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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짓는 플레이어-2화 (2/210)
  • 던전 짓는 플레이어 2화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2)

    웹소설 시장 규모 3천억 원 시대!

    현재 한국의 웹소설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기를 겪고 있었지만, 빛이 강하면 어둠도 짙어지는 법.

    나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웹소설 업계의 어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 그 어둠의 정수인 ‘통조림방’이라는 인간 착즙소부터 얘기해 보자.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빛을 볼 수 없는 지옥!

    통조림방이라도 밥 주고 재워 주는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통조림방에 들어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취급받을 수 없다.

    하루에 제공받는 식사란 주먹만한 밥 덩어리와 소금국 한 사발! 수면 시간은 하루 3시간!

    제3공화국 시절 고문 기술을 갈고 닦은 고문 장인들이 문인정부 수립 이후 실직하게 됐지만. 요즘은 다시 통조림방의 관리인으로 재취직하고 있는 실정.

    인간 취급은커녕 인권이란 단어까지 잊게 만드는 지옥 같은 곳이란 말이다.

    거짓말이라고? 거짓말 같은가?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으면 요즘 연재되는 웹소설에서 ‘천부인권’이란 단어를 찾아봐라. 그 어떤 웹소설에도 그런 단어는 들어 있지 않을 테니까. 확신할 수 있다. 왜냐면 작가들의 대뇌피질에서 인권이란 단어는 이미 삭제됐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킹이 생전에 통조림방을 직접 목격했다면 흑인 노예들은 일단 냅두고 작가들부터 해방해야 된다고 울부짖었을 것이다. 틀림없다.

    아니, 그냥 내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뭐가 재활치료냐…… 통조림이잖아.’

    그 다음 패턴은 아는 동료 작가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

    ‘일단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고 할 거야.’

    ‘그냥.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하겠지.’

    ‘소고기 같은 거? 근사하게 대접한다고 하면 다들 혹해서 가거든?’

    ‘아냐, 식당에서 안 만나. 약속은 출판사에서 가까운 식당이나 역에서 만나자고 해놓고,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으니까 출판사로 잠깐 오라고 그러지.’

    ‘가면? 소고기가 아니라, 웬 황소만한 덩치들이 떡 버티고 있는 거지.’

    그대로 출판사 지하의 통조림방에 수감되어 대뇌피질이 육포처럼 바짝 말라서 비틀어질 때까지 원고를 쓰게 되는 것이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만약 소고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더라도, 매니지먼트 쪽에서 이 작가를 통조림 시키겠다고 타깃으로 잡은 순간 끝이다.

    소고기가 싫다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가까운 시일 내에 횡성 한우 같은 떡대놈들이 집까지 찾아올 게 확실했다. 작품을 계약할 때 집 주소를 적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작가님? 혹시 괜찮으시면 내일이라도 잠깐 근처에서 뵐까요?

    “어쨌든 통조림방 만큼은…… 봐주시면 안 됩니까?”

    -예? 아하하, 무슨 말씀이세요, 작가님. 요즘 인권위에서 난리라서 통조림도 함부로 못해요. 지난달 UN총회에서 한국 작가 인권 결의안 채택된 거 아시죠?

    “정말요?”

    -아하하, 당연히 농담이죠. 어쨌든 요즘은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작가님들의 창작 의욕을 증진시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수정 씨는 조곤조곤한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통조림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동안은 집에 돌아가실 수 없으니까 이 점은 양해 부탁드려요.

    이미 명명백백하게 통조림이다.

    이름만 바꿨겠지. 통조림이 아니라, 뭐…… 밀폐 지퍼백이라던가, 휴먼 브레인 스퀴저 같은 걸로. 알게 뭔가, 시발! 감금당해서 죽거나 완결될 때까지 글만 써야 된다는 건 같을 텐데.

