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7화 (7/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7화

누구를 위한 섬인가?(2)

아리카 섬!

쉽게 말해서 주인공인 류시혁이 30화 이후에 도착하게 되는 보물섬이다.

‘여기서 얻게 되는 아티팩트들이 꽤 있었지.’

박태준 팀장의 피드백, 아니 피드백은 구실이고 반쯤 협박에 굴해 사기적인 아티팩트를 마구 줬으니까.

그런 사기적인 아티팩트를 내가 먼저!

그것도 7개월이나 먼저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것들을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까지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면 내가 쓴 소설이니까.

이건 이미 내가 먼저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불길한 손. 라올라의 유산. 제필프의 최종선고. 세글리트의 미혹.’

이곳 아리카 섬을 점령하기 위해 인간들이 대륙에서 가져온 최신예 마도구들이다. 전쟁 당시 소실되어 지금까지 아리카 섬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섬에서 류시혁이 얻게 되는 히로인이…….’

시릴스.

원래 영주의 딸을 호위하던 검사라는 설정이었다.

어떻게 히로인 리스트에 편입되었냐면 말이다…….

‘이 섬에서 가장 위협적이었던 하이브 마인드 ‘카타쿨라’를 처리한 보상이었나?’

머릿속에서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아리카 섬에서 얻을 것은 많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적은 둘.

‘아리카 섬의 영주 갈라우드.’

그리고 나와 같은 하이브 마인드이자 가장 큰 군세를 거느리고 있는 ‘카타쿨라’였다.

‘여유와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릴스까지 미리 처리해두면 더 좋겠지.’

주인공의 수족은 미리미리 잘라두는 편이 후환이 없는 법이니까.

좋다.

정리가 끝났다.

해야 할 일도 명확했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성체 부화가 곧 시작됩니다.]

시간이 꽤나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 * *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다. 이 거대한 몸뚱이에 연결되어 있던 신경들이 모조리 박리되어 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밑도 끝도 없이 새까만 허공에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이 기괴한 감각이 언제까지 이어지나 생각하던 찰나.

“당신이 희망하는 형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한 번 형체가 정해지면 다음 진화 때까지 형상을 변환할 수 없습니다.”

그런 중성적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성체 부화라는 게 이런 거였군. 어쩐지 나만 다른 하이브 마인드하고 모양새가 다르더라니…….’

내가 쓴 소설에서 하이브 마인드란 녀석들은 제각각 꽤나 개성적인 모습을 한 놈들이었다.

자신의 둥지가 위치한 지리에서 가장 무난하게 적응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니까 말이다.

때때로 오크보다 더 거대하고 위협적인 외형을 한 놈도 있었고, 혹한지에선 털복숭이 같은 하이브 마인드도 적지 않았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무조건 인간 형태다!

인간 외엔 고려의 가치조차 없다. 진짜 인간하고 구분도 되지 않을 만큼 똑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아니, 애초에 진짜 인간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의 인간이 가장 합리적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선택지는…….

‘어린 소녀.’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여자와 어린애들은 살려주시오! 같은 대사 말이다.

그러니까 여자인데 어리기까지 하면 더더욱 완벽하다. 아무리 하이브 마인드라도 죽여 버리면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괴로울 것 같은 형태란 말이다.

그런 일말의 망설임을 유도할 수 있는 형태는 어린 소녀가 최고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자는 아니지…….’

내가 지금 어린 소녀의 형태로 부화하면 그때부터는 소설의 장르가 달라질 테니까. 이세계 전이물이 아니라, 빼박 TS물이란 말이다!

타이틀도 ‘둥지 짓는 보쿠’라던가 아니면 ‘이세계의 피코’라던가. 뭐 그딴 거겠지. 젠장, 알게 뭔가?

‘애초에 소녀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무리가 있고.’

소녀 메소드 연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린 소녀 다음으로 죽이기 껄끄러운 형태라면?

‘어린 소년.’

하지만 너무 나이가 어리면 이성을 지닌 대화 상대로 취급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라면 젊은 남자에 속한다.

‘그렇다면 나이는 10대 중반.’

머릿속에서 대략적인 소년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굴의 형태는 당연히 미소년이다! 성별이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예쁘장해야 한다.

딱히 내 취향이 그런 게 아니다.

아니, 생각해 봐라.

토할 만큼 역겹게 생긴 소년하고 국보급으로 예쁘장한 소년이 있다면 어느 쪽이 죽이기 힘들겠나?

이해됐나?

그리고 납득했나?

그럼 얼른 성체 부화나 진행하자.

“형태가 결정되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정해주세요.”

이건 마치 온라인게임 캐릭터 메이킹 같은 시스템 같은데? 어쨌거나 이름을 정하라고 해봤자…… 앞으로 나쁜 짓이나 못된 짓만 골라할 건데 실명은 좀 그렇다.

‘이름은…….’

불운하게도 젊은 나이에 단명한 천재 아티스트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뭐가 있을까?

시드 비셔스?

다자이 오사무?

아니, 좀 더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면.

‘누자베스.’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하자, 바로 다음 말이 들려왔다.

“당신의 이름이 결정되었습니다. 성체 부화가 개시됩니다.”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 것과 동시에 신경 줄기가 전신으로 쫙 퍼졌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그 감각만으로도 내 몸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자극이었다.

그리고 내 몸이 끈적끈적한 반유동성 액체에 둥둥 떠있는 감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버둥거리는 동안 물컹거리는 막이 만져졌고, 그 막을 손과 발로 밀어 뚫고 나오자.

촤아악.

찢어진 막에서 점액이 쏟아져 나왔고, 그 틈새로 몸을 일으켰다.

