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물류창고 화재사건 (2)
장현은 아르헨과 맞붙는 상황을 상상했다.
‘만약 내가 그와 싸운다면.’
그와의 전투는 개인적으로 호승심이 생긴다.
그의 검과 자신의 망치를 겨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생산직. 서포트 역할에 그칠 생각이다.
만약을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르헨이 마왕과 싸워서 실패한다면 그 다음은 마현이 싸울 수 있게 준비를 해줘야 한다.
마현이 안된다면 그때 가서 자신이 마왕과 싸우거나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
‘어차피 아르헨 혼자서 마왕을 상대하게 할 생각은 이제 없지만.’
패드를 얻게 되면서 장현의 계획은 변경되었다.
장현과 안젤라는 천족 데랑스로부터 시간 스킬, 공간 스킬, 천중수 스킬을 전해 받았다.
그것이라면 마왕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특히 패드를 지닌 장현은 창조신의 권능이 패드에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 권능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생긴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졌다.
‘신의 검 외에도 마왕을 상대할 수단이 생겼다.’
그렇기에 그는 강력하게 승리를 믿었다.
다만 방심하지는 않는다. 마왕을 상대로 방심이라는 건 어처구니없는 자만이자 오만이다.
창조신의 패드에서 보았던 내용은 창조신의 권능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다만 아직 온전히 그것을 얻지 못했다.
‘그것을 준비해야 해. 마족들의 눈에 띄지 않게.’
얼마 후 장현과 동료들을 태운 지네차는 클라우드 왕국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클라우드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오디움 왕국의 귀빈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클라우드 왕국의 헥터가 마중 나와 그들을 맞았다.
이미 몇 차례 얼굴을 본 적 있는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이군. 좋은 일로 봐야 하는데 이런 일로 보게 돼서 유감이군. 아르헨 국왕은 어디에 계시지?”
“물류센터로 가셨습니다. 확진자 몬스터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아모레 단장 및 제란 단장과 함께 가셨습니다. 장현 님 일행이 도착하시는 대로 모시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혹시 다른 연합왕국은 이미 도착했나?”
“네, 무림 왕국과 마법 왕국, 또 신성 왕국에서도 오셔서 이미 물류센터로 출발하셨습니다.”
무림 왕국이 이미 도착했다는 소식에 김덕배는 즉시 마현에게 연락했다.
“사부, 이게 얼마만입니까.”
“어, 김덕배냐. 이크. 얼른 와라. 오랜만에 그간의 실력을 점검해야지!”
김덕배는 패드를 통해 보이는 마현에게 안부 인사를 했다. 그때 마현은 한창 마족과 전투 중이었다.
“그런데 사부! 지금 이 상황 뭡니까? 확진자 몬스터가 난입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사부와 싸우는 놈은 몬스터가 아니라 마족 아닙니까?”
“그래, 맞다. 던전이 해방되면서 확진자 마족들까지 줄줄이 쳐들어왔다.”
패드 속 마현의 말에 김덕배는 일행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드디어 장현이 언급했던 확진자 마족들이 킹덤에 투입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장현, 네가 말한 대로야. 확진자 마족들이 킹덤에 본격적으로 난입했어. 저들은 분명 확진된 후 킹덤으로 격리된 자들이겠지?”
“그래. 플레이어가 마족이 된 혈염수 같은 자들이 아니라 저들은 진짜 마족이야.”
“어쩐지, 물류센터에 확진자 몬스터들이 난입해 화재를 일으켰다 했더니. 마족들이 있어서 진압이 어려웠던 거군.”
“이제 슬슬 마계 여론이 안 좋아지겠어.”
김덕배의 말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처럼 경기에 확진자 마족이 투입된 순간부터 마계 주민들의 여론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마계의 시민권자인 마족을 바이러스에 확진되었다고 킹덤 던전에 투입시킨 건, 그냥 그들보고 죽으라는 겁니다. 아무리 마왕과 고위 귀족들이 결정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 위정자들은 우리를 몬스터와 같은 존재로 보고 있는 겁니다.]
