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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6화 (6/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6화

    누구를 위한 섬인가?(1)

    레오란드는 최근 각성한 하이브 마인드들의 마물 주문 목록을 살폈다.

    어느 정도 성장을 끝마치면 이런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막 각성한 하이브 마인드는 비유하자면 ‘신생아’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어느 정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739호는 고블린 8마리와 코볼트 2마리. 743호는 정확하게 고블린과 코볼트를 5마리씩.”

    종종 말도 안 되는 마물을 주문하는 하이브 마인드도 있었다. 예를 들어 500벨으로 정예 오크 전사를 한 마리 구매한다거나, 모조리 슬라임을 산다거나.

    “사관생 시절엔 하이브 마인드가 합리적인 사고에 기인하여 행동하는 생물이라고 배웠지만.”

    도대체 어디가 합리적인 것인지 도무지 추측이 되지 않는 개체도 적지 않았다.

    물론 모든 하이브 마인드가 같은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개체의 특성 및 둥지의 위치, 그리고 절기상의 이점을 고려하여 각자 다른 선택을 취하니까.

    하지만 레오란드는 이곳에서 오랜 기간 감찰관 일을 해온 남자다.

    대부분, 그러니까 8할 이상의 하이브 마인드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고블린과 코볼트의 7:3 비율.’

    하이브 마인드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삼고 있는 비율이었다. 7마리의 고블린과 3마리의 코볼트. 환경적 특성이나 개체의 취향에 따라 그 비율이 한두 마리씩 달라지긴 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대부분의 하이브 마인드들이 초기 지원금을 사용해 고블린과 코볼트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가던 중.

    레오란드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주문 목록이 하나 나타났다.

    “765호…….”

    일전에 봤던 자아의 형성이 상당히 빠른 그 개체였다. 헬베르카의 혈액을 사용하여 만들어낸 신품종.

    레오란드가 꽤나 유심히 관찰했던 개체이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주문을 실수한 건가?”

    그런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레오란드는 이 말도 안 되는, 그러니까 합리성과는 일절 연이 없는 주문 목록을 보며 중얼거렸다.

    “첫 걸음부터 잘못 내디뎠구나, 765호…….”

    역시 하이브 마인드는 괜한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생물이다. 설령 전설적이었던 마족의 피를 사용한 개체라고 해도 말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되뇌며 레오란드는 서류 더미를 내려놨다.

    * * *

    캉! 캉캉!

    경쾌한 곡괭이질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동굴 입구의 반대편. 그러니까 동굴의 가장 안쪽 벽이 위치한 곳이었다.

    “키…… 코볼트 일한다.”

    “돈. 보낸다. 가족들한테.”

    “코볼트. 뉴델리 대학 나왔다. 그래서 잘 캔다. 동굴. 키…….”

    마물을 주문하고 어느덧 6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6일 전. 나는 카탈로그를 꼼꼼히 살펴본 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첫 소지금이 500벨. 이런 쥐꼬리만한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지.’

    내가 개복치라는 사실을 인정한 후.

    초기 지급되는 지원금도 쥐꼬리만한 금액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뿐이었다.

    ‘싸움은 피한다. 숨는 게 상책.’

    칼 든 놈 앞에서 어린애가 파이팅 자세를 취해봤자 괜히 화만 돋울 뿐이다. 주제 파악이 중요하다, 주제 파악이. 그깟 고블린 몇 마리 고용한다고 자경단을 내쫓을 수 있는 확률은 한없이 희박하단 말이다.

    그렇다면 병력 고용을 포기하고, 작업 인력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코볼트 10마리라서 그런지 동굴 파는 속도가 엄청 빠르네!’

    6일 전 코볼트 10마리를 주문하자마자 진짜 눈앞에서 확 나타났다. 특급 배송이 거짓말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리고 배송된 코볼트들은 바로 내게 복속되어 명령에 따르게 되었다.

    [지배력 : 10/100]

    이런 식의 시스템 메시지도 떠오르고 말이다.

    ‘현재 내가 지배권에 둘 수 있는 마물의 수가 100마리라는 뜻이겠지. 앞으로 성장하면 더 늘어날 테고.’

    어쨌거나 코볼트들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작업을 개시했다.

    입구의 반대편.

    막혀 있는 벽면을 계속해서 파내며 동굴의 길이를 확장하고, 채굴해낸 흙과 암석 덩어리들을 옮겨다 입구를 틀어막았다.

    ‘이걸로 마을의 자경단에게 둥지를 들킬 확률도 적어졌고, 만약 들키더라도 진입까지 시간이 걸리겠지.’

    이쪽은 6일이나 돌과 흙을 캐내 입구를 틀어막았단 말이다. 중장비가 없는 이 세계에서 인력만으로 파내려면 며칠은 족히 걸릴 것이다.

    게다가 지하에서 가끔씩 마력이 희미하게 깃든 돌덩이도 나왔다. 그 덕분에 현재까지 모은 ‘정제된 마나’는 54에 도달해 있었다.

    ‘좋아. 더 깊숙이 파내고! 더 깊숙이 숨고! 개복치가 안 처맞으려면 숨는 게 제일이지!’

    동굴 확장 작업에 쉴 새 없이 매진하고 있는 코볼트들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던 찰나.

    카앙!

    “키?”

    “코볼트 조심한다! 곡괭이 부서지면 혼난다! 세와한테!”

    “똑바로 캐라, 코볼트! 어째서 곡괭이질을 조심히 하지 않았지?”