    -그러니 작가님께서도 신중하게 고려하신 뒤에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결정해 주세요. 강제성은 전혀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프로그램에 참여하시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다시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다시 전화 주시면 참여에 동의하셨다고 간주해서 바로 진행할게요.

    딸칵.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리허빌리 프로그램인지 묻기도 전에 말이다. 다시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려 했지만, 일순 손가락이 멈췄다.

    ‘전화를 다시 건다는 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동의한다는 뜻이었지.’

    과민 반응. 혹은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본래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인간들은 이런 말장난 같은 속임수에 민감한 법이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다시 핸드폰에서 착신음이 울렸다.

    “우왁!?”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가까스로 핸드폰을 다시 붙잡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엄마?”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연락이 잦은 편이 아니었다.

    내가 대학을 그만두고 집을 나와 글을 쓰겠다고 뜻을 전한 이후부터 말이다. 빈말로라도 사이가 좋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껏 제대로 된 밥벌이도 못하고 있으니.

    한심한 자식 놈이 뭐가 예뻐서 연락을 하겠는가?

    어쨌거나 그런 사이에 전화를 걸었다는 건 뭔가 용건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짧은 통화를 끝마친 직후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자취방에서 택시로 30분 거리의 병원이었다.

    전화로 전달 받은 이야기는 짧고 간결했다.

    아빠가 쓰러지셨다. 지금 병원의 응급실로 향하는 구급차 안이다. 지금 올 수 있으면 바로 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 정정한 양반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동시에 바로 응급실의 자동문을 지나 안으로 발을 들였다.

    병상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점점 안으로 향하기 시작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 참! 호들갑 좀 떨지 마, 정 여사. 피곤해서 잠깐 자고 있던 걸 구급차 부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게 피곤해서 자는 거예요? 세상 천지에 어떤 사람이 피곤하다고 총 맞은 사람처럼 픽 쓰러져요? 주호한테도 연락해 놨으니까 곧 올 거예요. 얌전히 좀 있어요.”

    “바쁜 애한테 연락은 또 왜 했어? 걔 가뜩이나 글 쓴다고 신경 쓰는데 왜 별것도 아닌 걸로 연락해서는…….”

    응급실의 구석진 자리.

    커튼 너머에 위치한 병상에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그 옆에 놓인 의자에 어머니가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말이다.

    병상 쪽으로 다가가자 먼저 이쪽을 발견한 아버지의 얼굴이 일순 굳었지만, 이내 멋쩍은 웃음을 머금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물으며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의식도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예상보다는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괜찮다, 인마. 네 엄마가 괜히 호들갑이야.”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며 왼쪽 손목을 오른손으로 꾹 쥐며 이불 아래쪽으로 숨기듯 옮겼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흘겨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주호야, 엄마 입원 수속하러 원무과 다녀올 테니까 잠깐 아빠 좀 보고 있어. 당장 집으로 돌아가자고 난리니까 어디 못 가게.”

    “알았어요.”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응급실을 빠져나간 뒤.

    빈 의자에 털썩 걸터앉자, 아버지가 바로 입을 열었다.

    “별거 아냐. 걱정할 필요 없어.”

    “와서 보니까 그런 거 같네요.”

    “글은 잘 나오냐?”

    아버지는 평소보다 어딘지 모르게 어눌해진 말투였다. 그리고 이불 밑으로 숨긴 왼손이 덜덜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어느새 늘어난 흰 머리카락과 주름.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건재할 것만 같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서 옅어져가고 있었다.

    “예…….”

    “사내놈 자식 대답이 왜 그 모양이야. 어디서 죄 짓는 거 아니면 당당해야지, 인마.”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며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툭툭 쳤다.

    “기껏 걱정돼서 왔더니 왜 또 괴롭혀요?”

    “괴롭힐 놈이 너밖에 없는데 어쩌겠냐.”

    아버지는 농담처럼 빙긋 웃었지만, 가슴이 먹먹했다.