마족 중 누군가 울분을 터트리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와 같은 연설은 마튜브에서 차츰 큰 조회수를 올렸다.
그 영상은 시작에 불과했다.
비슷한 영상들이 마튜브에 올라오기 시작하며 마족들은 고위 귀족들을 규탄하는 시위를 일으켰다.
마계 고위 귀족은 자연스레 방역을 강조하며 마계 통치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시위자들을 무섭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장현과 동료들이 기다리던 독립의 기회가 찾아왔다.
장현과 김덕배 등은 동쪽 항구에 도착했다.
수많은 컨테이너들이 화염에 불타고 있었고, 그 사이로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크아아아!”
크르륵!
도착하자마자 장현 일행을 발견하고 괴성을 지르며 덤벼드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장현과 일행들은 백신으로 무장된 상태라 그들을 손쉽게 쓰러트리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족이 아닌 이상 그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은 없다고 봐도 되었다.
곧 그들은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 도착했다.
“저, 저놈 뭐야?”
놀란 김덕배가 외쳤다.
그것은 마족이었다.
몬스터와는 확연히 다른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마족.
전신이 뼈로 덮여있는 3미터에 달하는 마족은 육체 또한 강해 보였다.
그러나 그 마족은 불안정해 보이는 눈을 했다.
장현은 그 원인이 뭔지 알고 있었다.
‘확진자 마족.’
많은 마족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되면 정신이 이상해지면서 곧 몬스터와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그들은 마력도 모두 사라지고, 육체의 힘밖에 남지 않지만. 그중 몇몇은 저렇게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여전히 강력한 힘을 내곤 했다.
다만 바이러스에 걸렸던 후유증인지, 눈빛이 이상하고 정신이 마족과 몬스터를 오가곤 했다.
장현은 매서운 눈으로 그 마족을 쳐다봤다.
인류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해 줄 단서다.
‘놈은 여기서 죽어야 한다. 그것도 잔인하게.’
마튜브를 보는 마계 주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킹덤에 투입된 확진자 마족들은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이라는 것을.
그래야 마족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날 것이니까.
장현은 망치를 꺼내 마족을 향해 달려갔다.
안젤라, 김덕배 등 동료들도 함께 움직였다.
장현이 먼저 암기를 던지며 마족의 주의를 끌었다.
그사이 망치를 준비한 장현은 무림 왕국 던전에서처럼 안젤라와 함께 호흡을 맞춰 놈을 공격했다.
최형석 또한 전투로봇과 언데드 병사들을 소환해 마족들과 몬스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아! 그동안 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고! 내 사냥감 건들지 마!”
김덕배가 소리 지르더니, 이어 마족을 찾아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강기의 경지에 이른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이 쓸려나갔다.
장현과 안젤라의 합공은 정상적인 마족이어도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확진자 마족은 비록 마력을 잃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움직임에 문제가 있었다.
최정상급 플레이어인 장현과 그의 동료들에게 무력하게 쓰러져 갔다.
그리고 그 장면은 수많은 영상 장치를 통해 전 마계에 방영되고 있었다.
장현이 안젤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안젤라, 이 장면 제대로 찍히고 있는 거지?”
“걱정 마, 외할아버지도 동의했으니까. 장현이 개량된 백신을 제공해준다니 흔쾌히 응했어. 그리고 경기 영상이야 어차피 마튜브를 통해서도 올라가니까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말이야.”
“그렇다면 좋아. 중요한 건 지금 이 장면이 송출되어야 하는 거니까 잘 챙겨줘.”
“맡겨줘.”
안젤라는 자신감이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장현의 계획을 이제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따르기로 결심했다.
이 일이 끝나면 안젤라는 장현과 함께 독립한 세계에서 살아갈 것이다.
몽슈 백작과 마리 부인 또한 백신을 얻고 사업 또한 번창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장현의 계획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헬릭스 성주에 대해서도 장현은 약속했다.
