임이 낳은 괴물 그 자체였다. 만약 지금 내가 당장 류시혁과 대면한다면 방분방뇨하며 쇼크사할 것 같았다.

    ‘어쨌거나 시궁쥐는 그렇게 강한 마물은 아니다. 평범하게 무장한 농민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갑자기 여러 마리가 몰려와 사방을 포위한다면 충분히 위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성인 남성의 평균보다 낮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으니까.

    “코틀러, 너만 믿는다. 쥐새끼들이 나타나면 더러운 슬라브 놈들이라고 생각하고 모조리 학살하는 거다.”

    “키…… 무섭다, 코틀러.”

    “코탈린, 내가 의지할 건 너뿐이다. 쥐새끼들 튀어나오면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해 전선에 나선 붉은 혁명군처럼 싸우는 거다.”

    “코탈린, 못한다, 싸움…….”

    나를 보호하듯 앞뒤 양옆에 선 코볼트들을 독려하며 천천히 지하 수도 안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둥지와 연결된 입구에서 나아간 지 5분쯤 지났을 때.

    처음으로 눈앞에 90도로 꺾인 코너가 나타났다.

    “갈림길인가.”

    왼쪽과 오른쪽.

    양쪽으로 꺾인 갈림길이다.

    이제부터는 지하 수도의 길을 대략적으로 외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리키려던 찰나.

    “찍, 찍!”

    그 섬뜩한 울음소리가 오른쪽에서 들려왔다.

    숏소드를 움켜쥔 손바닥에 땀이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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