“푸하! 빌어먹을 숨 막혀 뒤지는 줄 알았잖아!”

목소리가 나왔다.

손과 발도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눈앞에서 양손을 펼쳐 조금씩 움직여본 후 그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젠장, 온몸이 다 찌뿌둥하네.”

가볍게 어깨를 스트레칭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저 끝에서 작업을 하던 코볼트들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 오야지, 인간처럼 생겼다.”

“인간 못생겼다! 못생겼다 인간!”

그렇게 소리치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마물의 미적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저런 반응이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건 코볼트 녀석들의 얼평이 아니라.

“누가 곡괭이질 멈추라고 했냐? 이제 손발 생겼으니까 핫산처럼 처맞고 싶은 놈 있으면 농땡이 쳐봐.”

첫 번째 목표는 둥지의 엄폐였지만, 지금 이곳이 아리카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목표가 갱신되었다.

아리카 섬은 하수 처리 시설을 지닌 지역이니까.

“계속해서 갱도를 확장하며 섬의 하수도까지 진입한다.”

모처럼 인간 형태를 취했으니 이 외형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 * *

갱도 확장은 문제없이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내 둥지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유일한 난점이었지만.

‘내가 왜 지도 시스템을 안 넣었지? 미니맵까지 넣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불만이 좀 있긴 있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아리카 섬은 광대한 하수 처리 시설을 지닌 섬이다. 이런 촌구석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말이다.

본래 대륙에서 패주한 왕조의 군대가 점령했던 섬이다. 방위 시설 및 병력 주둔 시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하수 처리 시설. 하수도 역시 그 당시의 잔재였다.

지상에서 공공연하게 활동할 수 없는 나 같은 마물에겐 더없이 적합한 환경. 섬의 어디로든 통하는 하수도와 둥지가 이어지기만 한다면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어질 것이다.

‘애초에 하수도를 점령한 하이브 마인드도 없었고.’

하수도에 있는 것이라곤 거대하게 변이한 시궁쥐뿐이다.

시궁쥐를 딱히 어쩔 생각은 없었지만.

“실수가 아니었다고? 그럼 처음부터 의도했단 말입니까?”

“예.”

오랜만에 둥지를 찾아온 레오란드는 사뭇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같이 코볼트만 10마리를 뽑아 둥지를 은폐하고 하수도와 이어지는 갱도를 파는데 열중한 하이브 마인드는 이제껏 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바체트 열도 전체에 흩뿌려진 하이브 마인드 중에선 그런 녀석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아리카 섬에선 이런 시도가 처음이었던 건가?

나는 레오란드가 가져온 얇은 튜닉과 면바지를 입으며 이어 말했다.

“이 판단에 문제가 있을까요?”

빙긋 웃으며 묻자, 레오란드는 턱을 괸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문제라고 할 만한 점은 없지만, 귀관이 방금 말했던 하수도 정화 작업이 정확히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시궁쥐를 박멸해서 하수도의 기능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얘기 말이죠.”

내가 다시 한 번 확고한 어조로 대답하자, 레오란드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예기가 깃들었다.

‘이제야 감찰관 녀석이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 파악이 되는군.’

그래, 이 관계를 말이다.

비유하자면 나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신규 점장.

레오란드는 본사의 직원이다.

기본적으로 영업 방식은 점장의 재량이지만, 본사나 다른 점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헛짓거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감찰관이 있는 것이다.

‘괜히 제대로 된 짓거리만 하다간 기대치가 높아지겠지.’

솔직히 초기 지원금으로 코볼트 10마리를 고용한 건 어찌 보면 상당한 트롤링이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여기선 좀 더 기대치를 낮춰 놔야 나중에 편하겠어.’

그러니까.

제대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허황된 계획이나 세우고 있는 무능한 하이브 마인드를 연기할 필요가 있었다.

레오란드의 경계심 어린 시선을 태연하게 모른 척하며 옷의 매무새를 고쳤다.

“감찰관님. 이 좁은 섬에서 사방에 적을 두고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요?”

하이브 마인드의 생존 확률은 극악하기 그지없다.

발견되는 즉시 자경단이 나서 둥지를 박살내고, 불태우고, 하이브 마인드를 붙잡아 찢어 죽인다.

아리카 섬에 위치한 마을만 수십여 개.

한 번 자경단을 내쫓았다고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둥지 파괴에 실패한 인간들은 더 많은 자경단을 끌고 찾아올 테니까. 자신들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커지기 전에 말이다.

레오란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꾹 다물었다.

분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그리고 그 눈빛은 더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듯 보였다.

“조화와 공존. 그리고 친화력. 제가 생각하기엔 이 섬에서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인데요.”

“살아남기 위해 동포들을 배신하고, 인간들의 편에 서겠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예.”

내 대답과 동시에 레오란드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서 다음 행동이 도출된 것처럼 보였다.

‘좋아, 당장 폐기 처분하겠다는 분위기 나왔고.’

이건 뭐 줄타기도 힘들 것 같다.

눈앞에선 인간들이 칼을 들이밀고, 뒤에선 같은 마족들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 아닌가?

‘하이브 마인드도 진짜 못해먹을 짓이야.’

웃음을 속으로 삼키며 짐짓 느릿하고, 침착한 어조로 이어 말했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이지만요.”

“일시적이라면? 그 시한은?”

“이 섬을 온전히 제 손에 넣을 때까지요.”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레오란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이걸로 나는 제대로 레오란드에게 기억됐을 것이다.

일반적인 하이브 마인드와 달리 '비합리적’이며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개체라고 말이다.

이제 조금 여유도 생겼으니 느긋하게 명줄 붙들고 있을 궁리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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