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플레이어 독립전쟁 (1)
마튜브를 통해 실시간 경기 영상을 시청하고 있던 마계 주민들은 점차 분노가 커져갔다.
마튜브 실시간 댓글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저기 뭐야? 확진된 마계 주민들이 전부 킹덤에 투입된 거 같잖아.”
“그러고 보니 병실이 부족하다고 들었어. 병원조차 가지 못하는 자들이 지금 경기에 투입된 거야?”
“아무리 봐도 그런 거 같은데! 씨벌, 우리도 확진되면 경기에 투입되는 거 아니야?”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다고 봐야겠지.”
“젠장! 마왕이랑 윗대가리들이 인간 플레이어들을 잡아와서 경기 열고 하지 않았으면 바이러스 걸릴 일이 없었잖아.”
“어이, 말조심해. 그러다 뒤질 수 있어.”
“이래 뒤지나, 저래 뒤지나 뭔 차이 있어. 차라리 전투로 싸우다가 뒤지면 모를까.”
“맞아. 전장에서 명예롭게 죽는다면 몰라도, 확진자가 되어 플레이어들의 사냥감으로 던져진다면 그게 대체 무슨 불명예야?”
“씨벌. 대체 고위 귀족들과 정부는 뭐하는 마족들인가. 경기는 우리 마족의 유흥을 위해서 열었던 게 아니었나.”
“이대로 있다간 우리도 저 경기의 희생자가 될 거야.”
“저 인간 플레이어들의 영상에 자주 나오더라고. 인간들 말인가 봐. 약한 놈도 열 받으면 강한 놈한테 덤벼들 수 있다 이런 뜻인 듯.”
“좋군. 우리 일반 마족도 열 받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주자고!”
댓글창은 점점 뜨거워졌다. 한두 명이 동조하기 시작하다보니, 어느새 쉴 새 없이 성토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군가 제안했다.
“우리 진짜로 한번 엎어보는 게 어때?”
“님, 진심이야?”
“씨발, 좋다. 이대로 있다간 속이 터져 죽을 거야. 한번 엎자고!”
“이봐! 말로는 뭐든 못할까. 상대는 고위 마족과 정부라고!”
“겁쟁이는 빠져! 마족 같지도 않은 놈. 패드 앞에서 경기 영상이나 보다가 바이러스 걸려서 후회하든지!”
반대하는 자들을 매도하는 자의 댓글이 인기를 얻었다.
결국 댓글러들은 마계 곳곳에서 폭동을 저지르자는 의견을 내세우더니, 이윽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마튜브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안젤라에 의해 장현과 일행들에게 알려졌다.
물류센터의 전투가 끝나고, 클라우드 왕국에서 연합왕국 회의가 열렸다.
각 왕국의 국왕 및 던전 레이드에 참석했던 인물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의 주재자이자 사실상 연합왕국의 수장으로 인식된 아르헨이 좌중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마계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정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지금이 우리에게는 마왕의 손에서 벗어나 독립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절호의 기회라면 살려야겠지요.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획이 있습니까?”
마현이 질문하며 아르헨의 말에 동조했다.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먼저 나오자 ,자연스레 회의는 아르헨과 마현 등이 주도한 대로 흘러갔다.
아르헨이 마현의 질문에 테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테오 국왕께서 계획을 준비해주셨더군요. 한 말씀 해주시죠.”
“네.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테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회의가 있기 전, 회귀 전 최후의 5인방은 먼저 말을 맞추었다.
장현의 회귀 전 기억을 활용하기 위해서 큰 흐름의 순서는 따라가도록 했다.
“지금 마계의 상황을 알아보니, 마왕에 반대하는 마계 주민들이 조직을 이루어서 대륙의 병원과 상점들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필요한 생필품과 무기 아이템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곧 마왕의 정부군을 상대로 교전을 벌이게 되겠죠. 즉, 내전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때 블록 국왕이 질문했다.
“그 상황이 사실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나요? 정보의 출처를 알려주십시오.”
“정보를 얻게 된 경위는 극비라서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경기 운영 관리자 데니우스의 귀에 정보가 들어간다면 우리의 행보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계속 설명해주시죠.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내전이 벌어지면 우리는 그 틈을 타 마르바스의 제약 바이오 연구소를 공략해야 합니다. 그곳을 확보해야 백신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곳을 공략해야 한다고요? 우린 이미 백신을 확보하지 않았습니까?”
의아한 듯 블록 국왕이 반문했다.
“우리 백신이 네오디움 왕국의 장현 님께서 수작업으로 만드신 거라는 걸 잊으셨나 보군요. 백신은 정기적으로 부스터 샷을 맞아야 합니다. 이번에 장현 님께서 새로 개발한 백신은 먹는 알약형이라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으나,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춘 연구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계에서 그런 제약 시설이 갖추어진 곳은 마르바스 성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린 마르바스 성의 연구소를 확보해 거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테오의 설명에 블록 국왕은 장현을 힐끔 바라봤다.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장현밖에 없었기에 그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장현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들은 킹덤의 핵심 인물들이다.
전 마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소수의 정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수 플레이어들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여기 있는 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 폭동을 일으키는 마계 주민들은 이대로라면 결국 마계 정부군에 토벌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궤멸당하지 않게 지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반란군이 계속 마왕군의 대적이 되도록 해 정부군이 함부로 우릴 소탕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과 마르바스 연구소를 확보하는 게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요?”
블록 국왕이 반문했다.