    “코볼트 불량! 불량 코볼트! 쿠비!”

    날카로운 금속의 충돌음이 들려왔다.

    코볼트들이 곡괭이질을 멈추고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뭐지?’

    몰려든 코볼트들 사이로 흙더미에 묻힌 금속판이 일부분 보였다.

    * * *

    “30화가 넘었는데 아이템이 적지 않아요?”

    “예?”

    “아뇨, 작가님. 그러니까 주인공이 얻은 아이템이 너무 적지 않냐구요.”

    “그, 그런가요? 하지만 여기 9화 부분에서 이미 세계관 종결급의 무기를 얻었잖아요? 팀장님이 팍팍 밀어주라고 해서 최종보스고 뭐고 일격에 다 썰어버릴 만큼 말도 안 되는 검도 줬는데…….”

    “아이, 씨…… 그러니까 그건 그거고. 무기 말고 다른 것도 막 퍼줘야죠. 고대 유물이라던가, 마법 무구 같은 거요. 능력을 더 강화시켜주고! 더 편리해지는 아이템!”

    “……예를 들면요?”

    “뭐, 드래곤을 복종시키는 오브? 아, 좋네. 그거 좋네요, 작가님. 드래곤을 절대복종시키는 오브 주고, 그걸로 드래곤 미소녀 히로인 추가합시다.”

    “차라리 생물학적 암컷이면 모조리 복종시키는 오브로 하는 게 어떨까요.”

    “와, 작가님 천재입니까? 와……! 좋습니다! 완전 좋습니다! 작가님도 생각하면 좋은 아이디어 나오네요! 그거 당장 넣죠!”

    기억이 떠올랐다.

    불과 몇 달 전 박태준 팀장과 출판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눴던 아이디어 회의가 떠올랐다.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질 만큼 끔찍한 대화가 오고갔던 것 같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 부분이 아니다.

    천천히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어쨌거나 아이템! 아티팩트! 팍팍 주는 겁니다.”

    “아니, 그런 희귀하고 막강한 능력을 지닌 아이템들이 무슨 담배꽁초들처럼 길바닥에 널려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작가님, 답답한 소리 좀 그만 하세요. 진짜 뒤존세니까.”

    “뒤존세요?”

    “뒤통수 존나 세게 후려버리고 싶다구요.”

    고백하겠다.

    일말의 필터링 없이 고백하자면 말이다.

    당시에는 박태준 팀장이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에 여자 친구한테 차여서 홀로 집에 남아 베개를 눈물로 적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이미 지난 얘기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얘기는 그만두고 지금 당장의 이야기를 해보자.

    ‘주인공 류시혁에게 아티팩트를 퍼줘야 했다.’

    하지만 바체트령 어디에서든 그런 희귀한 아티팩트가 마구 나온다면 개연성의 문제가 생긴다.

    애초에 수백 년 동안 인류와 마물이 살던 곳인데 주인공이 올 때까지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고대의 유물이 많이 매장된 지역을 새로 구상해야만 했고.’

    그 때문에 세계관 설정을 새롭게 추가했던 것이다.

    대륙에서 인류가 처음 바체트 열도로 건너왔을 때, 바로 본토인 론트라 섬에 정착하지 못했다.

    ‘개척민들의 첫 점령지는 시트란테 서도에 속한 아리카 섬.’

    아리카 섬을 전초 기지 삼아 론트라 섬을 공략하기 시작했다는 설정이 추가되었다.

    ‘그렇기에 아리카 섬은 인간과 마족이 충돌한 첫 격전지. 대륙에서 가져온 마법 무구나 고대 유물이 수없이 많이 사용되었고.’

    마족들 역시 아리카 섬을 사수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병력과 보급품을 동원했다.

    ‘결과적으로 인간들이 승리하여 아리카 섬을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론트라 섬에 왕국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그 덕분이다.

    그 덕분에 아리카 섬에는 과거 전쟁에 사용되었던 유물과 마법 무구가 수없이 묻혀 있었다.

    뭐, 주인공 류시혁에게 아이템을 퍼주기 위해 만들어낸 설정이긴 하지만.

    “키…… 코볼트 유물 발견했다.”

    “유물. 오야지 준다. 코볼트 정직하다.”

    “삥땅 불량! 삥땅 코볼트 불량!”

    코볼트들이 캐서 가져온 방패를 본 순간 등의 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감각이 내달렸다.

    방패에 시선을 집중하자.

    [세글리트의 미혹 파편]

    [분류 : 고대 유물]

    [착용 조건 : 없음]

    [특수 능력 : 방어 성공 시 5% 확률로 0.5초 간 매혹 효과]

    [방어력 : 3]

    [정보 : 당신은 이 방패에 알 수 없는 흥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낡고 헤진 철판에 불과하지만, 이 방패는 당신의 귓가에 가장 은밀한 비밀을 속삭이고 있었으니까.]

    ‘세글리트……!’

    그 이름을 확인한 순간.

    그제야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리카 섬. 아리카 섬이다……!’

    내가 만든 보물섬.

    주인공에게 무조건 퍼주기 위해 만든 보물섬에 내가 먼저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박태준 팀장님…… 당신은 도덕책…….’

    눈물샘이 있었다면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만약 무사히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박태준 팀장님의 집까지 삼보일배하며 찾아가 발가락을 핥겠다고 다짐했다.

    진담이다.

    나는 누구와 달리 농담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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