그가 마왕을 쓰러트리고 나면, 마계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되면.
헬릭스는 여전히 지금과 같은 위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전제는 그가 인류 플레이어들을 지지해줘야만 했다.
안젤라 또한 동의했다.
그녀의 지시를 받은 워즈웍 스튜디오팀이 마튜브 영상 제작 장비를 활용해 물류창고의 전투를 촬영하고 있었다.
“안젤라 님, 영상을 찍었습니다. 이대로 바로 올릴까요?”
제작팀의 한 직원이 안젤라를 불렀다.
그녀는 사실상 이 제작팀의 프로젝트 책임자나 마찬가지였다.
“좋아, 이정도면 됐어. 따로 편집하지 말고 바로 업로드하도록 해.”
안젤라는 제작팀에서 찍은 영상을 승인했다.
“알겠습니다.”
곧 영상이 마튜브로 송출됐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킹덤의 현장에 와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그동안 확진자 몬스터들을 상대하던 플레이어들이 마족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입니다. 함께 시청하시죠.]
해설자의 설명과 함께 영상이 나타났다.
화면 속에는 클라우드 왕국의 아르헨이 나초를 휘둘러 확진자 마족의 신체를 양단하는 장면이 나왔다.
콰지직!
[시청자 여러분, 현재 킹덤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을 일군 클라우드 왕국의 아르헨입니다. 그는 마족을 상대로도 가뿐히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실로 놀랍습니다. 현재 킹덤의 왕좌에 가장 근접한 플레이어입니다.]
그런 경기를 지켜보던 마족들은 더 이상 열광하지 않았다.
“저거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된 마족들이잖아. 왜 몬스터들이 아니라 마족이 있는 거지? 그것도 확진된 마족들이.”
“그러게. 확진되었으면 요양이나 해야지. 플레이어들과의 전투에 투입되면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잖아.”
“설마, 죽으라고 투입한 거 아니야?”
마계의 수많은 주민들은 경기에 참여한 마족들이 바이러스에 확진된 상태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이러스에 확진된 마족들이 어떤 상태에 처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요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전투에 투입한다?
자발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의식불명 상태의 확진된 마족들을 킹덤에 투입해, 플레이어들의 손에 죽게 만든 것이다.
안젤라가 직접 제작진을 내세워 찍지 않았다면 이 영상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반응을 확인한 안젤라가 장현에게 말했다.
“장현, 반응이 벌써부터 뜨거워.”
“좋아, 계속해.”
장현 역시 그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기서 좀 더 강하게 가야 한다.
‘좀 더 자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겠어.’
마족들은 플레이어들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자들이다.
유흥거리이자 장난감으로 여기던 플레이어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도 불가항력으로 재난이나 다름없는 바이러스에 확진되어 의식이 불명인 상태에서.
경기장에 끌려가 플레이어에게 죽는다면 분명 분노하게 될 것이다.
그 분노는 그런 상황을 만든 마왕과 고위 마족에게 향하겠지.
장현은 자신의 모습이 잡히도록 연출한 상태에서 확진된 마족을 망치로 박살냈다.
죽은 마족을 향해 호리병을 뻗자, 확진된 마족의 사체가 흩어지며 호리병으로 빨려 들어갔다.
장현은 이어서 계속 망치를 들고 움직였다.
쾅! 퍽!
그의 망치가 휘둘러지면 확진자 마족의 머리가 하나씩 부서졌다.
확진된 마족들은 그야말로 학살당했다.
확진되고도 힘을 유지한 마족이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몬스터와 같이 지능을 상실하고 이성을 잃은 채 플레이어들에게 덤벼들었다.
장현뿐 아니라 최형석, 김덕배, 김태석, 이나연 등 다른 플레이어들도 확진된 몬스터를 먼저 정리하고 나서 확진된 마족 사냥에 나섰다.
그 모든 장면은 안젤라의 영상제작팀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