“우선은 우리의 백신 부스터 샷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더 이상은 백신의 원료가 되는 확진된 몬스터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확진된 마족을 쓰러트려 백신으로 만들기에는 위험 부담도 너무 클뿐더러, 반란군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갈수록 백신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마르바스 성의 연구소에는 백신을 대량복제 및 생산할 수 있는 설비와 임상 및 비임상 시험을 할 수 있는 연구소들이 몰려 있습니다.”
“마르바스 성이 바이러스가 퍼진 연구소라는 것을 듣기는 했는데, 거기에 그렇게나 주요 설비가 다 몰려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곳은 마왕이 마계의 제약 바이오를 육성하려고 만든 M-바이오 허브니까요.”
장현이 말과 함께 상태창을 조작해 마계의 지도를 허공에 띄웠다.
안젤라의 도움으로 얻은 지도였다.
지도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있는 지역.
마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졌던 지역이며, 확보해야 할 거점이다.
“바로 이곳입니다. 우린 마해를 건너 대륙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다 데려 가려고 하는 겁니까?”
“지금 킹덤에서 대형 컨테이너선 111척이 건조 완료되었습니다. 물류용으로 건조하였으나 이번에 실어 나를 건 컨테이너가 아니라 우리 플레이어들이 되겠지요.”
장현의 설명에 회의 참가자들은 납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마왕을 상대로 독립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반란군을 쓰러트릴 테니 우리를 독립시켜달라고 마왕에게 요청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블록 국왕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가 없는지 살폈다.
‘역시 이런 자가 나타나는군.’
장현은 블록 국왕을 냉담하게 쳐다봤다.
아르헨이 지금과 같이 킹덤의 패권을 차지하지 않았다면, 저자의 발언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다.
1회차 때도 그랬다.
저 블록 국왕이 주도한 건 아니었지만 다른 자가 저런 식으로 통합에 반대했다.
만약, 평화를 누릴 수만 있다면 사실 저자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류 플레이어는 마족에게 있어 결코 마계 주민으로 여겨질 수 없다.
그들에게 인간은 노예보다 못한 가축이다.
투견, 경주마와 같은 존재다.
결국 마왕은 인류의 영원한 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모르기에 저런 주장을 펼치는 것이지만, 1회차의 경험을 통해 저런 자들은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결국 의견 대립으로 내전이 벌어지고, 킹덤의 왕좌 다툼으로 연결되었다.
장현이 블록 국왕에게 말했다.
“그건 불가합니다. 공을 세워봤자 그들이 우리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원치 않는다면 그냥 연합에서 빠지십시오. 대신 더 이상 백신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냉담한 장현의 말에 블록 국왕은 얼굴이 시뻘게져 노려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장현에게 백신이라는 절대적 무기가 있는 이상, 그의 말을 거역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블록 국왕은 자신을 지지해주는 자가 없자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그때 아르헨이 분위기를 환기할 겸 말을 꺼냈다.
“그럼 결론이 난 것 같으니, 이제 마르바스 성으로 진격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세워봅시다.”
아르헨이 좌중을 향해 얘기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구체적인 계획들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인원은 얼마나 투입할 생각이지요?”
제이미의 질문에 테오가 대답했다.
“킹덤의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인력과 치안 유지에 필요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전부 투입해야 합니다. 알다시피 마르바스 성은 확진된 몬스터와 마족들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마르바스 성주도 그곳에 있을 겁니다. 비록 성주가 확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육체적인 힘만 봐도 일반 마족과는 격이 다릅니다. 레이드 팀이 성주를 비롯한 고위 마족들을 상대하는 동안 일반 플레이어들은 나머지 마르바스 성의 마족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장현은 이들의 회의를 지켜보며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이제 큰 흐름은 정해졌다.
회의는 결국 킹덤의 모든 왕국이 마르바스 성을 향해 진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블록 국왕과 같이 반대하는 의견이 몇몇 나오기도 했지만, 장현과 아르헨이 엄포를 놓자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한편. 마계의 전 지역에서는 마계 주민들의 폭동이 다발성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마왕의 정부군이 진압을 시도했다가 진압 병력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되면서 결국 물러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폭동을 주도하는 자들은 마왕군이 바이러스가 두려워 자신들을 진압하지 못하는 것을 알자, 그것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왕의 정부측에서는 반란군을 마계를 어지럽히는 무리로 선언하고 즉각 사살 명령을 내렸다.
이와 같은 마왕의 결정에 반발한 마계 주민들은 정식으로 반란군을 조직하고 마왕군을 상대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
입구를 드래곤 머리로 장식해 놓은 대공 루시퍼의 성 입구에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비밀리에 찾아온 듯 전신을 붉은 망토로 가린 채 수문장에게 얘기했다.
“대공 전하를 뵙게 해주시오.”
“미리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신분을 밝히고 체온과 인적 사항 확인을 위해 상태창 코드를 갖다 대주십시오.”
수문장은 방문객에게 신분 확인을 요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 마계가 공포에 떨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상태창 코드 확인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러나 붉은 망토를 걸친 방문객들은 따르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이 수문장에게 다시 말했다.
“대공 전하를 뵙게 해주시오. 나는 반란군 수장 마초라고 하오.”
말을 꺼낸 자가 망토를 벗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수문장은 깜짝 놀라 소리를 크게 질렀다.
“헉! 당신은!”
수문장이 고함과 같은 소리를 지르자, 마초는 즉시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 수문장을 압박했다.
“내가 누군지 안다면 소리를 줄이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리고 내가 상태창 코드를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알 것이오. 당신이 대공 전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방문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마초의 말에 수문장은 대답 없이 눈만 데구르르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