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짓는 플레이어-5화 (5/210)

던전 짓는 플레이어 5화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법(3)

군체 의식!

이름 없는 자들의 전쟁 군주!

하이브 마인드!

막 뭔가 있어 보이고?

살짝 대단할 거 같기도 하고?

소개팅 나가서 소개팅녀가 무슨 일하냐고 물어보면?

‘아,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만. 평범한 하이브 마인드 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애프터 받아줄 확률이 90% 이상이라 첫째 애 이름을 뭐라고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될 정도는 아닐까?

뭐 이런 시답잖은 걱정.

그러니까 기우를 할 만큼 대단하게 들리지만 말이다.

솔직히.

……솔직히 내 소설 ‘던전 부수는 플레이어’에서 하이브 마인드의 취급은 그냥 개복치였다.

그래, 개복치다.

물론 평범한 마을 주민들이나 모험가들에겐 괴물 대장급의 무시무시한 양아치 오야붕이겠지만, 주인공인 류시혁이나 백주월에겐 개복치나 다름없는 존재란 말이다.

인정하자. 솔직히 인정하자.

나는 지금 개복치 중에서도 개복치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도록 하자.

‘좋아, 인정했다.’

빠른 인정! 그리고 바로 의식을 스위칭시켰다.

‘주제 파악도 했고. 당장 해야 할 일을 시작하자.’

하이브 마인드의 할 일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다.

둥지를 확장하고, 강화하여 거대한 방위 시설을 구축하는 것. 그와 동시에 이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중립 몬스터들을 복종시켜 마왕의 충직한 장기말로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마을을 파괴하거나, 점령한다.

마을 주민들을 죽이든, 노역장 혹은 산란장에서 사용하든. 그 후의 처사는 하이브 마인드의 재량이지만 말이다.

‘둥지 확장. 병력 징집. 매우 간단한 작업이지만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지.’

둥지가 거대해지고, 복종시킨 중립 몬스터의 수가 많아질수록 인간들의 경계도가 올라간다.

마을에서는 자경단을 꾸려 토벌하려 할 테고, 그 자경단을 성공적으로 물리치면 끝인가?

아니다!

덩치가 거대해지면 보는 눈도 많아진다.

그 악명은 이 작은 섬에서 그치지 않고, 바체트령의 본토인 론트라 섬까지 전해질 것이다.

왕국의 군대가 들이닥칠 수도 있고, 명성 있는 모험가들이 돈과 명예를 위해 내 둥지를 쳐들어오겠지.

‘류시혁과 백주월. 그 녀석들이 너무 먼치킨스러워서 다른 캐릭터들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지만.’

이곳 바체트 열도에는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 둘 외에도 다양한 강자들이 이미 존재했다.

그런 녀석들의 눈에 최대한 띄지 않고, 힘을 비축해야 했다.

‘자, 그럼.’

관리 업무가 시작된 직후 시야의 구석에 생겨난 ‘갱신 정보’를 확인했다.

* * *

내가 박태준 팀장에게 고마워해야만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면 말이다.

소설에 게임 시스템을 죽어도 넣어야 된다고 바득바득 우겨준 것이다. 그 게임 시스템 덕분에 내 상황을 파악하는 게 한결 더 간편했다.

‘박태준 팀장…… 당신은 도덕책…….’

물론 이런 시스템이 주인공들이 아닌 ‘하이브 마인드’인 내게도 적용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어쨌거나 VR게임을 조작하는 느낌으로 인터페이스창을 조작해 보기 시작했다.

조작에 어려움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내가 만든 시스템 아닌가? 류시혁이나 백주월 같은 주인공들이 이 시스템을 조작하는 묘사도 지겹게 써봤단 말이다.

[이름 : 765-AAD133(미지정)]

[레벨 : 1]

[클래스 : 하이브 마인드]

<스테이터스>

[근력 : 1]

[민첩 : 1]

[체력 : 1]

[마력 : 10]

[지배력 : 10]

<정보>

[진화 진행도 : 3%]

[경계도 : 10]

[위장 친화도 : 0]

<스킬>

[전쟁 군주(패시브) -지배중인 마물의 전투 경험치 20%를 회수합니다.]

[하급 부화장 생성(액티브) -하급 부화장을 생성합니다.]

