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플레이어 독립전쟁 (5)
모든 것을 말살할 것 같은 위력을 뽑아내며 아르헨의 몸을 박살 낼 듯하던 창이 막혔다.
마현이었다.
콰직.
아르헨의 목숨을 구한 대신 마현의 검을 든 팔이 날아갔다.
“크으윽!”
그 모습을 지켜본 장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는 아르헨의 목숨이 위협받던 순간, 자신의 아이템을 믿고 대신 공격을 받으려고 했으나 움직이지 못했다.
두려웠던 것이다.
대장장이 조각을 지녔기에 마왕에게도 대항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아이템들을, 정작 스스로는 믿지 못했다.
그 결과 마현의 팔이 날아갔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신의 금속으로 만든 무기만 있었다면! 화염의 정령만 있었다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변명이었다.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무기가 있으니 더는 변명할 수 없겠군.]
“누,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겁쟁이 자식. 내가 너와 같은 존재라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네가 나라고?”
[그래. 난 너의 무의식의 자아. 지금 네가 봤던 장면들은 회귀 전 너의 기억이야. 넌 신의 금속으로 만든 무기만 있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지. 기억이 나느냐?]
“그래. 분명 그랬지. 신의 금속으로 만든 무기만 있었다면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럼 최후의 전투에서 패배하지도, 회귀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지금은 신의 금속으로 만든 무기가 있잖아. 그런데 왜 또 예전처럼 벌벌 떨고 있는 거지?]
“무슨 소리야?”
[네 자신을 봐. 넌 지금 네가 말하던 신의 무기를 갖고 있잖아. 그런데도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네 모습을 봐. 이제 어떤 변명을 하려고 그러는 거지?]
“아, 아니야! 내가 공포에 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장현은 무의식 자아의 말에 화들짝 놀라 외쳤다. 그리고 그때, 장현은 무의식에서 깨어났다.
멍하니 하늘의 눈을 바라보며 떨고 있던 장현의 눈에 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
“여, 여긴!”
“장현! 이제 정신을 차렸구나! 대체 뭐한 거야. 한참을 불렀는데 멍하니 있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
쑤엉의 말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손에 든 나초를 본 장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마왕을 쓰러트려야지.”
아르헨에게 줬던 신의 무기 나초는 이곳에서 장현의 손에 있었다.
여전히 검은 하늘에 떠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알이 보였다.
“바알!”
자신에게 공포심과 절망을 불러일으킨 존재.
비록 천족 데랑스의 몸에 들어와 있지만, 싱크로율 100프로나 마찬가지다.
기합을 내질렀지만 여전히 바알의 눈에서 쏟아지는 압박을 버티기란 쉽지 않았다.
1회차의 기억을 다시 경험했기 때문일까. 각오가 다시 새겨졌다.
덕분에 공포심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난 이겨낼 수 있다고! 으아아아아악!”
고함을 지르며 날아오르는 장현.
그는 공간 스킬을 사용해 바알의 눈알과 자신의 거리를 순간적으로 삭제했다.
최소한의 스킬 사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얻기 위함이다.
공간이 사라지며 장현의 앞에 나타난 바알의 눈.
그 순간 휘두른 나초가 바알의 눈을 베었다.
괴로워하는 바알의 눈에서 고통의 빛이 보인다.
“크아아아악!”
정작 분노에 가득 찬 괴성은 아래에서 들렸다.
검은 마기에 휩싸인 인영.
사람의 크기만 했던 인영이 점점 커져갔다.
“왜! 상처 부위가 재생이 되지 않는 거지?”
당혹스러워하는 바알의 음성이 울렸다.
놈은 모를 것이다.
자신이 한번 그를 상대했다는 것을.
그 당시 가장 절망스러웠던 것은 마왕 바알의 끊임없는 재생 능력이었다.
아무리 공격하고 어떤 스킬과 권능을 쓰더라도 바알은 곧 원래의 모습으로 재생이 되었다.
재생이 된 마왕은 여전히 강하고 치명적이었으며, 여유롭기까지 했다.
고통이라고는 없는 편안한 표정.
그랬기에 지금 내뱉는 바알의 고통 어린 분노는 장현에게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
“놈도 고통스러워한다.”
그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신의 검 나초 덕분이다.
나초는 그냥 흔히 신검이라 불리는 검과는 규격이 다르다.