    평생을 자신보다 강한 사람들의 틈에서 아등바등 살아왔다. 그런 인생이었을 것이다. 당장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고단한 날들을 보내왔을 것이다.

    괜히 얻어맞은 가슴을 문지르며 시선을 돌렸다.

    “주호야, 이 아버지는 이제 무서울 게 없다. 너 이렇게 큰 거 보니까 당장 죽는다고 해도 안 무서워.”

    “왜요? 의사가 당장 죽는 병이래요?”

    “아직 검사도 안 했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짜식아.”

    아버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내뱉으며 이어 말했다.

    “이만큼 컸으니까 자기 밥벌이는 하겠지. 아버지는 그렇게 믿는다.”

    그런 식으로 기대 받아봤자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이대로 글을 계속 써봤자 입에 풀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나 자신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단 말이다. 내가 과연 계속해서 작가로서 남을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도저히 누군가에게 믿어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저도 저를 못 믿는데요.”

    “알아.”

    “차기작 내봤자 또 쫄딱 망할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지.”

    “밥벌이는커녕 이 나이 먹고 손 벌릴지도 모르고요.”

    “빌려줄 테니까 나중에 갚아라. 이자까지 두둑이 쳐서.”

    “뭘 믿고 빌려줘요?”

    “아들이니까.”

    아버지는 악동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부모는 그러라고 있는 거야. 자식 놈이 자기 스스로도 믿지 못할 때. 그럴 때 믿어주라고 부모가 있는 거 아니겠냐.”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슴에 꽉 응어리져 있던 죄책감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철없이 등을 비비던 곳이 무너지는 감각이란, 순수하게 정제된 죄책감 그 자체였다.

    시간은 철없는 나를 두고 이미 멀찍이 흐르고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가 잠시 떠올랐다.

    ‘검사 결과가 나와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데…… 아무래도 뇌에 종양이나 출혈이 있을지도 모른다더라.’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기를 한 시간째.

    모니터 화면에 떠있는 워드 프로세서 창에는 한 글자도 추가되지 않고 있었다.

    도저히 키보드에 손이 가지 않았다.

    “하아…….”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런칭까지 남은 분량을 헤아려 봤다.

    앞으로 어림잡아 40편에서 50편 정도.

    그것도 초고에 가까우니 퇴고를 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80편 쓰는데 반년 걸렸으니까…… 퇴고까지 더하면 앞으로 반년 더 써야 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속도다.

    이런 굼벵이 같은 속도로 앞으로 계속해서 웹소설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내 시답잖은 자존심 때문에 작업 속도가 더뎌지고 있는 것이다.

    “한주호 이 미친 새끼야…… 그냥 좀 쓰라고! 박태준 팀장 그 새끼가 시키는 대로만 쓰면 되는데 왜 지랄이야!! 제발, 제발 좀 그냥 쓰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잣말을 토해냈다.

    뭐가 됐든 써야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를 써내야 돈이 된단 말이다.

    만약 이대로 아버지가 입원하게 돼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부양을 해야 되는 입장이었으니까.

    일단 런칭을 하고.

    양판소라고 욕을 처먹든, 붕어빵이라든지 아니면 뭐 작가들끼리 소재 돌려쓴다는 개헛소리를 처듣던지.

    어쨌거나 돈이 필요했다.

    “후…… 쓰자, 제발 쓰자.”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집에서 연락이 왔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집어든 순간.

    “…….”

    통화 기록에 ‘임수정 편집자’라는 이름이 보였다.

    그래, 통조림이라도 하자. 그러면 원고도 조금 더 빨리 나오겠지.

    최악의 경우 완결까지 감금돼서 못 나올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당장 원고를 쓰는 것보다 급한 일은 없었다.

    통조림이든 뭐든 재워주고 먹여주면서 글만 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데 안 될 게 뭐가 있나?

    원고만 빨리 나온다면 감금이 대수인가?

    꾸욱.

    그렇게 생각하며 임수정 편집자에게 통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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