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플레이어 독립전쟁 (13)
한편, 마왕 바알 또한 같은 시간 분노를 내질렀다.
“감히 버러지 주제에 내게 대항해!”
콰아아앙!
바알이 던진 패드가 산산조각 났다. 부러진 패드에서는 마튜브 실시간 영상이 중계되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마계 주민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대공 루시퍼가 마왕 바알을 대신해야 한다. 인간과 바알을 마계에서 축출하자!]
“루시퍼, 결국 네놈이 이빨을 드러내는구나. 어리석은 주민들을 선동해서 세력을 모을 생각이었나 본데, 어차피 창조신의 패드가 거의 복구된 시점이니 더 이상 기다릴 필요 없겠지. 잠자코 있었다면 목숨은 살려줄 수 있었지만, 끝을 내야겠구나.”
바알은 조용히 뇌까리더니, 이내 대기하고 있던 마계 간부들에게 명령했다.
“지금부터 반란군에 대한 토벌을 시작한다. 또한 대공을 즉시 소환해 반란군과의 관계에 대해 결백을 증명하라고 해라. 그렇지 않을 경우 대공 역시 토벌한다.”
“존명!”
바알의 명령에 간부들은 일제히 외치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부들은 우려하던 내전이 드디어 발발했다고 직감했다.
장현은 연설이 끝난 직후 안젤라와 함께 영상을 보았다.
업로드한 영상에는 벌써 수천만 이상의 조회수가 올라와 있었다.
댓글 또한 조회수에 비례해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었다.
댓글란은 전쟁터와 마찬가지였다.
[이제 마왕과 대공 간에 마계 내전이 발발하겠구나.]
[대공이 미친 거지. 어딜 감히 마왕한테 깝쳐.]
[대공이 일대일로 붙어도 마왕한테 밀리지 않을 거라고 본다.]
[대공이랑 마왕이 붙을 일이 있겠냐. 그 전에 우리 같은 하급 마족 찌끄래기들이 먼저 다 죽어나갈걸.]
[마왕과 대공 간의 내전이라니 진짜 실화야?]
[씨벌, 코로나 바이러스 퍼진 게 마왕 때문이잖아. 난 대공이 마왕을 죽여줬으면 좋겠음.]
댓글들을 훑은 장현은 안젤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면 마계 주민들에게도 충분히 내전의 징조를 알린 거 같지?”
“응, 이 영상의 조회수만 해도 곧 1억이 돌파할 거 같아. 업로드한 지 하루도 안 된 걸 고려하면 거의 전 마계에 알려졌다고 봐야지.”
안젤라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마족의 피가 흐를지 모른다. 마계의 일반 주민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마족들.
그들이 마왕과 대공의 패권 싸움에 휘말려 죽어나갈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운 듯했다.
장현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안젤라,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는 건 불가능했어. 마왕을 물리치고 독립을 이루어내면, 그때는 더 이상 전쟁도 뭣도 없을 거야.”
장현의 말에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미 장현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마왕을 물리치지 않으면 플레이어인 장현은 경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와 언제까지나 함께 지내고 싶다는 안젤라의 소망 또한, 플레이어 신분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어차피 내친걸음, 후회는 의미 없다. 그저 원하는 결과를 위해 나아갈 뿐이다.
“알고 있어. 나는 그저 장현이 다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야. 다른 모두가 죽는다 해도 장현만 무사하면 돼.”
안젤라의 말에 장현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서큐버스에 대한 얘기는 진짜였다. 이성을 유혹해서 정기를 흡수하는 마족이지만, 진실한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모든 걸 다 바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안젤라는 장현을 위해 소성주의 자리마저 내팽개치고 플레이어의 독립을 지지하고 나섰다.
장현은 그런 안젤라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다.
“안젤라, 이 일이 끝나면 나와 함께 살자.”
“어디에서?”
안젤라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장현을 돌아봤다.
그녀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장현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갖고 있었다.
“너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마계든 지구든 상관없어.”
“정말?”
안젤라는 기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동안의 불안감이 싹 씻겨나가는 듯했다.
끄덕끄덕.