장현이 연금술사 조각의 특성을 사용해, 창조신의 원재료 금속인 테세리움으로 만든 것이다.
그것을 다시 대장장이 조각을 가진 이정환과 대장장이 중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드워프 족장 포프가 함께 힘을 합쳐 만든 검이다.
장현은 자신감을 가지고 마기에 둘러싸인 마왕 바알을 향해 달려갔다.
고통 어린 표정으로 마왕 바알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눈알 옆에 커다란 손이 나타났다.
눈알은 어느새 회복이 되어있었지만, 놈이 타격을 받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마왕의 손. 거대한 손이 주먹을 쥐더니 장현을 향해 내리꽂혔다.
흠칫 놀란 장현은 공간 스킬을 써 주먹의 궤도를 비틀었다. 하지만 마왕의 주먹은 계속해서 그를 향해 쫓아왔다.
음양합일신공으로 내공을 최대치로 뿜어내며 양발에 집중했다.
시간 스킬을 사용해 자신의 시간은 빠르게 했고, 마왕의 손에 적용된 시간은 느리게 했다.
“흥 그런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 있는지 보자!”
마왕의 손이 허공에 하나 더 나타났다.
검은 하늘에서 두 개의 주먹이 두들기듯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내렸다.
하나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쾅! 쾅! 쾅!
전력으로 일으킨 공간 스킬, 시간 스킬 그리고 음양합일신공까지 모두 쏟아 부으며 그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피하다가 틈을 노렸다.
‘바로 지금’
장현은 다시 주먹을 피한 후 눈알을 향해 나초를 휘둘렀다.
스걱!
다시 베이는 눈알.
마왕 바알은 이제 분노가 극에 달한 듯 했다.
허공에 떠 있던 눈알과 양손을 중심으로 점점 거대한 신체 일부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 바알의 온전한 육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껴두었던 권능이지만 할 수 없이 써야겠군. 이제 나의 본신의 힘을 모두 쏟아 부어 싸울 테니, 영광으로 알도록.”
바알이 움직였다.
거대한 신체임에도 움직임은 공간을 삭제한 것 같은 빠르기였다.
눈으로 보고 대응하면 늦다.
장현은 바알과 자신 사이에 공간을 중첩시켜 생성했다.
콰콰콰콰!
생성한 공간을 파괴하며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바알에, 한순간도 집중력을 흩트릴 수 없었다.
그는 회귀 전 마지막 전투가 떠올랐다.
‘신의 무기만 있었더라면, 화염의 정령만 있었더라면 하고 후회했었지.’
간절했던 그때의 기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지금은 있다.
신의 검. 화염의 정령. 더불어 기대도 안 하고 존재조차 몰랐던 창조신의 패드까지.
이제는 더 이상 변명을 할 수 없다.
장현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순간도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주먹에 이어 마왕이 하늘에 수많은 창을 소환했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마기를 품고 있다.
허공을 가득 메운 창이 마왕의 손짓에 따라 내리꽂힌다.
그동안의 서러움, 회환은 모두 젖혀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공간 스킬로 틈을 벌리고, 시간 스킬로 속도를 조절한다.
그 사이로 장현은 음양합일신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려 다시 한번 돌진했다.
신의 검 나초를 휘둘렀다.
처음보다 자연스러워졌다. 어느새 나초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래도 망치만큼 능숙하진 않다.
‘신의 금속으로 만든 망치가 있으면 더 좋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나초를 휘둘렀다.
마왕의 몸에 하나씩 상처가 생겨났다.
그때 장현의 눈앞에 1회차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왕의 에너지 수치가 떠올랐다.
나초로 마왕을 벨 때마다 에너지 수치가 뭉텅이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이 또한 패드의 권능인가.’
이제 마왕은 세상을 뒤엎으려는 듯 힘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땅을 뒤집어 갈아엎어, 장현을 땅에 묻으려 했다.
그러고도 장현이 공간 스킬로 피해내자 이번에는 하늘과 땅을 역전시켜 추락하도록 만들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워지자 장현은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스스로 만든 공간 속에서 마왕의 공격을 버텼다.
땅을 뒤집어엎고 하늘과 땅을 역전시킨 마왕이, 이번에는 지옥의 화염을 꺼내들었다.
온 세상이 불타고 녹아내렸다.
주위에 산처럼 쌓여있던 마족들까지 모조리 녹아내렸다.