‘…….’

근력, 민첩, 체력이 모두 1포인트라고?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참고로 내 소설인 ‘던전 부수는 플레이어’의 설정대로라면 ‘평범한 성인 남성’의 평균적인 근력 수치는 5였다.

그러니까 딱 평균이 5란 말이다.

즉 현재 내 신체 능력은 성인 남성의 1/5 정도 수준.

아차, 제대로 1/5라고 썼나? 괜히 1/2하고 헷갈려서 잘못 쓰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니 제대로 확인해 두자.

그래 제대로 1/5라고 썼다. 문제없다.

‘이 시스템이 내게도 적용된다면 나도 전투를 통해 경험치를 얻고, 능력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의미겠지.’

물론 딱 봐도 이런 저질 스탯으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 없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것보단 지배 중인 마물을 이용해 경험치를 버는 스타일이 강제되는군.’

회수하는 경험치는 20%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직접 전선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점이다.

게다가 군단을 활용한 대규모 전투라면?

혼자서 아등바등 싸우며 전투 경험치를 버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스킬부터 살펴볼까.’

내가 지니고 있는 스킬은 2개.

패시브 스킬인 ‘전쟁군주’는 대충 어떤 효과인지 파악이 끝났고.

‘하급 부화장 생성은?’

딸칵.

스킬을 선택하자 바로 상세 정보가 떠올랐다.

[스킬 : 하급 부화장 생성]

[정보 : 하급 부화장을 생성합니다.]

<세부 정보>

1.하급 부화장을 생성하기 위해선 [정제된 마나 300]이 필요합니다.

2.하급 부화장은 소모하는 재료에 따라 생성해내는 몬스터의 종류와 등급이 결정됩니다.

3.하급 부화장은 50%의 재료 효율과 10%의 제작 시간 보너스를 얻습니다.

4.하급 부화장은 동시에 최대 두 마리의 몬스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5.하급 부화장이 발견될 시 주변 마을의 경계도가 5% 상승합니다.

‘흠…….’

대략적인 개요는 바로 이해가 됐다.

‘문제는 내가 지니고 있는 마나가 0이라는 건가.’

이 ‘정제된 마나’라는 것은 내 체내에 존재하는 마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저번에 내게 지령서를 가져온 녀석이 이 공간에 설치한 시설이 2개가 더 있었다.

하나는 지면에 박힌 기둥에 그리 크지 않은 박스가 하나 달려 있는 시설물. 그러니까 딱 봐도 편지함처럼 생긴 시설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거대한 유리통으로 만들어진 항아리다. 하나씩 유심히 살펴보자 시설물 위에 이름이 떠올랐다.

[서신함]

[소규모 마나 스토리지]

‘아마도 저 마나 스토리지라는 것에 마나가 축적되면 여러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거겠고.’

서신함은 말 그대로 편지를 주고받는 용도일 것이다. 일단은 지니고 있는 마나도 없으니 하급 부화장은 나중이다.

‘소지금은 500벨인가.’

방탈출 카페에 온 기분으로 내가 상호작용이 가능한 시설들을 하나씩 살펴보던 중.

‘서신함에 편지가 한 통.’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샌가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 * *

[새로운 우편을 확인하겠습니까?]

[‘월간 마물 카탈로그(삭월호)’를 개봉했습니다.]

내가 개봉하게 된 우편은 ‘월간 마물 카탈로그’라는 타이틀의 책자였다.

우편이 개봉된 것과 동시에 책자가 펼쳐지며 세밀하게 그려진 삽화와 문자들이 보였다.

‘월간 마물 카탈로그라니…… 네이밍 센스가 구린 걸 보니 확실히 내가 만든 설정은 아니네.’

어쨌거나 이 ‘월간 마물 카탈로그’는 쉽게 말해 주문을 받아 몬스터를 판매하는 용병 회사의 광고 책자였다.

[당일 직송! 카탈리스크 워프 게이트를 통해 바체트령 어디에서든 주문과 동시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신뢰와 안심의 에르바키나 연맹! 본사는 에르바키나 연맹의 공식 협력사입니다.]

[바체트령 최저가 보장!! 첫 고객님은 소환 수수료 제로! 부담 없이 이용해 주세요!]