장현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젤라는 장현의 품에 안기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고마워, 장현.”
“내가 더 고마워.”
그때 둘을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김덕배였다.
“장현, 캄온 연구소 구출팀이 준비됐어.”
김덕배는 말을 하고 나서 안젤라의 불타는 듯한 시선을 느끼고 찔끔했다.
무언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이다.
“수고했어, 김덕배. 구출팀 지휘자는 이나연이야?”
“응, 최형석의 얘기를 듣자마자 이나연이 그동안의 훈련을 시험해볼 때라고 나섰어. 물론 최형석도 동행하기로 했고 말이야. 나 또한 이번엔 갈 생각이야.”
“넌 여기서 다른 연합왕국의 국왕들이랑 의논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잖아.”
“아르헨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했어.”
“설령 그렇더라도 참석해서 내용은 알아야 하잖아.”
“장현, 나도 이번 캄온 공략에 참석하고 싶어. 그동안 몸에 맞지 않는 국왕 역할 한다고 뒤에만 있었는데, 나 역시 무공 수련도 열심히 했고 전면에 나서서 싸우고 싶어.”
장현은 그런 김덕배를 보며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알겠다. 그렇게 원한다면 가야지. 나도 갈 거니까 함께 가도록 하자.”
그 말에 김덕배는 크게 기뻐했다.
장현과 함께라면 어떤 위험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 안젤라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이번에는 함께 갈 거야! 반대는 용납하지 않겠어.”
장현도 이번에는 거부할 명분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이번에는 헬릭스 성 출신 대부분이 캄온 연구소 공략에 함께 나서게 됐다.
이때는 몰랐다.
캄온 공략이 마계 내전의 본격적인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장현은 이정환을 찾아갔다.
마르바스 성에 오자마자 캄온 연구소에 가느라 미처 그를 만나지 못했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기 전에 준비할 게 있었다.
바로 테세리움으로 만든 무기들을 마왕과 싸울 주요 동료들에게만이라도 만들어 줘야했다.
“이정환 씨. 부탁이 있습니다.”
“테세리움으로 만든 무기가 더 필요하다는 거겠지요?”
“어떻게 아셨소?”
“당신이 파라셀수스의 권능을 얻었다는 것을 아르헨 국왕에게 들었습니다.”
“그랬군요. 그럼 얘기가 쉽겠습니다. 전 이제 테세리움 금속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제게 망치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마왕과 싸우게 될 나의 동료들을 위한 무기도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 화염의 정령의 도움이 필요한데, 괜찮으십니까?”
이정환은 쑤엉의 까칠한 성격을 앞전에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조심스레 물었다.
“음, 제가 부탁하면 어떻게든 될 것입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장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도 쑤엉에게 다시 부탁하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장현은 화를 내는 쑤엉을 간신히 진정시킨 뒤 협조를 얻어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드디어 망치가 완성되었다.
“일단 장현 당신의 무기부터 만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망치에 이름을 지어주시지요.”
장현은 이정환이 건넨 망치를 들어보았다.
그에게 주문한 것과 똑같은 형태였다.
장현이 1회차 최후의 전투 때 사용하던 망치와 같았다.
이 망치의 이름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너의 이름은 묠니르다.”
장현이 드디어 묠니르를 얻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안젤라, 이나연, 최형석, 김덕배, 마현 등 장현의 주요 동료들 역시 차례대로 테세리움으로 만든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장현은 다시 캄온으로 향할 공략팀을 준비시켰다.
그는 캄온 연구소 공략을 위한 총지휘를 이나연에게 맡겼다.
그동안 그녀는 최형석의 도움을 받아 집단 전투를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최근 마르바스 성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수하들과 함께 확진된 마족과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전투를 치렀다.
전투가 끝나면 최형석을 불러 언데드들을 대상으로 전투를 복기하고는 했다.
처음에는 최형석도 투덜거렸지만 이나연이 워낙 진지하게 임하는데다 자신의 사령술 또한 향상되는지라 나중에는 스스로도 열심히 임했다.