화염은 용암이 되어 장현이 숨어있는 공간 역시 덮쳤다.
비록 용암의 직접적인 공격은 피했지만 열기마저 차단되지는 않았다.
뜨거웠다.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때 쑤엉이 장현의 몸속에 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화염은 나의 전력을 다한 것과 비슷해. 마왕의 화염을 내가 방어해 줄 테니, 장현 넌 마왕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데 모든 힘을 쏟도록 해.”
“알겠어, 쑤엉.”
장현은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열기가 가시자 머리가 다시 맑아지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전신을 스쳐 지나갔다.
‘더 이상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몸을 살펴보니 마왕이 내뿜은 열기로 인해 전신이 붉게 화상을 입어 있었다.
그래도 녹아내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검을 휘두를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장현은 다시 발을 내딛어 마왕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침내 마왕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장현은 자신이 들어가 있는 공간을 확장시켜 마왕을 그 안에 가두었다.
“무슨 수작이냐! 이런다고 감히 필멸자인 인간이 나를 어찌할 수 있을 줄 아느냐.”
마왕이 코웃음을 쳤을 때, 장현은 천중수 스킬을 펼쳐 마왕의 몸을 짓누르고는 그 공간을 압축시켰다.
“무슨 짓이냐!”
마왕은 벗어나기 위해 애썼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지금 끝내야 해.’
장현은 핀셋으로 고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마왕의 가슴에 나초를 찔렀다.
“끄아아아악!”
나초가 가슴을 찌르자 마왕은 비명을 질러댔다.
장현은 나초를 빼내 그대로 마왕의 목을 베고 팔 다리를 베었다.
스윽.
전신이 토막 난 마왕을 힐끗 본 장현은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홀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왕이 있는 공간을 완전히 압축시켰다.
“이놈! 너의 영혼까지 소멸시켜버리리라!”
목이 잘린 마왕의 입에서 검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저러고도 죽지 않는단 말인가.’
장현의 표정이 굳어질 때, 마왕의 머리에서 실금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쩌저적 쪼개지기 시작했다.
쪼개지는 머리의 입이 다시 열리며 마지막 말을 쏟아냈다.
“흐흐흐. 이것으로 끝난 줄 안다면 오산이다. 우리는 또 보게 될 것이다. 내 너를 기억하도록 하지.”
분노를 내지르다가 돌연 웃음을 내뱉은 마왕. 그의 토막 난 신체가 모두 폭발했다.
꽈아아아앙.
마치 우주가 폭발할 때와 같은 에너지원이 한순간에 마왕의 몸에서 퍼져 나왔다.
장현이 만든 압축된 공간이 삽시간에 깨져나갔다.
“안 돼!”
장현은 패드의 권능을 빌어 공간 스킬을 최대한으로 중첩해 사용했다.
마왕의 신체가 폭발하며 일으킨 공간 폭풍이 장현을 덮쳐왔지만, 계속해서 생성된 공간이 폭풍을 축소시켰다.
콰직!
퍼석!
마침내 장현의 몸에 폭풍이 다가왔을 때, 그것은 더 이상 폭풍이 아니라 바람에 불과했다.
투두둑.
마왕의 신체 조각이 날아와 장현의 몸에 맞고 떨어졌다.
스윽.
장현은 팔로 얼굴을 쓸어 마왕의 조각을 털어냈다.
그때 마왕이 사라진 공간에서 데랑스가 나타났다.
짝짝짝!
그는 박수치며 말했다.
“축하한다. 정말로 마왕을 쓰러트릴 줄이야.”
“그건 정말로 마왕이었습니까?”
장현은 이상해서 물었다.
처음에는 데랑스가 마왕 역할을 하겠다고 해서 마왕으로 변신한 줄 알았다.
그런데 싸우다 보니 정말로 마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흉내 낸다고 해서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내가 당시 싸웠던 마왕이지. 난 처음에 놈의 모습만 연출했을 뿐, 너와 싸울 때의 놈은 당시 마왕의 전투력과 성향을 분석해서 이 공간에 만든 것이다. 진짜 마왕은 저것과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마왕이 상처 입고 괴로워하며 몸을 폭발시키는 건 나조차 생각지 못했던 것이니까.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런 거군요.”
“훌륭했다. 너는 패드의 후임자로서 모든 권한을 받을 자격이 있다.”
“감사합니다.”
장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몸도, 정신도 너무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