이런 안내 문구가 지리멸렬하게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건 됐고. 지금 초기 소지금이…….’

다행스럽게도 하이브 마인드에겐 초기 자금이 지급되고 있었다.

바체트령의 통화 ‘500벨’이 초기 소지금.

천천히 카탈로그를 살펴보며 구입 가능한 몬스터 리스트를 확인했다.

[고블린 -50벨]

[고블린 특산지 포즈테나 숲에서 직접 포획한 자연산 특등품! 국소전 및 약탈에 특화된 마물입니다. 초보 하이브 마인드에게 추천 상품! 여자 무투가 혹은 여기사를 포획하고 계신 분께도 강력히 추천합니다!]

아니.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쓰던 소설 ‘던전 부수는 플레이어’는 ‘전체연령가’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고블린을 이용해서 딱히 뭐 그런, 음…… 어 그게 뭐냐. 그런 건 별로 구상한 적이 없단 말이다.

이건 자기 멋대로 생긴 설정이다.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빠르게 다음 몬스터 리스트를 살폈다.

[코볼트 -50벨]

[전투 능력은 거의 없지만, 토목 작업 및 광맥 채굴에 용이한 마물입니다. 그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세요.]

판매 카탈로그 설명에 ‘사×의 리퀘스트’같은 대사를 덧붙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만.

간략하게 몬스터들의 용도와 특징만 훑어보며 넘어가자.

[하급 스켈레톤 병사*2 -80벨]

[삭월 특가 상품! 전무후무의 1+1이벤트!(본 상품은 전투용으로, 식용이 불가합니다)]

[슬라임 -80벨]

[우효~! 초 럭키!! 슬라임 80벨에 겟또 다제~!! 오이오이ww 이 가격 마지카요wwww 코이츠 끈적끈적 질척질척하다구ww]

[머드 골렘 -150벨]

[골렘 팩토리에서 제작 후 직접 공수해온 마물입니다. 예? 고렘 팩×리가 아니라 골렘 팩토리요!]

[오크 전사 -200벨]

[용맹하고 포악한 전사들입니다! 하지만 그 속은 촉촉하겠죠. 아, 딱히 겉이 바삭하다는 얘긴 아닙니다.]

…….

아무래도 가격 순으로 정렬된 모양이다.

가장 마지막장을 펼치자 카탈로그 내에서 가장 비싼 몬스터가 보였다.

[삭월 한정 수량 상품]

[드래곤 -17만9천 벨(특가)]

[하지만 드래곤이 출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드! 래! 곤!]

이 카탈로그 누가 만들었는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한다만.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아니다. 나는 이런 마물 판매 시스템이 있는지도 몰랐단 말이다.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 소지금은 500벨.

고블린이나 코볼트를 구매한다면 10마리 정도는 갖출 수 있는 돈이었다.

‘고블린은 전투용. 코볼트는 작업용.’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1:1의 비율로 고블린과 코볼트를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

고블린 다섯 마리를 정찰 및 방어전에 사용하고 코볼트 다섯 마리로 둥지 확장 작업을 진행한다.

내가 이 세계관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그런 선택을 취했을 것이다.

‘고블린 다섯 마리 가지고 무슨 방어가 되겠냐…….’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고블린이 어느 정도 수준의 몬스터인지 말이다.

‘고블린은 흉기 든 어린애 수준. 지능도 낮고, 무엇보다 전의가 상당히 낮은 편이지.’

고블린에겐 가장 치명적인 설정이 붙어 있었다.

만약 고블린 놈들이 내 명령에 따라 필사의 각오로 싸워준다면 고려해볼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고블린은 쉽게 전의를 상실하는 개체다.

용맹과는 전혀 연이 없단 말이다.

자신들이 우세한 상황이나, 약자를 상대할 땐 스펙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열세 상황, 혹은 강자를 상대할 땐 싸우기도 전에 줄행랑을 치는 놈들이다.

‘던전 토벌에 나서는 마을 자경단 규모를 생각하자면…… 초기 소지금 전부를 고블린 구매에 사용해야겠지.’

최소한 수적 우세 상황이라도 만들어줘야 고블린들이 도망치지 않고 싸울 테니까.

‘흠…….’

그렇다면 내가 취해야 할 선택지는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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