“이나연, 이 활강시를 상대로 너희 병사들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 이제 마계 내전이 시작된 만큼 고위 마족들을 상대로도 싸워야 될 거야. 이 활강시는 그때를 대비해서 좋은 훈련 상대가 될 거다. 네가 자랑하던 그 집단 전술이 고위 마족에게 효과가 있을지 확인하는 데 이 활강시만 한 상대가 없겠지.”
“좋아. 그간의 언데드들과는 완전히 다른데. 집단 전투 훈련의 효과를 증명해 주겠어.”
최형석의 말에 이나연이 동의하면서, 마르바스 활강시와 이나연 병사들 간의 모의 전투가 치러졌다.
이나연은 합격진의 형태로 활강시를 포위했다.
합격진은 마현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것으로, 고위 마족 등의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적합한 전술이었다.
이나연이 훈련시킨 병사들은 김덕배 영지에서부터 킹덤의 네오디움 왕국을 거쳐, 마르바스 성에서까지 수많은 집단 전투를 경험했다.
그들은 어느새 한명 한명이 하급 마족 수준까지 올라왔다.
더불어 그들은 장현이 양산형으로 만든 아이템으로 무장하기까지 했다.
장현은 헬릭스 성과 네오디움 왕국에서 사업으로 벌어들인 포인트를 영지민들을 위한 아이템을 생산하는 데 아끼지 않고 지출했다.
그것을 다시 장현이 강화까지 했기에, 이들의 현재 전투력은 중급 마족 수준까지 올라왔다.
‘합격진까지 가미되었으니, 고위 마족이라도 해볼 만해.’
36명의 병사들이 창을 든 채 마르바스 활강시를 둘러싸고 이나연의 명령을 기다렸다.
최형석과 이나연의 눈빛이 마주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시작에 동의한 것이다.
먼저 돌진한 건 이나연의 창병들.
여섯 방향에서 마르바스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들의 무기에는 포인트와 스킬의 조합으로 강력한 마나 기운이 뭉쳐 있었다.
그때 최형석이 마르바스 활강시에게 지시했다.
강시와 의식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의념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마르바스의 몸에서 시커먼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터터텅!
“계속 순환하며 공격해! 보호막을 부술 때까지 쉬지 마!”
이나연의 목소리와 함께 뒤에서 대기하던 창병들이 달려들더니, 점프하여 먼저 창을 지른 창병들 머리 위를 넘었다. 이어 재차 마르바스 활강시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들의 창에도 마나가 짙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번 공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마르바스의 보호막이 바르르 진동하더니 두께가 옅어졌다.
“제법 쓸만하지만 그 정도로는 보호막을 부수기에 부족하다.”
최형석이 고개를 저으며 웃더니 손을 휘저었다.
그에 따라 마르바스의 보호막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이런!”
이나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최형석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공격할 테니, 어디 견딜 수 있으면 견뎌봐라.”
그의 말이 끝난 직후, 마르바스 활강시는 병사들이 형성한 합격진을 향해 돌진하며 주먹을 뻗었다.
그 주먹에는 마르바스 본체의 마력이 그대로 실려있었다.
막강한 기운이 담긴 공격이 합격진을 향해 그대로 부딪치더니, 창병들을 쓸어버렸다.
콰콰쾅!
크으으윽!
합격진을 구성했던 창병들이 십여 미터를 날아가 뒹굴었다.
그럼에도 이나연은 침착했다.
“삼진 밀집대형으로 변해 돌격한다.”
그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른 창병들이 달려와 이나연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일제히 창을 마르바스에게로 향하며 두터운 창 벽을 형성했다.
“여신의 축복, 신성 방벽.”
이나연이 자신의 병사들에게 축복을 내리며 신성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 신성 방벽]
-성기사의 신성력으로 방어벽을 세운다. 주위 동료들의 기운을 모아 방벽을 강화할 수 있다.
-적의 공격을 되돌려 줄 수 있다.
이나연이 믿은 것은, 집단 병력이 모여 힘을 내는 신성 방벽이었다.
여신의 축복이 깃들면서 신성 방벽의 위력은 이전의 합격진보다 훨씬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